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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벧전 5: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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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라 (벧전 5:7~9)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사도 베드로가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쓴 이 편지는 주후 64년경에 보낸 것입니다. 그 당시의 성도들에게는 환란과 시험이 너무 많아서, 그 어느 때보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참으로 살아가기가 막막한 어려운 때였습니다. 이럴 때에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염려를 많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 7절에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권면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염려를 많이 합니까? 

1. 믿음이 작은 사람들입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날마다 먹고 사는 문제만 생각하다 보니 염려를 많이 합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을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라고 말씀하시면서『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마 6:26)』라고 예수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들이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기르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께서 새보다 귀한 우리도 하나님께서 기르시지 아니하겠습니까! 특히 27절에는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작은 사람이 커질 수는 없습니다.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염려를 자꾸 하면 오히려 키가 더 작아집니다. 염려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28~32절에 보면,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 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먹고 사는 것만 구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으로 살기가 어려우니, 걱정, 염려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에 보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 무엇이 필요한지, 우리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과 가까이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고 채워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할 때, 그들에게는 절망만 보였습니다. 마실 물도 없고, 풀도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것뿐입니까! 밤은 너무 춥고, 낮은 너무 뜨거웠습니다. 전갈과 불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광야생활은 너무 고생스러운 곳입니다. 단 일주일도 버티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이 인도하고 돌보시니, 그들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굶어 죽은 사람 또한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신명기 8장 4절을 보면,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시며, 눈동자같이 지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여러분, 내일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생길지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올 지 안올 지도 모르는데, 왜 미리 염려하십니까? 오늘의 걱정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믿음 없는 사람처럼 십 년, 이십 년 뒤의 일까지 앞당겨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고,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있는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고, 세상 사람들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염려를 많이 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죽고 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세상에 달려있는 것이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손에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하는데, 세상만 바라보고, 사람만 바라보며 의지하니까 염려가 끊이질 않게 되는 것입니다. 

경북 대구 근교에 ‘자산교회’라는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재정적으로 큰 몫을 담당하는 ‘오 부자’가 있었습니다. 성(性)이 오씨가 되어 ‘오 부자’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 오(五)형제가 모두 교회에 다니고 있는 집안으로, 그 집이 부자이고 교회의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오 부자’라고 했습니다. 그 ‘오 부자’가 사업 관계상 자산을 떠나 대구로 가게 되었습니다. ‘오 부자’가 한꺼번에 이사를 하게 되자 자산교회의 제직들은 적지 않게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교회를 꾸려갈 수가 없다고 생각한 재직들은 ‘오 부자’가 옮겨간 대구 교회의 목사님인 안두화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선교사 앞에 앉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습니다. 

선교사 안목사님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왜들 그러십니까? 교회에 무슨 걱정되는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러자 그들은 ‘이 때로구나!’하고 “예, 목사님! 아 우리 교회의 ‘오 부자’가 글쎄 한꺼번에 이사를 갖지 뭡니까? 그러니 우리 교회의 유지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눈치를 슬슬 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안 선교사는 “그래요? 그것참 문제로군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걱정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재직들은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아니 또 무슨 걱정이 생겼단 말인가?’ 그들은 놀라서 안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왜요? 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러자 안목사는 조용히 웃으면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럼요. 문제지요.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자산교회의 여러분들은 하나님은 믿지 않고 그 ‘오 부자’만 믿고 계셨으니 그게 어떻게 문제가 아닙니까?” 

재직들은 그때서야 그들의 불신앙을 깨달았습니다. “참 그렇군요.” 그들은 부끄러워서 감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의 불신앙을 회개하고 교회를 주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 자산교회는 축복을 받아서 ‘오 부자’가 있을 때보다 오히려 더욱 풍성해지는 은혜를 누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죽고 살고,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3.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염려를 많이 하게 됩니다.

염려거리가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 앞에 간구함으로 그 염려를 다 주님께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염려할 시간이 있으면 기도하십시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만 하지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어떤 젊은 여자가 과부가 되었습니다. 남편이 여섯 자녀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은 과부는 살길이 막막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몇 달을 보냈습니다. 염려할 때, 기도하면 살 길을 보여 주십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 자기는 남자들처럼 노동은 못 하겠고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취직도 못 하겠고, 할 수 있는 것은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고 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부모 없는 어린이를 맡아 기르는 양어머니가 되기로 했습니다. 

그 후 20년 동안 이 과부는 자기 집을 양육하는 가정을 만들고 부모 없는 어린이들을 맡아 길렀습니다. 미국에서는 양육하는 가정에 정부에서는 한 아이에게 400불 정도씩 지급합니다. 이 과부는 자기의 6남매 이외에 백여 명의 어린이들을 맡아 길러냈습니다. 신문기자가 와서 그 부인을 인터뷰했습니다. “당신은 무슨 비결로 그 많은 아이들을 맡아서 훌륭하게 길러냈습니까?” 

그러자 그 부인은 대뜸 “함께 일한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함께 일하다니요? 누구와 일했다는 겁니까?” 기자는 되물었습니다. 부인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했습니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때, 저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제 근심 걱정을 맡아 주십시오. 저는 일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근심 걱정은 하나님께 다 맡겨버리고 열심히 아이들을 잘 돌보며 길렀더니 하나님께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셨습니다. 이것이 제 비결입니다.”

이 부인처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길이 열립니다. 기도를 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게 되고 염려거리가 해결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염려를 많이 하고 자랐다는 것입니다. 염려를 많이 하고 자란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릅니다.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면 제 얼굴은 수심이 가득합니다. 그 앨범을 들여다보면, 지금도 처량한 느낌이 듭니다. 얼마나 걱정을 많이 했으면, 이런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을까요? 그 당시에는 정말 하루하루 사는 것이 막막했습니다. 대학 진학은 뒤로 미루고, 당장 사는 일이 급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날마다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어떨 때는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을 거의 마칠 무렵, 저는 하나님께 응답을 받기 위하여 삼각산에 올라갔습니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무릎까지 푹푹 빠졌습니다. 저는 기필코 저 삼각산 봉우리까지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얼어 있는 산을 기어서 올라갔습니다. 눈길이 미끄러워 산을 오르다가 수십 번씩 미끄러졌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낭떠러지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저를 지켜 주셨습니다. 결국, 저는 봉우리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땀을 얼마나 흘렸던지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젖은 옷이 금방 얼음으로 변했습니다.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더니, 얼었던 바지에서 얼음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나님 앞에 응답받기 전까지는 이 산을 내려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목숨을 걸고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한참 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이십 분 밖에 안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모릅니다. 추위를 견딜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산을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의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목숨 걸고 기도하다보니, 경건한 삶을 살게 되고, 하나님 앞에 은혜의 체험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염려한 일은 다 해결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염려하지 말고 열심히 기도만 했더라면, 날마다 찬양하고 감사하면서 기쁘게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믿음의 말만 하면서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후회가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고, 나를 위해 다 준비해 놓으셨다! 하나님은 나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 이렇게 믿음의 말만 하면서 살았다면 하는 후회가 됩니다. 지금의 저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저를 축복하셨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믿음이 약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깨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과거에 아무리 믿음이 좋았다 할지라도 믿음이 약해지고, 믿음이 컸던 사람도 믿음이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도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깨어 기도하지 않고 잠만 자다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실패를 경험했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라고 본문 8~9절에서 권면 합니다. 우리가 환란과 시험을 이기고 마귀와 싸워 이기는 방법은 오직 깨어 기도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마귀는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아다니는 무서운 존재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는 사자들은 이 쇠사슬이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는 사자 앞에 가서 졸고 앉았거나, 우는 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 한 우리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마귀의 시험은 언제 어디서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시험에 들지 않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22장 46절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시험이 아무리 많아도 시험에 들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험에 들까요?

1.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욕심에 미혹 받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마귀가 찾아오고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야고보서 1:14~ 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왜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시험에 들게 되고 넘어지게 됩니까?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그 욕심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저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욕심에 매여서 나가다 보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와를 보십시오! 선악과를 따 먹고 싶은 욕심에 사로잡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간이 욕심이 많으니까,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200세겔, 금 덩어리 50세겔을 땅에 묻는 죄를 범하여 온 가족이 돌에 맞아 죽는 비극으로 끝이 났습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2. 교만한 사람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이 시험에 들게 되고 넘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대적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마귀의 종노릇 하다가 결국 망하기 때문에,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패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사울 왕은 겸손할 때,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 사울왕은 변했습니다. 얼마나 교만한 인간이 되었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불순종 합니다. 나중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하나님이 떠나가니 악신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와 멸망하고 맙니다. 아무리 환란과 시험이 많아도 항상 깨어서 기도하면 승리합니다. 깨어 기도하는 사람은 은혜 받고 큰 믿음을 가지기 때문에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 보면,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을 보면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할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왜 우리는 귀신들을 쫓아내지 못합니까?”라고 질문합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도만이 마귀를 이깁니다. 기도만이 마귀를 대적하고 쫓아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을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귀와 싸워 이기는 비결은 기도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시험에 들지 않고 마귀와 싸워 이기는 비결입니다. 염려거리가 생겼을 때, 기도하십시오! 

빌립보서 4장 6절에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씀했습니다. 큰 환란과 시험은 우리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에게도 환란과 시험이 옵니다. 오히려 우리들 보다 더 큰 고난을 당하고 있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큰 고난이 나에게만 왔다고 생각할 때,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나에게만 그런 환란과 시험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고난을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해결이 됩니다! 기도하면 전화위복이 됩니다! 우리는 이 환난과 시험과 염려가 많은 이때에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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