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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뚜기 재앙의 교훈 (출 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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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뚜기 재앙의 교훈 (출 10:1~20)


아마 시골에 사셨던 분들은 메뚜기에 대한 향수가 있을 것입니다. 논에 나가 메뚜기를 잡아 병에 넣어 가지고 와 복아 먹었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메뚜기는 때로 무서운 재앙으로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의 ‘대지’를 보면 중국에서 일어난 메뚜기 재앙이 나옵니다. 

2004년 9월 1일 서아프리카 세네갈에서는 15년만의 최악의 메뚜기 떼 습격이 있었습니다. 문명이 발달된 요즈음도 서부 아프리카에서는 ‘메뚜기떼 재앙’이 임하면 수십억마리가 목초지를 황폐화시켜버린다고 합니다. 이런 메뚜기 떼가 기습하면 서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4분의 1을 잃게 되고 결과적으로 1천 5백만 명이 생계를 위협받는다고 합니다. 하루에 자기 몸무게만큼 먹어치우는 메뚜기가 추수를 앞두고 덮치면 수확할 곡식 40~100%가 사라졌고 소·양들을 키울 목초지도 황무지로 바뀌어 버린다고 합니다. 살다보면 어느날 갑자기 이런 메뚜기 떼가 우리 네 인생에도 임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가꾸어 온 삶의 터전을 황폐화 시켜버립니다. 수십년동안 보살펴 만들어 놓은 몸이 반란을 일으켜 심각한 병을 가져오게도 합니다. 몇십년동안 충성을 다한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애굽에 내린 여덟 번째 메뚜기 재앙을 통해 이런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이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이런 재앙같은 어려움이 임하면 우리는 먼저 재앙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하고 둘째는 가까이 있는 사람의 조언 셋째는 재앙 당한 본인의 부탁에 귀를 기울려야 하는데 오늘도 메뚜기 재앙이 앞에 이미 임한 7가지 재앙과 다른 점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먼저 어떤 재앙이 임하면 하나님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1. 우리는 재앙에 무관심하지 말고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1-2). 

어떤 어려움이 오면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관심하고 무신경할 수 있습니다. 
바로는 일곱가지 재앙을 내렸지만 조금 관심을 보인듯하지만 끝없이 하나님께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제 재앙을 내리는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앞에 일곱가지 재앙 때와는 달리 처음부터 연속되는 재앙의 목적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연속적으로 재앙을 내리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명확하게 애굽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별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애굽 사람에게는 재앙을 임하게 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이집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1) 바로와 애굽의 권력자들이 7가지 재앙을 당하고도 계속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이처럼 미련할 정도로 바로 일당들이 자신들의 아집을 꺾지 않은 근본 동기에는 하나님('내가')의 의지가 개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해”서입니다. 

역사 가운데 임하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이적은 그분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는 표시요 증거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말하면 재앙을 통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냥 말로 해서 안됩니다. 무언가 특별한 기적을 내려야 믿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갑자기 임하는 고난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미래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문흥수 변호사님의 간증을 읽어보았습니다. 서울대 법대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시고 부장판사를 지내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장 친했던 바로 위의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답니다. 서울대 진학에 실패한 뒤 시름시름 앓다 병원에 입원한 지 1주일 만에 추운 2월 어느 날 새벽, 숙모가 찾아와 어머니에게 형이 죽었다고 했답니다. 윗방에 누워 어머니와 숙모의 대화를 듣고 있던 그는 벌떡 일어나 '주님, 주님, 주님'이란 글자를 수없이 써내려갔다고 합니다. 당시 불교를 믿었지만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기독교의 주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형을 화장터의 한 줌 재로 떠내 보내고 신앙 좋으신 선생님의 권위를 받고 영어로 시편 23편을 외우며 평안히 잠을 잤다고 합니다. 대학 시험 때까지 1000번도 넘게 외웠다고 합니다. 뜻하지 않는 형의 죽음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자연 현상으로 평범한 일로 무관심하게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숨어 있는 뜻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화여고 교장하시고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현대고등학교 초대교장을 역임하신 정희경 장로님을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예수님를 믿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외도 동생이 충격을 받았답니다. 동생은 추운날 밖에 나라 음식도 먹지 않고 예닐곱 시간을 헤맸었답니다. 그날 밤 호된 감기로 일주일 넘게 앓았고 한밤중에 '으악'하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힘없이 뒤로 넘어졌다고 합니다. 그렇게 동생은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시간이 지난 후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뜻하지 않는 재앙이 확성기가 되어 믿지 않는 사람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7번째 재앙 때(9:16)에 하나님께서 바로를 왕으로 세운 이유를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그런데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기보다는 자신을 신이라고 하고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자신의 이름을 온 천하에 전파하는데 인생의 목적을 삼습니다. 하나님은 계속적인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시다는 온갖 증거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게는 어떤 숨어 있는 뜻이 있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믿는 사람에게 재앙의 숨은 뜻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바로에게 여러 번 참회의 기회를 주시면서 그가 항복할 때까지 애굽에 여러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애굽에서 행한 일들이 자손들의 뇌리 속에 깊은 흔적으로 남아 오고 오는 세대에 두려운 증거로 기억되게 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을 알고 또한 믿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롬10:17). 

오늘날 말하면 예수 믿는 믿음의 자손들이 부모님께서 생생하게 경험한 믿음의 흔적을 통해 신앙의 계승을 하길 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롬 10:17)”는데 기록된 신앙 간증을 통해 믿음을 가지고 살기 원하는 것입니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하나님의 업적과 이적을 이야기 해 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고난 주시길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렘 29:11)” 그러나 때때로 재앙같은 고난이 다가 올 수 있습니다. 

재앙같은 고난이 다가왔다고 낙심하며 하나님을 더 멀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오라는 신호입니다. 서양 격언에 "냇물에서 잔잔한 돌들을 치워버린다면 냇물은 노래를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시인 라이스 여사는 '고난이야말로 변장된 축복'이러고 노래하였습니다. 고난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도록, 의지하도록 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은 대부분 세 종류입니다. 첫째는 연단으로서의 고난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요셉과 같은 인물이 당한 고난입니다.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노예로 팔려가기고 하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그를 국무총리가 되게 하기 위해 훈련시킨 것입니다.

둘째는 자발적으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의를 위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당하는 고난입니다. 피하면 얼마든지 당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사자굴 속에 들어가기도 했고 풀무불 속의 시련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 전하다 죽는 스데반이 당하는 고난입니다.

셋째는 징계로서의 고난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당하게 되는 고난입니다. 다윗이 간음했다가 결국 아들이 죽습니다. 요나가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징계를 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히 12:8).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잠 3:12)"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입니다.(히12:10)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케 하시느니라 (히 12:10)"

지금 애굽에 내리는 재앙처럼 어려움과 고통에 계시는 분이 있습니까? 고난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리기 원하십니다. 가정에 간증거리를 주어 그것을 후손에게 전하여 특별한 신앙 경험을 하지 못한 후손들이 선조들의 경험을 통해 신앙 안에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통해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통해 무엇을 교훈하겠습니까?
어려움을 당하면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갖가지 말을 합니다. 


2. 우리는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오게 하는 인생의 함정을 없애 버려야 합니다.(3-11)

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신하들이 바로에게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3절 이하를 보십시오. 모세와 아론이 바로를 찾아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합니다. 무엇을 전합니까? 세 가지를 전합니다. 
첫째 어느 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내 백성을 보내라는 것입니다. 
셋째 만약 다시 거역하면 전무 후무한 메뚜기를 재앙을 내려 우박을 면하고 남은 식량을 다 쓸어버리겠다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초토화시키겠다는 것입니다. 바로 뿐만 아니라 바로의 신하 모든 애굽 백성의 경제를 파탄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 경고의 말을 듣고 있던 바로의 신하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세 가지로 반응합니다. 일곱 재앙과 다린 처음으로 신하들이 반발합니다. 신하들이 태양신의 아들 바로에게 반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심각한 재앙을 이미 당하였고 앞으로 당할 것을 생각하고 왕에게 진언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진언입니까? 

첫째 어느 때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의 함정이 되게 할 것인가라는 것입니다. 자신들을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게 하는 덫을 치우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보내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는 것입니다. 
셋째는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미 7가지 재앙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폐허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 바로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가족은 놓아두고 남자들만 가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파리 재앙 때 살펴보았듯이 바로가 어려우니까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다시 한 번 8장 25절을 보십시오. 바로의 술객들이 파리 재앙이 임하니까 하나님의 권능인 것을 인정합니다(8:19). 그 때 바로가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이 땅에서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혼합주의입니다. 나의 노예로 남아 하나님도 섬기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거절하자 두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적당주의입니다(28). 멀리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메뚜기 재앙이 임박하자 신하들의 말을 듣고 세 번째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남자들만 가라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입니다. 너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가족을 볼모로 삼아 결국 이들을 계속적으로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하들도 진언하는데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로 붙들겠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질과 권력을 숭배하는 바로입니다. 자기가 섬기는 무수한 신들이 쓰러져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그 우상은 신으로 섬긴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왕국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노예 노동을 통해 애굽을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신하들도 이제 그들이 애굽에게 유익이 아니라 함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그 함정을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람들이 함정이라고 말하면 그 함정에서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남을 증오하고 있는 함정, 나의 인생을 망치게 하는 나쁜 중독의 함정, 내 건강을 해치게 하는 나쁜 습관의 함정, 신앙생활의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세상과 타협하는 차지도 덟지도 않은 미지근한 믿음의 함정 이런 함정들을 빨리 청산해 버려야 합니다. 

탤런트 김동현 장로와 가수 혜은이 권사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당신은 모르실거야' '감수광' 등 숱한 히트곡을 남긴 분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찬양 사역자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장로님이셨는데 한동안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 것입니다. 잘 나가는 가수였습니다. 사람이 그릇된 길로 가는데도 승승장구하면 쉽게 신앙의 바른 길로 돌아 서기 힘듭니다. 그러다 친정 어머니의 사망, 남편의 사업 실패, 자궁적출 수술 등으로 우울증이 겹치며 자살 충동에 시달렸었다고 합니다. 계속적으로 재앙 같은 고난이 다가온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주님 품으로 돌아와 수요예배와 금요예배, 새벽기도회 등을 남편과 함께 나가면서 신앙을 회복하고 힘든 시기를 견딜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가까이 가까이 어려움을 줄 수 있습니다. 빨리 내려놓을 것 내려놓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 싫어하시는 것 끝까지 붙들고 있으면 그 만큼 인생은 황폐화되고 진정한 기쁨과 평안도 잃어버립니다. 언제 또다시 재앙이 다가올까 불안하게 살아갑니다. 

전신마비 미식축구 영웅 스콧 브룸필드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미식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분입니다. 한때 관중을 매료시키는 '천재적인 선수'로 불렸습니다. 그에게 어느 날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3쿼터 경기 1분7초를 남기고 그는 상대팀 선수와 부딪쳐 넘어지면서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전신마비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답니다. 

담당의사는 그에게 말했다. "다시는 걷지 못할 것입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답니다. 풋볼선수로 인생의 성공이 보장되어 있었는데 한 순간에 인생은 뒤틀려 버렸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던 그에게는 가족 외에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답니다. 수술 후 이틀째였는데 중환자실에 30대 후반의 불청객이 나타났답니다. 그는 제지하는 아내에게 애원하듯 말했답니다. 자신의 아들이 브룸필드 선수를 가장 존경한다며 사랑하는 아들의 영원한 스타를 위해 기도하고 싶다고….

결국 면회를 허락받았답니다. 그는 휠체어에 한 아이를 태우고 나타났답니다. 8세 소년은 백혈병을 앓고 있었답니다. 소년은 브룸필드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기도했답니다. "나의 스타 브룸필드씨, 힘을 내세요. 하나님이 당신을 도와주실 거예요. 저는 3개월밖에 살 수 없어요. 하지만 저는 기도해요. 저와 함께 기도하세요."

소년은 병이 나으면 브룸필드와 같은 풋볼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답니다. 갑자기 브룸필드의 눈에서 눈물이 솟구쳤답니다. 교만했던 삶, 감사를 몰랐던 무례한 인생, 액세서리처럼 치장됐던 신앙…. 갑자기 회개기도가 터졌답니다. 그는 소년에게 약속했답니다. "내년에 신시내티로 돌아가 선수로 다시 뛸 것이다. 그때까지 건강하거라. 그때는 반드시 네가 응원을 와야 한다." 그는 기적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답니다. 소년도 치료됐었답니다. 그는 신시내티로 돌아와 선수로 복귀했고 백혈병 소년의 응원이 이어졌답니다. 그는 말합니다. "여생을 어린이를 돕는 일에 헌신할 것입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어린이, 풋볼을 사랑하는 어린이등에게 복음과 꿈과 희망을 선물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사랑과 치유를 증거할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 버릴 것 빨리 버려버리고 정리할 것 빨리 정리해 버려야 합니다. 바로의 신하의 말처럼 어느 때까지 버리지 못한 그것이 우리의 함정이 되게 할 것입니까? 내가 제거하면 작은 고통이 되지만 하나님이 제거하면 깨닫게 하여야 하기 때문에 큰 재앙이 됩니다. 우리를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게 하는 덫을 치워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못하게 하는 교만과 우상, 이기심의 함정을 벗어 던져 버려야 합니다. 바로의 신하들은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우리도 아직도 망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불나비처럼 불속으로 뛰어 들어가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함정은 내가 없애야 징계가 아니라 복의 그릇이 됩니다. 

재앙이 다가오면 재앙을 당한 사람의 도움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재앙을 당하는 핵심에 있는 바로를 통해 하나님은 어떤 음성을 들려주고 있습니까?


3. 우리는 인생의 재앙이 다가오면 진정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께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12-20)

세 번째 이미 임한 일곱가지 재앙과 다른 점은 처음으로 바로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애굽 땅 위에 지팡이를 드니까 여호와께서 동풍을 불게 하십니다. 메뚜기 떼들은 혼자 힘으로는 장거리 여행을 할 수 없습니다. 바람의 힘으로 먼곳까지 날아갈 수 있습니다. 당시 애굽에 임하는 메뚜기 떼들은 남서지방(리비아, 에디오피아 등)으로부터 남풍 또는 서풍을 통해 날아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상식과 달리 동풍이 불어 메뚜기 떼는 아라비아 사막 북부로부터 애굽으로 날아온 것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은 바람까지라도 조절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신 10:14; 욥 41: 11; 시 24:1; 50:12). 

보통 메뚜기 떼는 어느 특정한 지역만을 강타합니다. 그런데 애굽 전역을 휩쓸어 버린 것입니다. 메뚜기 재앙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초자연적 사건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땅이 어두울 정도로 날아와 푸른 것은 남기지 않고 다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바로가 항복하는 것입니다. 그는 곤충의 피해로부터 막아주는 곤충의 신 세라피아를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라피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바로의 반응은 세가지입니다. 

16절 보세요. 내가 하나님과 너희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를 인정하는 것은 이미 우박 재앙 때 인정했습니다(9:27). 마음속 깊이 회개하는 듯한 자세를 취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는 아닙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인정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번 만은 죄를 용서해달라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용서를 비는 것입니다. 조금 진전된 것같습니다. 세 번째는 죽음만은 피하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자칭 신이라고 하는 바로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기도를 부탁합니다. 세라피아가 곤충의 재앙을 피하게 하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이미 개구리 재앙 때도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출8:8). 파리 재앙 때도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8:28). 우박 재앙 때도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출9:28). 그럴 때마다 모세는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응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되면 바로는 또다시 강퍅해졌습니다. 이 정도 되면 모세는 그의 기도부탁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증오하고 싶을 것입니다. 나를 핍박하고 모독하고 비난하는 자들이 잘못되면 고소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모세는 어떻게 합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기도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동풍을 일시에 강렬한 서풍으르 바꾸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한 서풍을 불게하여 애굽의 온 지경의 메뚜기를 하나도 남김없이 홍해에 몰살시켜버렸습니다. 기도는 이런 능력이 있습니다. 동풍을 서품으로 일순간에 바꾸어 버립니다. 끝까지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아내가 변화되지 않는다고 자녀들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낙심하고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서풍을 불게 할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서풍을 불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남아공의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복수의 악순환을 끊어 버리기 위해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였습니다. 규칙은 간단했습니다. 백인경찰이나 군인이 털어놓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그 범죄로 인해 재판을 받거나 처벌받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청문회 자리에서 반드 브렉이라는 경찰관이 자기의 죄를 털어 놓았습니다. 

자신과 동료들이 18세 소년을 총으로 쏘고 시체를 불태운 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그 시신을 바베큐처럼 불에 그슬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8년 후 반드 브렉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소년의 아버지를 체포했는데, 불쌍한 그 아내는 경찰관들이 남편을 장작더미에 묶어놓고 몸에 휘발유를 끼얹은 뒤 불을 붙이는 광경을 강제로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아들과 남편을 차례로 잃은 노부인에게 법정에서 말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판사는 물었습니다. “반드 브렉 씨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녀는 남편의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있도록 부탁한 후 한 가지 요구 사항을 추가했습니다. “반드 브렉 씨는 제 가족을 모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저에겐 아직도 그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많습니다. 제가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한 달에 두 번 우리 집에 와서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나는 반드 브렉 씨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것과 나도 그를 용서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나는 내가 정말 용서했다는 것을 반드 브렉 씨가 알 수 있도록 그를 안아주고 싶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에 우리를 위해 돌아가시고 용서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법정에 가득찬 흑인들이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찬송을 부릅니다. 그 때 반드 브렉은 찬송을 듣지 못했답니다. 그 사랑을 감당치 못하고 졸도해 버립니다. 

이 여인이 어떻게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겠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시고 몸소 행했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이야 말로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바로같은 인간이라도 끝없이 품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재앙은 더 이상 재앙이 아니고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눈으로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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