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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 이가봇 (삼상 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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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가봇 (삼상 4:12~22)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정말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성공하고 싶어 하고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단 한번 사는 인생인지라 서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잘 배워야 합니다. 인생의 지혜를 얻기 위해 제일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 체험 학습일 겁니다. 직접 경험해 보면 인생의 지혜를 분명하게 깨닫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열심히 노력했더니 좋은 성적이 나왔어요. 그러면 “아하!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성적이 나오는구나.” 깨닫게 됩니다. 다음부터 계속 열심히 노력하게 되고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직접 경험이 항상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좋은 것은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유익하지만, 나쁜 것을 직접 경험하면 위험하고 오히려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간접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게 훨씬 더 유익합니다. 

예를 들어보죠. 자동차를 운전할 때 안전띠를 매는 게 좋을까? 안 매는 게 좋을까?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한번은 안전 띠 매지 않고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당해 보고, 또 한번은 안전띠 매고 운전하다 교통사고 당해 보면 됩니다. 아마 확실하게 배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이런 경우는 간접 경험을 해 보는 게 좋습니다. 

자동차 충돌 실험을 하는 겁니다. 자동차에 사람 대신 마네킹(전문용어로는 ‘더미’dummy인데 개당 1억원도 넘는다고 함)을 태우고 교통사고를 내 봅니다. 그러면 얼마나 충격이 심한지 얼마나 위험한지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안전띠를 매는 게 안전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간접 경험이죠. 이게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그런데 더 지혜로운 것은 그런 사실에 대해 전해 듣고 금세 깨닫고 실천하는 겁니다. 간접경험 중에서도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전해들은 것을 그대로 믿고 따르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이상해요. 성경에서 말씀하는데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경험해 보는 사람이 있어요. 실컷 고통을 당하고 얻어터지고 나서 후회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기는 했는데 손해가 막심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정리하시면 됩니다. 좋은 내용은 무조건 믿고 순종하십시오. 반드시 승리하고 축복을 얻게 됩니다. 나쁜 내용은 절대로 직접 경험하지 마시고 간접 경험으로 배우십시오. 그게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승리의 지름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인생의 지혜를 배우는 것을 가리켜 “타산지석을 삼는다” 혹은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 가문과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실패한 이야기요 슬픈 이야기입니다. 이런 건 절대 직접 경험하지 마십시오. 간접 경험으로 배우십시오. 그래서 모쪼록 엘리 가문이나 이스라엘처럼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승리하는 복된 인생 되시기 바랍니다. 

[1] 엘리 가문의 몰락 : 이스라엘의 심판 경고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사사시대는 왕이 아니라 사사(士師 Judge)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인데, 여호수아 사후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사울왕의 직전까지 3백여 년입니다.(B.C. 14세기~11세기) 당시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자행자지하던 영적 암흑시대였습니다. 

바로 이 사사시대 말엽에 제사장 겸 사사였던 엘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의 지도자요 귀족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가문이 비참하게 몰락합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닥쳐왔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이스라엘에게 골치 아픈 존재였습니다. 수시로 침공해 옵니다. 그런데 본문에 기록된 전투에서 아주 참패를 당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참전했습니다. 엘리가 소식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달려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륙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루 아침에 이스라엘이 참패를 당했는데, 3만 명이나 전사했습니다.(삼상4:10)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고, 게다가 하나님의 궤(언약궤)까지 빼앗겼다는 겁니다. 

언약궤는 성막의 지성소에 안치되어 있는 것으로 그 속에 십계명 돌판,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해 주신다는 증표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이시고 무한하신 분으로 꼭 언약궤 안에만 계시는 게 아니죠. 그런데 무지한 제사장과 백성들이 언약궤를 전쟁터에 갖고 간 것입니다. 이것은 미신적 신앙입니다. 상황이 급하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겠다는 심산으로 그랬겠지만 난센스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징계로 참패하고 언약궤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엘리 제사장이 그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됩니까? 18절.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 ” 충격을 받고 비둔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져 목이 부러진 채 죽었습니다. 비참한 최후입니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비느하스의 아내가 있었는데 만삭입니다. 마침 해산하게 되었는데 모든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아 죽어갑니다. 해산을 돕는 여인들이 아들이라도 해도 너무 슬퍼서 관심도 두지 않습니다. 아들을 낳는 것이 큰 경사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슬퍼서 그랬을 겁니다.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짓고 죽었습니다. 20절~21절. “20 ...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하지도 아니하며 관념하지도 아니하고 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 ” 여기서 ‘이가봇’(d/bk;Aya)이란 이름이 의미심장합니다. 히브리어로 ‘영광이 없다’ 혹은 ‘영광이 떠나다’(No Glory)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해 주시지 않고 이스라엘을 떠나셨다는 탄식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비참한 일들이 미리 예언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 가문이 몰락할 것을 경고하셨습니다.(삼상2:31~36) 그 중에 삼상2:34을 보면 두 아들이 한 날이 죽을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이 예언대로 두 아들이 동시에 죽고 온 가문이 망했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도 블레셋에게 참패를 당하고 굴욕의 역사가 전개됩니다. 문자 그대로 “아! 이가봇” “아! 영광이 떠났도다!”입니다. 정말로 큰 비극입니다. 

[2] 엘리 가문 몰락의 원인 : 하나님을 멸시한 불신앙 

여러분, 왜 엘리 가문이 이렇게 비참하게 망했을까요? 이스라엘이 굴욕을 당했을까요?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한 불신앙 때문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 분과 척지면 당연히 인생이 망가질 수밖에 없죠. 삼상2:6~7,10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 ” 인생만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을 거역하면 산산조각 나듯 망할 수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삼상2:30 보면 더욱 분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엘리에게 경고한 말씀입니다. 

“ ...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엘리 가문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신앙으로 인도해야만 하는 제사장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기에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엘리 가문이 멸망하고 이스라엘이 쇠하게 된 이유는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계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별게 아닙니다. 국가도 별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주셔야, 함께 해 주셔야, 은혜를 베풀어주셔야 설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별수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안 될 일도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될 일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잘 따르는 게 인생의 지혜요 승리의 비결입니다. 엘리 가문과 이스라엘은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겁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 멸시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망하죠. 마치 기름을 뿌리고 불구덩이에 들어간 격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을 멸시했나요? 

① 예배 소홀 :

첫째로, 그들은 예배를 소홀히 함으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엘리도 두 아들도 제사장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 인도자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소홀히 했습니다. 특히 두 아들은 백성들이 갖고 온 제물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예배를 능멸했습니다. 삼상2: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가장 큰 죄악 중 하나가 예배 방해죄입니다. 하나님께 얻어터집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게 예배입니다. 참 예배자를 좋아하시고 축복하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될 게 바로 예배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있었던 유명한 실화입니다. 영국 성공회 대주교였던 윌리엄 템플(William Temple 1888~1944)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영국 국민들은 절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유럽 대륙이 속속 독일의 손에 들어가는 가운데, 영국도 독일군에게 점령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윈스턴 처칠이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국민들의 불안감은 극도에 달했을 겁니다. 

그 때 처칠의 부탁으로 윌리엄 템플이 대국민 연설을 했습니다. “대영제국 국민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할 때입니다. 전쟁은 큰 일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더 큰 일입니다. 만일 우리 국민이 이와 같은 때에 진정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수 있다면 전쟁은 결코 큰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전쟁을 승리할 것입니다." 주일 날 영국의 모든 교회는 종을 울렸고, 교회마다 예배하러 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영국은 마침내 승전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예배 태도가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하면 모순입니다. 그러므로 주일 예배에 충실히 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매일 수시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개인적으로 공적으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1993년 10월 10일 주일날이었습니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서해 페리호 침몰사고가 있었습니다. 서해의 위도에서 부안군 변산으로 항해하던 배가 침몰하면서 사망자 292명, 부상자 70명을 낸 최악의 해난 사고입니다. 사망자 중에 정부 중앙 부처 공무원들이 다수 있었습니다. 모 교회 교인도 그들과 함께 낚시 가려고 했는데 부인이 말렸습니다. 마침 그 날 세례 받는 날이라 부인이 강력하게 말렸습니다. 하도 그러니까 마지못해 교회에 갔는데, 바로 그 날 사고가 터진 겁니다. 그 교인은 아내 말을 듣고 화를 면한 겁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살았습니다. 

우리 삶 속에 이런 태도가 중요합니다. 예배를 귀히 여기는 사람을 하나님이 귀히 여겨주십니다. 그러므로 엘리 가문처럼 예배를 소홀히 여기다가 후회하지 말고, 예배를 귀히 여김으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② 말씀 무시 : 
  
두 번째, 엘리 집안과 이스라엘은 말씀을 무시함으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말씀이 아주 중요합니다.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엘리와 두 아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사 시대 풍조가 그랬습니다. 삿21:25 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 하나님이 사무엘을 예비합니다. 삼상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 말씀이 희귀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는 겁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죠. 엉뚱한 짓만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실 수 없고, 축복을 받을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4: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 ”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는 증거가 바로 말씀에 대한 순종의 태도입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된 인생을 원하면 당연히 말씀 안에서 살아야 됩니다. 말씀의 노선에 충실해야 됩니다. 고전4:6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말씀 안에서 살라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보장하는 승리의 인생이 됩니다. 

며칠 전 인천의 모 여고에서 학생 4명이 체육시간에 죽었습니다. 너무 놀라지는 마십시오. 피구하다 금 밟아서 죽었답니다. 이래서 한국말이 어렵죠. 우스갯소리 같지만 여기에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면 망합니다. 죽습니다. 말씀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존중하기에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③ 세상 욕심 : 

세째로, 엘리 집안과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세상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을 멸시했습니다. 사람이 세상 욕심을 너무 부리면 그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 인생을 흔들리기 마련이고, 결국은 망합니다. 엘리의 두 아들이 그랬어요. 삼상2:22 “ ... 그의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끔찍한 일이죠. 육신의 정욕을 위해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습니다. 제사장이란 작자들이 성소에서 여인들과 더러운 짓을 한 겁니다. 

그뿐이 아니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백성들이 제물을 갖고 오면 중간에서 가로챘습니다. 백성들이 두려운 마음에 거부해도 강제로 빼앗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진노하신 하나님이 엘리를 책망합니다. 삼상2:29 “ ...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 하나님보다 아들들이 욕심내는 것을 좋게 여기 방치했다는 겁니다. 보나마나 자기도 나눠 먹었겠죠. 얼마나 한심하고 비참한 모습인지! 이건 정말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요일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집착하는 게 있으면 그게 바로 하나님과 원수입니다. 우상입니다. 그런 게 우리 인생 가운데 있으면 안 됩니다. 심지어 자식이라도 하나님보다 귀하게 여기면 안 됩니다. 엘리를 보세요! 하나님보다 자식 위하다가 함께 망했잖아요. 

물론 우리가 육체를 가진 존재니까 세상에 살면서 필요한 게 많죠. 하지만 지나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욕구 채우는 것은 오히려 도와주십니다. 그러나 지나쳐서 욕심을 부리는 것은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하나님은 우리의 욕구는 채워주시지만, 욕심을 채워주시지 않는다.” 

부디 엘리와 이스라엘의 모습을 반면교사 삼고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는 참 신앙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게 바로 승리하는 인생의 지혜입니다. 

[3] 인간의 흥망성쇠 : 하나님에 대한 태도(신앙, 영성)에 달려 있음 

인생의 승리는 자신의 능력이나 재주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인간은 별게 아닙니다.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흥망성쇠,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로 인생이 판가름 납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바로 신앙이고 영성입니다. 신앙이 좋아야 영성이 풍성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승리하는 인생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누누이 권면하며 약속합니다. 시34: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만사 오케이라는 겁니다. 다른 데 신경 쓰지 않아도 부족함이 없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사33:6 보면 아주 귀한 말씀이 나오죠. 사33:6 “여호와를 경외함이 네 보배니라”

엘리 집안과 이스라엘이 이렇게 불신앙으로 망해가던 어두운 암흑시대에 샛별같이 사무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는 기도로 태어나고 평생 기도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사무엘은 사사가 되자마자 미스바에 백성을 모아놓고 성회를 개최합니다. 말씀 듣고 기도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을 높여드립니다. 그 틈을 타서 블레셋이 침공합니다. 그러나 화가 복이 되었죠. 큰 힘 들이지 않고 블레셋을 대파하는 기회가 됩니다. 사무엘은 승리한 후 기념비를 세우고 이름을 ‘에벤에셀’(삼상7:12)이라 붙였습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고백입니다. 그 후 블레셋이 얼씬거리지 못하고 빼앗견전 모든 땅을 되찾습니다. 주변 국가들도 덩달아 두려워서 꼼짝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 조공까지 갖다 바치고 평화의 시대가 열립니다. 사무엘의 생애 내내 태평성대를 이룹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인생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생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경제 위기, 안보 위기, 사회 혼란 등. 이런 모습들을 보면 짜증도 나고 걱정도 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정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귀히 여기는 신앙을 회복하면 다 해결됩니다. 개인도 가정도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전 6.25 전쟁 59주년이 지났죠. 잊지 말아야 하는데 자꾸 잊어갑니다. 잿더미였던 우리나라가 이 정도 살게 된 게 누구 덕입니까? 원래 한국인은 머리가 좋고 뛰어나서 그런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일제의 지배는 받았나요? 6.25 때 참전한 16개국 UN 군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영영 서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의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기억하는데 정작 도움 받은 우리가 잊어버리면 곤란합니다. 

워싱턴 D.C에 가면 한국전쟁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이 있죠. 오래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데 둘러보면서 숙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 비석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수많은 희생이 있었다는 겁니다. 잊지 말자는 겁니다. 터키 앙카라에 가면 한국공원이 있는데, 거기에도 ‘한국 참전 토이기 기념탑’이 있습니다. 전사자 명단이 죽 적혀 있어요. 6.25 때 전사한 한국 군인과 외국 군인이 수십만 명에 달합니다. 미군 전사자만 해도 5만 명이 넘습니다. 이건 인류 역사 상 유례가 없는 일입니다. 한 나라를 위해 이렇게 여러 나라 군인들이 희생한 예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겁니다. 한 마디로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놀랑ㄴ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신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죠. “체력은 국력!” 맞는 말입니다. “경제력은 국력!” “군사력은 국력!”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영력은 국력!” “신앙의 힘은 국력!”입니다. 

우리 개인이든 우리 가정이든 우리나라든 엘리 집안과 이스라엘처럼 “아, 이가봇!” “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도다!” 이런 비극이 없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존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항상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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