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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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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1~11)


지난 주간에는 우리 교회 여전도회가 지원하여 중국 운남성에 시어나러교회를 건축하고  입당감사예배를 드리고 왔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우리교회 평신도선교사로 파송한 오용범장로님 내외가 정말 수고에 수고하셨고, 무려 9차례나 그 깊은 산골에 다니면서 건축을 독려하였습니다. 자세한 선교보고는 세계선교부장님이 하실 것입니다.  

저는 중국 소수민족들 중에는 많은 부족들이 예수님의 예자도 들어보지 못하고, 오로지 땅을 일구며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 희생적인 사랑을 가지고 빚을 갚는 심정으로 복음을 전해야겠습니다.  

저는 ‘입당 감은예배’에서 설교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을 들고 들어온 의사 알렌이란 분과 복음을 들고 들어온 언더우드목사님에 대하여 증거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들을 잊을 수 없는 인물들입니다.  우리에게 예수 믿어 구원받는 귀한 진리를 전파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알려준 분들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믿어 구원받은 것입니다. 

한 동리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역사입니다.  동네를 바꾸는 역사입니다.  동리에 교회가 설립되고, 예배당이 세워지면 동리가 달라집니다.  사신 우상이 힘을 쓰지 못하고, 인재를 양성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사입니다.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배당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예배당이 건축되면 사람들이 몰려오게 되어 있습니다.   선교는 예배당을 지어주는 것도 아주 좋은 선교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는 의사였습니다.  알렌이라는 의사는 미국 북장로교로부터 중국 상해에 파송된 의료선교사였는데, 선교지를 바꾸어, 1884년 9. 20일에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본래는 중국 상해에 파송되어 활동하였지만, 별다른 선교의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중국에서는 반기독교운동과 선교사 배척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본토원주민 한족(漢族)들은 미국선교사는 물론이고,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까지도 좋아하지 않았고, 노골적인 배척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관계로 알렌 선교사는 기회가 오기만 하면 다른 지역으로 옮기려고 하던 차에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로부터 한국에 선교의 문이 열렸으니, 한국으로 가라는 전달을 받았습니다.   이미 중국에서 1년 정도 활동한 관계로 조선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서양의사가 하나도 없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자기가 힘써 일하기만 하면 선교의 문을 쉽게 열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중국 상해에서 여러 동료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알렌은 제물포항을 향해 떠나는 기선을 타고 망망한 황해바다를 가로지르면서 해가 뜨는 동방의 나라, 조선으로 향하였습니다.  때마침 그가 제물포항에 도착했을 때는 늦여름이라 약간 덥기는 했지만,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드디어 뱃고동 소리와 함께 배는 제물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는 수첩을 꺼내어 메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그 날을 보기 위해 살아가기를 희망한다.”라고 했습니다.  

1884년 9월 20일 드디어 그를 기다리는 선교의 불모지, 미전도종족인 조선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미국공사인 푸트라는 분이었습니다.  그는 상해에 있는 선교부로부터 연락을 받고 알렌을 맞이해주었습니다.    알렌은 제물포항을 빠져나와 서울 정동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알렌은 말이 선교사였지, 미국공관을 비롯한 외국의 공관 직원들을 위한 주치의로 신분을 감추고 선교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알렌을 통하여 한국의 선교의 문을 여시게 되었습니다.   조선에 도착해보니, 보수파와 개혁파 간의 심한 갈등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1884. 12. 4일 우정국 개국축하 만찬회장에서 개화파들이 보수파 대신들을 제거하려고 했습니다.   유명한 갑신정변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 윤웅렬 등의 소장파 대신들은 개화당이었습니다.  개화당이 일으킨 갑신정변은 실패로 끝나고, 보수파의 실력자이며, 민비의 조카인 민영익이 개화당의 칼에 중상을 입었습니다.  민영익을 살리고 상처를 치료하겠다는 한의사들이 무려 600명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민영익의 상처는 한의사가 고칠 수 있는 상처가 아니라, 칼에 입은 깊은 자상으로 수술해야할 상처였습니다.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와 있던 독일인 뮐렌도르프는 고종에게 아뢰기를 민영익은 한의사가 침이나 놓고 약을 먹여 고칠 수 있는 상처가 아니라, 당장 수술해야한다고 알려주면서, 새로 들어온 알렌으로 수술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수술해야 하는 알렌은 단단한 각오를 가지고 수술에 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제 수술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조선의 선교의 문이 닫힙니다.  이번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멘”  알렌은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기도하고는 수술을 집도하였고, 수술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다행히 상처는 서서히 아물어갔으며, 얼굴에 생기가 돌면서 회복되었습니다.   

고종과 민비는 너무나 감사하여 1천량의 하사금 내리고 고종의 시의로 임명하였습니다.   1885년 2월에는 시내에 계동에 있는 개화당의 홍영식의 집을 하사하여 병원을 설립하게 했습니다.   그 병원의 이름을 “광혜원”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조선 땅에 선교가 가능하게 토양을 갈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광혜원이 같은 해에 왕립병원 제중원이 되었고, 후에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습니다.  

왜 제중원이 세브란스병원이 되었습니까?  제중원을 설립한 첫 해에 1만 명의 환자들이 서양의술로 치료받겠다고 몰려들었습니다.  1894년에는 왕립병원인 제중원의 운영권이 왕실에서 미국선교부로 넘겨지게 되었습니다. 조선왕실에서는 밀려드는 환자들을 다 치료할 수 없었고, 서양병원을 운영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할 수 없이 병원의 운영권을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넘겨주었습니다.   북장로교 선교부에서는 1899년 제중원에 한국 최초의 의학교인 제중원의학교가 설립하였는데, 16명의 학생으로 의학교를 열었습니다.  

마침 미국의 한 부호가 있었습니다.  클리블랜드에 사는 루이스 H. 세브란스라는 분이었는데,  병원설립기금을 기증해주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어 어디 좋은 일에 쓰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세브란스에게 있어 기부는 존재의 이유요, 사업의 목적이었고, 저력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병원을 짓고, 의학교를 세워 인재를 양성한다고 하기에 무려 45,000달러를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5,850만원이지만, 당시의 돈으로 보면 엄청난 것으로, 지금 585억 원쯤 되는 돈이었습니다. 세브란스 의학교에서는 10년간 공부 시켜서 7명의 졸업생을 내면서 한국의 의사번호1-7번의 의사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런 역사를 다 말하자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한 사람의 의사가 한국을 복음화 하겠다고 시작한 것인데, 마침내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을 복음화하고, 서양의학을 전수해주었고, 어둠과 무지에 쌓여 있던 한국사회를 광명한 사회로 나오게 했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한국에 오신 미국선교사로 그야말로 복음을 들고 들어오신 선교사입니다.  언더우드는 1884년 11월 미국 뉴저지에 있는 뉴브런스위크 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목사안수식에 이어 선교사 파송예배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회장은 설교를 하시면서, “원래 바울이 아시아에서 선교하려고 하였지만, 성령께서 허락하지를 않아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밤에 환상 중에 바울에게 마게도냐 사람 한 사람이 서서 그에게 청하여 말했습니다.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오늘 안수를 받은 언더우드목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언더우드는 인도선교사로 나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일본에 있는 조선 사람이 자꾸 손짓을 하면서 우리를 도우라고 요청하기에 그는 이수정씨의 요청에 의하여 코리아로 선교지를 정하고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노회원들과 교우들은 마지막 찬송을 불렀습니다.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하나님이 함께 계셔 훈계로써 인도하고 도와주시기를 바라네.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예수 앞에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다시 만날 때 그때까지 계심 바라네”  모두들 감격 속에 찬송을 불렀습니다.  노회장도 눈물을 흘리고, 참석했던 노회원들도 눈물을 흘리고, 언더우드는 한동안 찬송도 부르지 못하고 자신을 불러준 조선 사람들과 이수정 씨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수정은 한국에서 일본으로 파송된 12신사유람단의 비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에 건너와서 예수를 믿게 되었고, 서양선교사를 유치하기 위하여 각방으로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서양선교사들이 성경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마가복음을 번역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언더우드는 선교사로 올 때에 형제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다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사실 죽음을 각오하고 떠난 것입니다.   언더우드는 목사 안수를 받고, 선교사 파송을 받았습니다.  모든 노회원들이 예배당을 나가고 언더우드만 혼자만 남았습니다.  그는 예배당에 남아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선교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언더우드야, 걱정하지 말고 빨리 떠나라.  지금 일본에서 이수정이 너를 기다리고 있으며, 조선에 있는 1천만 명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라는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언더우드는 일본을 거쳐 제물포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중국 소수민족을 위하여 적은 예배당을 건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당에서 수많은 일꾼들이 배출되어, 아랍 여러 나라에게 선교하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제 중국에서 선교사들이 나와야, 아랍의 여러 나라에 설교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랍에 선교하는 것이 정말 힘들지만, 중국 사람들은 우호적이고, 중국 사람들이 선교하는 것은 용인하는 형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내려와 1년 반을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내용입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심히 약하고 두려워 떨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기로 하였습니다.  고전2:1-2에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 전하기로 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내려왔을 때에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좋은 교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 중에 목회도 마찬가지이지만, 선교하는데 있어 성공하려면 좋은 동역자를 만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목사님들과 동역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참으로 아름답게 기억되고,  좋은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동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목사가 일생의 목회를 마치고 자서전을 기록할 때에 참으로 힘이 되어주었고, 힘과 위로가 되어주었다고 꾸밈없이 말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도바울에게 있어 아굴라와 부리스길라는 참으로 귀한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아굴라는 본도 지방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는데 그는 로마의 여성인 부리스길라와 결혼하였고, 그녀는 유대교로 개종하였습니다.  이들 부부가 로마에 살고 있었는데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유대인들은 로마에서 떠나라는 명을 받아, 고린도로 이사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의 직업이 천막을 만들고 천막을 수리하는 것인데,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어, 서로 어울리면서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게 된 것입니다.   

아굴라, 부리스길라는 어디를 가든지 그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였습니다.  롬16:3-4에는 로마에 있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에게 문안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이라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목이라도 내어놓았다는 말은 목숨 바쳐 섬겼다는 말입니다. 

이들 부부는 후에 사도바울을 따라 에배소에 갔었고, 후에는 로마로 돌아가 그의 집을 교회로 제공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을 때에 도움을 주었고, 시중을 들다가 그들도 순교하였으며, 초대교회로부터 성자의 칭호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강론하면서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 때에 베뢰아에 머물고 있던 실라와 디모데가 고린도에 내려와서 바울과 합류하면서 바울은 더욱 힘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밝히 증언했습니다. 실라와 디모데는 바울과 동사하는 교역자들이었습니다.  목회자는 또 좋은 교역자를 만나서 협력을 받아야 합니다. 

이곳 고린도에도 유대인들은 바울을 비방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에서 전도하다보니, 바울을 핍박한 것입니다. 그 때에 바울은 그의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6)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나와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인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은 유대교로 개종하였다는 말인데, 그는 개종자였던 디도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그 집은 회당의 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한 사람이었던 ‘그리스보’라는 사람이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믿어 세례를 받았습니다. 

고린도에서 한참 전도하고 있을 때에 밤에 주께서 환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9-10)고 하셨습니다.    이런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얼마나 큰 힘과 위로를 받을 것입니까?     주님은 복음 전도자들과 함께 하시고 능력을 주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바울은 아가야 지방의 수도요, 대도시인 고린도에 1년 6개월을 머물면서 고린도교회를 일으켰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증언한 말씀, 예수는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명심해야겠습니다.  5절 말씀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사람입니다.  사람은 무엇엔가 붙잡히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야 합니다. 

“붙잡혔다”는 말은 그리스어 ‘쉬네코’라고 하는데 결합하다, 포위하다, 억압하다는 말인데, 쉬운 말로 의역한다면 “사로잡혔다”, “포로되었다”, “둘러 쌓였다”는 말입니다.  “붙잡혔다”는 말도 아주 좋은 번역입니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붙잡혀야 인생을 잘 살고 열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에 포로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성에 붙잡힌 사람, 물질에 붙잡힌 사람, 학문에 붙잡힌 사람이 있지만, 우리는 예수님에게 붙잡힌 사람이요, 말씀에 포로된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사는 이유는 복음이 있었고,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의 사는 이유요, 죽은 이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있습니다.  말씀의 기계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말씀에 고용된 일꾼에 불과하였습니다.  옛날에 포로가 되었다는 말은 자유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그에게는 아무런 소유도 없다는 말이 됩니다.  붙들렸다는 말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산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요, 말씀에 붙잡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단순하게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격려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잠잠할 것입니까?  우  리가 나가서 “예수는 그리스도입니다.”라고 전하기만 돌아올 사람들, 구원받도록 예비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하면 됩니다.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미사여구를 쓸 것도 아닙니다.  고상하고 재치 있는 말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려고 할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입니다”라고 전파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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