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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이벤트 (창 30: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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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이벤트 (창 30:25~36)


일찍이 야곱이 장자권 문제로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외삼촌 라반이 있는 밧단아람으로 피난 갈 때 
창28:3-4절에 아버지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을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런데 집 떠나와 7년이 두 번이나 지나가 14년이란 세월이 흘렀지마는 복은커녕 머슴살이 14년 동안 고생만 실컨 했습니다. 
그러나 때가되니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복을 야곱에게 주시는데 창30장은 바로 아버지 이삭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빈 축복이  야곱을 통하여 어떻게 이루어 나가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바로 왕 앞에선 야곱의 고백처럼
창47:19절에 <험악한 세월>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의 생애를 붙들어 주는 그 무엇이 있는데 그게 무엇이겠습니까?

1. 야곱의 생애를 일평생 동안 붙들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참/창28:10-15절)

그것은 하나님 만나는 체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서 장자권을 탈취한 후, 형 에서가 죽이려고 하니 외삼촌 라반이 있는 화란으로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코 거룩한 은혜의 체험을 얻을 수 위인이 될 수 없는 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야곱이 루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으며 그 은혜가 그의 인생 길에 절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어머니 리브가의 보호 아래 장막에서 평안한 생활을 했던 야곱이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도 없이 단지 화란의 외가를 목적 삼아 허허 벌판으로 도주해 나온 처지입니다.
실로 그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모두 불안했습니다.
더욱이 날이 저문 광야에서 뼈 속 깊이 저며 오는 외로움과 번뇌는 가눌 길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그 시점에 여태껏 침묵하고 계셨던 여호와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고독과 절망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고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 큰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먼저 야곱이 생의 전환점이 되는 꿈을 꾸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즉 하나님을 만난 환경이 어떤 환경입니까?

10. [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 
11. [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곳의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 

우리는 단순히 야곱이 피난길에 밤이 되어 들판에서 잠을 자게 되었구나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야곱에게는 별이 빛나는 밤이 아닙니다. 
야곱이 원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장자권을 획득하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면 다 될 줄 알았는데  지금 완전히 들판에 내 동댕이쳐진 것입니다.
그야말로 축복 받으려고 하다가 빈털터리 도망자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죽 했으면 돌을 베개 하여 거기 누웠겠습니까? 
                   
돌 베개 - 무엇을 말합니까? 돌침대 누운 것 아닙니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그야말로 돌베개 베고 자는 잠 - 고난의 삶인 것입니다. 

이럴 때 야곱의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겠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는가? 
할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을 통해 들어오던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신앙생활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장막은 보통 장막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입니다. 교회입니다.
예수 믿고 교회생활 하면서 말씀을 통해서 눈이 뜨여져 하나님 축복 받는 일이라면 물 불 안 가리고 앞장섰던 교인이 축복은 고사하고 교회에 제대로 예배도 드릴 수 없도록 내 동이 쳐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돌배게 베고 자는 삶과 같습니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하나님 계신다면 이럴 수 가 있나?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직 야곱이 믿음의 족장의 반열에 서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신앙인격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꼭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무엇을 해서 복된 삶을 누리는 것 이전에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신앙인격이 바로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잘했던 못했던 그리고 그가 하나님을 잊어버린 그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말라기 1:2절에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노라 ] 이 사랑은 바로 선택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야곱이 어디에 가든지 야곱과 함께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이스라엘이 될 수 있도록 붙들어준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 만나 체험한 은혜가 무엇입니까?
먼저 1) 12절에 꿈 가운데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꿈은 구약의 하나님의 계시의 방편이었습니다.      
꿈에 야곱은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준 환상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구체적으로는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에 닿았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바벨탑 사건이 교훈입니다.
인간에게 불가능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축복을 받는 일입니다.
그런데 땅에 사는 인간 야곱에게 하늘의 축복이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연결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닥다리입니다. 

하늘과 땅을 갈라놓는 것은 죄입니다.
분리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닥다리는 바로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는 것은 하늘의 축복이 열려졌다는 것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사닥다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교회 와서 하늘의 복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위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야곱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2) 13-14절[ 나는 네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삶의 지경을 더 넓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맺는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바른관계가 되어지면 가나안의 복은 절로 주어질 줄 믿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잘 보이려고 온갖 노력 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체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낮아져 빈털터리가 되니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 만나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하나님께 받았던 은혜 체험인 것입니다.
야곱에게 주어진 축복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함께 주어진 가나안의 축복입니다.
자손의 번성과 네 누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

왜 하나님이 야곱에게 깡통 차게 해 놓고 
가나안의 복을 확신시켜 줍니까? 이게 바로 가나안의 복인 것입니다. 
가나안의 복은 애굽의 복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가나안의 복은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 15절에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고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 
우리는 여기서 확신해야할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꼭 확신시켜 주고 싶었던 사실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사닥다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이뤄지면 
우리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 받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럼 야곱이 하나님 만난 증거가 무엇입니까?

2. 야곱이 하나님 만난 증거가 무엇입니까?(참조/창28:16-19절)

야곱이 꿈 가운데 신비한 은혜와 축복을 받고 야곱이 꿈을 깬 후 나타난 반응이 무엇입니까?
16절에 [ 야곱이 잠이 깨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 
이제 야곱이 잠이 깨었습니다. 에이~! 꿈이구나, 좋다 말았구나 이랬습니까?
소위 개꿈입니까? 아닙니다.
물론 야곱의 꿈은 오늘 우리가 잠자다가 꾸는 꿈하고 다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한 첫마디가 야 좋다 말았다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함께하는 줄 몰랐던 자가 함께함을 알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받는 은혜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꿈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나 은혜를 체험한 후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본래 은혜는 깨닫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이렇게 고백합니다. 
17절에 [ 이에 두려워 가로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 
하나님 임재에 우리가 느끼는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무서움이 아니라 경외심을 말합니다.
야곱이 두려워했다는 것은 그가 꾼 꿈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시한 꿈이기 때문입니다.
평시에 듣던 아버지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직접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떨 적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와 같이 두려움으로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말씀 앞에 이렇게 떨리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동물의 왕국 속에서 사자를 볼 때는 빤히 쳐다보고 야~! 동물의 왕같이 생겼다 이 정도이지요
그런데 내가 직접 밀림에서 사자를 만났다고 생각해 보세요.  온 몸에 전기가 올꺼예요.
바로 야곱이 느낀 두려움은 평소에 할아버지 아브라함 혹 아버지 이삭에게 듣기만 하던 여호와 하나님
지금 자기와 함께하심을 체험할 때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은혜받은 자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두려움과 깨달음입니다. 야곱이 경외심 가운데 깨닫게 된 것입니다. 
1) 여호와께서 여기 계셨구나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평안하게 살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구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나와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고난 가운데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그 고난을 통해 내 인생이 바뀌어지는 줄 믿습니다.

2) [ 이 곳이여 다른 것이 아니라  이는 하나님의 전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뵈옵는 특별한 경험을 했으며  
이곳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신약적으로 말한다면 바로 벧엘  - 즉 교회를 말합니다. 
교회 와서 말씀에 은혜 받아  아~! 내가 하나님을 뵈옵고 복을 받은 자이구나 
오늘 나는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탄성이 터져나오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은 야곱이 일어나 어떻게 했습니까?
18절에 [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 하였던 돌을 가져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
꿈에서 깨어난 야곱이 돌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여기서 야곱은 굉장히 엄청난 축복을 받게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눈이 뜨여지지 못한 축복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많은 제사를 들였지만 제단에 기름 부어 본 적은 없습니다.

기름 붓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야곱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념하기 위하여 돌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념하기 위하여서라면 돌만 세우면 될 건데 왜 여기에 기름을 붓습니까?
이것은 돌을 세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기름을 붓는 것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헌납됨, 하나님 소유임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야곱은 하나님께 헌신되어짐을 말합니다. 
야곱이 하나님께 헌신되어진 것이 뭐 그리 큰 축복 있냐? 할는지 모르지만  
야곱이 여호와께 헌신되어졌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모든 아들이 다 하나님 백성 되는 것 아니지요
이삭의 모든 아들이 다 하나님 백성 되는 것 아니지요
그러나 헌신된 야곱의 열 두 아들은 다 하나님 백성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로 부른 것은 바로 야곱이 기름을 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은혜 받아 감격하여 자기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 입은 자의 증표인 것입니다.

야곱이 이렇게 하나님 만나는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한 일이 무엇입니까?

3.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한 사실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참조/창28:20-22절)

야곱이 가지고 있는 전 재산, 기름을 세운 돌 위에 붓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서원합니다. 
야곱의 서원은 바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야곱이 서원한 것은 강압에 못 이겨 한 것 아닙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원하여 서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서원은 3가지입니다.

1) 의식주 문제 해결해 주시고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여호와께서 내게 하나님이 되시면 이란 뜻-이것은 야곱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서원은 여호와를 평생 하나님으로 섬기며 살겠다는 서원입니다.
여호와를 평생 하나님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의식주 문제는 해결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편안한 삶 주실 줄 믿습니다.

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이곳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말입니다.
예배의 서원입니다. 아직 예배에 서원이 없는 성도들 많이 있지요?
그러나 은혜 받아 예배에 서원한 성도들 예배를 잘 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 중심적인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 무엇입니까?  바로 능력있는 삶, 승리하는 삶인 것입니다.

3)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자기 소유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물질의 헌신을 말합니다. 

대학생 선교회 창시자 <빌 브라이트> 박사는                     
사영리 소책자와 예수라는 영화를 통해 1억 5천만 명 이상이 그리스도에게로 돌아 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새들백 교회<럭 웨렌> 목사가 빌 브라이트 박사에게 물었습니다.
[ 빌 왜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시고  당신의 삶에 그렇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까? ]
그러니 빌 브라이트 박사가 대답하기를
[ 내가 젊었을 때 하나님과 계약을 맺었네 나는 직접 계약서를 쓰고 밑에 서명을 하였네
 거기에 “ 바로 이 날부터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 라고 썼다네 ]
 
야곱은 은혜 받고 하나님과 계약서를 쓴 것입니다.                
나는 여호와를 일평생 하나님으로 섬기며  일평생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일평생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종 야곱,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통해서 은혜를 체험하게 되면  나의 삶에 변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원이 나옵니다.
       
신앙의 고백과 아울러 예배에 대해 서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물질에 대해서도 서원하게 됩니다. 
이 서원은 바로 은혜받은 자의 특권이요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서원을 잊어 버리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머슴살이 20년을 하게 됩니다.

4. 야곱이 언제 고향 땅으로 돌아가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됩니까?(25-30절)

그런데 25절에 라헬이 열한째 아들 요셉을 낳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됩니다. 
 30절에 “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라는 말은 이제 머슴살이 그만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사는 삶은 머슴살이와 같습니다.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태어나자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서 내 집을 세워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왜 요셉이 태어나자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됩니까?       

대상5:1절에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요셉이 출생하니 장자적인 신앙에 눈이 뜨여졌다는 말입니다.
장자적인 신앙에 눈이 뜨여지면 우리의 구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대상4:9절 야베스 기도가 그 좋은 예입니다.
복에 복을 더하사 - 장자적 신앙에서 나오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제게 - 만만의 복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엄청난 축복이기에 묻어 두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게도 요셉 이벤트가 일어났습니다.
1) 이 목사님 만났을 때 - 대구의 장자적인 교회가 되어야겠다.
2) 교회 부지 3170평을 확보하고 나니 아~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만만의 복을 주시려나 보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요셉 이벤트가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이 목사님 위임이 바로 우리교회에 요셉 이벤트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번 하비바 센터 건축이 어떤 성도에게는 선교가, 새로운 사업의 시작이
요셉 이벤트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 이벤트에 눈이 뜨여지시기 바랍니다.
             
야곱은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리고는 고향 돌아갈 명분을 위하여 
외삼촌 라반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합니다.

5. 하나님은 야곱이 고향 돌아갈 명분을 어떻게 만들게 하십니까?(31-43절)

야곱이 제의한 것이 무엇입니까? 외삼촌이 야곱에게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했을 때
야곱이 하는 말이 “외삼촌이 내게 아무 것도 주지 않아도 됩니다
단지 외삼촌의 양 때 중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만 내게 주면 됩니다”
그리고는 37절 이하 말씀을 보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므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이 되어 야곱의 소유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유전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사실입니다.
즉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인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자 - 하부 이야기

오늘 말씀의 결론은 요셉 이벤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체험하고 서원했던 것 지키기 위하여 나의 삶에도 요셉 이벤트가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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