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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단 7:26~27, 마 6: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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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단 7:26~27, 마 6:31~33)


바다로 나갈 준비가 된 어린 연어를 ‘스몰트’라고 합니다. ‘스몰트화’(smoltifica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연어가 다시 원래의 장소로 돌아가 새끼 연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말합니다. 이 때 연어는 몸이 더욱 유선형으로 변합니다. 비늘의 색깔은 은빛으로 바뀌고, 호르몬 활동이 증가합니다. 아가미는 화학나트륨에 더 잘 견디는 형태로 변합니다. 

바다에서 살던 연어는 급류를 거슬러 모천으로 되돌아가 그곳에서 알을 낳고 죽음을 맞습니다. 이 때 어미 연어가 왜 죽는지 아십니까? 민물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민물은 알을 낳고 어린 연어가 사는 곳이지 어미 연어가 살 곳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를 잘 조화할 때에 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올챙이와 개구리처럼 개구리가 된 후에는 물에서도 살고 땅에서도 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양서류의 삶입니다.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도 마찬가지로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두 나라가 다 온전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 두 나라의 관계는 미묘한 관계를 이루었습니다. 첫째는 국가가 교회를 탄압할 때가 있었습니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그랬습니다. 둘째는 교회가 국가를 지배할 때입니다. 중세시대에는 교회가 국가보다 항상 위에 있었습니다. 셋째는 국가와 교회가 조화를 이룰 때입니다. 이런 때가 많지 않았지만 가장 좋은 시대입니다. 국가와 교회는 파트너입니다. 국가를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하고, 교회를 위한 국가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세계는 혼란하기 짝이 없습니다. 파스칼이 말한 대로 “만인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재 자체가 불안합니다”. 이런 불안은 곧 죄입니다. 우리 시대는 정신상실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볼 때도 리더가 없는 시대입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리더 부재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 세상 나라의 문제를 가장 쉽게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 안에 이 세상 나라의 이치가 있습니다. 세상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이 다 들어있습니다. 성경에는 삶의 이치가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버리면 세상의 나라도 혼란 속에 빠집니다. 그래서 지금의 세계는 혼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본래의 세계는 세상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일치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나라를 지으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벽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 나라가 죄로 말미암아 파괴되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분리된 것입니다. 성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두 왕국’에서 설명합니다. 이 세상에는 가인의 후예들로 말미암아 죄가 지배하는 나라가 있고, 아벨의 후예들로 말미암아 선이 지배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레고리 보이드는 ‘십자가와 칼’이란 그의 책에서 칼을 가지고는 세상을 다스릴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아직까지 한 번도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의 역할을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돈만 가지고는 자본주의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어야 온전한 나라가 되고,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온전한 자본주의가 됩니다. 
  
세상적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적 수단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칼로 다스리겠습니까? 예수님은 칼을 쓴 베드로에게 “칼을 꽂으라,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우러지면 세상 나라는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우선으로 삼고 세상 나라를 바르게 세워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 이 나라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에서 구하는 것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우선의 문제입니다. 복음제일주의를 말하며, 복음전파를 우선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 백성처럼 의롭게 살라는 말입니다. 
  
‘먼저’란 말은 헬라어의 ‘프로톤’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세속적 욕망과 세상적 노력이 모두 이차적이며 긴급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가 중요한 문제이지만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아닙니다. 이 문제는 가장 생존적인 문제입니다. 더구나 ‘하지 말라’는 말은 흔히 부정법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전통에는 율법에 ‘하지 말라’는 말이 많이 있습니다. 이 말은 부정과거 시제로서 강한 부정입니다. 털끝만큼도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염려는 절대엄금입니다. 염려는 풍족히 채우시는 하나님께 대한 모욕입니다. 
  
세상 것을 가지고 세상을 채울 수 있습니까? 세상의 것은 하늘의 것을 지고 채울 수 있습니다. 지식을 가지고 지식을 채울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지혜을 가지고 채울 수 있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율법을 완성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사랑을 가지고 완성할 수 있습니다. 바닷물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바닷물로는 갈증을 해소하지 못합니다. 심층수가 필요합니다. 더 깊이 가면 거기에 해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적합하도록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절대로 완전한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먹는 것만 가지고 삽니까? 사람은 세상에서의 지식이나 명예나 돈 만을 가지고는 살 수 없게 지어졌습니다. C. S. 루이스가 말한 대로 “이 세상이 전혀 만족시킬 수 없는 갈망이 내 안에 있음을 알았을 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내가 다른 세계를 위해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게 지으셨습니다. 그 나라와 그 의로 만족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것들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들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나라를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만 추구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것 버리고 산 속으로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피하여 동굴로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사막으로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세상을 피하여 가지는 말아야 합니다. 
  
우선법칙이 있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많은 비극은 최선을 것을 차선의 것과 혼동하는 데 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경우를 보세요.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말씀을 듣고 있었고, 마르다는 밖에서 예수님이 드실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습니다. 마르다가 불평이 생겨 예수님께 동생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하였으므로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마르다가 필요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더 좋은 일입니다. 더 우선적인 일입니다. 
  
도시건설을 할 때도 두 가지 방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길을 내고 도시 계획에 따라 집을 짓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먼저 각자 알아서 집을 짓고 길을 내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둘째는 길이 불편할 것입니다. 길이 불편하면 집도 가치가 떨어집니다. 먼저 길을 내야 좋은 집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도가 있어야 인생의 가치가 올라갑니다. 
  
세상이란 말의 라틴어는 ‘mundus’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어두운 곳이란 뜻입니다. 도리스 레싱은 “세상 속에 있으되 세상에 속하지는 말라”고 합니다. 세상은 항상 어두운 곳이기게 우리가 영원히 속하여 살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가 잠시 이용하고 누리는 곳에 불과합니다.  
  
세상 나라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사람들은 누구나 명예를 추구합니다. ‘누가 세상을 지배할 것인가’라는 심각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헤게모니 쟁탈전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피흘리는 싸움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내 편이 아닌 자는 죽입니다. 알카에다를 보세요. 얼마 전에는 예멘에서 한국여성이 납치 후에 살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알카에다가 세상을 지배할 것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힘이 세상을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애굽의 바로, 헬라의 알렉산더, 원나라의 진기스칸, 로마의 시저, 독일의 히틀러, 일본의 히로히토를 보세요. 누구도 영원히 힘을 가지고 세상을 지배하고 누린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가 세계를 지배하게 하십니다. 정의가 흐르게 하십니다. 공의를 물같이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온유한 자, 겸손한 자, 감사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이 땅에 건설된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라고 선포하십니다. 가까이 온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먼저 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나라가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 안에 이 나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와 이 나라 가운데 그 나라를 먼저 택하고 하나님 나라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이 나라를 구해주십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합니다. ‘그리하면’은 조건절입니다. 이 세상에서 필요한 모두를 얻는 조건이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먹는 문제, 마시는 문제, 입는 문제, 이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벽한 나라입니다. 없는 것이 없는 나라가 이 세상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 그런 나라는 없습니다. 
  
옛날 소련 출신 코미디언인 야코프 스미르노프가 미국에 가보니 식료품 가게에 상품이 엄청 많았습니다. 분말 분유가 있어서 물만 타면 우유가 되어 마실 수 있었습니다. 분말 오렌지 주스가 있어서 물만 타면 오렌지 주스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쪽 코너에 갔더니 ‘베이비 파우더’가 있었습니다. 분말 베이비였습니다. 그 때 그는 “정말 미국은 대단한 나라입니다”라고 하였답니다. 미국이라고 완전한 나라입니까? 미국도 줄 수없는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란 헬라어로 ‘타우타 판타’입니다.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인생의 필요조건을 충분히 채우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더하시리라’는 ‘프로스테쎄세타이’라는 말인데 하늘의 것을 추구하면 세상의 것도 덤으로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4:8에는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유익이 있느니라”고 합니다. 세상의 것은 약간의 필요를 충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 것은 영원한 필요를 충족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것을 추구하면 세상의 것은 저절로 충족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이치는 이렇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모든 것을 지었습니다. 말씀이 먼저이고, 세상의 모든 물질세계는 그 다음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구하라고 했을 때에 먼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나중에 이 세상에서 필요한 부귀, 장수, 영화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만일에 솔로몬이 세상의 것을 구했다면 그것은 받았을지 모르지만 다른 것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느 분이 오래 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박사 공부를 하면서 아누 중요한 시험을 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준비하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공부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이 일어나보니 너무 오래 자서 늦었습니다. 공부할 것도 많지만 이미 늦었기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공부할 여러 과목을 다 제쳐두고 두 가지만 하기도 했습니다. 늘 하던 대로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이었습니다. 잠시라도 공부해야 하겠지만 시간상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시험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시험지를 열고 보니 시험문제가 모두 잘 알고 있는 쉬운 문제들만 나왔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우선으로 사는 사람에게 세상의 것을 형통하게 하십니다. 
  
무슬림들은 그들이 모스크 하나를 건축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라고 합니다. 평생 돈을 벌어 모스크를 짓겠다는 오로지 하나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 하나에 집중되어 있으면 다 얻습니다. 우리도 이런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시편 62:5d[는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고 합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면 나의 소망이 이루어집니다. 여호수아 24:14에는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합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세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을 섬기는 사람에게는 세상에서의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제가 아주 오래 전 신학교에 다닐 때 지은 어린이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키다리 해바라기 동그라미 얼굴은 언제나 해님만 바라보고 서있죠. 함박꽃 웃음 짓는 하늘나라 어린이들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고 살래요”.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세가 모든 것을 얻게 합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하나님 나라만 얻으면 모든 것을 다 주십니다. 세상을 추구하면 다 잃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거대한 나라입니다. 어떤 학자는 21세기 중기까지 미국이 세계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만한 증거가 있습니다. 미국은 청교도가 세운 나라입니다. 믿음이 세운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라입니다. 국회를 개회할 때 기도하는 나라입니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맹세하는 나라입니다. 돈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는 나라입니다.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을 가르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이제는 그 모든 것 다 치우고 하지 말자고 합니다. 그 후에 미국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미국은 전 세계의 동네북이 되었습니다. 이리 맞고 저리 터지고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경제도 사회도 불안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제일주의로 돌아오면 미국이 다시 세계의 일등국의 자리를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의 신상을 보세요. 신상의 머리는 금입니다. 가슴과 두 팔은 은입니다. 배와 넓적다리는 놋입니다. 종아리는 쇠입니다. 그리고 발의 얼마는 쇠이고 얼마는 진흙입니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진흙으로 된 발에 의지하여 서 있고 보면 결국 조만 간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나, 힘이나, 이치에 의존하면 결국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다니엘 7:27에는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나라들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거룩한 백성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들이 다 그를 섬기며 복종하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 나라에는 다 있습니다. 그 나라를 통하여 영원한 것, 권세, 모든 것을 얻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 

‘콰이강의 다리’라는 1957년도 영화가 있습니다. 윌리엄 홀덴, 알렉 기네스가 주연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감동적인 작품이었고,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을 차지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일본군의 포로수용소장 사이토대령은 자신의 포로수용소에 영국군 공병대가 포로로 잡혀 온 것을 보고 영국군 공병대를 이용하여 다리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영국군 공병대장인 니콜슨 중령은 병사들의 군인정신과 규율을 유지하기 위하여 다리를 건설하는데 협력하기로 결심합니다. 이 다리의 완공이 가까워지자 영국군 유격대는 이 다리를 일본군이 수송에 활용할 것으로 알고 폭파 계획을 세웁니다. 

다리 하나를 가지고 영국군 공병대와 유격대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결국 유격대는 그 다리를 파괴합니다. 무너지는 다리 보며 니콜슨 중령은 독백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뭘 한거지?” 

니콜슨 중령은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와서 일본군의 전쟁 수행에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차선의 목표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가장 우선적인 중요한 목표를 쉽게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생활에서 우선법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외의 차선이 우선을 앞서지 않게 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 세상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덤으로 얻고 사는 은총의 삶을 사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성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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