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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박 재앙이 주는 교훈 (출 9: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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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박 재앙이 주는 교훈 (출 9:13~35)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각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억압된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베이징올림픽 역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목에 건 장미란 선수는 이미지 트레이닝 훈련을 했다고 합니다. '상상 훈련'입니다. 

미국 클리블랜드병원 신경과학자 광 예 박사는 젊은 사람들과 노인들을 대상으로 정신적 훈련으로만 실제 근육을 강화시킬 수 있는지 실험을 한 것입니다. 각 훈련 시간은 10~15분 정도로, 총 50회 정도를 반복하면서 매 10초 정도씩 마음속으로 근육을 강하게 수축하라는 명령을 내렸답니다. 

4개월 간의 훈련을 거친 결과, 젊은이와 노인들 모두 15% 정도의 근육이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신비합니다. 마음이 신체를 지배합니다. 생각이나 마음의 작용은 단지 마음에서만 끝나지 않습니다. 감정을 일으키고 몸의 생리적 작용이나 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은 어떤 것에 한 번 집착하면 쉽게 그것으로부터 탈출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주에 한 20여 년 동안 만들어 놓은 자료를 담아 놓은 usb 메모리를 잃어 버렸습니다. 금요일까지 사용했는데 월요일 날 작업을 하기 위해 쓸려고 하니 없었습니다. 아무리 기억해도 금요일까지만 기억이 되고 그 후로는 기억이 되지 않았습니다. 있을 만한 곳, 떨어뜨릴 만한 곳을 다 찾아보았지만 있지 않았습니다. 허망했습니다. 생각이 계속 usb 메모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요즈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내용이 많아 저녁에 교회에서 잠을 자고 기도하는데도 기도 중에도 usb 메모리가 생각났습니다. 이미 잃어버린 것입니다. 찾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잃어버린 usb 메모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집착하면 결국 인생은 불행해 집니다. 

정신과 전문의인 최명기 의사가 [현대인의 15가지 '마음 감옥']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는 과거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두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대인들의 황폐한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고통에 빠뜨리는 15가지 마음의 감옥'를 말합니다. 

①의존의 감옥 :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 

②강박의 감옥 :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면 미칠 것 같다 

③게으름의 감옥 : 무슨 일이든 자꾸 미룬다 

④ 분노의 감옥 : 화가 나면 참을 수가 없다 

⑤비난의 감옥 : 나만 똑똑하고 다 바보천치다 

⑥시기질투의 감옥 : 남이 잘 나가는 꼴을 못 본다 

⑦ 의심의 감옥 : 아무도 믿지 못한다 

⑧관심의 감옥 :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주목받고 싶다 

⑨ 회피의 감옥 : 사람들과 어울리기가 싫다 

⑩ 끈기부족의 감옥 : 뭐 하나 진득하게 하는 일이 없다 

⑪ 우울과 죄책감의 감옥 : 잘못된 일이 다 내 탓 같다 

⑫ 허영의 감옥 : 자신을 과대평가 한다 

⑬ 두려움의 감옥 : 겁이 너무 많아 손해만 본다 

⑭ 중독의 감옥 : 아무리 애써도 끊을 수가 없다 

⑮ 이성의 감옥 : 내면의 무의식을 인지하지 못 한다” 등을 말합니다. 

마음이 이런 감옥에 갇히면 쉽게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좀 더 행복하게 살려면 이런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리 있는 진단입니다. 바로는 바로 사람들 가운데 주목을 받아야 하는 관심의 감옥,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의심의 감옥,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아집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입니다. 마음만 바꾸면 될 텐데 강퍅한 마음의 감옥 교만한 마음의 감옥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일곱 번째 우박 재앙을 통해 바로의 마음에 재앙을 내린다고 말씀합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여섯 가지 재앙과 달리 재앙의 대상이 바로의 마음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번에는 모든 재앙을 네 마음과 네 신하와 네 백성에게 내려”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첫 번째 대상이 네 마음입니다. 처음으로 바로의 강퍅한 마음을 대상으로 말씀합니다. 이번 재앙을 통해 교만하고 완고한 바로의 마음에 일격을 가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박 재앙이 이미 임한 여섯 가지 재앙과 독특하게 다른 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우리가 복받는 삶을 살려면 우리의 목표는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데 고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최고하라고 생각하는 교만의 감옥,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허영의 감옥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바로는 태양의 신의 아들로 추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최강대국의 왕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놓여 있고 자신을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영광받는 중심에 서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최고인 것입니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은 순종해야 합니다. 누구도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면 살아 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겸손하게 마음을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국 우박 재앙을 통하여 그 마음을 손보겠다는 것입니다. 우박 재앙을 통하여 바로의 마음을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너로 온 천하에 나와 같은 자가 없음을 알게 하리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부셔버리겠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영광을 받아야 할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와가 영광을 받아야 할 분임을 깨우쳐 주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교만하고 강퍅한 바로를 왜 하나님께서 즉시 멸망시키지 않고 왕 위에 그대로 있게 하였다는 것입니까? 강퍅한 바로를 그 자리에서 제거해 버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왕을 세워도 되는데 왜 교만한 바로를 그대로 왕위에 놓아두셨습니까? 

16절을 보십시오.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를 지금까지 살려주고 이집트 왕으로 세워 놓은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바로가 하나님 마음에 합해서도 아닙니다. 첫째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거대한 하나님의 능력 앞에 아무 힘이 없는 자신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바로 인식하고 자신의 무가치함을 절실히 깨닫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는 애굽에 임한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당시의 열방들에게 당시 최고의 패권국인 대국 애굽에 임한 재앙 사건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과 능력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바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여 모든 민족이 하나님께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길 원하신 것입니다. 바로를 왕으로 삼은 이유가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의 마음은 여전히 어떠했습니까? 17절을 보십시오. 여전히 자고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낮추지 않습니다. 그 많은 재앙을 겪었는데도 불구하고 바꾸지 않고 교만합니다. 교만의 종착역은 멸망입니다(잠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6:18)”

우리는 하나님이 왜 나를 세웠는지를 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나에게 좋은 직장을 주시고, 왜 나에게 자녀를 주시고, 왜 나에게 건강을 주시고, 왜 나에게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과 우리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삶의 사건을 통해서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때로는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실패할 수 있습니다.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길 원합니다. 기도하여 치유받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침받는 체험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간증하길 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마음은 분명한 목표점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그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31)” 그렇게 살면 인생은 어떤 경우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영광이 마음의 중심에 있습니까? 아니면 내 이름을 내는 것이 마음의 중심에 있습니까?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계시는 L. 픽켙 목사님이 했던 설교 가운데 있는 이야기입니다. 여신도회장이 한 번은 목사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목사님 다음 주일날 광고를 해주세요. 교인들 보고 빈병, 폐품을 전부 모아 가져와 달라고 해주시면 그걸 팔아서 교회 사업을 하고자 합니다." 목사님이 설득을 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먼저 잘라서 바치는 것이지 폐품 팔아서 하나님 일 하는 것 아닙니다." 그랬더니 여신도회장이 계속 간청을 하였습니다. "하나님 일 하려는데 돈이 모자라서 그래요." 그래서 목사님은 알았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다음 주일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광고를 했습니다. "여러분 집에 있는 빈 병이나 폐품이나 휴지 조각 있으면 전부 가져오십시오. 그것을 모아 팔아서 우리 여신도회장님 살림살이 좀 보태주려고 합니다. 여신도회장님 용돈 좀 마련해 드리려 합니다." 

예배가 끝난 후 여신도회장이 길길이 뛰면서 담임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나를 어떻게 보고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나를 거지로 아셨나요? 자존심 상해서 교회 못나오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정중하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회장님 그 빈 병 팔아서 모은 돈으로 회장님이 쓰면 자존심 상하고, 하나님이 쓰면 괜챦다는 말인가요? 하나님은 그럼 자존심도 없는 분이신 줄 알았습니까?" 

그래도 여신도회장은 화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잠을 자지 못하고 씩씩거리다가 늦은 밤에 잠이 들었는데 천국에 가게 됐습니다. 갔더니 온 교인들의 천국 집이 보이는데 황금으로 지은 집사님 집, 진주 보석으로 지은 권사님, 집사님 집들이 가득하게 있는데 자신의 집이 없었습니다. 동네가 끝나는 한쪽 개울 아랫동네에 기둥은 병 조각 부셔서 세우고, 벽은 휴지조각 뜯어서 갖다 붙인 집이 있길래 이게 누구 집인가 하고 가서 봤더니 자기 이름이 큼지막하게 써 있었습니다. 

깜짝 놀래서 깨어난 후,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구나' 회개하고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하나님을 가장 중심자리에 높여서 살아가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2. 우리가 복받는 삶을 살려면 마음의 방향을 내 의지 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말씀 순종에 고정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은 늘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끝없이 실행하려고 합니다. 계속적인 재앙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주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을 노예로 잡아 놓는 것이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잡아 놓으므로 경제 대국으로 노동력을 확보하고 전쟁시 동원 병력을 많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더 복받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박 재앙을 통하여 내 말에 순종하는 것이 나라가 잘되고 백성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 우박 재앙이 다른 여섯 재앙과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재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줍니다. 18절 보십시오. 내일 이맘때면 중한 우박을 내리겠다고 합니다. 12-3월경에 가끔 내리는 자연적인 우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가진 얼음덩어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애굽 개국 이래 처음 있는 우박일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고해 주시면서 다른 재앙과 달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19절을 보십시오. 그 재앙을 피할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생축이나 들에 있는 것을 집에 들여 놓으라는 것입니다(19) 그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 종과 생축을 집에 피하게 해 놓았습니다. 말씀을 마음에 두지 않는 자들, 경고를 무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자들은 어떻게 하였습니까?(21) 그 종들과 생축을 들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22절 이하를 보십시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듭니다. 하늘에서 천둥 벼락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거대한 우박이 떨어집니다. 신비한 일이 생깁니다. 번갯불이 하늘에서만 번쩍거리는 것이 아니라 땅위에서도 한 동안 유지되는 것입니다. 우박과 번갯불이 동반되면서 마치 횃불처럼 되었습니다. 밭에 있는 것은 사람이이 짐승, 채소 등 모든 것이 피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26절을 보십시오. 고센 땅에는 우박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을 피해를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백성 말고 또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20절 다시 보겠습니다. 바로의 신하 중에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입니다. 첫 번째 재앙부터 세 번째 까지는 애굽과 이스라엘을 구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번째부터 6번째 까지는 이집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구분하였습니다. 7번째부터 9번째까지는 이집트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의 구분뿐 아니라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과 순종하지 않는 사람을 구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지만 말씀을 불순종하는 자들은 화를 받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은 10계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십계명을 주실 때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출 20:2)”라고 말씀합니다. 10계명을 주시기 전에 10가지 재앙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불순종함으로 죽음의 열 가지 재앙을 받았는데 10가지 계명을 지킴으로 축복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이고 금지사항처럼 보이지만 구속과 속박이 아닌 축복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죽음을 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축복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고 계십니다. 

우박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벌의 표와 심판의 도구로 자주 쓰입니다(수 10:11; 학 2:17; 계 8:7; 16:21). 말씀을 반역하면 결국 형벌과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면 보호를 받으며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여신으로 오시리스의 어머니 신인 ‘누트’와 공기의 신 ‘수’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의 과정 속에서 복받는 길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삶의 질을 회복하는 복은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을 보십시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 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 28:2)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3)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4)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신 28:5)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신 28:6)”

그런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신 28:19)”는 길이 있습니다.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신 28:15)”라고 말씀합니다. 

교회가 부흥함으로 복받는 길은 내뜻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에 우리가 순종할 때입니다. 서로 내 뜻을 관철시키고 실행하려하니까 문제가 생기고 고통받습니다. 서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교회에 풍성한 사랑의 복을 받습니다. 서로 용서하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서로 도우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교회는 용서의 공동체, 도움의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가정도 직장도 말씀에 순종할 때 복을 받습니다. 계속적으로 재앙이 임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과정 과정들을 늘 순종에 초점이 맞추어질 때 삶은 그 결과에 상관없이 행복해집니다. 


3. 우리가 복받는 삶을 살려면 우리 마음을 적당한 회개보다 철저히 회개에 고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잘못된 길로 가서 실패하고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양심이 있기 때문에 잘못을 깨닫고 바꾸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하는 것은 적당히 회개하기 때문입니다. 바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적인 재앙으로 온 국민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저도 목회하다 보면 저에게 계속적인 어려움이 오거나 성도님들에게 계속적인 어려움이 오면 다시 한 번 저 자신을 성찰해 봅니다.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더욱 매달립니다. 우박 재앙을 통해 바로가 자신의 잘못을 조금 깨달았습니다. 이 우박 재앙이 앞에 나온 여섯 가지 재앙과 다른 점은 바로가 최초로 자기의 잘못을 시인한 것입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사람을 모세와 아론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자기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무슨 잘못을 시인합니까? 이번은 내가 범죄하였다고 합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며 나와 내 백성은 악하다고 시인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회개입니다. 형벌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회개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 회개입니다. 거짓회개입니다(히12:16,17). 

순간적인 감정의 변화에 의한 일시적인 회개입니다. 뇌성 번개를 통하여 내리는 전무후무한 우박 앞에 바로는 충동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만 용서받는 일에는 무관심합니다.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두려움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참된 회개는 자신의 영적인 죄에 대한 각성을 동반합니다(행2:37,38). 

회개 후에 마음에 참된 기쁨이 찾아옵니다(행3:19). 회개 후에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마3:8; 행26:20). 참된 회개는 지식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감정적으로 잘못은 통회하고 의지적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이렇게 회개하지 않고 요구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 구하여 이 뇌성과 우박을 그만 그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보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회개하는 체 하는 것입니다. 

3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아직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박과 뇌성이 그치는 것을 보자 바로와 바로의 신하들은 어떻게 합니까? 34절을 보십시오. 다시 범죄하여 마음이 완강하였습니다.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왜요 아직은 살만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밀과 쌀보리는 아직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회개할 때 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수많은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재산에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건강에 어려움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끝없는 고통 가운데 문제가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삶의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이 멸망하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악인들이 회개하는 것을 바랍니다. 예수님 말씀합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눅 5:3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눅 15:7)”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사 1:18)”
이스라엘의 일대 왕 사울과 2대 왕 다윗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사울은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말렉과 전쟁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겼습니다. 사무엘이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의 말을 무시합니다.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의 인생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결국 자식도 전쟁터에서 죽고 자신도 비참하게 죽음으로 불행한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다릅니다. 성군이라고 불리우는 다윗도 간음하고 살인하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회개를 촉구합니다. 입법 사법 행정권을 가지고 있는 왕입니다. 그 막강한 권력으로 얼마든지 처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그러나 철저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병들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금식하며 철야하며 회개기도를 드렸습니다. 일주일 동안을 그렇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회개를 받아주었고 그에게 선물로 솔로몬을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유다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똑같이 범죄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회개하지 않습니다. 수제자라고 하는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용서받았습니다.

이 땅에 사는 인간들 중에 누가 선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다 죄악 가운데 살아 가고 죄를 짓고 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죄를 저질렀습니다. 12지파의 아버지가 된 야곱도 얼마나 많은 죄를 저질렀습니까? 세계 선교를 통세 시대를 변화시킨 바울도 살인 방조자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죄가 있냐 없냐가 아닙니다.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입니다. 회개한 죄인과 회개하지 않는 죄인이 존재할 뿐입니다. 

회개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여 니느웨의 부흥을 일으켰습니다. 12만명이 주님께 돌아 왔습니다. 성경에 한 번에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예가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함으로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회개함으로 생명을 연장받았습니다.

우리는 매순간 회개함으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고 십자가의 은혜의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가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은 다 받아 주시고 용서해주십니다. 철저하게 회개하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순종, 오직 회개로 복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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