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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광스러운 이름 (고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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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러운 이름 (고전 4:1~2)

고전4:1-2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당신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당신의 생각이 어떠하든지, 주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매년 6월 첫째 주일을 평신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올 해로서 31번째 맞이하게 되는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의 정체성과 사명을 재인식하고 평신도 단체간 유대를 강화하는 평신도의 생일입니다.

평신도(平信徒)라는 말은 원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일반적인 뜻을 가진 말인데 근래에 와서는 신도 가운데서 세상 직업을 갖지 않고 목회에만 전문적으로 봉사하는 목회자와 비교해서 목회에 비전문적인 일반(平) 신도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도라는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만 다만 신앙공동체 안에서 그 직능이 다르다는 뜻에서 목회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뿐입니다. 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에서도 일반교인과 개체교회 사역자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하는 일반교인은 평신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 주일을 제정하여 실시하는 목적도 분명해 집니다. 그것은 평신도로서 일반교인의 직능과 역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함과 동시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극대화함으로써 교회의 선교적 사명을 높이고 성취하려는 목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 31회 평신도 주일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부르시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평신도의 모습은 무엇인지 살펴보며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일꾼’은 ‘아래’와 ‘노 젓다’의 합성어로 배 밑층에서 노를 젓는 노예들을 의미한답니다.

뱃사람들에게 있어서 절대 불변의 원칙이 있는데 그것은 선장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것이 가장 밑바탕에 깔려 있는 원칙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무조건적 순종만 있을 따름이고, 고된 노역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세상은 ‘일꾼’되는 것을 그리 원치 않습니다. 주인이 되기 원합니다. 피고용자보다는 고용자가 되고 싶어 합니다.

지금 이 노 젓는 뱃사람은 배 위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선장의 명령에 따라 노를 저을 뿐입니다. 빨리 젓든지, 천천히 젓든지, 왼쪽의 사람들만 젓든지, 밖의 상황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순종하면 될 뿐입니다.밖의 상황을 노잡이들은 알 수 없어도 결국은 목적하는 바를 이루게 됩니다.
다시 말해 일꾼 되어 순종함은 결국 그 주인의 안목과 시각에 참여하는 바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쁨이 넘칩니다.
오늘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은 나의 알량한 지식과 안목으로 사는 자가 아니라, 날 구원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신 안목과 목적으로 인생이 더욱 아름다워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일꾼삼기 원하실까요?

엡3: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복음을 위하여” 부르심 받은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최종적으로, 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아름다운 사명이요, 그 사명 앞에 우리는 기쁨을 얻고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교회는 “민족과 열방을 향하여 피 묻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거룩한 목적을 안고 살아가는 교회인 줄 믿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오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교회의 주 관심과 목적은 교회 성장보다는 영혼 구원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하여 복음이 이 땅에 선포되었고, 그 일을 위하여 교회가 세워졌고, 그 일을 하다 보니 현재 교회의 부흥이 일어난 줄 믿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영혼 구원이 우리교회의 거룩한 부담이요, 목적이요, 추구해야 할 유일한 목적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언제나 목회자들의 그들의 사역에서 이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무엇보다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일꾼이 필요합니다.
다시 한 번 눈을 열어 지평을 내어다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처음 다양한 이유나 계기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시작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교회 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듯 합니다.

이 때를 일컬어 ‘교인’이라고 하게 됩니다.
우리는 교인 수준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소속된 벤치 워머(Bench Warmer)의 수준에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교회 생활에서 예수님을 알게 되고, 어느 한 순간 나의 죄인됨과 예수님의 구세주 되심을 알게 되고, 신앙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이 고백으로 구별된 무리, 성도가 되며, 이 때의 단계를 신자 단계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성도’로서 머무를 수 없습니다. 거기서도 더 나아가야 합니다. 가끔 참여하고 구경하는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더 나아가야 합니다.

곧 ‘제자’가 되는 것이지요. 제자가 되면 믿음도 있고, 주를 위한 삶의 결단도 있지만 거기에서도 머무를 수 없습니다. 자신의 결단으로 그리 하다 보니 자주 넘어지고, 때로는 주님과 반대방향의 열심을 내기도 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일꾼의 자리까지 나아가시기를 부탁합니다. 다른 말로 사역자의 단계입니다.
주님의 12제자들이 성령받기 전에는 이빨 빠진 호랑이, 발톱 없는 사자와 같은 삶을 살았습니다. 어린아이 같고, 그리스도인답지 않게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고난 앞에서는 주를 부인하기 일쑤고, 그래서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이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비로소 예수님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그 후에 복음전파를 위해 전심하고, 목숨까지도 내어 놓는 주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까지 가는 영광스러운 평신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일꾼의 자리, 사역자의 자리. 여기까지 성숙해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분명히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이 믿음의 성숙.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기대를 이루어 진정한 주의 일꾼이 되는 길에는 다른 왕도(王道)가 없습니다. 예배생활에 승리하는 것,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는 것, 무엇보다 열심 있는 전도의 삶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낼 것입니다.

정리합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신자 -> 제자 -> 사역자로 성장해 갑니다.
주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이 있기에 결코 머물러 멈추지 않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입니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누구든지 아무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한 두 개쯤의 비밀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의 모든 비밀들은 알려지게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은 자기만의 비밀을 만들어 두려고 합니다.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자신만의 노하우요, 그것이 생존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10: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더욱 밝히고 드러내어 공개해야 할 비밀이 있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비밀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비밀입니다. 복음을 깨닫는 것은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하나님의 비밀 체험하고 누리는 자가 증거하는 것이며, 설득이나 설명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최고의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시대마다 이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던 사람들은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와 시대를 살렸고 변화시켰습니다.

그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엡3:8-9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그 비밀은 바로 죄악이 가득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밀을 전하는 막중한 책임과 사명을 우리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는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할 수 있는 대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땅 끝까지 전파하므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가 누리는 영혼 구원의 특권과 그로 인해 얻는 하늘의 기쁨과 평강을 넘치게 누리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충성을 요구받습니다.

고전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일을 맡은 자들에게는 언제나 충성이 전제됩니다.
충성하지 아니할 것을 전제로 일을 맡기는 법은 없습니다.
맡겨진 일에 충성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1) 스스로 하는 것입니다.

식사 시간에 정수기에 가까이 앉아 있는 딸 아이에게 물 한 잔 달라고 말했습니다.
물 한 잔 다소곳이 가져오며 노래를 부릅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요즘은 제가 딸 아이에게 물 심부름을 시키면서 노래합니다.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 알아서 척척척”

어렸을 적에 누구나 다 경험하는 일일 듯 합니다.
기분 좋은 어느 날, 방 한 번 청소해 보려고 비를 들고 막 쓸기 시작합니다.
그 때 밖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말씀하십니다.
“큰 애야. 방 좀 청소해라. 언제 철 들어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할런지...”
막 들었던 빗자루를 휙 내던지게 됩니다.

우리가 충성할 때 누군가의 지시를 받는 것보다 스스로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억지로 지시 받아 하면 남의 일이 됩니다. 그러나 스스로 찾아 하면 곧 내 일이 될 것입니다.


2) 홀로 있을 때에 더욱 성실합니다.

잠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충성된 일꾼 되어서 얼음 냉수같은 시원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날 머슴이 콩 심으러 나갑니다. 주인마님으로부터 어느 곳에 콩을 심을 것인지 지시를 받았습니다. 콩을 심다 보니 일이 지겹습니다. 그래서 농땡이를 부리다 논 둑 한 곳에 구덩이를 파고 한 말 가까운 콩을 부어 버리고 집에 돌아옵니다.
“콩 다 심고 왔느냐”는 주인마님의 말씀에 “예. 잘 심고 왔습니다.” 대답합니다.
그리고 한 달 여 지난 어느 날.
논빼미 한 쪽 옆에서 콩 싹이 마치 시루에서 콩나물이 올라오듯 수북하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머지않아 성실하지 않았던 결과는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습니다. 대학에 나오는 말로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간다는 내용입니다.
충성된 일꾼은 홀로 있을 때에도 역시 충성스럽습니다.
누군가 보고 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홀로 있을 때에도 동일한 모습을 갖습니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일꾼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성실하며 누구에게든지 성실합니다.

어느 때에는 쓰임을 받았으나 후에 쓰임받지 못한 예들이 성경에는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울 왕입니다.
처음 그는 얼마나 겸손하였습니까? 권세를 탐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으스대는 모습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그런 사울을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이 왕이 된 후 그의 행동은 하나님 앞에 성실치 못하였고, 충성과는 거리가 먼, 오만방자해 결국 왕위를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성실성이 결여된 사람과는 어느 누구도 중요한 일을 함께 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의 게으름이 모두를 어렵게 만들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3) 겉과 안을 일치 시킵니다.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현대를 표현하는 다양한 말들 중에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드러난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겉으로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한 방편을 이용합니다.
개성있는 옷 입기, 세련된 악세사리, 조금 더 큰 자동차, 호감있는 얼굴과 몸매 등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은 꼭 ‘나쁘다’라고 표현할 것은 아닙니다.
세상을 발 딛고 사는 한, 우리는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세상의 살아가는 현재적인 실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닌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는 거룩한 시민임을 고백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치장된 겉모습을 보며 우리를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사람을 평가하는 네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 - 곧 신수, 말씨, 문필, 판단력의 네 가지를 이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의 드러나 겉 모습으로 우리를 판단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여러분의 겉 모습이 훌륭하신 분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물질, 권세, 명예, 이룰 수 있을 만큼 넉넉함이 가득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 보시기에 그 중심이 깨끗한 사람, 고상한 목표를 세워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이름을 갖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혹여, 세상의 것이 희생되어야 하늘의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과감하게 세상의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용기있는 신앙인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성도는 무엇이든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맡은 후에는 감시나 감독을 할 필요가 없는 성실함이 있어야 합니다. 맡겨진 일에 성실함으로 다섯 달란트를 받아 다섯 달란트의 이득을 남겨서 주인의 칭찬과 더불어 상급을 받았던 종과 같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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