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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선택 기준 (삼상 15:34 ~ 삼상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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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택 기준 (삼상 15:34 ~ 삼상 16:13)

 
사람들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20대, 30대 미혼 청년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이성을 소개받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무엇인가?’ 남성은 여성을 소개받을 때 53%가 외모부터 보고, 22%가 직업을 본다고 대답했습니다. 14%가 인격, 곧 사람됨을 본다고 답했습니다. 남성은 여성의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반면에 여성이 남성을 소개받을 때는 70%가 직업을 보고, 13%가 인격을 보고, 11%가 외모를 본다고 대답했습니다. 남자들은 여자의 용모에 대해서 압도적으로 관심이 많고, 여자들은 남자의 직업과 능력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볼 때 외적인 모습에 영향을 받는 것이 인간의 본성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어디를 보실까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고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도 사람을 평가하시고, 사람에 따라 정한 위치에 세우십니다. 특히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사명을 맡기실 때 하나님께서도 유심히 사람을 지켜보시고 평가하십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지도자로 말미암아 한 공동체의 흥망성쇠가 달라지며 많은 생명과 영혼의 행복과 불행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요구에 따라 사울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첫 번째 왕으로 사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을 세우고 싶어 했습니다. 다른 나라도 다 왕이 있어서 사람을 다스리고 힘을 모아 전쟁을 벌이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사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다스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무엘 선지자를 찾아가서 하나님께 요청합니다. “하나님, 우리도 다른 민족과 같이 왕을 세워주세요.”
하나님은 처음에는 그런 요구가 지혜롭지 못하다고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온 이스라엘의 왕이신데 보이는 왕을 구하는 것을 보시며 섭섭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는 요구를 거두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 좋은 왕을 택하도록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환호할 만한 매력적인 인물인 사울을 택하십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무엘상 9:2)

사울은 아주 잘생긴 인물이었습니다. 튼튼하고 체격도 좋은 청년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사울은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소위 ‘몸짱’과 ‘얼짱’의 매력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면서 환호할 만한 인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탁월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울왕을 택하셨다고 여겼습니다. 그의 탁월함은 영원할 것 같았습니다. 

처음과 달리 교만해진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인기에 마음이 교만해졌습니다. 그를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겸손함으로 시작한 그는 교만함으로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사무엘상 15:17)

사울이 왕이 된 당시에 그는 스스로를 작게 여기며 겸손하게 행했습니다. 사무엘 선지가가 그 시절을 떠올리며 꾸중하고 있습니다. “그 때 사울 왕 당신은 스스로 부족하고, 아무것도 모르며 비록 덩치가 크고 힘세 보일지라도 하나님께만 의지할 뿐인 연약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사울왕은 교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왕의 신분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무시하고 불순종의 영이 그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그 동안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몇 번의 경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그 음성을 듣지 못하여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왕 된 권리만을 지키려고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권력을 지키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드디어 사울 왕을 버리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사무엘상 15:35)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후회하셨다는 내용은 전무후무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시고 하나님이 폐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시고 하나님이 무너뜨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하나님께서 저주하셨습니다. 이것이 외모로 세움 받은 왕, 사울의 비극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새 왕을 세우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교만한 왕 사울의 비극에 슬퍼하며 탄식했습니다. 하나님의 영을 거두시는 저주는 사울 왕이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자와 같은 고통과 저주로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이 일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 앞에 마음을 털어 놓았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사무엘상 16:1)

하나님의 마음도 슬프고 아프지만, 이제 그 애통함을 멈추고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 마음을 열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의 새 왕을 위해 준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날 이후 사무엘은 더 이상 사울 왕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무엘을 베들레헴으로 보내십니다.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노라” (사무엘상 16:1)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기준을 바꾸어 왕을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이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다윗이라는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 왕을 그의 아들 중에서 세울 테니 가서 한 번 살펴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선지자 사무엘은 다윗의 아버지 이새를 만나게 됩니다. 이새는 이스라엘의 대 선지자 사무엘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더구나 왕을 삼으러 온다니 두렵고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었지만 기대하는 마음으로 맏아들 엘리압을 먼저 소개합니다. 엘리압이 사무엘 앞에 섰습니다. 성경은 사무엘의 감탄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사무엘상 16:6)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엘리압이라는 근사한 청년을 세우시려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머리에 기름을 부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사무엘의 손을 막으시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사무엘상 16:7)

아마 엘리압도 사울처럼 멋있게 생겼던 것 같습니다. 용모가 준수하고 키도 다른 사람보다 크고 겉모습이 훌륭한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내가 그를 선택하지 아니하였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나님은 사무엘 선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엘리압의 용모와 키, 멋진 얼굴과 외모에 사울 왕의 모습이 담겨있었습니다. 많은 백성들이 좋아할 모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의 똑같은 선택의 기준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사울의 기준을 포기해라. 사울을 뽑았던 기준으로 백성의 왕을 삼으려고 하지 말라. 빛으로 가장한 어둠에 속지 말라.”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선택하십니다. 

인간은 외모에 집착하고 외면에 좌우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보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새의 일곱 아들이 다 사무엘 앞을 다 지나가면서 거절을 당합니다. 그리고 나서 사무엘이 묻습니다. “이 집에 아들이 일곱 밖에 없습니까?” 

그때서야 아버지 이새는 이야기를 합니다. “아, 제가 양을 지키기 위해 막내아들을 들에 두었습니다.” 선지자는 막내아들을 볼 때까지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새는 급하게 막내아들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이처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자기 친아버지조차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나이가 스무 살이 안 되었기 때문에 제사공동체에 참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미성년으로 초대 받을 수가 없는 여덟 아들 중의 막내였습니다. 다윗의 아버지도 그에게 별 의미를 두지 않았고, 형제들 중에서도 가장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습니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기대하지 않은 인물을 하나님께서는 찾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다윗을 선택하셨을까요? 다윗의 어떤 모습이 하나님의 마음을 흔들었기에 마음에 드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을 보셨습니다. 다윗은 소박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양치는 목자였고 남들이 보잘 것 없게 여기는 일을 성실히, 그리고 열정으로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생각하시는 다윗은 양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양을 지키겠다는 충성스런 목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인생의 꿈과 비전이 참 중요합니다. 특별히 젊은 사람들에게 꿈과 비전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맡겨주신 일, 내가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상황에 충성하는 일입니다. 기쁨으로 그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더 나은 자리에 오르면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내가 팀장이 되면 열심히 하리라.’, ‘내가 사장이 되면, 내가 CEO가 되면 본때를 보여주리라.’고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그 사람에게 주어진 일에 전심을 다해 충성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더 큰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내게 주어진 오늘에 헌신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더 높은 자리에서 헌신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의 물맷돌과 수금은 양을 지키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양을 사랑하는 양치기 다윗의 마음을 대변하는 두 가지 표지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물맷돌과 수금이었습니다. 그가 가진 두 가지 충성의 표지가 양을 충성스럽고 즐겁게 지키기 위해 준비된 삶을 대변해주고 있습니다. 그의 물맷돌은 들짐승에게서 양을 지키기 위해 준비된 삶의 일부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양을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연습하며 헌신했을 것입니다. 그의 헌신과 노력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때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사무엘상 17:34)

다윗의 헌신은 결국 거대한 칼과 창, 갑옷으로 무장한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과 수치로부터 구해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린 양을 구하기 위한 사랑하는 마음, 작은 생명에 자기 생명을 걸 수 있는 일상의 헌신이 한 나라를 구하고, 민족을 수치에서 건져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작은 생명을 사랑하는 능력, 맡겨주신 일상에 성실하게 임하는 능력, 어려움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런 모습을 작은 물맷돌 훈련을 통해서 보셨습니다. 

그의 삶의 두 번째 표지는 수금이었습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홀로 빈 들판에서 낮잠을 자고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일곱 명의 형들과 아버지의 무관심에 억울해하거나 분풀이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주신 모든 일에 감사하며 때마다 하나님을 노래하며 감사했습니다. 그가 써놓은 수많은 가사들은 오늘날까지 우리가 부르는 곡조가 되었습니다. 그는 목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이끄시는 선한 목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도 그의 고백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자주 시편을 인용하셨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사울을 괴롭히는 악신이 다윗의 수금소리에 떠나갔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의 이름이 골리앗을 물리쳐 유명해졌지만, 수금연주 때문에 다윗은 왕의 측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저 평소에 부르던 감사의 노래가 왕의 마음의 고통을 덜어내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게으르지 않으려고 연습하던 악기가 칼과 창으로 물리칠 수 없는 악신을 물리쳤다고 성경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중심을 살피시는 하나님 앞에 충성합시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을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도저히 모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안달하거나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 눈에 들려고 이것저것을 하면서 보여주려면 우리는 사울처럼 무너질 것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충성을 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시려고 하실 때, 평소의 삶, 날마다 묵묵히 일상으로 충성하는 삶을 평가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런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내 종 다윗을 찾아내어 나의 거룩한 기름을 그에게 부었도다. 내 손이 그와 함께 하여 견고하게 하고 내 팔이 그를 힘이 있게 하리로다." (시편 89:20~21)

사람들에게는 감춰져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찾아낸다고 기록합니다.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지만, 하나님은 깊은 것이라도 찾아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일을 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맡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것은 외모가 용모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있는 마음, 일상에 임하는 충성,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의 외모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순간의 사람들의 냉대나 비난 때문에 위축되거나 겁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일상의 충성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계 위에 세우시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고 그 여부는 우리의 일상의 충성, 곧 내면의 삶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우리를 찾아오셔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우리에게 맡겨주실 것입니다. 소망을 가지고 날마다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로 하여금 사울처럼 살 것인가, 다윗처럼 될 것인가 결단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맡겨주신 일을 기쁨과 성실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늘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와 주님께서 세우실 만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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