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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히스기야와 함께하신 하나님 (왕하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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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와 함께하신 하나님 (왕하 18:1~8)


저는 우리 성도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저의 소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간절한 소원이실 것입니다. 자식이 성공하기를 원하는 것은 부모가 갖는 당연한 마음이듯이 성도가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목사의 당연한 마음이고, 아버지 하나님의 당연한 마음입니다. 
본문 7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어디로 가든지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형통했다는 말이 성공했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을 표준새번역에서는 “어디를 가든지, 주께서 그와 같이 계시므로, 그는 늘 성공하였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성경은 히스기야 왕에 대한 기록은 비교적 상세하게 남겨주었습니다. 그는 주전 715년 25세에 왕위에 올라 주전 687년까지 29년 간 재위하신 분입니다. 그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열왕기하 18장-20장, 이사야 36장-39장, 역대하 29-32장까지 아주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만큼 그의 역사를 통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고, 후손들이 배울 것이 있다는 말이요, 선한 왕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신앙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두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의 재위 14년에 앗수르제국의 침략이 있었는데 그 때 그는 기도를 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천사를 보내셔서 적을 물리쳐주셨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는데 치료된 사건입니다. 그 때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15년이란 세월을 덤으로 주셨습니다. 

여러분! 히스기야의 형통의 비결,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7절에 보니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기 때문에 형통했다고 말합니다. 형통의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형통합니다. 성공합니다. 이루고자 하는 모든 일들을 이룰 수 있습니다. 
창 39장에 보면 요셉도 형통한 자였습니다. 요셉의 형통의 비결 역시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창 39:2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창 39:3 에서도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말씀합니다. 또 창 39:23에서는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셔서 히스기야가 형통했는데 히스기야와 하나님이 함께 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설교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신 이유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3절).

제리 화이트(Jerry White)라는 분이 쓴 [정직, 도덕, 그리고 양심]이라는 책에는 정직의 종류를 네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일반적인 정직입니다. 이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다. 마귀는 거짓의 아비입니다. 우리는 마귀를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의 친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거짓이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를 본 받아 진리만을 말해야 합니다. 

둘째, 법률적인 정직입니다. 이것은 정해진 법을 잘 지켜가는 것입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철저하게 법을 지켜가는 것을 말합니다.

셋째, 내면적 정직입니다. 이것은 자기 양심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한 노인이 고향 실래시아로 가기 위해 폴란드의 깊은 산 속을 가고 있었답니다. 갑자기 숲 속에서 강도들이 뛰쳐나와서 가지고 있던 것 다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강도 가운데 한 사람이 그렇게 물었습니다. “이것이 가진 것의 전부이냐?” 노인은 그렇다고 대답하고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주머니 깊은 곳에 금화 하나가 손에 잡히는 것입니다. 노인은 바로 돌아서서 강도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보니 가진 것이 여기 또 있더라고 강도에게 넘겨주었답니다. 강도들이 너무 감동을 받아서 노인에게 빼앗은 것 모두를 되돌려주었답니다. 그 사람이 임마누엘 칸트의 아버지입니다.
양심을 속이지 않고 그 양심 앞에 바르고 곧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정직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양심을 자극해서 우리에게 거짓을 거부하고 진실을 선택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넷째, 성경적 정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곧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3절에 보니 히스기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보시는 분입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직한 것 같아도 내면은 정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외식에 속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속지 않으십니다. 
세상에서는 정직한 사람이 성공할 수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직한 사람을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은 길게 봐야 합니다. 정직한 사람은 순간순간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정직한 사람이 승리하는 것입니다. 약은 잔꾀에 능한 사람은 늘 잘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마는 것이 인생입니다.  

정직함이 능력이라는 것을 보여준 기업이 있습니다. 지난 1999년 12월 구학서 사장이 신세계의 사령탑에 올랐습니다. 사장 자리에 오르자마자 임직원과 1만 5천여 협력회사에 뜬금없는 경고문을 보냈습니다. “관행처럼 해왔던 금품과 향응수수를 할 경우 신세계 직원은 퇴사시키고 해당 협력회사와는 거래를 끊겠다”는 내용입니다. 엄포가 아니었습니다. 구사장은 윤리경영을 경영이념으로 선포하고 사내에 기업윤리 실천사무국까지 출범시켰습니다. 실제로 수십 명이 금품과 향응을 받다가 퇴사 당했고 많은 협력업체가 거래 단절조치를 당했습니다. 그 결과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가 창사 이래 4천억 원대의 경상이익을 올렸고 이마트는 할인점 사상 최초로 국내에 50호 점을 열었고, 중국에도 진출하여 40여개의 이마트 점포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입니다. 구학서 사장은 정직함이 능력이라는 것을 한국 사회에 보여준 귀한 분입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려면 정직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살려고 해도 가로막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들을 잘 극복해 가야 합니다. 박봉수 목사님이 말한 정직의 걸림돌 몇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욕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보려고 거짓을 저지릅니다. 물건의 함량을 속입니다. 수입 농산품을 국산이라고 속입니다. 가짜 명품이 판을 칩니다. 검은 뒷거래를 합니다. 뇌물을 주고받습니다. 우리가 정직하려면 이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려는 제반 유혹을 뿌리쳐야 합니다.

둘째, 습관을 끊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습관 때문입니다. 거짓말은 해 버릇한 사람이 합니다. 거짓말을 처음 하는 사람은 얼굴이 붉어지고 가슴이 뜁니다. 그러나 거짓말을 습관으로 달고 하는 사람은 태연합니다. 오히려 스릴을 느끼고 속는 사람들을 보면서 쾌감을 느낍니다. 우리가 정직하려면 철저하게 이런 거짓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장난삼아 하는 거짓말도, 선의의 거짓말도 철저하게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내 삶 속에서 거짓을 완전히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셋째, 체면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체면 때문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물마시고도 이를 쑤시고 나왔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비단 옷을 입었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카드로 신혼여행을 외국으로 다녀옵니다. 형편이 안 되면서 큰 차를 타고 남의 것을 빌려 입고서라도 잔치 집에 갑니다. 이런 체면 문화 때문에 정직이 무너집니다. 체면 문화가 정직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립니다.

넷째, 관계 유지의 유혹을 벗어야 합니다.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또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평화롭게 유지하려는 유혹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실 그렇지 않은데 상사에게 아첨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깨질까봐 진실을 말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괜히 말해서 문제를 일으킬까봐 정직을 숨길 때가 있습니다. 이런 관계 유지의 유혹은 평화로운 관계는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실한 관계, 믿고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가식적인 관계의 유혹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럼 정직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가장 핵심적인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직하려면 성령으로 충만하십시오. 요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영적으로 볼 때 우리가 정직하지 못한 이유는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직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 51:10에 보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라고 하는 기도가 나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주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셔서 우리의 영을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빚으실 때 우리는 정직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온전한 정직을 이룰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애쓰고 노력해도 부분적인 정직을 이룰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한 정직에 이르려면 우리가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온전한 정직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2.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들을 제거했습니다(4절).

4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유대인들이 우상숭배를 하던 여러 산당을 파괴시켰습니다. 우상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세가 만들었던 놋 뱀을 섬겼는데 그것을 부스고 느후스단이라고 불렀습니다. 느후스단은 우리 말로 ‘놋 조각’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신이 아니고 놋 조각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의 아버지는 아하스입니다. 아하스는 북왕국 이스라엘과 아람의 연합전선에 대비하기 위하여 앗수르의 원조를 구하면서 유다에 이방 우상종교를 들여왔습니다. 아하스라는 앗수르의 왕국을 방문하고는 다메섹에서 이방 종교의 제단을 보고 그 제단을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에 세우고, 이방 우상 숭배에 전념한 사람입니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오르면서 종교개혁을 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우상의 단들을 헐어버리고 우상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 굳게 닫혔던 예루살렘의 성전 문을 활짝 열고 제사를 부활시키고, 유월절을 회복하였습니다. 
이런 종교 개혁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비록 악한 왕인 아비는 죽었더라도 히스기야 주위에는 중전을 비롯하여 친척이며 외척이며 상당히 많은 친인척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도록 이방신을 섬겼기에 이방신을 위한 열심쟁이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이 우상숭배에 깊이 빠져서 모세의 놋 뱀을 섬길 정도였습니다. 그 엄청난 개혁을 단행한 때 히스기야의 나이는 불과 25세 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하게 종교개혁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들을 제거하니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고 그를 형통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영적인 부흥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기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므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포로귀환을 한 유대인들에게 강력한 영적 부흥을 일으킨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백성들과 모여 말씀을 나누고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 가운데 들어온 이방 여인들과 그들의 소생을 내쫓았습니다. 솔로몬을 타락시켰던 이방여인들처럼 그들이 유대인들을 타락시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영적 부흥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방해되는 것들을 제거하므로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기를 원하시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요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과 대화를 나누십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고 싶으셨습니다. 주님은 생수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다말고 갑자기 남편 얘기를 꺼냅니다. 그녀에게는 생수의 근원을 막는 죄가 있었습니다. 그 죄는 남편 문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심령에 생수가 솟아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죄를 처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가 자주 “경건이 능력이다”라는 말을 하는데 경건이 능력이라는 말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기에 깨끗한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싶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죄를 품고 있다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죄를 회개하시고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은 단호하게 끊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3.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5절).

히스기야도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했던 사람은 아닙니다. 히스기야도 인간적인 방법을 써봤고 인간적인 방법이 허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13절 이하에 보면 앗수르가 라기스를 점령하니 히스기야가 그들에게 은금을 보냅니다. 히스기야가 인간적인 방법으로 앗수르군대를 잠잠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금은을 다주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오히려 대군을 보내서 예루살렘을 치게 합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실패한 히스기야는 인간적인 방법이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승리하게 됩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기도하니 하나님께 천사를 보내셔서 앗수르 군사 18만 5천을 멸하십니다. 그리고 앗수르의 왕 산헤립은 칼로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고 기도의 응답으로 승리했던 것입니다. 

20장에 보면 히스기야가 죽을병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히스기야에게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죽음을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병을 치유하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는 심히 통곡을 하면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셨고 눈물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히스기야에게로 돌아가서 그의 생명이 15년 연장 될 것을 말하게 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낫게 하실 표적을 구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을 고쳐주실 징표가 임할 것을 말합니다. 

그 징표로 해 그림자가 십도나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뒤로 물러날 것인지를 선택하게 합니다. 히스기야는 그 엄청난 우주적인 사건을 믿어버립니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든 물러가든 그것은 태양이 움직이는 기적 아니면 지구가 움직이는 기적입니다. 히스기야는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는 표적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가 구한 표적대로 해 그림자가 십도 물러가게 됩니다. 그 표적 후에 히스기야의 몸이 치료가 되어 15년을 더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신앙의 고백이고, 하나님은 지금도 능력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독일의 음악가인 하이든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어느 날 예술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통의 문제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인간에 대한 증오, 경제적인 궁핍, 창작활동에 대한 무력감을 느낄 때 어떤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비법을 공개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독한 술을 마시고 잊어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고통을 호소합니다. 어떤 사람은 증오와 고통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내 뱉어 버립니다. 그런데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작은 골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은 나의 기도실입니다. 나는 고통이 닥치면 조용히 골방에 들어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그리고 그 골방에서 나올 때에는 희망의 빛을 발견합니다.” 그는 기도로 문제를 해결했던 것입니다. 

4.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6절)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습니다. 그는 말씀대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는 히스기야와 함께 하셨던 것입니다. 
9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를 에워싸고 3년 만에 그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사로잡아갑니다. 12절에 보면 사마리아가 함락되고 망한 이유를 말해줍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입니다.  

수 1:9에 보면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되는 비결을 가르쳐줍니다. 뭐라고 말씀했습니까?"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형통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한번은 어머니의 생일 파티를 열고 지인들을 초대했습니다. 그 자리에 프랑스 관리 한 사람이 참석을 했습니다. 그가 워싱턴의 어머니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어떻게 아드님을 이렇게 훌륭하게 잘 키우셨나요? 비결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자 워싱턴의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비결이랄 게 뭐 있나요? 다만 저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고 늘 강조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 인생의 승리 비결인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야 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엡 2:1-3에 보면 죄와 허물로 죽었던 시절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던 불신자 시절에는 무엇을 따랐는지 말해줍니다. 세 가지를 따라 살았습니다. 첫째, 세상 풍조입니다. 둘째,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셋째,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 생활이 죄와 허물로 죽었던 그 때의 상태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를 따르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악령을 따라 사는 대신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육체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생활에는 갈등이 많습니다. 세상풍조를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것인가, 악한 영을 따를 것인가 성령을 따를 것인가, 육체의 욕심을 따를 것인가 육체를 쳐서 복종시킬 것인가... 언제나 갈등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의 선택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길만이 사는 길입니다. 
레오나드 우드 경이 프랑스 왕의 초청을 받고 왕궁에 갔습니다. 우드 경은 프랑스 왕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드 경을 본 프랑스 왕이 의외라는 듯이 말했습니다. “오! 우드 경이 오셨구먼. 나는 경은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오셨구먼.”, “폐하, 저를 초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초청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어서 못 오시는 줄 알았지.”, “폐하, 폐하의 초청에는 응답이 필요 없습니다. 무조건 오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제 도리인 줄 압니다.” 유명한 말입니다. 왕께서 오라고 하시는데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왕께서 오라고 하시면 오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섬깁니다.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인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히스기야가 형통했던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도록 히스기야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들을 제거합시다. 히스기야처럼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일생 계속 되도록 하십시오. 6절에 보니 히스기야가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한두 번 깨끗한 것은 누구든지 할 수 있지만 늘 깨끗한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한두 번 예의 바른 것은 누구든지 가능하지만 늘 예의바른 것은 어렵습니다. 잠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모든 신앙인에게 가능한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나 변함없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는 물과 고기의 관계와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 주님을 떠나서 살수 없습니다. 언제나 주님을 찾으시고 주님께 붙어서 하나님과 동행하므로 형통하시고 승리하시고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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