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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혹되지 않으려면? (엡 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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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혹되지 않으려면? (엡 4:11~16)


한국 기독교에 강한 영향력을 끼쳤던 이단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신비주의적인 특색을 띄고 등장했다. 개인의 체험을 강조했던 1930년대부터, 본격화된 이단운동이 있었다. 1930년대를 접어들면서, 일제탄압이 더욱 심해졌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좌절감이, 이런 신비주의적인 회오리가, 한국 교회를 휘몰아치게 되어졌다. 이 신비주의 운동에 제일 선봉에 섰던 사람이, 이용도라는 감리교 목사였다. 이 분은 처음에는, 이렇게 이단사설을 주장하지 않았다.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아주 유명한 부흥 강사였다. 

그가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가 더해 가면서, 이분을 따라다니던 여신도 가운데, 이유신 유명화라는 여신도가 있었는데, 이 여인들은 부흥회 기간 동안, “내 몸에 예수님이 지금 들어오셨다. 예수님이 지금 나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신다.”고 했다. 

이것을 그대로 이용도 목사가 수용했고, 그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집회를 했다. 나중에 이유신 유명화는, 이용도 목사보고 “야 이놈 용도야! 내가 예수다. 네가 나를 사랑한다하면서, 왜 빨리 한국에 썩어빠진 교회하고 분리해서, 교회를 세우지 않느냐?”고 했다. 

이런 말을 하면서, 예수님이 이용도 목사에게 말하는 것처럼 했다. 그때 이용도 목사님이 “사탄아 물러가라.”며, 무리들을 당연히 물리쳤어야 했는데 “오! 주님.”하면서, 소위 입신 상태에 굴복을 하고, 그것을 수용함으로 말미암아, 한국 교회가 굉장히 소란스럽게 전개가 되었었다.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게 된다. 그는 33세로 폐병에 결려서,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돌아가셨다. 그를 추종하던 세력들이, 더 깊은 신비주의에 빠져 들어갔다. 한국 교회 이단의 뿌리를 올라가면, 이용도 목사의 신비주의와, 자칭 재림 예수라고 했던, 황국주로부터 오게 된다. 
황국주의 아버지는, 냉면집을 하는 황해도라는 장로였다. 황국주라는 명석한 아들이, 대학 진학을 못한 가운데, 굉장히 우울한 상태에서 기도를 열심히 했다. 부흥회도 잘 쫓아다니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야겠다고, 노력하던 젊은 청년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100일을 작정기도를 하고 난 뒤 “내가 예수다.” 이렇게 등장한다. 내가 예수라는 원조는, 황국주에서 시작된다. 어느 날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이 불면서, 자기 목이 공중으로 날아가고, 예수님 목이 자기에게 와서 붙어, 예수님의 머리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때 “정신 차려”하면서, 혼내줘야 하는데 “오 주님!”하였다. 부자간에 딱 맞아 떨어졌다. 그리고 이제 새 예루살렘을 건설해야 한다면서, 전국을 쫙 누비고 다녔다. 가출한 아줌마들 그룹과, 노처녀 그룹들이, 무려 6,70명이 따라 다녔다. 결국 서울 삼각산에 와서, 기도원을 세웠다. 
그리고 영체 교환교리, 혼음교리를 가르친다. 여기서 나중에 문선명이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어서, 통일교를 세우는데 정신적인, 사상적인 뿌리가 된다. 악령은 믿는 자들을 미혹해서, 하나님을 버리게 만든다. 이런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앙이 잘 자라야 한다. 

1.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분수를 아는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라(엡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남아메리카 밀림 속에는 ‘부쉬마스터’라는 독사가 있다. 이 뱀은 무서운 독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몸집이 크고 공격적이다. 한번 물리면 20분 안에 해독하지 않으면 죽는다. 그런데 이 독사는 빛깔이 너무 아름다워, 기어가는 모습이, 마치 무지개의 영롱함처럼 황홀하다. 

그래서 넋을 잃고 보는 사람에게, 순식간에 달려들어 물어서, 생명을 잃게 한다. 아름다운 빛깔의 유혹에 빠져서, 순간에 목숨을 잃어버리게 된다. 유혹은 아차 하는 순간에, 정신을 놓아버리고, 그럴 때에 넘어지고 만다. 미혹되면 망한다. 미혹은 자기 욕심에 이끌림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많은 거짓 선지자들과, 이단들이 일어나고 있다(마24:4-5). 그들은 적극적으로 교회를 공격하고 있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미혹 당하고 있다. 오늘날처럼 영적으로 오염된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짝퉁이 명품보다, 더 진짜같이 만들기에, 분별력이 필요하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접근하기에, 영적 분별력이 필요하다. 바울은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하며 염려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를 때, 하나님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왕상3:9). 선과 악, 옳고 그름, 정의와 불의를 분별하기 원했다. 하나님은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어느 누구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분별력을 솔로몬에게 주셨다(왕상3:12). 

그러나 하나님의 분별력을 받고도, 솔로몬은 쓰러졌다. 선악의 분별을 넘어서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솔로몬 시대보다, 더 영적으로 타락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에, 영적 분별력이 더 절실하게 요구된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거짓 사도들이 있었다. 속이는 일꾼들이 있었다. 그리스도의 사도처럼, 가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현상들을 말하면서, “놀랄 것이 없다”고 한다. 사탄도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고후11:14).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순결하고 진실한 믿음에서 벗어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선악을 분별할 지혜와 더불어, 영적 분별력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딤전4:1)하셨다. 따라서 혼돈의 시대에 우리가 하나님께 구할 것은, 지혜와 영적인 분별력이다. 악한 영과 선한 영을 구별하는, 영적 분별력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구별할 수 있나?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했다. 예수님이 이른 말, 즉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영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기록된 말씀을 올바로 앎이, 선한 영이다. 악한 소돔에는 말씀이 없었다. 
(롬16:18)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장성하지 못하면 어린아이처럼,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에 관심을 두게 됨으로 미혹되니, 그러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 장성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2. 성령님은 하나가 되게 하신다. 

아버지의 뜻과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님은 하나다(엡4:3-6). 아버지와 예수님과 성령님의 뜻과 생각은, 결코 다를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성경만이 아니라,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만 붙들고 무식하다고 생각한다. 너무 멋이 없고 폐쇄적이라 생각하고, 어떤 다른 종교, 사상, 철학, 과학이 섞여야, 더 멋있고 세련되게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철저하게 혼합주의를 금한다. 그래서 (레19:19)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라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이자, 서양철학의 전제는 변증법이다. 변증법의 논리는, 합치면 합칠수록 더 나은 것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좋지 않은 결과들도 많다. 하나님 말씀에 무엇을 자꾸 합치면 합칠수록, 더 나쁜 것이 나오고, 약화된다. 그래서 성경은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강력하다고 말한다. 

(고후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하였다. 기독교의 능력은, 아무것도 섞지 아니하고, 순수한 말씀 그대로를 붙드는 것에 있다. 
역사를 보면, 마귀는 교회를 약화시키기 위하여 ‘혼합주의의 함정’을 만들어 놓았다. 구약시대에는 바알과 여호와를 동시에 섬기도록 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오직 ‘여호와만’ 섬겨야 함을 강조했다. 신약에 와서도 혼합주의의 함정은 끊이지 않았다. 

율법주의가 무엇인가? 복음과 율법을 뒤섞어버리는 것이다. 은혜의 복음만 아니라,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었다. 이것이 초대교회를 약화시켰다. 그리고 신비주의가 있다. 우주를 움직이는 신과, 하나가 되는 비밀스런 의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상이다. 
요즘 이 신비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심령과학이나 증산교, 무당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기독교에 슬그머니 들어와, 이상한 은사주의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또한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혼합주의의 함정은 ‘영지주의’였다. 

영지주의는 이원론적 혼합주의로, 현대의 뉴에이지 운동의 원 뿌리라고 말할 수 있다. 뉴 에이지 사상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출판사가 있다. 그것이 정신세계사이다. 어거스틴이 한때 빠져 있던 마니교, 그 창시자 마니는, 3세기 메소포타미아의 의사이자, 화가, 예언자였다. 
그의 주장은 “예수, 석가, 조로아스터 등, 모든 성인의 가르침은, 하나의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관용적으로 종합하면,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보다나은 삶을 주는 종교가 된다.” 결국 마니교는 지금의 종교다원주의의 주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을 하였다. 

마니교는 기독교의 혼합화 현상이다. 뉴에이지의 정신은 ‘혼합주의’이다. 80년대, 90년대에 교회를 가장 약화시킨 영향이 무엇인가? 그것도 역시 혼합주의다. 80년대 초반에는 복음과 정치학을 섞으려 했다. 그래서 민중신학이니, 해방신학이니 하는, 정치신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후에는 복음과 사회학을 섞어서, ‘사회학적 성경해석’이 아니면, 무식한 성경접근인 양 떠들던 때도 있었다. 90년대 들어서는 복음과 심리학을 뒤섞어서, 복음인지 심리학 강의인지 모를 설교들이 난무했다. 그리고 이상구 박사의 강의를 필두로, 복음과 의학이 뒤섞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복음의 능력을 부끄러워하고, 의심하기 때문이다. 복음은 복음만으로도 충분히 각 심령을 치유하고, 죄인을 회개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복음의 능력을 그대로 믿지 않기에, 복음을 혼잡하게 만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분함을 믿어라. 

악한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하기에, 자꾸 무엇을 섞으려고 한다. 속지 말자.  성령님과 명확하게 말씀하시지, 아리송하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정확하게 말씀해 주신다. 
(막10:21)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이처럼 명확히 핵심을 말씀하셔도, 순종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사실 그런 말씀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예언은 직설적이며, 꿰뚫는 말씀이다. 베드로가 성령 받고 말씀을 전하자, 그들이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 꼬 하였다(행2:38).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귄위가 나타났다. 이것이 성경적인 예언이다. 

3. 장성하려면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장성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예배와 기도생활, 전도와 봉사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이 성숙해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1)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한다.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고 한다. 즉 삶의 목표를 주님에 두고,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되라는 말씀이다. 

영적 성장의 장애물들을 뛰어넘어, 반드시 성장하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소원과 함께, 주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간절함이, 있기 바란다. 그런 사람에게는 방해조차도, 성장의 촉진제가 된다. 장성하려면 영양분을 잘 섭취해야 한다. 말씀을 부지런히 잘 배우시기 바란다. 

(2)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린아이는 귀가 얇아, 유혹에 잘 넘어간다. 이단에도 잘 빠지고, 세상 유행도 잘 탄다. 한 마디로 말하면, 자체적인 힘을 가지고, 세파를 헤쳐 나가는 동력배가 아니라, 바람과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돛단배다. 

반면에 성숙한 사람은, 중심을 잃지 않는다. 충성심이 변하지 않는다. 어떤 고난과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성숙한 사람은 고난의 바람과 파도를 이길 수 있는, 성령님이 주시는 자체동력이 있다. 최후 승리는 흔들리지 않는 사람의 것이다. 

어느 날 어떤 청년이, 한 건설회사에 면접을 하게 되었다. 면접관이 물었다. “몇 번째 시험인가?” 이 청년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110번째 시험입니다.” 그러면 이 청년이 무슨 하자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서 떨어뜨릴 텐데, 의외로 면접에 합격해서, 마침내 취직할 수 있었다. 
면접관의 얘기에 의하면, 2가지가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하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고, 또 하나는 그렇게 많이 실패해도 당당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고난이 계속돼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때가 되면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합격!”이라는 판정을 받게 될 것이다. 

(3) 사랑으로 행동해야 한다(15-16).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두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있다. 그것은 “사랑 안에서”라는 말이다. 성숙한 신앙을 가지려면, 사랑으로 행동해야 한다. 특별히 자기만 생각하던 태도를 버리고, 남을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어렸을 때는, 주로 사랑을 받는다. 그러다가 철이 들면, 사랑 받기만 좋아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사랑은 성숙의 증거다. 무엇보다 잘 줄줄 알아야 한다. 사랑은 낭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다. 
그때 가룟 유다는 “왜 낭비하느냐?”고, 마리아에게 화를 냈다. 사랑의 낭비의 의미를 알면, 마리아처럼 되고, 그 의미를 모르면 가룟 유다처럼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전부 낭비하셨다. 언제나 사랑엔 낭비가 있고, 손해가 따른다. 사랑은 논리와, 손익계산을 초월해야 할 수 있다.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사47:10) “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라,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 하였으므로”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어느 그리스도인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돼지 떼가, 한 사람을 따라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는 호기심이 생겨서, 그 뒤를 따라가 보았다. 뒤를 따라 가던 그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그 사람을 따라가던 돼지 떼들이, 도살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바구니에 담긴 콩을 가지고, 돼지 앞에서 길을 가면서, 콩을 조금씩 떨어뜨리자, 돼지 떼가 그 콩을 먹으려고 따라왔다. 마귀도 이렇게 달콤한 유혹으로, 성도들을 유인해서, 그 삶과 영혼을 파멸시키려 하고 있다. 

(히5:13-14)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신앙의 깊이는 말씀을 올바로 깨닫는데 있다. 그래야 장성한 자가 되고, 미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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