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히 11:17)

  • 잡초 잡초
  • 288
  • 0

첨부 1


믿음으로 순종합시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히 11:17)

우리나라에 미국의 선교사님들이 처음으로 왔을 때입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의료시설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어떤 양반이 선교사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몸에는 심한 종기가 돋아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몸이 아프니까 염치 불구하고 선교사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자기의 환처를 선교사님에게 보이면서, 그는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선교사님, 보시다시피 제 몸에 심한 종기가 생겼습니다. 듣자하니 선교사님에게는 좋은 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체면 불구하고 찾아왔습니다. 저를 좀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선교사님은 그에게 페니실린을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최근에 개발된 아주 좋은 항생제입니다. 이것을 드시면 몸이 괜찮아지실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고서 물었습니다. "약값은 얼마입니까?" 선교사님은 선교할 목적으로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공짜입니다. 그냥 드릴 테니까 집에 가셔서 드십시오." 그는 그것을 받아 쥐고 나오면서 이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공짜로 주는 것을 보니까 아무래도 이것은 진짜가 아니라 가짜인가보다.' 그러면서 그는 그 귀한 약을 모두 길거리에 내버렸습니다. 쓸데없는 의심이 일어나서 그 약을 먹지 않았으니 그의 병이 어찌 쉽게 나을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전파되던 선교 초창기에 우리 침례교 선교사님으로 우리나라에 오신 말콤 C. 펜윅 선교사님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펜윅 선교사님이 자기의 제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무를 하나씩 주면서 무 잎은 땅 속으로, 무는 하늘로 올라가도록 심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아마 선교사님이 서양에서 무를 심어보지 못했나봐, 아마 무가 열매인 줄로 잘못아신 모양이지?”하며 전부 무를 땅 속으로 무 잎사귀는 하늘로 오게 심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심은 거지요.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 무를 하늘로, 무 잎사귀는 땅 속으로 심은 것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이 사람을 보고 “아니, 선교사님이 모르셔서 그렇게 시킨 건데 무식하게 무를 그렇게 심으면 어떡하나?”하고 아마 흉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펜윅 선교사님이 돌아오셔서 자기의 말 대로 무를 거꾸로 심은 제자만을 칭찬하였습니다. “내가 무 심는 법을 몰라서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순종하는지,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치고 싶어서 그렇게 시킨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제자들은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떨어지는 기도를 통해 십자가를 지는 순종을 보이셨습니다(눅 22:41)   빌 2:8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말씀하십니다

히 5:7-9에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라고 하셨습니다.

사도행전9장에는 다메섹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신도의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나니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아나니아에게 주님은 환상 중에 나타나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행 9:11) 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이 사울이 예루살렘에서 주를 믿는 수많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음에 넘겨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다메섹에 까지 와서 주를 믿는 신자들을 결박하여 붙잡아갈 것도 알아 당할 핍박을 대비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러한 사울에게‘가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 아나니아는 주께 순종하여 담대하게 사울을 잦아갔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안수하여 눈을 고쳐 주었고,사울로 하여금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이렇게 신앙의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하란에 거하는 아브라함을 불러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고 하셨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순종하여 나아갔습니다(히11:8절).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 형태가 공동생활을 해야 했던 부족 사회, 혹은 유목민 사회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아브라함이 그의 고향을 버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했다고 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어떻게 신뢰했으며, 얼마나 결단력 있게 행동했는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평생 수없이 많은 시험과 시련을 겪으면서 살았던 자였습니다.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라는 최초의 시험에서부터(창 12:1) 기근으로 인해 애굽으로 내려가야만 했던 시험(창 12:10-20), 조카 롯을 구출하기 위해 다섯 왕과 싸워야만 했던 시험(창 14:1-16) 등 무수히 많은 시험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기록된 시험은 이전의 그 어떤 시험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렵고 절망적인 시험이었습니다.
자신의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는 독자 이삭, 그것도 백 세나 되서야 겨우 허락받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모든 소망을 끊는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해 주셨던 언약의 후손,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아들, 그 아들을 도로 바치라는 명령은 마치 하나님 스스로 그 자신의 언약을 취소하시겠다는 선언과 같았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시험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시험은 찾아올 수 있습니다.
노예제도가 있던 때에 미국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신앙심이 있는 흑인이 백인집의 하인으로 있었습니다. 그 주인은 사냥을 좋아하여 늘 흑인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사냥을 가면서 주인이 흑인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왜 늘 시험을 당하였다고 하느냐? 나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아무 시험이 없는데." 흑인이 대답하기를 "주인이시여, 노하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지금 저기에 있는 꿩을 쏘아 한 마리는 즉사하고 한 마리는 한 쪽 다리에 총을 맞아 달아난다면, 주인께서는 어느 것을 먼저 잡으시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주인이 대답하기를 "그것은 물론 다리에 총 맞고 달아나는 산 놈을 따라가 잡을 것이 아니냐"했습니다. 그 때 흑인이 "옳습니다. 주인님은 이미 그 영이 죽었으니 마귀가 잡으려고 시험할 필요가 없고, 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하니까 마귀가 잡으려고 별별 시험을 다 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시험에 드셨습니까?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포기하지 말고,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마귀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흔들어 보는 것입니다
시험은 불신자나 범죄자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결코 낙심치 말아야 합니다.

동방의 의인이었던 욥에게 아무런 연고 없이 극심한 환란과 시험이 찾아왔듯이,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아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시험, 우리의 모든 소망을 끊는 시험, 그리고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대상을 잔혹하게 취하시는 시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험을 이길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을까요?

 먼저 이 세상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기며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인간은 과연 어떻게 반응해야 합니까? 여기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모범을 보인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같은 사실에 관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히11:8)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한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을 하고 자신의 종 엘리에셀로 양아들을 삼으려 했고 사라의 여종을 첩으로 두어 이스마엘을 낳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을 더해주셨습니다. 
  
백 세에 얻은 독자,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한 아들 이삭, 그러나 그 아들조차도 하나님보다 우선될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순종하는 마음이 있을 때 우리는 어떠한 시험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다음 '하나님만이 최상의 선'이라고  믿고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에게 지금까지 자신이 기대고 의지하고 있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한 가지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신이 누리고 있던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좇는 것이었습니다. 

주후 2세기 초에 이그나티우스라는 순교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수리아에 있는 안디옥 교회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이 돈독한 분이었습니다. 인품도 훌륭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때 로마 황제의 핍박이 심하게 몰려왔습니다. 그는 맨 앞장에서 성도들의 신앙을 독려했습니다. 그러다가 핍박자들의 손에 붙잡혔습니다. 결국은 본보기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원형 경기장에서 사나운 들짐승들의 먹이로 던져지기 위해 로마로 끌려갔습니다. 그는 끌려가면서 자기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기쁩니다. 그 이유는 내가 이제야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있는 성도들은 그의 죽음을 몹시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그나티우스를 위한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로 끌려가던 중에 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편지를 썼습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이 편지를 받는 대로 저를 위한 구명 운동을 중단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게 있는 최선의 것을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제 마음속에 있는 이 뜨거운 순교의 열정을 부디 꺽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제가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저를 독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결국 그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자기에게 있는 최선의 것, 곧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그는 믿음을 따라 살다가, 믿음을 따라 순교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감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순종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었던 이삭마저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철두철미하게 자기 자신을 죽인 채 오직 침묵으로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겸손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좇는 절대 순종이 필요합니다

(삼상 15:22 23)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나님은 살아 있는 생명을 바치라 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상상 못할 명령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기꺼이 자신의 상식과 이해, 그리고 인륜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히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던 이유요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지닌 믿음의 핵심입니다. 내가 아들을 죽인다 할지라도 나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아들을 다시 살리시리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주저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그의 믿음은 아브라함 자신의 과거 경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자와 다름없는 자신의 몸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인 이삭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11, 12절).

아브라함의 이러한 경험은 자신의 아들 이삭이 죽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주었으며(Moxnes, Teodorico) 그 확신으로 인해 자신의 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  

(창 22: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만약 아브라함이 이삭이 다시 살 것을 믿지 못하였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Bruce, Morris). 
하나님의 이와 같은 역사는 이스라엘의 여정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향을 바꿔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진을 쳤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로와 그의 신하들은 마음이 변하여 이스라엘을 놓아주지 않으려고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는 곧 병거들을 갖추고 그의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바로는 특별 병거 육백 승과 애굽의 모든 병거와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추격했습니다.   바로의 병거대와 무장 군대가 가까워 오자 두려움이 장막을 뒤덮었습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도우심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과거를 너무나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며 악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모세는 백성에게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굳게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싸워 그들을 구출할 것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키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바다를 육지처럼 걸을 것과 애굽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밀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메뚜기를 날렸듯이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이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바닷물은 완전히 갈라졌습니다. 바닷물이 마른 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물은 벽이 되어 멈춰 섰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지로 바다를 건넜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새벽에 이스라엘 자손을 추격하여 마른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자 하나님에서 그들의 진전을 지연시켰고 이로 인해 그들은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병거 바퀴가 벗겨지고 달리기가 어렵게 되자, 애굽 군대는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심을 알고 도망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어 애굽인들 위로 물이 흐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손을 내어 밀자마자 물은 유유히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인들은 마병이고 병거고 군대고 하나 없이 물에 잠기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극한 환란과 역경, 시험을 만난다 해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우리를 위해 선한 뜻을 지니고 계시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께서 온 우주의 창조주가 되시며 주관자가 되시는 전능하신 분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설령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다가 죽는다 해도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사망의 권세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순종의 결과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는 인정과 함께 복된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창 22:16-18)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나님께 나아가되  믿음으로 순종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