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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올바른 그리스도인 (시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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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그리스도인 (시 15:1~5) 
 
 
자고새라는 새가 있습니다. 꿩과에 속하며 메추라기와 비슷합니다. 이 새의 특징은 남의 알을 자기 알처럼 품어서 부화시킨다는 점입니다. 20여 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정성을 다해서 남의 알을 부화시킵니다. 
새끼가 알에서 깬 후에도 지극정성으로 돌봐줍니다. 먹이를 물어다 주고 포식자들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그런데 새끼들이 자라면 자기 어미가 아닌 줄 알고서는 매정하게 그 품을 떠나버립니다. 헛수고를 한 것입니다. 참 어리석은 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새가 팔레스틴 지역에 많이 살고 있어서 성경에서도 여러 곳에 비유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렘 17:11입니다.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자고새와 같은 어리석은 인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큰 수고를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이 헛수고로 끝나버리고 마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도 이 자고새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그 모든 수고가 헛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독교사상을 집대성한 교부 어거스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자신이 대단한 신앙의 경지에 들어가 있는 줄로 자부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분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에 들어서자 입구에서 천사가 물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어거스틴이고 그리스도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다가와서 어거스틴을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야 네 머리 속에는 철학 사상만 가득 차있어”라고 호통을 치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꿈에서 깼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객관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천사의 말처럼 자신은 머리로만 예수를 믿고 있더랍니다. 다시 회개하고 철저하게 신앙생활에 정진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 자부하지만 사실은 그리스도인이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자고새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의 본문 시 15편도 이와 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앞에 출입을 통제하는 문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통상 제사장들인 성전 문지기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 23장과 같은 율법에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의 조건이 명시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성전 문지기에 의해 제재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왕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나름대로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왔지만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실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는 하지만 진정한 그리스도인일까? 혹시 자고새처럼 혼자 애를 쓰지만 헛되지는 않을까?

오늘 본문은 성전에 들어가서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자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생각하며 사는 사람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러 나오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입니다. “과연 제가 성전에 들어가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요?”

이 말씀은 예배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물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과연 나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인가? 과연 하나님께서 내가 드리는 예배를 받으실까?” 이 말은 다시 말하면 늘 생각하면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늘 고민하면서 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사회를 바라볼 때 한 가지 걱정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며 살려고 하기 보다는 느끼는 대로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서 살기 보다는 감정에 충실하게 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 우리 사회를 가장 시끄럽게 했던 사건 가운데 하나가 광우병 파동입니다. 마치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곧 광우병이 걸리는 것처럼,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하면 우리 국민의 건강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촛불은 열풍처럼 지나가고 미국산 소고기는 수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용합니다. 광우병이 걸렸다는 이야기도 없고 미국산 소고기가 수입돼서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촛불을 들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반대했던 사람들조차 아무런 거리낌 없이 미국산 소고기를 사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산 소고기가 광우병에 노출되어 위험성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이 당시 우리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해서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지금도 미국산 소고기를 사 먹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사람과 달리 깊이 생각하지 않고 분위기에 휩쓸려서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적 느낌에 따라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학명으로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합니다. “생각하는 인간”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생각할 줄 안다는 것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만일 우리가 생각 없이 산다면 인간다운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저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나는 발도 없고 팔도 없고 머리도 없는 인간은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하지 않은 인간은 생각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직 신음하면서 추구하는 자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나아가 고뇌하며 사는 인간이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무려 300여 곳에서 “생각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 곳을 찾는다면 시 94:8입니다. “백성 중의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가 언제나 지혜로울까?”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생각 없이 시류에 떠밀려 살아서는 안됩니다. 느낌대로 감정에 따라 살아서는 더욱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사탄이 놓은 덧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에 근거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라고 묻고 또 답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생각하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래서 고뇌라고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길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뜻을 세우고 사는 사람

본문 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성전에 들어와 예배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포괄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정직하게 행하는 것입니다. 둘은 공의를 일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은 마음에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세 가지 동사가 시제상 모두 분사형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세 가지 행동이 모두 일시적 행동이 아니라 지속적인 행동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렇게 살기로 뜻을 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 모두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글자 그대로 이룰 성(成)과 공들일 공(功) 즉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을 이루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전에서는 "뜻하고 목적한 바를 이루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니까 "성공이라는 것은 자기가 바라고 목표한 것을 위해 공을 들여 노력하다 이루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한 청년이 왕을 찾아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너라. 단, 포도주를 엎지르면 네 목을 베리라."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습니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거지와 장사꾼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새어 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무 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성공입니다. 성공하려면 우선 뜻을 세워야 합니다.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 한 바퀴를 돌겠다는 뜻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한 눈 팔지 말고 그 뜻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합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뜻을 세우고 살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을 들 수 있습니다. 단 1:8을 보면 “뜻을 정하여”라고 했습니다. 그가 분명한 뜻을 세웠다는 말입니다. 

다니엘은 패전국의 포로로서 승전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로로 끌려갔지만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잃지 않겠다고 뜻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서 그 뜻을 지켜갔습니다. 

그가 포로 생활하면서 믿음을 지키기 가장 어려웠던 점이 식생활이었습니다. 우상 신전에 바쳐졌던 음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다니엘이 볼 때 이것은 곧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왕이 내린 음식을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죽기를 각오한 일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 뜻을 지켰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다니엘은 성공한 신앙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어떤 뜻이 세워져 있습니까? 특히 신앙적으로 어떤 뜻을 세우고 사십니까?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뜻을 세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3. 실천하며 사는 사람

오늘 본문 3-5절을 살펴보면 성전에 들어갈 구체적인 자격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의 2절이 포괄적인 자격을 말하고 있다면 이 부분에서는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자격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선 3절을 보면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웃을 비난이나 조소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이웃의 불행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4절을 보면 두 집단에 대한 태도에 관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경멸하는 자들과 단절하며 반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과 깊은 교제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금전관계에 대한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고리대금을 하지 말며 뇌물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실천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저는 오늘 한국의 기독교를 보면서 이 시대에 목회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기독교는 극심한 박해를 받은 적은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박해를 받지 않으면서 조롱 받고 비난을 받은 적은 극히 드뭅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한국 기독교가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간디의 날카로운 기독교 비판이 떠오릅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는 싫다” 

간디가 이렇게 말하게 됐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영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당시 영국은 유색인종에 대한 심한 인종차별이 있었습니다. 간디는 우연히 성경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도 간디를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르쳐 달라고 예수를 잘 믿도록 도와달라고 이 교회 저 교회를 다니면 문을 두드렸지만 그가 유색인종이라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신앙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죽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습니다.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오늘의 한국인들도 간디와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는 좋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싫다!” 우리가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위대한 신앙인들은 한결같이 실천의 사람들입니다. 구약을 보면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1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방주를 지으며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나이 75살에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신약을 보면 베드로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난 그날 바로 예수님을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바울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예수님 주신 사명을 향해 평생을 복음 전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어느 가게 주인이 동네 사람들에게 가까운 교회의 새로 부임해 온 목사님 칭찬을 하더랍니다. 특히 그분 설교를 참 잘한다고 하더랍니다. 한 번은 손님이 물었답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지난 주에는 어떤 설교를 했습니까?” 주인이 대답하기를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한 번도 그 목사님 설교를 들어본 일이 없습니다.” 손님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목사님이 설교 잘하는 줄 압니까?” 주인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이 그 목사님 오신 후에 외상값을 잘 갚아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머리로 깨닫고 끝나는 그리스도인이어서는 안됩니다. 마음으로 결심하고 끝나는 그리스도인이어서도 안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성찰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인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우선 생각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뜻을 세우고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적은 것 하나라도 실천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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