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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 (대상 1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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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 (대상 12:1~37)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었습니다. 이때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의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 이백 명이 다윗에게로 왔습니다. 
물론 잇사갈 자손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의 전 지파로부터 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라는 사전적 의미는 제자리에 옳게 들어서서 잘 어울리는 상태, 혹은 당연히 옳은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역사의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보존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자신의 강력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사울의 시대는 가고 장차 다윗의 시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3장 14절에 『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 하고 』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집권하고 있는 사울 시대의 종말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절에 『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그를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 너는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 아들 중에서 한 왕을 예선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들은 침몰하는 사울 왕조를 볼 줄 아는가하면 부상하는 다윗 왕조를 예견하는 민감한 영적 통찰력을 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이 세상 역사의 흥망성쇠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계시의존사색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두목들입니다. 즉 통솔력이 있는 지도자격의 인물들입니다. 
역대상 11장 2절에 『 전일 곧 사울이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한 자가 왕이시었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들은 옛날 사무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다윗이 사울의 뒤를 이어 왕이 되겠고 이스라엘을 치리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렇게 계시의존 신앙으로 마땅히 행할 것을 알고 

Ⅰ. 다윗에게로 모이는 결속운동을 감행한 자들입니다. 

본문 12장 1절에 『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인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돕는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시글락은 가나안 정복 후에 시므온 족속에게 할당된 땅이었습니다. B.C 12세기 초에 블레셋이 점령한 이후부터 다윗 시대 전까지 블레셋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당시 이곳은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의 지배아래 있었습니다. 아기스는 이 땅을 다윗의 거처로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1년 4개월을 지낸 후에 헤브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1) 갓 지파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14절에 『 이 갓 자손이 군대 장관이 되어 그 작은 자는 일백인을 관할하고 그 큰 자는 일천인을 관할하더니 』라고 했습니다.

2) 므낫세 지파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20절에 『 …므낫세 지파에서 그에게로 돌아온 자는 아드나와 요사밧과 여디아엘과 미가엘과 요사밧과 엘리후와 실르대니 다 므낫세의 천부장이라 』고 했습니다.

3) 유다 자손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24절에 『 유다 자손 중에서 방패와 창을 들고 싸움을 예비한 자가 육천 팔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4) 시므온 자손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25절에 『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칠천 일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5) 레위 자손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26절에 『 레위 자손 중에서 사천 육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6)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한 자들이 왔습니다. 
본문 12장 27절에 『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와 그와 함께 한 자가 삼천 칠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7) 사독과 그의 족속들이 왔습니다. 
본문 12장 28절에 『 또 젊은 용사 사독과 그 족속의 장관이 이십 이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8) 베냐민 자손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29절에 『 베냐민 자손 곧 사울의 동족은 아직도 태반이나 사울의 집을 좇으나 그 중에서 나아온 자가 삼천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9)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0절에 『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본 족속의 유명한 큰 용사가 이만 팔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10)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1절에 『 므낫세 반 지파 중에 녹명된 자로서 와서 다윗을 세워 왕을 삼으려 하는 자가 일만 팔천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11) 잇사갈 자손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2절에 『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명이니… 』라고 했습니다.

12) 스불론 지파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3절에 『 스불론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13) 납달리 지파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4절에 『 납달리 중에서 장관 일천명과 방패와 창을 가지고 함께 한 자가 삼만 칠천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14) 단 지파 중에서 왔습니다. 
분문 12장 35절에 『 단 자손 중에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이만 팔천 육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15) 아셀 지파 중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6절에 『 아셀 중에서 능히 진에 나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사만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16) 르우벤 자손, 갓 자손, 므낫세 반 지파에서 왔습니다.
본문 12장 37절에 『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십 이만명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이들은 마땅히 행할 것을 알고 

Ⅱ.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감에 충실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역사의 구경꾼들이 아닙니다. 분명한 역사의식이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울 왕조의 실패한 역사를 복고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온 역사적인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해야 될 것을 알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결단력 있는 자들입니다. 

1) 다윗을 도우려고 모였습니다. 
본문 12장 1절에 『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인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그에게 와서 싸움을 돕는 용사 중에 든 자가 있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본문 12장 21절에 『 이 무리가 다윗을 도와 적당을 쳤으니 저희는 다 큰 용사요 군대 장관이 됨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다윗에게 돌아온 므낫세 용사들입니다. 여기 『 적당 』은 아말렉 족속들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없는 동안에 부녀자들을 약탈했습니다. 
므낫세 용사들이 다윗을 도와 아말렉 족속을 물리치고 다윗의 두 아내와 모든 것을 찾아왔습니다(삼상 30:16-19, 대상 12:16-21). 

본문 12장 22절에 『 그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다윗에게로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이 모임은 지역을 초월한 모임입니다. 이들은 다윗을 돕고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달려온 자들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의 이해관계나 명예나 가문의 이기가 작용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사울의 동족들까지 있었습니다. 

2) 각자의 달란트를 활용했습니다. 
본문 12장 2절에 『 저희는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살도 발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고 했습니다.
활을 쏘는 자와 물매를 잘 던지는 자들이 왔습니다. 
본문 12장 8절에 『 갓 사람 중에서 거친 땅 견고한 곳에 이르러 다윗에게 돌아온 자가 있었으니 다 용사요 싸움에 익숙하여 방패와 창을 능히 쓰는 자라 그 얼굴은 사자 같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 같으니 』라고 했습니다.
방패와 창을 능히 쓸 줄 아는 자들이 왔습니다. 그 얼굴이 사자처럼 위엄이 있는 자들이 왔습니다. 그 발이 산의 사슴같이 빠른 자들이 왔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전투 경험이 있는 자들입니다. 

처음에 다윗을 따랐던 가난한 자나 소외되고 의지할 데 없는 약한 자들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맨 손으로 오지 아니하고 자기들의 장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가 가진 장기(달란트)를 다윗을 위하여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위해(for Christ) 살 듯이 다윗을 위한 삶, 다윗을 향한 삶을 살기 원하는 자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결코 사회에서 버림받은 인생 낙오자들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보다 앞선 선진사고를 가진 자들이 분명합니다. 

3) 모험적인 일을 감행했습니다. 
본문 12장 15절에 『 정월에 요단강물이 모든 언덕에 넘칠 때에 이 무리가 강물을 건너서 골짜기에 있는 모든 자로 동서로 도망하게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저들은 요단강 물이 만수가 되어서 넘칠 때 강을 건넜습니다. 오는 도중에 대적을 만났으나 물리치고 온 자들입니다. 당시 건기에는 요단강을 쉽게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기이기는 하나 봄에는 레바논 산에 눈이 녹으면서 요단강물이 범람합니다. 갓 지파 사람들은 요단강을 도하하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왔습니다. 
다윗을 향한 이들의 사명감이 주는 영웅적 행위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사울 왕조를 따르는 자들이 갓 지파 용사들의 길을 막았을 때 사울의 추종자들을 물리치고 왔습니다. 말하자면 자연적인 방해와 인간적인 방해를 무릅쓰고 다윗에게로 나온 것입니다. 

4) 역전의 용사들(두목)이 솔선수범했습니다. 
본문 12장 25절에 『 시므온 자손 중에서 싸움하는 큰 용사가 칠천 일백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사울의 동족 중에서도 나아왔습니다(12:29). 에브라임 자손 중에서 유명한 큰 용사가 왔습니다(12:30). 
본문 12장 33절에 『 스불론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잘 무장된 특수요원격인 군대를 말합니다. 
납달리 중에는 창과 방패를 가진 자들이 왔습니다(12:34). 본문 12장 36절에 『 아셀 중에서 능히 진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 하는 자가 사만명이요 』라고 했습니다. 
본문 12장 37절에 『 요단 저편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 중에서 모든 군기를 가지고 능히 싸우는 자가 십 이만명이었더라 』고 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전국 각 지파에서 용사들이 시글락에 숨어 있는 다윗에게로 모였습니다. 이들이 시세에 마땅히 행할 것을 알게 된 것은 

5) 두 마음을 품지 아니했습니다. 
본문 12장 33절에 『 … 모든 군기를 가지고 항오를 정제히 하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 』라고 했습니다. 

Ⅲ. 성신에 감동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장 18절에 『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 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지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 』고 했습니다.
여기 『 감동하시니 』, 라베쉬( )는 '옷을 입히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성신이 아마새의 전인격을 감싸고 전적으로 자신의 영향아래 포로로 두었다는 말입니다. 
아마새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시고 그를 왕 삼으셨다는 것을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몸이었기 때문에 베냐민 지파 사람들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아마새의 감동적인 시적 고백으로 말미암아 저들을 편견 없이 수용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아마새를 군대장관으로 삼았습니다. 성신의 감동을 받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신이 이들을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말씀하신 그것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이 친히 이들을 다윗에게로 모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거부하거나 지연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라고 했습니다. 성신의 역사(work)가 아니고는 시세를 알 수가 없습니다. 더욱이 성신의 역사(work)가 아니고는 마땅히 행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우리 가정에, 우리 가문에 두목들입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시세는 사울의 시대는 가고 다윗 시대의 부상입니다. 그리고 마땅히 행할 일은 다윗에게로의 결속운동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하는 시세는 가견적 시세가 있고 비 가견적 시세가 있습니다. 전자는 말씀의 징조로 나타나는 역사적인 시세입니다. 후자는 성령께서 종말의 징조를 성경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영적 시세입니다. 역사적인 시세는 성경에 나타난 말세에 일어날 징조들입니다. 영적 시세는 이 세상은 마지막 한 날을 향하여 가고 있고 새 하늘 새 땅이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시세를 아는 방법은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방법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 열조들은 그 시대의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늘의 시세를 안다고 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듣는 것은 매우 중대합니다. 눈이 나쁘거나 육신의 불편함도 괜찮은데 듣지 못하면 큰일입니다. 불교는 인간이 스스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자는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안다고 합니다. 희랍인들은 말하기를 인간이 진리를 타고났기 때문에 이렇게 저렇게 믿으라고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그렇게 가르치지 아니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외부로부터 듣지 못하면 완전히 진리를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종교의 특색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타율주의 종교라고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세를 압니다. 설교를 듣는 가운데 시세를 압니다. 시세를 알기 때문에 설교를 듣게 됩니다. 저 이스라엘의 각 지파 용사들이 악신에 들려 있는 사울의 때가 가고 있는 것을 알고 사울을 피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는 다윗을 중심하고 모인 것처럼 우리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중심하고 모여야 합니다. 

이 세상은 힘이 없는 세상입니다. 힘이 없으면서 힘이 있어 보이는 것은 우리 편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편에서 세상의 힘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가고 있다는 실상을 아는 신자는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믿고 나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나오는 그 자체부터가 모험적입니다. 눈으로 보기에는 악신에 들려 미쳐있는 사울이 얼마나 화려하고 의기양양했습니까? 그러나 다윗에게로 왕권이 옮겨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한사코 다윗에게로 나아왔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우리를 자극하고 희한한 것들로 우리를 유혹합니까? 실로 과학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는 우리를 묶어 놓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종말 신앙을 가진 성도는 반드시 살아남을 생의 애착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각양 달란트를 귀하게 여기고 묻어두지 아니하고 선용합니다. 축복스럽게도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영적인 분별력과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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