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단 11:2~20)

  • 잡초 잡초
  • 328
  • 0

첨부 1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단 11:2~20)


'Back to the Future'(미래로의 귀환)는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혹은 미래로 시공간의 세계를 여행하는 스토리로 전개되는 유명한 공상과학영화입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인 마티는 우연히 타임머신을 타고 자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몇 십 년 전의 과거로 가게 됩니다.
하지만 거기 도착한 후에 다시 현재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 타임머신을 다시 작동시킬 수 있어야 했는데, 그가 찾아갔던 과거의 그 시점에는 거기에 필요한 엄청난 고압의 전기를 얻을 길이 전무했습니다.
바로 그때 마티는 자기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오기 직전에 자기 여자 친구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았던 광고 전단을 보다가 기가 막히는 착안을 합니다.

그 종이의 뒷면에 바로 그 마을에 있던 큰 시계탑에 과거 어느 날 몇 시 몇 분에 벼락이 떨어져서 그것을 망가뜨렸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는데, 그 시각이 지금 과거로 돌아온 마티에게는 아직 하루 뒤의 미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티는 그 괴상한 과학자의 도움을 받아 그 벼락이 떨어지게 되어 있던 시계탑에 전깃줄을 연결하여 벼락이 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 정확하게 자기의 타임머신에 그 고압의 전류가 흐르도록 함으로써 마침내 현재의 세계로 되돌아오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허무맹랑한 픽션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만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알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신나고 멋있는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허구의 영화 스토리와는 달리 그런 초과학적인 체험을 실제로 해 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다니엘서의 말씀을 읽고 바로 그 예언 그대로 자기 주변의 역사가 조금도 틀림없이 하나하나 이루어져 가는 것을 목도했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림하시기 이전 몇 백 년에 걸쳐 유대인들은 급변하는 주변 정세에 휩쓸려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다니엘 이후의 미래에 벌어지게 될 역사의 사건들을 지극히 상세하고도 정확하게 일찍부터 예언하고 있는 이 말씀을 읽고 깨닫고 있던 구약의 성도들은, 바로 자기 나라 주위의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역사가 이 다니엘서의 예언 그대로 하나도 틀림없이 진행되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정확하게 미래의 사실을 우리에게 미리 예언해 줌으로써, 당신의 말씀이 정확무오함을 다시 한 번 증명해 주시는 동시에 또한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의 혼란한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의심 없이 믿고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본문 2절 상반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셨습니다.
앞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은총을 크게 받은 자'라고 부르시면서 그에게 "진리의 글에 기록된 것" 즉 하나님의 행하시는 역사에 관한 참된 계시를 들려주셨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참된 것', 즉 미래에 유다 민족을 에워싸고 있는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벌어질 세상 역사를 훨씬 더 자세하게 조목조목 그에게 예언해 주고 계시는 내용입니다.
그것은 약간의 오차도 없이 오로지 기록된 그대로 정확히 이루어질 예언인 까닭에 "참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6월은 우리 기독신자들이 특히 조국과 민족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신 과거의 역사를 이 '기록된 참된 예언'을 통하여 깊이 새겨보면서 또한 미래의 소망을 위하여 더욱 간절히 기도드리는 달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은 세상 역사에 대하여 어떤 '참된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까?

1. 성경의 참된 예언은 세속적인 강대국들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멸망할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것이 본문 2절 이하 4절에 기록된 내용인데, 거기 예언하기를 "2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의 네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 것이며 3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4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 나라가 뽑혀서 이 외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갈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이 이 묵시의 예언을 받고 있을 당시 세계 역사의 패권을 쥐고 흔들고 있던 바사제국과 그 뒤를 잇게 될 헬라제국의 미래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우선 바사제국에는 "세 왕"들이 일어난 후에 "넷째" 왕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사제국이 약 2백 년의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특별히 돋보였던 몇 왕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심히 강성했던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여기서 말하는 "넷째 왕"입니다.
그는 여기 기록된 대로 "심히 부요한" 왕이 되었는데, 자신의 그 "부요함"과 "강함"을 과신하여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치게"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4년 동안 연병력 약 2백 5십 만을 동원시켜 헬라국 즉 그리스를 침공했었는데, 결국에는 저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에서 아테네의 해군에게 대패했고 그것이 바로 바사제국이 쇠퇴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최전성기라고 자신만만했던 바로 그때 아이러니하게도 바사제국의 멸망이 순식간에 찾아들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바사제국 뒤를 이은 헬라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차 일어날 "한 능력 있는 왕"이란 바로 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는 그리스 반도 북쪽에 있던 마케도니아의 왕이었는데 곧 그리스를 통일함으로써 바사제국을 종결시켰을 뿐 아니라 계속 동쪽으로 침공하여 결국 인도에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겨우 삼십대 초반에 그는 그야말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는" 대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멸망도 "그가 강성할 때에" 즉 한창 세계를 호령하며 위세를 떨치던 바로 그때 순식간에 찾아왔습니다.
그 젊은 나이에 그는 갑자기 병사(病死)하게 되었고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알렉산더 사후에 그의 제국은 그 수하에 있던 유력한 네 명의 장군들, 즉 본문에 "이 외의 사람들"이라고 가리키고 있는 이들이 "사방으로" 즉 넷으로 분할해서 차지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본문에서 "그 자손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또 자기가 주장하던 권세대로도 되지 아니하리니"라는 예언 그대로, 알렉산더의 아들은 아무 영토도 권세도 물려받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통하여 내려 주신 예언의 말씀은 이처럼 정확하기 그지없이 세계사 속에서 완벽하게 성취되어 갔습니다.
그 강성했던 바사제국이, 그것도 크세르크세스 1세의 통치 하에서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고 있던 때, 그 어떤 사람의 눈에도 그런 대제국의 멸망이란 상상조차 되지 않던 바로 그때에, 하나님께서 미리 예언해 주신 그대로 급전직하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 바사제국을 누르고 일어선 신흥 헬라제국 역시, 그 젊고도 천재적 전략전술가인 알렉산더 치하에서 바사제국보다 훨씬 더 넓은 영토를 점령해 가면서 그야말로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했던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그대로 어처구니없이 사분오열되고 순식간에 끝장을 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이처럼 사람들이 전혀 예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아니 사람이 예상할 수 있던 것과는 전혀 딴판으로 미래를 예언했을 뿐 아니라, 그 예언 그대로 일점일획 틀림없이 세계사에서 성취되고야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씀을 대할 때 우리 기독신자들은 이 기록된 성경 말씀의 정확무오함과 절대적 권위를 다시 한 번 절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나라들이 한때 그 영광과 권세를 자랑하면서 끝없이 번영할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되면 전혀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던 길로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되는 것 역시 재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주변에 있는 강대국들을 보면서 그런 나라들이 현대사의 주인공들이며 내 인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주권자인 것처럼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소련만 해도 제가 학교에 다닐 시절에는 그처럼 미국과 대적하는 위협적인 강대국의 종말을 제 생애가 끝나기 전에 보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속사의 흐름이 이 극동에 있는 대한민국에까지 이르고 계속해서 서진(西進)해야 할 시점에 이르자 그 최대의 방해물인 이 '철의 장막'을 하나님께서는 하루아침에 스스로 무너지게 만드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 제2위를 자랑하는 일본의 경제력이 우리나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미국의 필적할 자 없는 군사력이 전 세계를 당분간 평화롭게 만들 것이라고 지레짐작하는 것 역시 실상은 아무도 보장 못할 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록된 이 예언의 말씀은 아무리 신흥제국이고 아무리 강대국이고 아무리 성장 일로에 있는 나라이고 아무리 지금 당장은 세계무대에서 당할 자 없는 주역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그들은 결코 세상 역사의 진짜 주인공이 아닌 것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세상의 모든 나라들은 다 하나님의 손에 잡혀 있는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옛날 제가 어릴 때에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 일본은 일어난다 조선아 조심해라."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우리 기독신자들은 미국이나 러시아나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나라들 그 자체를 보지 말고 그런 강대국조차 당신의 절대주권으로 붙잡고서 움직이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만 합니다.
세상나라들은 아무리 크고 강하게 보일지라도 결국 멸망할 날이 오고야 말지만, 오직 하나님께서만은 이 모든 세상나라들과 민족들 위에 좌정하고 계시는 영원한 통치자이심을 늘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경의 참된 예언은 역사의 혼란 중에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안전보장 되는 것을 확실히 보여 줍니다. 

헬라제국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여전히 두 나라 싸움의 틈바구니에 끼어 양쪽으로 얻어맞으며 살게 되겠지만, 그것 역시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주권 하에 진행될 일이라는 사실을 이어지는 본문이 증거해 주었습니다.
5절 이하 20절까지의 내용은 그 헬라 제국의 뒤를 이어 넷으로 분열된 나라들 중에서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게 된 두 나라에 대하여 자세히 예언해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 두 나라를 가리켜 본문에서는 "남방의 왕"과 "북방의 왕"이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바로 알렉산더 대왕 사후에 남쪽의 애굽을 차지했던 프톨레미 왕조와 북쪽의 시리아를 차지했던 셀류쿠스 왕조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들 두 왕조 사이에서는 끊임없는 대립과 전쟁이 잇달아 일어났었습니다. 

5절로부터 9절의 말씀은 특히 남방의 왕이 주도권을 가지고 북방을 대항하고 있던 시기의 역사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바사제국 때에와 헬라제국 때에도 그랬으며 나중에 로마제국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이 제국들의 남쪽 경계는 항상 애굽에서 끝났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국의 치하에서 "남방"하면 바로 애굽으로 통했던 것이었습니다.
우선 5절에 보면 "5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 그 권세가 심히 클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즉 처음에는 애굽의 프톨레미 1세가 세력이 강했지만, 조금 후에는 "그 군들 중에 하나" 즉 프톨레미 수하에 있던 알렉산더의 장군 중 하나였던 셀류쿠스가 독립하여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새 왕국을 세웠으며, 시간이 흘러갈수록 그 북방 왕국의 세력이 더욱 강해져 갈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6절에 보면 "6몇 해 후에 그들이 서로 맹약하리니 곧 남방 왕의 딸이 북방 왕에게 나아가서 화친하리라 그러나 이 공주의 힘이 쇠하고 그 왕은 서지도 못하며 권세가 없어질 뿐 아니라 이 공주와 그를 데리고 온 자와 그를 낳은 자와 그 때에 도와주던 자가 다 버림을 당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남방의 왕 프톨레미 2세가 북방 왕 안티오쿠스 1세와 화친하기 위하여 자기 딸 베레니스를 정략결혼의 희생물로 내어 주었던 사실을 예언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공주는 나중에 오히려 안티오쿠스의 전처에게 살해당했고 그녀가 안티오쿠스 1세에게서 낳았던 왕자 역시 죽임을 당했으며, 그들 편에 섰던 자들 모두가 같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 그 왕은 서지 못한다"는 말이 바로 그 공주의 아들이 북방 왕국의 왕좌를 물려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공주와 왕자 뿐 아니라 "그를 낳은 자" 즉 친정아버지까지 철저히 버림을 당한, 즉 정략결혼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돈 쪽으로부터 철저히 배신을 당한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7절 이하의 말씀은 이런 사건으로 인하여 남방 왕조와 북방 왕조 간에 서로가 복수에 복수를 거듭하는 끝없는 전쟁이 시작됨을 보여 줍니다.
7절로 9절에 보면 "7그러나 이 공주의 본족에서 난 자 중에 하나가 그의 위를 이어 북방 왕의 군대를 치러 와서 그의 성에 들어가서 그들을 쳐서 이기고 8그 신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과 그 은과 금의 아름다운 기구를 다 노략하여 애굽으로 가져갈 것이요 몇 해 동안은 그가 북방 왕을 치지 아니하리라 9북방 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가리라"고 했습니다.
"공주의 본족에게서 난 자 중 하나" 즉 베레니스 공주의 남동생인 프톨레미 3세가 남방 왕조의 왕이 된 후에 자기 누나의 복수를 하기 위해 북방 왕국 시리아로 침공해 갔으며 그 결과 대승을 거두고 많은 전리품들을 거두어 갔습니다.
북방 왕은 그 복수로 남방 왕조를 침략해 왔지만 실패로 돌아갔으며 바로 9절에 기록된 예언 그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10절 이하 20절의 말씀은 그 이후에 점점 더 강대해져 갔던 북방 왕조를 중심으로 한 온갖 전쟁들을 예언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사, 헬라,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제국들이 동서로는 많이 확장되었지만 북쪽으로는 역시 시리아가 그 한계점이었습니다.
알메니안과 코카서스 산맥이라는 천연적인 지형 방해물로 인하여 그 이상은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며, 그래서 당시에 '남방'하면 애굽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방"하면 바로 시리아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10절로부터 16절의 말씀에 예언하기를 "10그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 그가 또 와서 남방 왕의 견고한 성까지 칠 것이요 11남방 왕은 크게 노하여 나와서 북방 왕과 싸울 것이라 북방 왕이 큰 무리를 일으킬 것이나 그 무리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리라 12그가 큰 무리를 사로잡은 후에 그 마음이 스스로 높아져서 수만 명을 엎드러뜨릴 것이나 그 세력은 더하지 못할 것이요 13북방 왕은 돌아가서 다시 대군을 전보다 더 많이 준비하였다가 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거느리고 오리라 14그 때에 여러 사람이 일어나서 남방 왕을 칠 것이요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 15이에 북방 왕은 와서 토성을 쌓고 견고한 성읍을 취할 것이요 남방 군대는 그를 당할 수 없으며 또 그 택한 군대라도 그를 당할 힘이 없을 것이므로 16오직 와서 치는 자가 임의로 행하리니 능히 그 앞에 설 사람이 없겠고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만, 그 이후 남방 왕조와 북방 왕조 사이에는 서로 밀고 당기는 전쟁이 여러 차례 벌어졌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 전쟁들이 그 상세한 전모에 이르기까지 다 이 본문에 예언된 그대로 벌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남방 왕이 한 번 승전의 도취경에 사로잡혀 다음 전쟁에서는 지게 되는 것이라든지, 북방 왕이 패전 이후 그야말로 이를 갈며 보복을 꾀하면서 대군을 양성하고 충분한 보급을 준비한 것 등, 모든 것들이 정확하게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본문 14절 하반절에 "네 백성 중에서도 강포한 자가 스스로 높아져서 이상을 이루려 할 것이나 그들이 도리어 넘어지리라"고 예언한 부분이 있는데, 이것은 유대인들 중에서 북방 왕의 편을 들어 애굽을 공격했던 무리들을 가리킵니다.
이 "강포한 자" 즉 폭력을 수단으로 삼는 과격한 혁명주의자들은 나름대로 무슨 "이상", 즉 계시를 받고 이 국제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긴 전쟁 끝에 결국 북방의 왕조는 "영화로운 땅" 즉 유다 지역의 패권을 완전히 쥐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지는 17절 말씀에 보면 "17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 나라를 패망케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북방 왕조의 안티오쿠스 3세가 그의 아름다운 딸 클레오파트라를 남방 왕조 프톨레미 5세에게 정략적으로 결혼시킴으로써 애굽에 대한 자기 영향력을 확장하고자 했던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 그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게 "무익한" 것이 되었다고 했는데, 역사적으로 클레오파트라는 오히려 자기 남편 프톨레미 5세의 편이 되어 친정아버지와 대항함으로써 이 예언 역시 정확하게 실현되었습니다. 

끝으로 18절부터 20절의 말씀에 기록하기를 "18그 후에 그가 얼굴을 섬들로 돌이켜 많이 취할 것이나 한 대장이 있어서 그의 보이는 수욕을 씻고 그 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19그가 드디어 그 얼굴을 돌이켜 자기 땅 산성들로 향할 것이나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아니하리라 20그 위를 이을 자가 토색하는 자로 그 나라의 아름다운 곳으로 두루 다니게 할 것이나 그는 분노함이나 싸움이 없이 몇 날이 못 되어 망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딸에게 배신당한 북방 왕 안티오쿠스 3세가 방향을 돌려 소아시아 지중해 연안 지역을 공격했는데, 한 대장 즉 로마 장군 루시우스 스키피오에 의하여 패전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예언입니다.
그 이후 그는 "자기 땅" 즉 자기 영역 내에서 노략하다가 결국 "거쳐 넘어지고 다시는 보이지 않게" 즉 죽게 되었습니다.
그 뒤를 이은 셀류쿠스 4세는 "토색하는 자" 즉 세금 징수원을 각 곳에 파송하여 부를 채우고자 했지만 "몇 날 못 되어"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튼 이처럼 남조 프톨레미 왕조와 북조 셀류쿠스 왕조 사이에서 벌어질 일들이 이처럼 상세하게 다니엘을 통하여 예언되었고, 그 예언들이 하나도 틀림없이 정확하게 성취된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알렉산더 이후 그의 제국이 네 개의 나라들로 나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도 유독 이 두 왕조에 대해서만 이처럼 상세하게 예언해 주신 이유는, 이들이 바로 유다 민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나라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두 왕조가 세력다툼과 복수전을 주고받는 동안 그 사이에 있던 유다는 약소민족의 서러움을 고스란히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 예언의 말씀을 그들에게 미리 선포해 주심으로써 당신의 택자들로 하여금 그 와중에서도 결코 소망을 잃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기억하고 있던 자'들은, 그들의 조국 위아래에서 벌어지는 그 강대국들의 전쟁과 흥망의 소용돌이가 오로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정확하게 벌어지고 있는 역사라는 사실을 '깨닫고 믿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신앙인들은 그처럼 엄청난 주변 역사의 혼란과 환난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더욱 확신하면서 조금도 불안해하거나 염려하지 않고 끝까지 선민의 소망을 지킬 수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그와 똑같은 위로를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주고 계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신자와 교회가 때로는 세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무 대항할 능력 없는 희생양처럼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나치제국 앞에, 일본제국 앞에 참된 기독신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시절을 겪었습니다.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공산독재정권의 탄압 앞에 혹은 이슬람교 국가의 박해 아래에 있는 참된 교회들은 그야말로 발붙일 곳 없이 '암혈과 토굴'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 역시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완벽하게 주장하고 계시는 섭리의 과정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명백히 가르쳐 줍니다.
세속 권력과 무신론 세력의 틈에 끼어서 꼼짝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도 결코 '기독교가 지고 있는 때'는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정조차 다 하나님의 원래의 작전계획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교회의 최후승리를 향하여 한걸음 더 나아가고 있는 필연적인 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설혹 기독신자가 박해와 죽임을 당하고 교회가 전혀 무력한 존재처럼 보이는 최악의 때를 맞이한다 할지라도 그것조차 전적으로 하나님의 완벽하신 주권 하에 있는 것임을 확신함으로써, 끝까지 '세상을 이기면서 죽도록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강해 보이는 나라들, 마치 이 역사의 주인공처럼 보이는 나라들을 홀로 주장하시고 그 흥망성쇠를 한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말씀이 이것을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을진대 하물며 내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주권이야 두말할 필요조차 있겠습니까?
우리의 생은 그야말로 '사나 죽으나' 오로지 하나님의 장중에 붙잡혀 있을 뿐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일견 세상나라의 권력과 우상종교의 압제 틈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도 실제로는 모든 주도권을 홀로 다 쥐고서 조종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말씀이 이것을 명백히 증거해 주고 있을진대 하물며 내 한 사람의 인생에 무슨 구름이 약간 끼고 풍랑이 좀 닥친다 해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지 않는다는 의심에 빠져서야 되겠습니까?
아무리 세상의 다른 세력들이 왕성해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 하나님의 지대한 관심사는 오히려 그 틈에 끼어 숨도 제대로 못 쉴 것처럼 보이는 당신의 택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집중되어 있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성경이 우리로 하여금 이런 신앙을 지키게 만들어 줍니다.
이 성경 말씀이야말로 오늘 우리 신자들이 손에 들고 있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100퍼센트 정확하게 가르쳐 주는 '기적의 예언'인 것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이 책이 보여 주는 대로 오늘 우리의 생을 자신 있게 하나님 나라에 투자하면서 살아가면 그 결과는 틀림없는 것입니다.

매칼트니라는 사람은 "기독교는 기둥이 둘인데, 하나는 이적이고 하나는 예언 성취이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완성되지 않았던 구약 시대와 신약의 초대교회 시대까지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의 신앙을 위하여 '이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오직 이 완성된 정확한 예언 즉 신구약 66권의 말씀만으로도 우리의 신앙을 충분히 받치고도 남는 기둥이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참된 것'을 우리에게 '예언'해 주셨으며 그 '참된 것'이 그대로 성취됨을 과거의 구속사를 통하여 이미 '보여' 주신 것을 깨닫고 믿음으로써, 이 세상 역사와 인간 사회의 혼란과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조국의 미래와 개인의 장래에 대하여 이 참된 예언이 약속해 주시는 구원과 축복을 꼭 함께 누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