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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계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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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 (계 3:7~13)


어느 가정에 사랑하는 외아들이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아이가 보고 싶은 모양인지 아이가 쓰던 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더니 아들한테 편지를 썼습니다. "보고 싶은 아들아! 오늘도 네가 그리워 네가 썼던 방 들락날락거리는 구나. 그런데 네가 쓰던 침대에서 아직도 너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구나." 며칠 후에 답장이 왔습니다. "보고 싶은 어머니! 내 침대가 따뜻한 이유는 내가 전기장판을 끄지 않고 왔기 때문입니다. 속히 전기장판을 끄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따스해지게 하는 한 교회가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요한을 통해서 편지가 보내진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빌라델비아교회에 관한 내용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의 말씀을 지켰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저는 빌라델비아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2가지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선교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 있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일곱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말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봐도 소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던 교회들입니다. 

둘째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전 세계 모든 교회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사도요한은 서신서의 말미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후렴구를 사용하여 각 서신이 특정 교회 하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셋째는 신약시대의 7구분으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자체가 예언서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사 신학교수 밀하임 박사는 신약시대를 7시대로 나누면서 그 근거를 계시록 2, 3장의 7교회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조용기 목사도 2천년 교회사에 주신 예언으로 일곱 시대를 나타낸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성경 종말론 학자인 이광복 목사는 세 가지 해석을 다 받아드려 당시 7교회로, 전 세계 모든 교회 그리고 신약시대 7구분으로 봤습니다. 저는 이광복 목사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성경은 꼭 문자적인 의미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문자적 의미에 또 다른 2중적, 3중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곱 교회를 일곱 시대의 교회사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초대교회시대입니다. 서마나 교회는 순교시대, 버가모 교회는 국교시대, 두아디라교회는 암흑시대, 사대교회는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교회는 선교시대, 라오디게아교회는 종말시대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은 없고 칭찬만 있는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는 선교시대를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교회와 선교하는 개인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선교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큰 능력이 있어야 선교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큰 능력이 있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의 비전을 받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큰 능력이 없어도 선교할 수 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아마도 큰 능력은 없었지만 열심히 주의 말씀을 이루면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3:8에 보면 주님께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교회가 그동안 진행해 온 선교는 우리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선교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감동을 주시거나 음성을 들려주셨고, 여러 성도님들이 저의 부르심을 자신의 부르심으로 알고 순종하고 협력했습니다. 주님은 이런 일들에 대해서 기뻐하시고 마지막 날에 크게 칭찬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선교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선교는 영적인 싸움이기에 사단의 공격이 있습니다. 재정적인 헌신이 없이는 할 수 없기에 재정적인 희생이 필요합니다. 선교에 헌신하기 때문에 직장, 가정, 사업, 사역에 마이너스 적인 요소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좀 하다가 지치면 포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주님은 그것을 잘 아셨기에 3:11에서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갈등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손해를 보는 일도 있을 것이지만 굳게 잡고 포기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선교해야 함을 보여주는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면류관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선교하는 개인과 교회에 큰 상급이 있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3:11에서는 주님이 오시는데 그 때까지 가진 것 즉 선교의 열정을 놓지 않으면 면류관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가진 것을 놓게 되면, 힘들고 어렵다고 선교를 포기하면 면류관을 빼앗길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선교에는 반드시 약속된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기에 선교의 씨앗을 뿌린 자들에게 반드시 영육 간에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국을 축복하시는 이유는 한국을 선교에 사용하시기 위함입니다. 한국은 현재 미국에 이어 세계 선교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조만간 1위가 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보다 인구가 6배나 많은 것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한국이 세계 선교 1위인 샘입니다. 특히 선교하기가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는 구공산권에 파송된 선교사의 97%가 한국인 선교사들이며, 회교권의 대부분은 한국선교사들의 몫입니다.

세계사를 보면 선교 1위인 국가가 전 세계의 영적인 흐름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중심 국가로서의 역할을 해왔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국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석한 자크 아탈리는 최근 [미래의 물결]에서 한국을 드높이 치켜세웠습니다. 그는 일본, 중국, 인도, 러시아를 비롯한 11개국이 머지않아 새로운 경제적 정치적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라면서 한국을 포함시켰습니다. 자크 아탈리의 한국 미래 전망은 특히 장밋빛입니다. 11개국 중에서 한국이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의 1인당 총 생산은 지금부터 2025년까지 2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한국은 경제, 문화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을 것이며 한국의 기술력과 문화적 역동성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적 모델은 중국이나 말레시아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성공적인 모델로서 점점 더 각광받을 것이며 심지어 일본에서도 미국식 모델 대신 한국식 모델을 모방하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는 2025년에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2위로 성장할 것이라고 낙관했습니다. 

영국국방부산하 발전구상정책센터가 앞으로 30년간 세계에 일어날 일들을 전망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2035년쯤에는 붕괴되고 한국은 2050년에는 전 세계 2위의 부자나라가 된다고 전망했습니다. 

2007년 3월 30일 자 [머니 투데이]에서 골드만삭스는 곧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9만 294 달러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미래학자 마르크스 싱어도 통일 한국은 세계 2대 부국이 될 것이고 4대 경제대국이 된다고 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세계적인 기독교 예언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미국의 예언 사역자 샨볼츠, 유태계 미국인 목사로서 예언사역과 치유사역자 베니힌, 영국인 여성 예언 사역자 하이디 베이커, 한국계 미국인 예언 사역자 체안 목사, 미국인 여성 예언사역자이며 중보기도 사역자인 신디 제이콥스, 미국인 여성 예언사역자인 캐서린 브라운, 미국인 예언 사역자인 릭조이너 등은 하나님께서 한국을 위대하게 사용하실 것에 대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의 사역이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다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시는 것은 확실하기에 그들의 예언을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나라에 영육 간에 복을 주시듯이 선교하는 교회에도 영육 간에 복을 주시고, 선교하는 개인과 가정에도 영육 간에 복을 주실 것입니다. 저는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우리의 교회나 우리 성도들의 미래가 밝다고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칭찬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은 어떤 환란과 궁핍이 있다 하더라도 선교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선교 즉 우리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게 합시다.


2.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말씀을 지키고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 보상이 있습니다. 

8절에 보니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의 말씀을 지켰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신 후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하신 이유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들에게 빌라델비아교회의 장점을 본받으라는 말씀이며,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빌라델비아교회에 주신 약속을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능력이 작다고 소극적, 부정적, 불신앙적이 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을 가지고도 큰 일을 하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작은 것으로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고 신앙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해서 내가 가진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릴 때 사용한 것은 핵무기 같은 크고 강력한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시냇가에 가면 어디든지 널려있는 조약돌 하나였습니다. 주님이 5천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기실 때 양식을 대형트럭에 실어서 나른 것이 아닙니다. 한 소년의 도시락에 든 떡 5덩어리와 물고기 2마리였습니다. 

제가 읽은 자료에 의하면 그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는 7-80명 정도의 소수의 교세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교회의 교세에 관한 글을 읽으니 그 교회가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다는 것이 실감나더군요. 빌라델비아교회는 우리비전교회보다 더 작은 교회였으나 주님이 칭찬하시는 큰 일을 해낸 교회였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신앙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큰 능력을 나태내주시만 자기가 가진 것이 작다고 소극적이고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보다 심판을 하시는 분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남과 비교해서 자기가 가진 것이 작다고 생각했고 받은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은 돌아와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달란트를 빼앗았고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어두운 곳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었습니다.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레나 마리아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레나 마리아는 1968년 스웨덴에서 태어났는데, 태어날 때부터 중증 장애인으로 태어났습니다. 두 팔이 없고,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에 절반 밖에 안 되는 짧은 다리였습니다. 사람들과 친척들은 그를 특수 보호소에 맡길 것을 권유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이 아이를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굳게 믿고, 정상아와 똑같이 양육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어려서부터 정상인과 똑같은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하여, 결국에는 두 팔이 없는 가운데 오른발로 설거지를 하고, 한 발로 운전도 하고, 오른발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기도 합니다. 또 수영, 십자수, 피아노 연주, 성가대 지휘, 등 오른발 하나만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하는 대부분의 것을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88년 우리나라에서 열렸던 장애인 올림픽에도 스웨덴 대표 선수로 참여하여 4개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었습니다. 그녀는 스톡홀롬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현대음악을 전공한 후, 본격적인 가스펠 싱어가 되었을 뿐 아니라, 1995년 정상인인 비올라 연주가인 비욘 크랑빌과 결혼을 하여 현재 스웨덴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레나는 그 누구보다도 밝고 명랑하게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대화로 좌중을 리드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녀가 이렇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자신이 갖지 못한 것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남아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라진 것, 없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아니하고 현재 남아 있는 것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녀에게는 적은 능력 밖에 없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명품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최선을 다하여 큰 일을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 어떤 보상을 주시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주님이 내 앞에 열린 문을 두십니다(8절).

7절에 보니 주님은 절대권력자이십니다. 주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주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주님이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여기서 다윗의 열쇠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권을 뜻합니다. 
주님이 우리들에게 어떤 문을 열어주십니까? 첫째, 하늘의 문입니다. 둘째, 능력의 문입니다. 셋째, 사역의 문입니다. 넷째, 구원의 문입니다. 다섯째, 기도의 문입니다. 여섯째, 축복의 문입니다. 

  2)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줄을 알게 하십니다(9절).
초대교회 당시에 교회를 핍박했던 대표적인 집단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으나 사실은 사단의 회당이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했던 훼방의 방법은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들 중에 몇 사람을 빌라델비아교회의 사자 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사랑하시는 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선교하며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말씀대로 살면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를 주십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가는 길을 막으십니다. 우리는 길이 막히면 그것 때문에 속상하고 실망하고 때로는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연약함을 가지고 있지만 주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하고 막힌 길을 통해서도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십니다. 

LA에서 목회하시는 한 목사님이 백령도로 집회를 인도하러 가실 때의 일입니다. 목사님께서 배에 타려고 하니 경찰이 안 된다며 막았습니다. 사람들이 배에 너무 많이 타서 더 이상 탈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부흥회를 인도할 강사라서 꼭 이 배를 타고 가야 됩니다.” “안 됩니다.” “많은 교인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 가야 됩니다.” “못 갑니다.” 그러자 목사님께서 경찰을 확 밀어내고 배에 뛰어오르려 하는데, 경찰이 목사님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목사님이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의 온몸과 가방이 물에 다 젖었습니다. 여관으로 돌아온 목사님께서 다 젖은 성경을 말리고 있는데,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경찰관이 막 달려온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하세요.” “무슨 말이오? 내가 이 꼴이 되었는데 감사는 무슨 감사요?” “목사님, 목사님께서 타려던 배가 침몰했어요. 풍랑 때문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죽었답니다.” 하나님은 특별한 보호로 그 목사님을 사랑하시는 것을 나타내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말씀대로 살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증거를 우리의 삶에 풍성하게 나타내주실 것입니다. 

  3)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십니다(10절). 

여기에서 ‘시험의 때’란 예수께서 재림 할 때에 임할 대환란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환란 가운데에서 고통당하는데 반해, 주님께 인정받은 사람들은 시험의 때를 면하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지켜 사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대환란의 시험의 때를 통과하게 하시는 것만 아니라 생활 속에서도 시험을 잘 통과하게 하십니다.  

몇 년 전 제가 오산리금식기도원에서 집회를 인도했습니다. 그 때 성도들이 제 사역을 중보기도로 섬겨주기 위하여 기도원에 가는데 네비게이션이 이상한 길로 인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자동차가 달릴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이상한 길로 가고 길이 막히는 것이 답답했지만 시간이 지난 후 그것이 우리 성도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천천히 가다가 펑크가 났습니다. 만약 네비게이션이 길을 잘 인도해서 막히지 않고 길이 잘 뚫려서 정상적인 속도로 올림픽대로를 달렸다면 큰 일날 뻔했습니다. 교회에 큰 시험이 들 뻔 했는데 주님이 시험을 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4) 면류관을 주십니다(11절).

11절에 보면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작은 능력으로 선교하고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에게는 앞으로 면류관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면류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에 면류관은 황제와 경기의 승리자만이 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 선교하고 말씀을 지켜 행한다면 우리는 이미 영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5)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십니다(12절).

기둥은 집을 받치는 중심입니다. 기둥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기둥이 되게 해주겠다는 것은 기둥처럼 필요한 사람, 중요한 사람, 든든한 사람이 되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성전 기둥은 성전을 지탱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작은 능력으로 선교하고 말씀을 지키며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를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둥과 같은 인물로 써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성전기둥’하면 뭐가 생각이 납니까? 구약에 보면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는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이 있었습니다. 이 두 기둥은 솔로몬 성전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갈 2:9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이 세 사람을 기둥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귀중한 사람으로 여기시고, 주님의 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콘(Kohn) 박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극도로 쇠약해졌다. 식량 부족에 질병까지 늘고 독일군의 폭격은 가중해졌다. 온 나라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질 직전 같았다. 그런데 이토록 약하고 이처럼 부서져가는 영국이 어떻게 그런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는가? 그것은 기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늙은 고집통(처칠)이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처칠은 영국의 기둥이었고 그가 든든히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요동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비전교회에는 작은 능력을 가졌지만 선교에 힘을 쓰고 말씀을 지켜 사는 기둥과 같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는 크게 부흥할 것을 믿습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교회이지만 우리교회에는 기둥과 같은 성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기둥만 세워져서 교회가 화려하게 보이지 않지만 기둥이 많은 만큼 크고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6) 영원한 기념이 되게 하십니다(12절).

주님께서 기둥인 그들에게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작은 능력으로 선교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국가에 충성한 사람의 이름을 그들이 섬기는 신전의 기둥에 새겨 그 사람을 존귀케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영광을 누릴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증표를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식사시간에 가족이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 집사님이 바쁘다고 서둘다가 식사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유치부에 다니는 딸이 “아빠 기도하고 밥 먹어”라고 하더랍니다. 그 집사님이 바쁘다고 서둘다가 식사기도를 빼먹은 것처럼 우리는 세상일로 분주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은데, 오늘 새로운 마음으로 결단합시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겠다는 결단을 하십시오. 그리고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선교에 힘을 쓰겠다는 결단도 하십시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찰스 5세가 제국회의를 소집하고 루터를 소환했습니다. 루터는 그 자리에 가야합니다. 가면 돌아오기 어렵습니다. 친구들이 피신할 것을 요청하고 만류했습니다. 그때 재판장으로 들어가며 루터는 당당히 이야기합니다. “웰매스의 지붕을 덮은 수 만장의 기왓장이 악마로 변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네 주장을 꺾으라’ 말하지 않는 이상, 성경이 ‘네 주장이 진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 이상, 나는 당당히 내 목숨과 함께 이 재판장에 들어서리라.”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라고 협박하는 황제 앞에서 담대하게 외칩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아무것도 철회할 수 없으며 또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심을 거스르는 일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에 내가 서 있나이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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