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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초적인 탐욕 (창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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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적인 탐욕 (창 3:1~7)
 
 
오늘은 환경주일입니다. 매년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한국 교회는 6월 첫째 주일을 "환경주일"로 지키고 있는데 벌써 26주년이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녹색교회"가 되는 일, 그리고 기독인들의 삶이 친환경적인 삶이 되도록 가치를 부여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남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잘 관리하고 보존하라는 명령을 지켜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해 가야 합니다. 

생태학자들에 의하면 2000년부터 자연계에 존재하는 종이 한 시간에 한 종씩 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다간 인간이란 종도 언제 사라질지 모를 일입니다. 의료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호흡기질환자가 가장 많아졌다고 합니다. 의사들의 공통된 견해가 대기오염 탓이라고 합니다. 또 현대인들의 사망원인 가운데 암에 의한 것이 가장 높습니다. 이 또한 환경오염 탓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환경오염(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그리고 체질, 정신적인 스트레스 이 삼박자가 만나면 결국 병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오염속에 살면서 병이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와같은 환경위기는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이 원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모든 것이 오염되고 병들어가는 것은 더 먹음직스러운 것을 향한 인간의 탐욕, 더 보암직스러운 것을 향한 인간의 탐욕, 더 탐스러운 것을 향한 인간의 탐욕이 가져온 결과인 것입니다. 이 탐욕이 하나님을 거역하게 했고 사단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한 인간들의 삶의 환경이 극도로 나빠지고 파괴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에게 에덴동산을 주셨습니다. 그 에덴 동산은 낙원이었고 행복 동산이었고 환희의 동산이었고 생명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동산의 행복질서를 위해서 그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삐딱한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셔서 아담과 하와가 유혹을 받게 했느냐? 하나님은 참 이해가 안되는 하나님이다.' 그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잘 들어보십시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사고가 잦은 골목길에 세워놓은 위험표지판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 위험표지판은 여행자를 유혹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이 지으신 인간의 체질을 아시고 그 사고와 행위를 아시기에  인생의 여행길에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이 위험표지판은 안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워놓은 것입니다. 이 위험표지판은 사람을 시험하거나 유혹하기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생명처럼 여기고 살 때는 선악과는 단순한 열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사단이 틈을 타서 사단의 감언이설에 마음을 빼앗긴 다음에는 탐욕이 불일듯 일어나서 그 선악과는 먹음직스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럽기가 생명을 잃어버리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한 번 먹어보고 싶어졌을 만큼 아름답고 크게 느껴졌습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움이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합니다. 그래서 위험표지판도 무시하고 달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위험표지판도 무시하고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과 독선을 낳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고로 이어지게 됩니다. 행복을 잃게 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불가사리는 특이한 방법으로 조갯살을 먹는다고 합니다. 처음에 불가사리는 조개들과 어울립니다. 그러다가 조개들이 먹이를 찾아 껍질을 벌리면 재빨리 속 살을 간지릅니다. 그 간지름은 어리석은 조개에게 즐거움을 느끼게 하며 껍질을 더 벌리게 합니다. 그때 불가사리는 조개의 심장을 찾아 누릅니다. 조개는 특이한 채질을 갖고 있어 심장의 압박을 받으면 곧 죽는데 이 때문에  곧바로 불가사리의 먹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담과 하와 이후로 지금까지 먹음직함과 보암직함과 탐스러움에 빠져서 물질중심, 인간중심, 과학만능, 과학중심주의의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와 문명은 더 먹음직스러움, 더 보암직스러움, 더 탐스러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간지르고 부채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불가사리에게 먹히는 조갯살과 같습니다.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움을 극복하는 길이 문제 해결의 길입니다.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움에 대한 환상과 달콤함을 버리지 못하는 한 개발과 성장이라는 선악과가 우리를 끊임없이 유혹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환경파괴로 이어지고 그것은 인간의 생존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낚시밥에는 바늘이 숨겨져 있듯이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움의 유혹에는 낙원을 잃게 하는 무서운 독 바늘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움으로 상징되는 외모적인 것, 편리한 것, 큰 것에 대한 선호도가 환경오염의 주범입니다. 
현대인이 못 참 것들이 많은데 첫째로 못생긴 것입니다. 과일도 채소도 외형적으로 잘 생긴 것을 고릅니다. 그러니까 농약을 듬북듬북해야 하고 빛갈이 좋고 싱싱하게 보이기 위해서 또 약품 처리를 해야 합니다. 여자들도 성형이라도 해서 예쁘게 꾸밉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다보면 뭔가 인위적이고 역자연적인 방법을 사요하게 되고 그것은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들이 못 참는 것이 바로 불편함입니다. 편리한 세상에 깊이 길들여 있어서 잠시도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합니다. 그러나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부분의 문명들은 환경을 오염시키고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일회용품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수 많은 전자제품들은 더 큰 집을 짓게 하고 있습니다. 더 편리하고 더 저렴한 것을 찾는 동안 지구의 온도가 계속 올라갑니다. 그리고 빠르고 편리함을 추구하는 동안 우리의 몸은 약해지고 지구는 병들어가는 것입니다. 불편하고 단순한 것이 좋은 것이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상업화된 사회는 자꾸만 복잡하고 자동화되고, 보기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들은 더욱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제한된 용도로 밖에는 쓸 수 없는 것들입니다. 불편함을 즐기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현대인들이 참지 못하는 것이 작은 것입니다. 대형을 좋아합니다. 대형냉장고 대형 에어컨, 대형자동차, 큰집............ 
그러나 배기가스를 많이 내뿜는 대형차보다는 소형차가 아름답고, 화려한 옷보다는 검소한 옷이 더 아름답고, 교만한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자기가 잘났다고 으시대는 시대에,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하는 마음으로 시류에 좇아가지 않는 사람이 아름답습니다. 이와 같은 덕목은 말로는 참으로 쉬운데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이 작은 것을 아름답게 여길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작아져야 인간도 살고 피조물도 살 수 있습니다. 

현대사회의 위기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엄밀히 환경오염이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며 범죄, 인륜 타락 등의 문제와 더불어 환경이 위기에 서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노리고 있는 악한 영의 그 가운데 숨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친환경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신실함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일체의 죄악을 거부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안을 열어서 사단의 속임수과 그 노림수를 읽고 경계하며 사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그 어떤 환경파괴적인 행동보다 더 인류멸망을 가져올 가증한 것은 "죄악"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 자신과 후대가 이 땅에서 풍요롭게 살게 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곧 건강한 환경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풍료로운 삶보다는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합입니다. 잠깐의 풍요보다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환경문제는 가진 사람의 사치스러운 생각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 즉 우리의 '삶'의 문제이며 생존의 문제입니다. 

먹음직, 보암직, 탐스러움에서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먹음지그럽고, 보암직스럽고 탐스러운 것들은 모두 인간과 환경을 병들게 하는 것이 가득합니다. 거절하기 힘든 먹음직스러운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보암직스로운 온갖 것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탐스러운 것으로부터 거절하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우리 후손이 살고 이 지구가 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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