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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침 받고 사랑 받는 (호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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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침 받고 사랑 받는  (호 14:1~4)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 

아무리 큰 질병도 고칠 수만 있다면 두려울 까닭이 없습니다.
회복할 수만 있다면 실패가 무서울 까닭이 없습니다. 다시 살수만 있다면 죽음이 겁나지 않을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 4절에 보면 “내가 저희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라고 하였습니다. 사랑 받을 수 없는 인생을 하나님이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로 고쳐서 사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호세아서가 나타내고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며 주제입니다. 

고쳐서 사랑하리라 
호세아서는 북 왕국 이스라엘 여로보암 왕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하고 있는 예언서입니다. 호세아라는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떠났을 때 오는 저주와 심판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했을 때 임하는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호세아 14장은 호세아서의 결론으로 비록 타락과 배신으로 점철된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그를 고치시고 사랑해 주신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우리는 고침 받고 사랑받는 비결을 발견하게 됩니다. 고아처럼 버림받고 만신창이가 된 인생이 고침 받고 사랑받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비결은 본문 속에서 찾아 나서야 하겠습니다. 

1. 고침 받고 사랑 받는 출발점은 무엇입니까? 

고침 받고 사랑받는 출발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데 있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네 하나님께 돌아오라” 라고 말하였고 2절에도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 돌아와서”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오라” 명령과 “가라”는 명령이 교차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라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고 가라는 것은 복음을 들고 세상으로 일하러 가라는 것입니다. 사용횟수를 보면 오라는 말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인생에게는 참 안식이 없습니다. 눅 16장에 둘째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 갔을 때 처음에는 자유로웠는지 모르지만 결국은 비참한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은 떠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그 순간으로 마귀의 올무에 걸립니다. 마귀의 종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은 죄와 마귀에게 붙들린다는 말이고 하나님께 붙들린다는 마귀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즉시 인간은 죄어 올무에 걸립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뱀의 말에 더 관심을 두었습니다 뱀은 먹지말라한 나무의 실과를 먹으며 하나님처럼 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와는 선악과를 먹은 후 마귀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는데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좀더 하나님께로부터 부자유하다면 그것은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거기에 고침 받고 사랑받는 열쇠가 있습니다. 

2. 돌아오는데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나 무작정 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과 벗하고 죄악 중에 살던 자가, 그래서 만신창이가 되어 성한 곳이 없이 죽게된 자가 돌아와서 구원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허락되었지만 그 용서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을 혼돈하면 안 됩니다. 용서는 이미 허락되었지만 구원은 그것을 믿고 받아드리는 자에게 해당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 인생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호세아 선지자가 고침 받고 사랑받기 위한 전제 조건은 무엇입니까?

1) 말씀을 가지고 돌아와야 합니다. 
2절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자가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 올려고 하면 말씀을 가지고 와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났던 자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① 초청장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1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초청장입니다. 
② 믿음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언약을 믿고 오라는 것입니다. 언약을 믿는 것은 그 약속을 내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을 떠났던 자라도 돌아오기만 하면 조건 없이 받아주겠다는 언약의 말씀을 믿고 와야합니다. .
하나님은 문열어놓고 약속만 믿고 그 약속을 근거로 하여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약속의 말씀을 갖고 오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습니다.

2) 앗수르를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3절 앞부분에 보면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당시 앗수르 국가는 바벨론, 애굽과 함께 삼대 강대국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었습니다. 약소국가인 이스라엘로서는 앗수르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앗수르에 추파를 던지고 앗수르의 비위를 맞추어야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 앗수르 파가 득세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앗스루를 의지하느라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현대판 앗수르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나보다 강하고, 내가 믿고 의지하는 보든 것들이 현대판 앗수르입니다. 그것이 권력이든 돈이든 지위든 사람이든 하나님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앗수르가 되는 것입니다. 

3) 말을 타면 안 됩니다. 
3절에 보면 말을 타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말은 교통수단과 운송수단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말은 전쟁이 수단이었습니다. 자동차나 전차가 없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면 가장 무서운 기습이었고 공격이었습니다. 보병보다 마병이 많아야 군사력이 강한 군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로 걷고 뛰는 보병부대였습니다. 그런데 앗수르는 말을 타고 달리는 기병부대가 주력을 이루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그것이 늘 부럽고 두려웠습니다. 
말만 있다면 말을 타고 달리는 기병부대만 있다면 전쟁에서 이길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말은 힘을 상징합니다. 사람들은 힘만 있으면 만사가 해결되고 형통하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을 소유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힘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1) 유한한 힘있니다.
60년대 프로레슬링 선수 김일선수의 박치기를 기억하시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가 그의 머리고 받기만 하면 일본 선수도 미국 선수도 나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의 거취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세상 힘은 유한합니다.
돈의 힘도 유한합니다. 권력의 힘도 유한합니다. 군사력도 유한합니다. 완력도 유한합니다. 유한한 세상의 힘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2) 영원한 힘입니다. 즉 하나님의 힘을 의미합니다. 
창조하신 힘, 섭리의 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힘, 심판하시는 힘이 곧 하나님의 힘입니다. 싸움에 능했던 다윗은 훗날에 하나님을 “나의 힘, 나의 방패, 나의 구원, 나의 산성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의사도 의학을 믿으면 안됩니다. 돈가진 사람도 돈을 믿으면 안됩니다. 학자도 학문을 믿으면 안됩니다. 건강한 사람도 자기 건강을 믿으면 안됩니다. 그것들은 곧 말고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고 앞길이 튼튼해집니다.

4) 다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손으로 지은 것을 우리의 신이라 하는 것은 우상입니다.
우상 숭배는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죄악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우상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치 창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 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시날 평원에 모여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에게 까지 도달할 수 있는 탐을 쌓기로 하엿습니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건축기술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존재를 우스꽝 스럽게 만들 수 있는 탑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탑을 쌓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 탑이 무너진후 인류는 수 차례 재건을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무너졌다고 합니다. 
현대 과학 문명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입니다. 그것이 신이되면 안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그저 미신으로 돌리고 인간들이 만들어낸 과학, 의학, 예술, 문학 이런것들을 더 신뢰하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자기만 신뢰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자기만 위하는 것도 우상입니다.

어느 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열 사람이 배를 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배의 수용 인원은 7명이었읍니다. 7명인데 정원을 무시하고 10명이 탄 것입니다. 배가 한참 항해를 계속하다가 물이 스며들어 오고 이 배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읍니다. 그래서 적어도 세명을 이 배에서 내려놓지 않으면 이 배에 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죽음의 운명 앞에 직면하게 되었읍니다. 
서로 눈치를 보면서 누가 양보를 해 줄것인가를 기다리고 있읍니다. 
이때 맨 처음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서 말합니다. "여러분, 저는 대영제국의 국민입니다. 제가 신사도를 발휘해서 여러분을 살리도록 하겠읍니다" 그리고 맨 먼저 다이빙을 해서 물 속으로 사라져 갔읍니다. 그 다음에 또 누가 뛰어들 것인가를 눈치를 보는데 두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아메리카에서 왔읍니다. 세계 최대 강국의 제가 양보를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읍니까?" 그리고 그 사람도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 사람이 벌떡 일어섭니다. 
이 사람은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대한민국 만세를 세번 외치고 나서 갑자기 옆에 있는 일본 사람을 쥐어박더니 물 속으로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사람을 비하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하는 정신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 이런것들은 결국 자기 우상화의 한 모습입니다. 

4. 고치고 사랑하리니

이와 같이 말씀을 근거하여 돌아오면 하나님이 고치고 사랑하신다고 하엿습니다. 
4절을 보면 “내가 저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사랑하리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5절 이하에서 고침받고 전개되는 축복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출 15:11절에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라” 고 했습니다. 
육신의 질병보다 더 무서운 것은 영혼의 질병입니다. 그것을 본문에서 “패역” 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패역이란 부패하고 타락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영적 행위입니다. 

육신의 질병 때문에 지옥 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교만과 패역은 지옥가게 하는 영적 질병입니다. 그 패역 영적 질병을 고쳐주신다고 했습니다.그 뿐입니까? 즐거이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치료와 돌보심이 일회적이 아니라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 시간 기도합시다. 
나의 교만을 고처서 사랑하소서. 나의 욕심과 나의 악한 것을 고쳐서 축복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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