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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하되 끝까지 (요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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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되 끝까지 (요13:1)
  

유월절이 다가오면서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서 우선 “안다”는 말에 집중해서 묵상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Know Yourself" “너 자신을 알라”고 했는데 그 내용은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①우선 우리가 무지하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알고 있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박사라고 할지라도 자기가 아는 분야만 알지, 조금만 분야가 다르면 모릅니다.
그래서 진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겸손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혼자 잘난 체하고 날뛰게 됩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 중에 누가 제일 잘하는 척하는지 아십니까?
태권도를 조금 배워서 이제 제법 발차기도 할 줄 알고, 격파도 할 줄 아는 파란 띠 혹은 빨간 띠 정도 띠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이런 아이들은 겁도 없습니다. 
아무데서나 발을 올리고 주먹을 휘두릅니다. 그러나 저는 태권도 9단을 소유하고 있는 분을 압니다.
그분은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주먹 한번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②우리는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도 부족하고, 능력도 부족합니다. 
너무 멀리 있어도 보지 못하지만, 너무 가까이 있어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판단을 잘못해서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 때는 내가 절대로 옳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잘못됐습니다.
좀 더 다른 차원에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결코 절대적인 존재가 되지 못합니다. 이걸 알아야 합니다. 

③우리는 죄인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의롭고 깨끗한 사람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자기 양심에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는 그런 당당한 사람은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남에게 관용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나도 죄인이니 그 사람의 허물도 덮어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매사에 법대로 하자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정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은 너무나 삭막하고 몰인정한 사회입니다. 

④우리는 죽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미처 100년을 넘기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얼마 지나면, 다 이 세상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을 존재입니다. 
언젠가는 다 죽습니다. 남이 죽는 것을 보면서, 내가 죽을 줄을 알아야 하는데 그걸 모릅니다. 
나는 아직도 언제까지나 살줄로 생각하며 사는 것이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저도 죽고, 여러분도 죽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알아야 하지만 특히 때와 시기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죽을 때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때는 고사하고 자기가 죽는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지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을 줄을 아셨고, 또 그 때가 가까운 줄 아셨습니다. 

전도서3:1-8 

1.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3.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4.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5.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6.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7.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8.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때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무엇을 해야 할 때인지 아십니까? 
지금은 울어야 할 때입니까? 웃어야 할 때입니까?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까? 찬송할 때입니까?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우리가 만일 자기의 죽을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난 사순절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내 생애 마지막 한 달” 캠페인은 
바로 우리의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될 것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이고,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것이며,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크게 4가지를 배웠습니다. 

1. 열정적으로 살라 
2. 온전히 사랑하라 
3. 겸손히 배우라 
4. 담대히 떠나라 
 
그런데 예수님은 이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예수님은 평소에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집중하셨을 뿐 아니라 
죽음이 다가온 줄 아시고 더욱 사랑하는 일에 헌신하셨으며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서 특히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때때로 우리의 사랑은 너무나 조건적인 경우가 많고, 상황에 따라 변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일정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누구보다도 더 가깝다가도 때로는 오해가 생겨 그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하고 
또는 그 관계가 깨어져 마치 원수처럼 지내게도 됩니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여인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지극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했습니다. 힘들게 노동을 해서 번 돈으로 대학 등록금을 댔습니다. 
그 남자는 공부를 잘해서 미국 유학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더욱 열심히 일했고 자기가 번 돈을 대부분은 다 보냈습니다. 
그러면서도 홀로 계신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모셨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그 남자는 결국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만난 인테리 여인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 동안 도와줘서 고맙지만 무식한 당신과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공부하다가 만난 이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도와주었던 돈은 빚으로 알고 차차 벌어서 갚겠다고 했습니다.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배신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 여인이 남긴 말 “배신은 당해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너 없이는 못산다고, 차라리 죽어 버릴 것이라고 맹세를 해 놓고도 마치 헌신짝처럼 버리는 것이 인간의 사랑인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배신을 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무엇입니까? 끝까지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보여도 그 약점까지 감싸주는 것입니다. 
그의 실수까지도 포용해주는 것입니다. 
고전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송가는 이렇습니다.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무던히도 참고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다 내 마음에 맞아서 좋아하는 게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참아주는 것입니다. 참는 사람이 있기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리고 참아 주었기에 나중에 변화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결심을 해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지만 가지고 잘 안 됩니다. 
그래도 참고 또 참아 줄 때 그리고 기다려줄 때 성숙하고 변화가 됩니다. 
진정한 사랑의 열매는 이처럼 끝까지 믿고 참아줄 때 맺어지는 것입니다.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가족의 사랑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때로는 가족끼리도 친밀하지 않은 경우가 있고, 
매우 소원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 집에서 살기는 하지만 진정한 가족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피로 맺어주신 가족들은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함께 해야 합니다. 
기쁜 일도 함께 하고, 슬픈 일도 함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은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저런 일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을 전도대상자로 삼기 전에 먼저 점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내 마음에 믿지 않는 가족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는가?”
때로 그들이 우리의 믿음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않아서 깊은 상처가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차라리 남보다도 못한 가족들이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맺어주신 가족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먼저 예수 믿게 하신 것은 그들을 구원하라는 섭리입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가족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을 회복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한다면 그의 필요를 채워줘야 합니다. 
서로 화목해야 하고, 육신의 필요와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며 그 바탕 위에서 영적인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혹시 그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을 깨달았지만 그들의 육적이고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일에는 무관심하지 않았습니까? 
물질적인 도움이 먼저 가야, 복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물질로 도와주십시오. 남이 아니지 않습니까?
먼저 그들의 마음이 열려야 복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시간은 언제까지나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기회는 언제나 우리에게 오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전도하기 바랍니다.

가족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심각한 죄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가족을 구원했느냐 하는 결과보다 그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 하는 과정과 
우리의 신실성에 대해 물으실 것입니다. 
그 질문 앞에 성실한 대답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나는 믿지 않는 가족을 진실로 사랑하는가?
2. 나는 믿지 않는 가족의 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는가? 

저는 극동방송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창원이라는 유명한 탈옥범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 사람은 현대판 홍길동처럼 여겨지는 신출귀몰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있는 그에게 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신창원이 예수를 믿고 싶어 하는 것은 어느 한 여인 때문이라고 하더랍니다. 
탈옥범으로 여기저기 쫓겨 다니던 어느 날 신림동에 있는 한 연립주택에 여자 혼자 있는 집에 침입을 했다고 합니다. 여자는 당황했겠죠. 

신창원은 ‘난 절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냥 여기서 조용히 하룻밤만 지내게 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답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이내 침착해졌습니다.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답니다. 
서른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인은 시골에서 올라와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고생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합니다. 
얘기를 하다 보니까 배가 고파서 밥 좀 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조용히 일어나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답니다. 
며칠씩 굶은 신창원은 너무 고마워 맛있게 먹으면서 뭔가 보답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물었대요. “소원이 뭐예요?” 그랬더니 “뭐 별게 있겠어요. 돈 벌기 힘들 때면 돈방석에 한 번 앉아보는 거죠.” 그러자 신창원은 잠시 주차장으로 내려가 골프 가방을 가져왔답니다. 
그 안에는 어딘가에서 신창원이 훔친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을 믿어줄 뿐 아니라, 얘기를 들어주고, 따뜻한 된장찌개까지 끓여준 그녀에게 정말 돈방석에 앉게 해 준 것이지요. 

어느 새 새벽이 되자 그녀는 밤 작업 들어간 남동생이 올 때가 되었으니까 ‘이제 돌아가 달라’고 했답니다. 신창원이 신발을 신으려 하자 여인은 자기가 준 돈 가방을 되돌려 주더랍니다. 
놀라서 ‘돈 받을 것도 아니면서 왜 탈주범인 자기에게 잘해주었느냐’ 물으니 
그녀는 맑은 눈으로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죄인이 쫓기고 힘들어할 때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신창원은 그 순간 내가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면 그녀가 믿는 그 하나님을 믿고 싶다고 생각을 했답니다. 

연립주택의 그 여자가 담대하면서도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과 
극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실천한 아름다운 여인에게서 진실을 느낍니다. 
믿지 않는 가족에게도 기회가 올 때 전도하고자 하는 진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사랑만 있다면 하나님은 여러 방법을 통해서 가족들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가족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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