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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 (대상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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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분별하는 능력 (대상 12:32)


며칠 전 오후 TV화면에 '서해 5도 해병대 분주하다'라는 타이틀과 함께 각종 첨단 장비들이 그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화면을 바라보는 저의 감정은 20년쯤은 젊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은 이 나이에 전쟁을 해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도 나면 어떻게 할까라는 걱정에서였습니다. 
여기 성경에 시세에 대한 통찰력과 역사 의식을 가지고 한사코 믿음의 행진을 감행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장군을 물리친 일로 인하여 구국의 공신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요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라는 백성들의 정직한 환호가 화근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역대상 12장 1절에 『다윗이 기스의 아들 사울을 인하여 시글락에 숨어 있을 때에 』라는 이 한마디가 그 당시에 다윗의 곤고한 형편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때 다윗을 따르는 무리들은 대부분 빈궁한 자들 아니면 역사의 무대에서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그 수가 이스라엘 전역에서 600-700명 정도 밖에 되지 아니했습니다. 이렇게 숨어있는 다윗에게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본문 12장 32절에 시세(時勢)를 알고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시세를 안다는 말은 
① 시대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② 시대를 통찰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③ 장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시세는 무엇입니까? 

Ⅰ. 한반도의 군사적으로 불안한 시세입니다. 

본문 12장 32절에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서해안 이른바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일어나고 있는 남북한의 긴장 국면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건국대학교 신복용(申福龍)정치학 교수의 논고에 의하면 서유럽이 한반도를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은 1810년대였습니다. 이 당시에 그들이 조선의 후두부라고 생각한 곳은 해주, 인천, 그리고 아산만이었습니다. 미국과 프랑스가 인천을 목표하고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일으킨 곳이 곧 강화 일대였습니다. 독일은 아산만을 목표로 했습니다. 유독 영국은 해주만과 그 일대의 섬을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한 관심의 일환으로 1816년에 홀이 이끄는 선단이 이곳을 정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이곳을 '서 제임스 홀 군도(Sir James Hall Group)'라고 명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 미국이 한반도의 운명의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이 서해 5도에 관심을 가진 것은 한반도의 분할을 구상할 무렵이었습니다. 1945년 8월을 전후해 미국의 국무성, 국방성, 정보기관 그리고 태평양 사령부가 각기 한반도 분단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때 유독 국방성 작전국(OPD)은 이 서해 5도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쪽 끝은 북위 38도 10분(장산곶)에서 시작해 동쪽으로는 북위 37도 40분(주문진)에 이르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빗금을 분할선으로 그렸습니다. 그들이 옹진반도를 이토록 중요시한 것은 바로 이 서해 5도 때문이었습니다. 
이 당시 미국의 대한반도 전략은 미국의 해군사관학교 교장으로서 '해상권이 역사에 미친 영향'(1918)이라는 명저를 쓴 '앨프리드 마한'의 논리를 따랐습니다. 그것은 "육지를 잃는 한이 있더라도 바다(섬)를 잃어서는 안 된다" 는 전략에 기초를 두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이와 같은 대극동 전략은 맥아더 장군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곧 애치슨 방위선이었습니다. 그들은 극동이야말로 늪이므로 육지에 상륙해 '접촉성 피부염'에 감염되는 일은 가급적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개구리 착지점(frog jumping point)처럼 섬을 잇는 고리에 의해 극동을 방위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하더라도 섬의 연결고리로 인한 해상전략의 교두보를 확보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대한 방위전략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것은 한국전쟁의 휴전 회담장이었습니다. 당시 휴전선은 육지에만 확정되었을 뿐 해상으로 연장해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이때 문제가 된 곳이 바로 서해 5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도서에 대해 공산측과 미국측 사이에 엄청난 시각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즉 북한의 대남전략은 남한의 빨치산(빨지산은 정규군이 아니고 민간인으로 조직된 유격대)과 이를 지원하는 지상군 개념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마한의 전략에 따라 서해 5도를 장악하는 것으로 향후에 일어날 군사 분쟁에서 우위를 장악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 절묘한 것은 당시 유엔군 측의 수석대표는 극동군 사령부 함대 사령관이었던 '터너 조이'제독이었는데 그는 철저한 마한주의자였습니다. 그는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서해 5도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각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유엔군 측의 수석대표는 '해리슨'중장으로 교체됐지만 이 정신은 그대로 승계됐습니다. '해리슨'은 '마한'과 같은 의지를 가지고 회담에 임했습니다. 미국의 이러한 전략을 간파하지 못한 북한의 수뇌부는 향후에 있을 서해 5도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유엔군 측의 제안에 별 뜻없이 동의했습니다. 

그 결과 최종 협정서에는 휴전선 조항에 명시돼 있지도 않은 별도 조항(제 2조 13항의 B)에서 '황해도와 경기도의 도계선(道界線)의 북방 및 서방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도서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군 최고사령관의 군사 지휘 하에 둔다' 고 했습니다. 이렇게 규정해 놓고서도 그 단서에 '단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는 이 규정에 의하지 아니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북한이 이 대목에서 스스로의 실수를 깨닫고 후회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 였습니다. 장산곶의 정상에 올라 백령도 바라보면 마치 목에 비수를 겨누고 있는 듯합니다. 서해 5도에 대한 북한의 심중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의 재임 말년에 NLL은 우리의 영토 개념이 아니라고 완곡한 발언을 했을 때 국민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NLL 무너지면 인천 앞바다까지 위험
·NLL은 사실상 영토개념
·NLL 지키다 죽은 장병들은 뭐냐
·대통령이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하다니 
·NLL 국방부 입장 내치고 좌파 따라하는 대통령
·깜도 안되는 NLL 논쟁 등등으로 지상(紙上)에 도배가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가정하면 끔찍합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중화학무기와 육·해·공군, 전군이 우위에 있다고 해도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모두가 자멸입니다. 
핵무기를 가지고 협상카드로 사용한다고 할 때 핵무기를 사용한다는 가정 아래서 해야 되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저 자세일 수밖에 없습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정치, 경제, 군사 모든 면에서 능동적으로 우리의 주장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입니다. 
여기에 소위 강대국의 이해관계는 미묘합니다. 벌써 어제 안보리에서 미국을 비롯한 자유우방국과는 달리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는 뚜렷한 입장을 대내외에 천명했습니다. 

Ⅱ. 사상적으로 첨예한 대립의 시세입니다. 

본문 12장 32절에 『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우파(右派)와 좌파(左派)의 대립시대입니다. 우파와 좌파의 유래는 프랑스 혁명당시 국민의회에서 보수파인 지롱드 당원들이 오른쪽에, 급진 과격파인 자코뱅 당원들이 왼쪽에 앉았던 데서 나온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보수파와 혁신파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일컫는 말로 흔히 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파는 미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신봉자를 말합니다. 좌파는 구소련과 같은 공산주의 체제의 신봉자를 가리키는 말로 속용되고 있습니다. 
위에 설명대로 우리나라의 좌파 같은 경우는 공산주의 체제의 신봉자인 이른바 빨갱이(공산주의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몰리는 경향이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일부 언론이나 사회 일각에서는 좌파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보편적 시각이 되었습니다.

프랑스 혁명에서 유래되었듯 좌파와 우파는 그 사람의 경향이나 사고방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원래 좌파와 우파를 분류하는 가장 큰 기준이 3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바로 정부의 시장사회 개입 여부이고 두 번째가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을 더 선호하는가 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수냐 진보냐에 어느 쪽을 지향하는 성향 여부입니다. 
좌파 같은 경우에는 정부의 시장 개입을 최대한 많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파 같은 경우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영향으로 정부는 국방과 치안 유지와 더불어 법 집행만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회시장을 간섭하지 말고 자율적인 정부의 개입 최소화를 대체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 좌파 같은 경우에는 성장보다는 분배를 더 중요시 합니다. 따라서 가진 자들에게서 세금을 많이 거두어 그것으로 복지사업이나 비 기득권층 사람들에게 나눠주려는 복지국가 의식이 강합니다. 

반면 우파 같은 경우에는 분배보다는 성장을 중요시 하는 야경국가(夜警國家) 즉, ① 외적을 방어하고 ② 국내치안을 유지하고 ③ 국민의 자유재산 및 자유에 대한 침해의 제거 등 필요한 최소한의 임무만 행한다는 의식이 강합니다. 마지막으로 좌파는 대체로 급진적, 투쟁적이고 사회의 변화를 주도하는 진보적 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파는 대체로 옛 기득권과 사회에 법을 지켜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보수적인 성향을 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조 중기 현종 재위 무렵 서인과 남인의 정치적 대립 양상이 첨예할 때입니다. 여당격인 서인과 야당격인 남인은 정치적으로 정적 관계입니다. 이 무렵에 서인의 대표인 우암 송시열이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남인의 대표격인 삼척부사 미수 허목이 듣게 되었습니다. 

이 때 허목은 약을 지어 송시열에게 보냅니다. 송시열은 독이 들어있을 수도 있으니 먹지 말라고 만류하는 수하의 사람들을 꾸짖고 약을 먹은 뒤에 고맙다는 서찰을 허목에게 보냅니다. 이들은 피차 이른바 정치적 단수가 높은 사람들입니다.
병든 약자에 대한 배려는 아무리 해도 과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베푼 자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합니다. 반대로 정치적으로 정적관계를 떠나서 베푼 자에 대한 감사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아니합니다. 극진한 감사는 자신에게 오히려 유리합니다. 
삼국지에서 촉나라 제갈공명은 오나라 장수 주유의 죽음 앞에서 극진한 예를 올렸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예우는 아무리 지나쳐도 자기편에 실(失)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에 대한 애도는 인간의 당연한 도리이기도 합니다. 

일각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자살과 서거를 놓고 논쟁이 치열합니다. 사전적 의미의 서거(逝去)는 떠날 서자와 떠날 거자를 써서 사거(死去)의 높임말입니다. 즉 사망(死亡)을 높여서 부르는 말입니다. 
이외에 사람의 죽음을 별세, 작고, 타계 등과 같이 존경의 대상이나 지위가 높은 분의 죽음을 나타낼 때 쓰고 있습니다. 병으로 죽으면 병사(病死)가 됩니다. 살해를 당했으면 피살(被殺)이 됩니다. 자결로 죽었으면 자살(自殺)이 됩니다. 그러나 자살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생각해서 더 좋은 예우적 단어를 찾아보는 것도 지혜일 것입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죄인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무죄 추정 원칙'이 우리나라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헌법 제 27조 4항에는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5년 동안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의 명예와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유감스러운 것은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 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국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분이 서민 대통령이었다는 것과 갑작스러운 죽음이었다는 것과 상대적으로 약자에 대한 우리 국민적 정서가 빚어낸 조문행렬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옛날 우리 사회가 어려울 때 어머니들이 자기만 생각했다면 자살한 여인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자식을 내팽개치고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들은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가문의 명예와 혈육의 명예와 자식들의 장래를 생각해서 그 어렵고 냉엄하고 답답한 세상을 운명처럼 살면서 가정을 지켜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의 시세를 알아야만 합니다. 관념적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적, 종교적, 윤리적으로 소돔 땅에 사는 롯과 같은 느낌을 못내 지울 수가 없습니다. 
시세를 아는 것으로 끝나면 정치적, 군사적, 종교적 이성주의자가 될 뿐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할 일을 명령하셨습니다.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이 국민에게 사죄를 고하고 사표를 내는가 하면 서울대학교 교수 124명과 중앙대학교 교수들이 시국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 성명의 대의명분은 민주주의 후퇴와 위기라는 대략입니다. 
이 위기의 때에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마땅히 할 일이 있다는 것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차이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마치 권투선수가 사각의 링에서 피할 수 없듯이 닥친 현실을 피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어렵고 전쟁의 위험이 있다고 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것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난국의 시대에 마땅히 행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 답은 우리를 향해 시세를 알고 마땅히 행하라고 명령을 하신 분에게 있습니다. 바로 성경에 마땅히 우리가 행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이 난국에 마땅히 행할 것을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삶입니다.

예수는 영생입니다(요 4:14). 예수는 부활입니다(요 11:25). 예수는 평화입니다(눅 2:14). 예수는 승리입니다(골 2:15). 예수는 희락입니다(롬 14:17). 예수는 지혜입니다(눅 11:49). 예수는 충만입니다(요 1:16). 예수는 지배입니다(마 2:6). 예수는 능력입니다(고전 5:4). 예수는 기적입니다(시 40:5). 예수는 빛이십니다(요 1:9). 예수는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골 1:16). 예수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히 1:3). 예수만이 우리의 영광입니다(고전 2:7). 예수만이 처음입니다(계 1:17). 예수 만이 나중입니다(계 21:6). 예수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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