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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용사 기드온 (삿 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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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용사 기드온 (삿 6:11~18)

  
‘수잔 보일’이라는 영국의 47세 된 한 노처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뚱뚱하고 외모도 그리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녀가 영국 TV에서 하는 스타발굴프로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천상의 노래같이 잘 불렀다고 합니다. 이것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고, 1700만 명의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노래가 나간 이후에 전화가 빗발치게 오는데, “영화를 제작하자.” “우리 출판사에서 당신의 자서전을 내고 싶다.” “음반을 내고 싶다.” 이런 연락들이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수잔 보일’은 12살 때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한 경험 외에는 노래한 경험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어머니를 돌보느라 결혼도 미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모험을 해라.”라는 유언을 하셨습니다. 인구가 5천명도 안 되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는 그녀가 그 유언에 용기를 내고 이 스타발굴프로에 나와서 노래를 불렀는데,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TV에도 강호동이 진행하는 ‘스타킹’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스타중의 왕을 뽑는다는 프로입니다. 뭐든지 재능이 있는 사람, 노래든지 춤이든지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영국의 그런 비슷한 프로그램에 이 ‘수잔 보일’이 나가게 된 겁니다. 만약에 이 47살의 노처녀가 이 프로그램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는 조그만 시골동네에서 조용히 인생을 마감했을 겁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들이 있는데, 그것을 계발해 보지도 못하고 쓰러져 간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몇 명의 학자들이 원숭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우리 속에 원숭이 4마리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 막대기 하나를 세워놓고 그 막대기 끝에 원숭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바나나를 매달아놓았습니다. 배가 고픈 한 마리의 원숭이가 그 막대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그 바나나를 먹으려는 순간에 사람이 보고 있다가 원숭이들이 아주 싫어하는 차가운 물을 양동이로 쏟아 부었습니다. 물세례를 맞은 원숭이는 깜짝 놀라 뛰어 내려옵니다. 그 다음 또 다른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기 위해 올라가다가 똑같이 물세례를 맞았습니다. 결국 4마리가 모두 물세례를 맞았습니다. 그러자 이후에는 아무 원숭이도 바나나를 먹으러 올라가려하지 않습니다. 바나나를 먹으려 하다가 또 물세례를 맞을까봐 겁이 나서 아예 올라가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잠시 후 이 원숭이 중 한 마리를 빼고 이전 상황을 전혀 모르는 원숭이를 한 마리 집어넣었습니다. 이 원숭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막대기를 타고 바나나를 먹으려 올라갑니다. 그런데 물이 쏟아지기도 전에 그 원숭이를 제어하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다른 3마리의 원숭이가 그 올라가는 원숭이의 다리를 붙들고 못 올라가게 하는 것입니다. “올라가지 마. 올라가면 물세례를 맞아.” 영문도 모르고 끌려 내려온 원숭이는 같이 바닥에 앉아 있게 됩니다. 다시 또 이전 원숭이를 한 마리를 꺼내고 새로운 원숭이 한 마리를 집어넣었습니다. 이 원숭이도 같은 상황을 겪게 됩니다. 결국 아무 원숭이도 바나나까지 올라갈 수 없습니다. ‘그 바나나는 먹을 수 없는 건가보다.’하고 아예 포기해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그렇습니다. 과거에 실패의 부정적인 암시를 받은 분들은 무엇이든 안 하려 합니다. ‘해봐야 또 실패할거야, 해봐야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우리 사업에서도,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한두 번 실패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안 하려고 합니다. 또 누가 하려고 하면 말립니다. 잡아 끌어내립니다. 그래서 인생의 성공자가 적은 것입니다. 여러분! ‘수잔 보일’이라는 여성은 아마 남들이 알면 다 말렸을 것입니다. “그 외모에, 그 나이에 어디 TV를 나가.” 노래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성악공부를 한 사람도 아니지만 용기를 가지고 도전할 때 그녀는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고 위대한 스타로 발돋움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자신을 평가하는 법에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먼저는 자기가 자신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대게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안 줍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등감에 빠져있거나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메뚜기 같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합니다. 12명의 정탐꾼 중에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돌아보고 와서 하는 이야기가 “우리는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정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내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인데.’ 이런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메뚜기 자화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남이 자신을 평가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평가를 해 주면 그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부정적인 평가를 해 주면 그 사람의 인생에는 그것이 부정적인 암시가 되어서 늘 거기에 짓눌려서 살아가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할 때 부모들이 자꾸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그 아이는 결국 그 부정적인 이야기의 노예가 되어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부모가 하는 계속 꾸짖는 말을 반복합니다. “너는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냐?, 돌대가리야!” 자꾸 그러면 그 말이 그의 일생을 지배하고 맙니다. ‘뭘 해봤자 나는 못하는 존재야.’ 그러나 부모가 그가 못하는 것이 많더라도 잘하는 것을 자꾸 격려해줄 때 마지막에 그는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면 아주 재미있는 한 마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하면 그 죄를 범한 사람을 마을 사람들 중앙에 세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후 돌을 던지거나 비난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그 사람이 비록 실수했지만 그 사람에게 평소에 살아오면서 볼 수 있었던 장점을 한 가지씩 이야기 해 주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래도 참 성실합니다.” “인정이 참 많은 사람입니다.” “내가 당신이 어려운 사람에게 떡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사람입니다.” 돌아가면서 그 사람에게 한 마디씩 칭찬을 다 합니다. 그것은 진심이 담긴 칭찬이었습니다. 비꼬는 투가 아니었습니다. 한 바퀴를 돌게 되면 그 사람은 결국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못하는 것을 계속 지적당하면서 변화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칭찬을 계속 경험하게 되면 결국 그는 새로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남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서로에게 말할 때 늘 격려와 칭찬으로 서로를 축복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은 참 훌륭하게 될 분이시군요.” 이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지 모릅니다. 만나면 서로에게 자주 이야기 해 주십시오.

‘저스트 윌리엄 미니츠’라고 하는 미국의 유명한 제독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미니츠’라는 이름의 함대가 있을 정도입니다. 이 사람이 초임장교로 소위로 임관하고 배에 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배에서 방송이 나왔습니다. “우리 대장께서 지금 어디로 급히 출타하셔야 하는데 준비해 놨던 대장 계급장이 망가져서 못 쓰게 되었다. 혹시 이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 중 대장계급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있으면 지금 즉시 가져오면 큰 도움이 되겠다.” 그 때 이 ‘미니츠’ 소위가 그 광고를 듣고 자기 품속에 있는 이 대장계급장을 가지고 제독에게 가서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아니, 자네는 계급이 소위인데 어떻게 대장 계급장을 품에 가지고 있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해군 소위로 임관할 때 제 사랑하는 애인이 와서 앞으로 제가 큰 제독이 될 사람이라고 하면서 제게 대장계급장을 주었습니다. 제가 그래서 이것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독이 매우 고마워하면서 “여보게! 당신은 분명 훌륭한 제독이 될 걸세.”하며 격려해 주었습니다. 결국 ‘미니츠’ 소위는 훌륭한 제독이 되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은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야.’라고 생각할지라도 남들이 자꾸 그를 격려해줄 때 그는 결국 위대한 제독이 되어서 그의 이름을 딴 유명한 함선까지 나오는 훌륭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런가보면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평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시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설계해 놓으신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일주일 동안 온 세상 만물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6일째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사람을 만드시고 나서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든 다음에는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했는데 인간을 만든 이후에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서로에게 “당신은 보기에 심히 아름답군요.”라고 인사해 주십시오. 나쁘지 않으시죠? 남자든 여자든 아름답다고 하면 좋아합니다.

어제 우리 교회에 영등포 구립합창단이 와서 찬양 연습할 일가 있어서 제가 잠깐 가서 인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합창단 중에 우리 집사님 한 분이 계신데 나중에 오셔서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분들이 목사님 인상이 참 좋다고 하던데요.” 그 말을 들으니 제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지나가는 말로 하셨을 수도 있지만 뭐 거짓말로 하셨겠습니까? 아무튼 그래서 어제 하루 상당히 기분이 좋았습니다. 우리에게 서로가 무심코 주는 격려가 큰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아름다운 ‘오리지널 디자인’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대하게 쓰임 받도록 창조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위대하게 쓰임 받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 마음속에 죄 때문입니다. 죄가 주는 부정적 생각 때문입니다. 사탄 마귀는 오늘도 우리에게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너는 별 볼일 없는 존재야. 너는 아무것도 못 할 거야. 너는 성공할 수 없어. 너는 실패하는 존재야.’ 자꾸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직장에 나가 적응을 못 할 거야. 너는 인간관계가 별로잖아. 너는 술도 못 마시잖아. 너는 기도도 못하잖아. 너는 전도도 못하잖아.’ 자꾸 부정적 암시를 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설계하신 ‘오리지널 디자인’의 삶과는 전혀 동떨어진 삶을 살게 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 본문에서 보는 기드온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아름다운 ‘오리지널 디자인’을 가지고 계신데, 이 사람은 아주 소심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농부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그 당시 미디안에 의해 압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미디안이 공격해 와서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는데 견딜 수가 없습니다. 가을에 수확철이 되면 미디안 군인들이 와서 수확한 것을 다 빼앗아 갔습니다. 먹을 것조차 없습니다. 나중에는 종자까지 다 빼앗아가 버렸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살지도 못하고 산 속에 토굴을 짓고 거기에 들어가 살기도 하였습니다.

기드온은 밀을 타작하는데 포도주를 만드는 큰 포도주 틀에 들어가, 숨어서 밀을 손으로 비벼서 타작합니다. 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어찌 보면 소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서 말씀하실 때 그는 “나는 므낫세 중에 가장 작은 자입니다. 나는 우리 집안 중에 가장 연약한 자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합니다.” 라고 답합니다. 기드온은 열등감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겁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가능성의 문을 닫아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1절~12절을 함께 읽어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라고 부르십니다. 참 놀라운 선언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라고 말합니다. 열등감과 자기 폄하에 빠져있는 기드온에게 ‘큰 용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겁쟁이가 아닙니다. 도망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큰 용사입니다.

여러분! 용사라는 말은 인디언들이 원래 사용하는 전사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용사가 되는 것은 큰 명예입니다. 힘이 있고, 무술실력이 있고, 자기 부족을 사랑하는 남자들은 용사라는 칭호를 얻습니다. 자기 부족이 어려움을 당할 때 그들은 생명을 걸고 나가서 자기 부족을 대적에게서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전사들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오늘 하나님의 복음의 용사로 부름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향해서 “너는 큰 용사다. 너에게 사명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해 내거라.” 이 소심한 겁쟁이 기드온에게, 열등감에 빠져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너는 큰 용사다.”라고 격려하시면서 그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용사 같지 않습니다. 의심 많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장차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갈 때 그의 미래의 가능성을 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 미래를 보고 우리에게 큰 용사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 우리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큰 용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위대한 기적이 따라올 수 있는 것입니다.

유명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지나가다 큰 바위를 보았습니다. 길에 버려진 바위입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그 바윗덩어리를 보고 미켈란젤로는 감탄을 하면서 "저 바윗덩어리에서 위대한 다윗이 걸어 나오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말대로 그 바위를 가져다가 잘 조각해서 위대한 ‘다비드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예술가의 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부족하고 볼품없는 우리들 속에서 위대한 미래의 하나님의 백성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격려해 주고 계십니다. 너는 큰 용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에게 어떤 소명을 말씀해 주십니까? 14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이스라엘을 ‘너의 손으로’, ‘너의 힘으로’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이 이야기는 “기드온아! 네가 가진 힘을 다 동원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고 네가 나를 의지할 때 내가 너에게 힘을 주어서 너는 능히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힘으로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는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용사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진리입니다.

오늘 기드온이 우물쭈물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출애굽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어느 날 모세를 찾아오셨습니다. 모세 나이는 이미 80세입니다. 그는 양치는 목동으로 40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는 과거 화려한 왕국에서 살았던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모세야! 네가 이제 이집트 바로에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에게서 건져내어라.” 모세는 말합니다. “내가 누구관대 감히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입이 둔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핑계 아닌 핑계를 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를 격려하십니다. “내가 말 잘하는 네 형 아론을 너에게 붙여줄 것이다.” “저는 능력이 없습니다.” “너의 지팡이를 내밀어봐라.” 그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다시 뱀이 지팡이로 변하는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시면서 지팡이를 잡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시대의 전도자로 세워주셨습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베드로와 요한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처럼 오늘 우리들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르시는 것도 재미있으십니다. 고기 잡는 어부들에게 낚긴 낚는데 고기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는데 그를 들어서 밀 타작이 아니라 미디안 대군을 타작할 위대한 인물로 그를 세워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들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그 일은 위대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보니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증거할 사람으로 내가 너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우리는 작정도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을 가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초청장도 전달해야 합니다. 권면도 해야 합니다. 용기가 나십니까? 아마 피할 수만 있다면 지금도 피하고 싶은 분들도 많으실 것입니다. 마치 시험공부 안 한 학생이 ‘내일 우리 학교 불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피할 길은 없습니다. 6월 14일 초청 잔치는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이 작정한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두려움이 있습니까? 주저함이 있습니까? 염려됨이 있습니까? 

오늘 기드온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14절 후반절에 보니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우리를 파송하시는 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면 하나님이 나를 책임지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기드온을 파송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16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혹시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해놓고 함께 하지 않으시는거 아냐?’ 걱정할까봐서 ‘가다보니 하나님 쏙 빠지고 나만 혼자 가는 거 아닌가?’ 걱정할 까봐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기드온 시대에만 함께 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에 보니까 마지막 유언인 전도의 명령을 주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것만이 아닙니다.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하듯이 하리라. 13만 5천명의 미디안 대군과 싸우는데 마치 한 사람을 치듯 그렇게 너희들은 승리할 것이다.”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싸움은 이미 이겨놓고 싸우는 싸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싸움을 우리가 순종하며 나아갈 때 그 승리가 내게도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미 이긴 싸움입니다. 이미 보장된 승리입니다. 

여러분! 결국 기드온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전쟁에 나갈 백성들을 모아봤더니 3만 2천명이 모여졌습니다. “하나님! 이 3만 2천명 다 데리고 나갈까요?” “너무 많다. 겁내는 사람은 다 집에 돌려보내라.” 그렇게 돌려보내고 나니 만 명이 남았습니다. “하나님! 여기 만 명 데리고 나가서 13만 5천명과 싸울까요?” “아니야. 아직도 너무 많다. 좀 돌려보내라.” 그래서 물을 겁쟁이처럼 먹는  사람은 다 돌려보냈습니다. 이제 300명이 남았습니다. 300명을 데리고 나가 미디안 대군과 싸워서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왜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 승리의 힘은 기드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누가 봐도 300명을 데리고 나가서 13만 5천명과 싸웠다면 “야! 기드온 참 훌륭하다. 힘이 대단히 세다.” 이렇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가능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하나님이 철저하게 의지하고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나갈 때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늘 내 능력을 의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생명을 부어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어린 계집종 앞에서 3번이나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때 그는 3천명 앞에서 담대하게 설교했고, 공회 앞에서 예수님 때문에 핍박받고 조롱받았지만 당당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에 능욕 받는 자로 쓰임 받는 것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왔습니다. 그는 당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니까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은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뭐 다 옛날이야기지. 믿을 게 어디 있어?’ 이런 사람은 아무 일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연약한 농부, 열등감에 빠져있는 농부 기드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갔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위대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그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너무 감사해서 그가 먹을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양을 잡아서 고기를 준비하고, 떡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을 제단 앞에 갔다 놨더니 거기에 하나님께서 불을 내리셨습니다. 그 불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우리가 성령을 의지할 때 우리는 힘 있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사울 왕이 보잘것없는 겁 많은 시골 청년이었지만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할 때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블레셋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어린 목동이었고 양치는 시골 소년에 불가했지만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할 때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넒은 영토를 차지하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쓰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머릿속에 관념적인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지식적으로만 하나님을 믿습니까? 여러분이 신앙이 체험적인 신앙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 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다.’ 이런 체험적인 신앙이 될 때 우리는 기드온처럼 쓰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비전이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교회가 내세울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지역에서도 유명한 교회가 아닙니다. 교단 내에서도 내노라하는 교회는 아닙니다. 재벌, 회장들이 나오는 그런 부자 교회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에 ‘우리교회는 위대하게 쓰임 받을 교회야. 내가 교회를 들어서 위대하게 사용할거야.’라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 분들을 통해서 그런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런 비전과 꿈을 보여주십니다. 

앞으로 우리교회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놀랍게, 참으로 부강하게 발전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직장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위대한 젊은이들이 많이 배출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런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믿고 나아가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이고, 나 같은 게 뭐’, ‘우리 처지에 뭐’, ‘아직 지하실 월세 방에 사는데’, ‘우리 교회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해?’ 이런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고 싶어도 아무 것도 하실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예민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순종하시고 두 주간의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오셔서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경험하실 때 여러분이 위대한 전도자로 쓰임 받을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확신! “큰 용사여, 너는 큰 용사다.”라는 이 놀라운 하나님의 선언을 마음에 세기고 성령을 의지하고 나아가 전도할 때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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