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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이곳에 오신 성령님 (요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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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신 성령님 (요 14:16~20)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1. 시작하면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위로와 약속을 남기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요 14:1a)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새로운 세계 곧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며 그 나라 시민의 삶을 실천해보이시던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3년 남짓 함께 하시고는 그 곁을 떠나셨습니다. 남겨질 제자들이 오히려 염려가 되시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하시며 돌아올 것이란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마치 그들이 아버지를 잃은 고아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주님의 이 말씀이 너무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고아 같은 세상이요 시대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끼리만 있는 고아원 같습니다. 아버지가 없습니다. 있어도 무시하는 듯. 아니면 정말 없는지, 아무튼 현실은 부모 없이 아이들끼리 살면서 고함치고, 싸우고, 힘 센 형이 동생의 것을 빼앗아 먹거나, 아니면 덩치 큰 동생이 힘으로 형을 밀어붙이고 형 자리를 차지하려는 그런 하극상도 엿보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의 유아기적 병을 앓고 있는 사회 모습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버젓이 살아계실 때에 그들은 예수님 앞에서 자리 다툼을 벌였던 주인공들입니다. 어머니를 동원한 치맛바람까지 일으켜서 권력을 탐내는 모습을 노출시켰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을 떠나려는 예수님의 마음에는 남겨질 제자들이 염려가 안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시 오마!”라고 약속 하셨는데, 사실 이 약속은 그들에게 경고를 담은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가 외출하면서 놀고 있는 형제들에게 “엄마 곧 오니까 너희들 숙제 다 해놓고 일 내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라는 말과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님이 다시 와 그동안 우리들이 행한 일들을 심판하신다는 것만이라도 깨닫고 정신 차린다면, 우리 사회는 반드시 변할 것입니다.       

2. 다른 보혜사를 보내리라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이 돌아올 그 날까지 제자들을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려고 다른 보혜사를 보내리라고 약속을 보태셨습니다. 실제로 이 약속은 성취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오순절에 약속의 성령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성령을 받은 후 고아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안에서 진정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 계실 때보다도 복음 전파를 위하여 생명을 내어놓고 온전히 헌신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약속의 성령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푸는 열쇠가 곧 성령을 만나는 것입니다. 오늘은 교회력으로 오순절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탄절,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3대절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성탄절만큼 중요한 날입니다. 성령이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었을 것이고, 여전히 우리는 죄를 이기지 못한 체 소망 없는 자와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간에 성령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립시다. 이유는 성령님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열기나 영향력 정도가 아닙니다. 곧 창조주이신 성부 하나님과 우리 죄를 속량하신 구세주 성자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존재와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고 동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다른 보혜사”라고 지칭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예수님도 “보혜사”이시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란 ‘곁에서 들으시는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즉 우리의 사정을 다 살피시고 다 들으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임을 의미합니다. 일전에 소개해드렸던 책 윌리엄 폴의 “오두막”(The Shack)에서는 정원을 가꾸는 동양 여인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정원은 곧 하나님의 정원으로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 정원이 엉망진창 같은 혼돈과 무질서의 정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라유라고 불리는 성령은 그것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무도 아름답게 가꾸어가는 정원사였습니다. 그 비결은 곧 관계회복이었습니다. 혼돈과 무질서는 인간의 (하나님으로부터)독립하려는 자유의지 때문에 빗어진 것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치유되어지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며 우주 안의 모든 존재들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는 제자들에게 보내실 성령님은 영원토록 그들과 함께 하실 분이라고 하십니다(16b).
둘째로 진리의 영인데 그 영은 제자들 안에 계실 것이라고 했습니다(17). 
셋째는 십자가 죽음 후 그리고 부활 후 세상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는데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볼 수 있게 될 터인데, 그 능력을 곧 성령님이 주실 것이란 것입니다(19-20). 

이로써 고아같이 버려진 것 같으나 도리어 주님과 함께 항상 살 수 있는 능력을 덧입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예배에 참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는 바로 성령님을 주신 은혜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맘아 오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고 지금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때때로 아니 삶의 현장에서 대부분의 시간에 성령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살지라도 성령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때때로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성령님은 우리 사정을 아시고 우리의 대적을 심판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금번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서 그 분의 살아온 역정과 삶의 자세는 우리가 본받고 기려야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그분이 선택한 길은 비신앙적인 태도였습니다. 성령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시리란 약속을 믿읍시다.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제자 공동체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개인적인 임재 뿐 아니라 제자 공동체 곧 신앙공동체인 교회에서 활동하십니다. “너희 속”(in you)에 계실 것이란 말씀은 "너희“가 2인칭 복수일 때는 너희 가운데(among you)를 의미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령안에서 맺어진 공동체입니다. 우리 각자가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되었고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그 우리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에서 고아와 같이 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어떤 공동체도 그 실존은 외롭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있음에도 외롭고, 동지들이 있음에도 고독합니다. 이유는 그 끈이 물질적인 것이고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끈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는 금번 노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수백 만 명을 하나로 묶어내는 모종의 힘을 보았습니다. 그 힘은 곧 슬픔이었습니다. 슬픔의 감정도 수백 만 명을 그렇게 끈적하게 묶어주었다면 성령님은 우리를 얼마나 강하게 묶을 것입니까? 문제는 우리가 성령님에게 우리 자신을 맡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장례식 조문객들은 슬픔에 그들의 감정을 내어맡겼습니다. 노인도 젊은 청년도 슬픔의 감정에 자기를 맡겨버림으로 하나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성령님에게 우리의 의지를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놀라운 기적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느끼게 됩니다. 보게 됩니다. 세상은 보지 모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나사렛 예수를 보고 느끼며 만남의 체험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우리는 교과서적인 신앙을 갖고 하나님을 논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 보내주신 진리의 성령님이 내쉬는 그 숨결을 함께 마시며 진리의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합니다.

3. 마무리하면서

오늘 우리의 역사에 성령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님만이 우리 인간의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성령님이 없으면 우리는 항상 우리의 문제 곧 자기의 고통만 바라보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괴로운 인생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두막”에서 파파 곧 하나님과 주인공 맥의 대화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맥이 자기 딸의 비참한 죽음을 예수님의 죽음으로 비유하면서 “왜 그를 십자가에 버려느냐?”고 하나님께 항의를 할 때 파파 하나님은 “그 때 우리는 함께 있었어요” 그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맥 나는 예수를 버린 적도, 당신을 버린 적도 없어요”
“당신이 오로지 자기 고통만 바라보고 있으면,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봤나요?”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의 고통은 “자기에게 집착했을 때” 우리는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에게 오신 성령님께 마음 문을 엽시다. 그러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넘어서 하나님의 평화인 샬롬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결단의 선언>
1. 성령 하나님께 예배하며 그 부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겠습니다
2.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심을 믿으며 의지하겠습니다
3.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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