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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의 잔치 (눅 15: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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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잔치 (눅 15:17~24)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에나 축제의 문화가 있습니다. 요즘은 정보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각 나라와 민족이 지니는 노래와 춤, 또는 전통적인 음식과 고유한 문화를 어디에서나 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도 축제문화가 있습니다. 예배와 의식이 있고 감사와 찬양과 경배의 문화가 거기에 해당됩니다.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만 참여하는 사람 모두에게 큰 기쁨과 축복이 되는 행사입니다. 오늘 2009 우리교회 복음축제에 즈음하여 하나님 나라의 축제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축제의 이유는 회복입니다. 

성경적인 축제는 범죄한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되고 구원 얻은 기쁨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탕자 비유도 집을 나간 아들이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아들의 지위를 회복받게 된 것을 기뻐하고 축하하는 내용입니다(22-24절).

1) 노예에서 회복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최대의 축제일은 유월절(逾越節)입니다. 야곱의 자손이 애굽에 내려가서 오랜 세월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힘입어 출애굽하게 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소중히 여기시고 그들을 바로왕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신 7:8).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너를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하고 그 백성이 지킬 율법의 전문에 이를 명시하였습니다(출 20:2). 이후에 수 천 년이 지나도록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날을 최대의 명절로 지키게 하였습니다(출 12:42).

2) 마귀의 속박에서 회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했던 아픈 경험이 있습니다. 포로시대의 고통을 체험한 그들은 훗날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하고 회복의 감격을 노래하였습니다(시 126:1).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회복된 것이나, 또 지긋지긋한 바벨론 포로에서 회복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와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61:1). 성경은 아담의 죄로 인하여 모든 인류가 다 죄의 종으로 멸망에 이르렀다고 하였습니다(롬 5:1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아들로 회복되었습니다(롬 3:23-24).

3) 잃은 것의 회복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은 잃은 것을 다시 찾은 기쁨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일백 마리의 양떼 가운데 한 마리의 양을 잃은 목자가 그 아흔아홉 마리를 그냥 둔 채 한 마리의 양을 찾아오는 기쁨입니다(3-7절). 두 번째는 열 드라크마 중 하나를 잃은 여인이 방에 불을 켜고 온 집을 뒤져가며 결국 찾아내는 내용입니다(8-10절). 그리고 여기 탕자 비유에는 아버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던 아들이 죽을 지경이 되어서야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소개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맞이하면서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하고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비유들은 똑같이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2. 축제의 내용은 감사와 보답입니다.

축제에는 감격이 있습니다.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연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이 마음고생을 하였을 것입니다. 멀리서도 돌아오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등 기쁨을 표현하였습니다.

1) 기억하는 것입니다. 

신명기 32:7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버지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이 먼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고 번영을 이루었을 때 옛날 그들의 조상이 겪었던 고난의 날들을 기억하면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유월절의 경우, 절기 칠 일 동안 어린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구워서 먹되, 누룩 없는 떡과 쓴 나물과 함께 먹고 또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고 하였습니다(출 12:1-11). 이와 같은 의식은 절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옛날을 기억하는 사람이 오늘의 감격을 기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감사하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의 축제는 단순히 사람들의 즐기는 문화로 인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축제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신앙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로 감사와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옛날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다음 여호와의 구원을 노래하는 찬양을 드렸습니다. 모세의 노래에 이어서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소고를 잡고 춤을 출 때, 모든 여인도 덩달아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즐거워하였습니다(출 15:20).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구원받은 은혜에 대한 감격입니다. 오랜 노예 생활에서 자유함을 받은 것이 은혜이고 또 홍해의 물길을 끊고 기적적으로 건너오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시 136:1-26).


3) 보답하는 것입니다.

시편 116:12-14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 보답하게 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절기를 지키는 사람이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였습니다(출 23:15). 출애굽기 23:19에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사람은 백성을 섬기는 것으로 하나님께 보답 하여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25:40).

3. 축제의 결과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입니다.

본문 말씀 22-23절에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잃은 양을 찾은 목자와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과 그리고 잃은 아들을 찾은 아버지는 다 같이 잃은 것을 찾았다는 기쁨을 마음껏 표현하고 있습니다. 잃은 자의 아픔이 크면 클수록 찾고, 회복된
것에 대한 기쁨은 더욱 배가됩니다. 아들이 돌아오자 아버지는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쌓인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종들을 불러놓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게 하였습니다. 또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고 하였습니다(23절). 아버지는 이렇게 많은 물질을 아낌없이 내어 놓으면서 그의 즐거움을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였습니다. 교회는 많은 물질과 정성을 모아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드러내는 잔치를 해야 됩니다.

2) 사람들과 함께 하는 기쁨입니다.

축제의 잔치는 이웃과 어울려서 같이 먹고 즐기며 축하하는 것입니다.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은 목자는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잃은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도 벗과 이웃을 불러모으고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고 하였습니다(9절). 돌아온 아들을 반갑게 맞이한 아버지도 많은 음식을 장만하고 이웃을 초청하여 같이 즐기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제에는 소외된 사람이 없어야 됩니다. 오히려 밖에 있거나 멀리 나간 사람을 불러모으는 잔치여야 됩니다. 예수님은 그의 천국운동을 마치 아들의 혼인잔치를 배설하고 손님을 불러오게 하는 임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마 22:1-14).

3) 가장 큰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0:31). 하나님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며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동참하는 것이 최상의 행복임을 알아야 됩니다(마 25:21). 집에 있던 큰 아들은 아버지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했습니다. 스스로 아버지를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은 아버지의 마음과 동떨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평소 아버지의 집에서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었으나 그것이 행복인줄 모르고 살았습니다(31절). 그것은 다른 사람을 향한 그의 마음이 닫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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