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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속을 참고 기다리면 (창 35: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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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참고 기다리면 (창 35:9~15)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주시고자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받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건강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 사업이 잘 되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승진이 빠르고 가정에서 자녀들도 공부도 잘하여 좋은 학교에 쑥쑥 잘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실제적으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중에 건강이 연약한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 교인들중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이들중에 사고와 실패와 온갖 복잡한 문제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예수를 잘 믿으면 온갖 좋은 복을 세트로 받을 줄로 기대하였는데 믿음의 여정속에 만나는 고난과 어려움으로 인해 회의에 빠지는 분들이 많습니다. 물론 우리가 범죄하고 하나님을 거스리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난과 실패가 다 징계는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믿음을 소유하고 아름답게 헌신하는 사람들의 삶속에도 어려움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받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때 하나님은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시며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시겠지요?  야곱입니다. 야곱은 뱃속에 있을때부터 하나님이 택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이 어떠했습니까?  고난으로 꽉찬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야곱 자신의 말로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앞에 섰을 때, 야곱의 나이가 130세였습니다. 이 때는 7년 풍년이 다 지나가고 흉년이 한창 진행될 때이므로 30세에 총리가 되었던 요셉의 나이가 약 40세 정도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90세 경에 요셉을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낳을 때에 비로소 야곱은 외삼촌과 품삯을 정하고 일하는 일꾼이 된 것입니다. 그 이전에 14년동안 아내 레아와 라헬을 위해 무료로 봉사했습니다. 6년동안 자기 몫의 품삯을 받으며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계산에 의하면 야곱은 70세가 넘어서 외삼촌의 집에 와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 나이가 되도록 야곱은 결혼도 못한 노총각중에 노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였습니다. 147세까지 살았으니까 인생의 절반은 허탕쳤고 인생의 10분의 1일은 노동의 댓가를 착취당했습니다. 그리고 백살이 다 되어 자기 가족을 이끌고 외삼촌의 집에서 몰래 도망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약속받고 태어난 야곱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복과 거리가 먼 인생을 산 것처럼 보입니다. 형의 배고픔을 이용하여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던 야곱이었건만 야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절망 투성이의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쌍둥이 형 에서는 이미 결혼하여 여러 아내를 두고 자녀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에서는 사냥꾼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아무것도 없을 때 에서는 이미 들에서 맹수와 겨루어 이길 정도의 강인한 체력과 400명이나 되는 장정을 거느릴 정도의 세력을 소유했습니다.

야곱은 70이 넘도록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간절히 기다렸으나 수중에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더 기다려야 할까요? 여러분이 이런 상황이라면 낙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가면서 축복기도를 가로챈 사건이 이해되십니까? 그렇게라도 하며 속임수라도 쓰지 않고는 알거지로 비참하게 인생이 끝날 것 같은 두려움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몸부림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다른 사람들이 은퇴하여 편안히 노후를 보내는 나이인 70이 넘어서 가족과 고향을 등지고 빈털털이로 나그네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외삼촌에게 찾아갔지만 교활한 외삼촌에게 여러 차례 속임을 당하고 이용만 당하며 90이 다 되도록 여전히 빈털털이 인생이었습니다. 
  
야곱은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 90이 넘도록 밤을 낮삼아 부지런하게 열심히 일하며 복이 임하도록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아내들과 자식들은 생겼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무일푼이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은 혈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카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하려고 수많은 거짓말을 일삼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은 자신의 수단으로 복을 받아보겠다고 몸부림을 칩니다. 외삼촌과의 계약에서 야곱의 품삯은 양떼가 새끼를 낳을 때 아롱진 새끼였습니다. 야곱은 더 많은 재산을 확보하기 위해 양들이 교미를 할 때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서 그 앞에 놓아두었습니다. 정말 그 방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태어나는 것마다 튼튼한 것은 전부 야곱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매우 번창하여 몇 년 지나지 않아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매우 많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정말 그런 방법들을 사용하여 자기가 부자가 된 줄 알았습니다. 자기의 꾀로 외삼촌의 몫으로 돌아갈 새끼 양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말씀셨습니다. "야곱아, 네 눈을 들어 보라 양떼를 탄 숫양은 다 얼룩 무늬 있는 것,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니라. 라반이 네게 행한 모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야곱은 깨닫습니다. '아하! 내가 스스로 지키려고 몸부림쳐서 여기까지 이른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이 외삼촌이 나를 해치지 못하게 보호하셨구나!' '외삼촌이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내가 큰 부자가 되었구나!'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족들과 가축들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형 에서가 두렵습니다.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기도를 빼앗긴 형 에서의 마음이 풀렸을까?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했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그 미움과 살의가 사라졌을까?'  야곱은 형 에서가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자기를 맞으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형 에서의 손에서 건져내시옵소서.' 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밤을 새워 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구하며 붙잡고 늘어지는 야곱에게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십니다. 
  
그렇게 긴밤이 지나고 햇빛 찬란한 아침이 왔을 때 야곱은 담대하게 형 에서를 만날 용기를 얻어 나아갑니다. 그렇다고 형 에서가 야곱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섬겼다는 말슴은 없습니다. 오히려 야곱이 일곱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형 에서에게 나아갔습니다. 무엇을 한 것입니까? 형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한 것입니다. 그런 야곱의 모습에 에서는 용서하고 얼싸안고 함께 웁니다. 그 이후에도 형 에서가 야곱을 섬겼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장자권을 빼앗았기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거짓으로 속여 축복기도를 받았기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마 하신 말씀을 믿고 하나님만 끝까지 의지하였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렇게 밤을 새워 기도하며 하나님과 씨름했었건만 하나님을 만나 축복을 받았건만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셨는데 벧엘을 통과하여 밧단아람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세겜땅을 사서 그곳에 정착합니다. 자신의 눈에 기름지고 풀이 많은 세겜땅에 정착하면 만사가 형통할 것 같았습니다. 형 에서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받단아람에서 성공한 경험으로 목축을 하면 몇 년 지나지 않아 거부가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20여년전에 빈털털이로 나그네가 되어 고향을 떠날 때 벧엘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세가지 서원을 했습니다. 무사히 돌아오게만 해 주신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잘 섬기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곳에 하나님의 전을 세우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세가지 중에 어느 하나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크게 복주셔서 부자가 되어 안전하게 돌아왔건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급할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며 부르짖더니 문제가 다 해결되자 다시 다 잊고 느긋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태한 모습으로 뺀질거리고 있습니다. 여러번의 위기에서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지도 않습니다. 맨손으로 시작하여 큰 부자가 되었건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납니다. 외동딸 디나가 세겜성 추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앙갚음을 하겠다고 앞 뒤 계산도 없이 오라비들이 속임수를 써서 세겜성 남자들을 칼로 죽이고 노략질을 했습니다. 세겜성과 동맹을 맺은 주변 족속들이 그 사실을 알고 공격해오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당황헤서 쩔쩔매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벧엘로 올라가라."  도망가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초청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을 생명처럼 여기라는 명령입니다. 그때 비로서 야곱은 20년 전 벧엘에서 만났던 하나님과 약속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네가 돌아오기까지 내가 너와 함께하고 너를 지켜주마."  그래서 야곱은 벧엘로 올라가며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란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그러자 사면 고을들의 모든 사람이 야곱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야곱을 두렵게 만드셨습니다. 벧엘로 올라가 서원대로 제단을 쌓고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라는 새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서 한 백성과 백성의 총회가 나오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복을 선언하심으로 진정으로 복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삶속에서 만나는 많은 사건들을 바라보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합니다.
비전과 사명을 발견하고 기쁘게 헌신하여 제자훈련을 열심히 받으며 믿음이 아름답게 성숙해가는 지체들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자랑스럽습니다.  그렇게 리더가 되어 열심히 기도하며 부지런히 사역하는데 열매가 잘 맺히지 않습니다. 셀이 부흥되기는 커녕 기존 멤버들조차 등을 돌리고 사역은 심한 어려움에 처합니다. 뭐가 문제일까? 아무리 찾아보아도 알수가 없습니다. 계속 사역을 해야할지 여기서 멈추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제가 잘 아는어떤 후배 전도사님은 신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수년동안 목회자 없이 버려진 시골교회에 자원해 부임하였습니다. 정말 흉가와도 같은 을씨년스럽고 열악한 작은 집에서 생활하며 열심히 목회하다 백혈병에 걸려 목사 안수도 받지 못한채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습니다. 목회초년에 그분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소명을 받고 비전에 사로잡혀 아골골짝 빈들같은 목회지에 헌신했는데 그럼에도 사역의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였는데 그의 삶과 죽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야곱이 하나님께 복을 약속받은 후의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그후에도 평탄하기만 하지는 않았습니다. 벧엘에서 돌아오는 길에 막내아들을 얻었지만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잃었습니다. 칠년의 힘든 노동을 수일같이 여길 정도로 사랑한 아내였습니다. 삶의 희망을 안겨주었던 아내였습니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그 라헬의 소생으로 야곱의 기대가 집중되었던 아들 요셉은 들짐승에 찢겨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백세를 훨씬 넘긴 노년의 야곱의 마음이 얼마나 찢어지듯 아프고 괴로왔을까요?  

그런 야곱이 이제는 큰 흉년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심하게 어려워졌습니다. 그렇게 야곱은 백삼십세에 또 다시 짐을 꾸려 애굽으로 떠나야만했습니다. 물론 애굽에 내려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던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어 있어 다시 만나지만 야곱은 다시는 고향땅을 밟지 못한채 타향에서 죽어갑니다. 
  
야곱의 일생을 돌아보면 평안하고 평탄한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밧단아람으로 떠나기 전에는 복받는 것에 집착하여 안절부절했고 밧단아람에서의 이십년은 속고 이용당하며 눈치보느라 피곤에 절어있었고 야반도주하며 불안에 떨었을 것입니다.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도 딸의 강간사건, 막내를 낳다가 맞은 아내 라헬의 죽음, 요셉의 실종등 헤아릴 수 없는 마음고생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땅 한평도 소유하지 못한채 애굽으로 내려가야 했습니다. 

그런 야곱의 일생을 바라보면서 여러분도 하나님께 복을 구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 복을 받은 야곱보다 차라리 복을 받지 못한 에서가 더 평안하게 더 잘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야곱처럼 되고 싶습니까? 에서처럼 되고 싶습니까? 
  
야곱은 애굽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나그네로서 외국에서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은 후 그의 자손들은 애굽에서 강성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약속하셨던대로 약속의 땅으로 이스라엘백성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에서의 후손인 에돔족속들은 야곱의 후손인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무릎을 꿂어야 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셨던 새 이름 이스라엘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야곱의 후손들을 통해 구원의 역사가 성취되었습니다. 

'과연 내가 받은 소명을 따라 주님을 위해 헌신한 나의 젊음이 의미가 있을까?' 저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했습니다. '내가 일생동안 이 교회를 섬기며 사역하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다음 주일이면 25주년입니다. 30세 젊은 전도사가 부르심에 순종하여 시작한 사역이 벌써 25년이 흘렀습니다. 아무 변화가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은 크게 역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함께 헌신하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기도와 수고가 아무 가치도 없는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별로 사랑받지도 복을 받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우리 세대에 초라하게 끝나고 만다고 할지라도 축복의 약속이 허공으로 날라가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고생이 헌신이 다 보석처럼 빛나는 상급이 될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에게 큰 축복의 열매로 맺힐 것입니다. 끝까지 흔들리지 말고 잘 달려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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