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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종 다윗의 집 (대상 17: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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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종 다윗의 집 (대상 17:16~27)


신자들의 집에 걸어 두는 액자 같은 것들을 보면, 대체로 인용되는 성구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중에 아주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사무엘하 7장 29절 말씀인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구절입니다.
그런 것이 사실 제가 미국에 살 때에 제 집에도 하나 있었습니다.
옛날 제가 주례했던 어느 신혼부부가 선물해 주신 돌로 만든 액자인데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구절이 아주 품위 있는 붓글씨로 새겨져 있는 것이 집의 현관에 걸어 놓기에는 딱 제격이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액자를 걸어 두는 마음 자세입니다.
그런 성구 하나를 집에 달아 놓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우리 집에 복이 부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부적 하나 붙여 놓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일종의 우상숭배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성구가 적힌 액자 그 자체가 집안에 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렇게 걸려 있는 액자를 통하여 그 말씀을 그 집안 식구들이 들어오며 나가며 항상 심령에 새김으로써 그 말씀에 따른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유명한 구절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뜻하는 바는 과연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다윗이 자기와 자기 집안을 두고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내용이었습니다.
액자의 구절은 주로 사무엘하에서 인용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오늘의 본문인 역대상 17장의 결론 부분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 본문에 기록된 긴 기도를 마감하는 다윗의 제일 마지막 말이 바로 "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라는 기도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의미했던 자기 집의 복이란 과연 어떤 것이었습니까?
이제 가정의 달 5월의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여 저와 여러분은 오늘날 자기 집안이 '주의 은혜로 영원히 복을 받게 되기를' 바라는 성도들은 과연 어떤 복을 귀히 여기고 사모해야 하는 것인지를 본문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성도는 자기 집이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해 쓰이게 되는 특권을 사모해야 합니다. 

본문 16절로 19절 말씀에 "16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17하나님이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작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하셨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 같이 여기셨나이다 18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에 대하여 다윗이 다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 19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을 위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이 모든 큰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앞에 나오는 17장 1절부터 15절의 말씀에 보면, 다윗이 자기가 성전을 지어 올리겠다는 소원을 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절하셨습니다.
그 대신에 다윗의 왕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집을 세우시고 당신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예언의 말씀을 내려 주셨습니다.
바로 그 말씀을 듣자마자 다윗은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라고 기록된 대로 본문 16절 이하에 나오는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자기의 집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그런 큰 역사를 이루겠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을 때 다윗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야말로 황공무지일 뿐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라는 다윗의 첫 마디는 바로 자기와 자기 집안은 아무 보잘것없는, 지극히 미미한 존재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로 이에 이르게" 즉 다윗 집안이 현재의 모습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한 목동에 불과했던 다윗이 이처럼 이스라엘의 왕가를 이루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실로 분에 넘치는 복인 것을 다윗이 지금 상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거기에서도 한술 더 뜨셨습니다.
바로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해 주셨다"고 다윗이 고백한 그대로였습니다.
다윗으로서는 지금까지 받은 것만 해도 과분하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다윗에게 주신 것을 "오히려 적게" 여겨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께서 자기 "집에 대하여 먼 장래까지 말씀해" 주신 것을 얼마나 더 큰 축복으로 여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이 자기 소원대로 되지 않은 것을 두고 조금도 마음에 섭섭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대신에 자기 아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작정해 주신 일에 대하여 그는 지극히 만족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의 집안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원한 당신의 왕국을 세우시겠다고 하셨을 때, 다윗은 그것을 두고 "여호와 하나님이여 나를 존귀한 자같이 여기셨나이다"라고, 그야말로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감사 감격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19절에서 다윗은 자기 집을 통하여 이루실 모든 일들은 "주께서 주의 뜻대로" 즉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서만 이루어질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그 일들은 "주의 종을 위하여" 하실 일이라고 했는데, 이 말은 '주의 종을 살피시어서'라는 뜻으로서 18절 끝의 "주께서는 주의 종을 아시나이다"라는 말과 일맥상통되는 말입니다.
즉 다윗 자신의 뜻을 따라서가 아니라, 다윗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는 판단을 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살피시고 판단하시고 쓰시기에 합당하신 대로 결정을 내리시고 그 큰 일을 위해 사용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처럼 자기와 자기 집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실 "이 모든 큰 일을 (자기로 하여금) 알게 해 주신" 것을 두고 다윗은 이처럼 크게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얼마나 특이한 감사였습니까?

자기 자식이 교회에 헌금을 많이 바치는 것을 두고 아까워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정말 유치한 부모입니다.
자기 부모가 신앙생활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것을 귀찮아하는 자식들도 있습니다.
실로 최악의 불효자식입니다.
자기 아내가 '사랑의 편지 쓰기'나 '예배당 청소 봉사' 등을 위해서 주중에도 교회에 나가는 것을 아주 못마땅해 하는 남편들도 있습니다.
실제로는 자기에게 과분할 정도로 훌륭한 아내인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지지리도 못난 남편인 것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 집안에 무엇을 많이 주셨다고 해서만 감사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집이 성전 건축과 교육관 구입을 위하여 아버지 대에서부터 아들 대에 이르기까지 최고의 것을 바치고 전부의 것을 다 드리고 섬기게 된 것을 다윗처럼 뛸 듯이 감사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 자기 대에 무슨 좋은 일이 터지겠다고 약속해 주셔야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교회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를 완성해 나가시는 이 큰 일에 우리 가문이 자자손손 대대로 쓰일 수 있게 되는 것을 두고 지극히 감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집안이, 자기 부모와 자기 자식이 하나님의 일에 더 많이, 더 크게 쓰이게 될 때,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자기 집안을 '존귀케' 해 주시는 최고의 경사요 과분하기 짝이 없는 일인 줄 알고 이런 특권을 더욱 사모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성도는 자기 집이 하나님의 구속하신 백성 중에 속하게 된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20절에서 22절에 "20여호와여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나이다 21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크고 두려운 일로 인하여 이름을 얻으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 앞에서 열국을 쫓아내셨사오며 22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로 영원히 주의 백성을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이어서 갑자기 말을 바꾸는 듯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나이다"라고,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이 되심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처럼 여호와만을 모신 선민이 된 은혜를 두고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 다른 강한 나라, 그 어떤 우수한 민족을 들더라도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는 도무지 비길 수 없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넘쳐흘렀던 것입니다. 

다윗은 왜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 대하여 그처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까? 
그것은 단 한 가지 이유, 이스라엘만이 하나님께서 친히 구속해 주시고 자기 백성으로 인쳐 주신 선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을 삼으셨던" 백성은 오직 이스라엘뿐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스라엘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애굽에까지 친히 '찾아가셔서' 바로와 그 백성들 위에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심으로써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여호와로 그 "이름을 얻으셨던" 즉 그 이름을 떨치신 분이셨습니다.
그처럼 일단 "애굽에서 구속하신 자기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사자를 앞서 보내시어서 그 땅의 "열국을 쫓아내셨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로 영원히 주의 백성 삼으신 것"과 "주께서 저희 하나님이 되심"을 만천하에 뚜렷하게 증거해 주셨던 것입니다.
이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복, 이 특별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네들이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기로 선택하신, 특별히 뽑아 주신 백성이라는 사실에 대한 확신과 긍지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기와 자기 집이 특별히 그와 같이 택함 받은 이스라엘 중에 속하게 됨을 또한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 역시 자기 가정이 교회를 통하여 누리고 있는 축복을 늘 자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자를 불러 모으고 계시는 '구원의 방주'이며 살아 계신 절대주권자의 '크고 두려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구속사의 중심 무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집을 이처럼 성별하신 공동체에 속하게 해 주셨다는 사실에 대하여 지극히 감사하며 진실로 자랑스럽게 여겨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이 교회를 통하여 우리와 우리 가족들은, 이 땅의 하고 많은 우상종교들에게 미혹당하지 아니하고 오직 우리 주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귀로 듣고 입으로 시인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를 통하여 나와 내 남편 내 아내가, 내 아들과 딸이 하나님께서 택자에게 행해 주신 가장 큰 역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속 사건을 체험하고 믿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바로 이 교회를 통하여 우리 집의 모든 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빠짐없이 하나님만을 하늘 아버지로 모시는 진정한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제가 장례식을 집례하다 보면 유가족들 중에 불신자가 포함되어 있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돌아가신 분의 영혼은 이미 주님의 품에 안겨 있고 믿는 유가족들 역시 고인을 천당에서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을 믿는 가운데 위로를 받고 있는 자리인데도, 그런 불신 유가족들은 장례식 중에 유독 대성통곡을 합니다.
혈육의 정을 나누던 고인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그 생각이 맞기는 맞습니다.
그 불신 유가족이 앞으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그 소천하신 성도와 영생의 세계에서 지옥과 천당으로 영원히 이별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앙의 가족들은 바로 교회를 통하여 영원한 '천당 시민의 권속'이 됩니다.
내 부모와 자녀가 내세에서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는 영원한 이산가족이 되지 아니하게 된 것, 같은 형제자매끼리 나중에 지옥에서 상봉하는 비참한 저주의 가족이 되지 아니하게 된 것은 오로지 교회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한 집안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을 우리는 바로 교회를 통하여 금세뿐 아니라 내세에 이르기까지 영원히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한 집안이 이 인간사회의 그 어떤 '상류계급'에 속해졌다 하더라도 결코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온 가족 전체가 재산을 다 팔아치우고 세상의 그 어떤 사교(邪敎)의 '집단생활'에 들어간다 해도 절대로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나와 나의 집이 교회에 속한 한 일원이 됨으로써 여호와께서 우리 온 집안의 구원주가 되어 주시고, 나와 나의 가족들이 주의 백성이 됨으로써 우리 가정이 지상의 천국 같은 작은 교회를 이루며 살게 된 것을 두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감사드리며 세상 앞에서 자랑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성도는 자기 집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문이 됨을 명예롭게 여겨야 합니다. 

23절로 27절 말씀에 "23여호와여 이제 주의 종과 그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견고케 하시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4견고케 하시고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곧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하게 하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서 견고히 서게 하옵소서 25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6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이 좋은 것으로 주의 종에게 허락하시고 27이제 주께서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두시기를 기뻐하시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복을 주셨사오니 이 복을 영원히 누리리이다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자기 집에 베풀어 주신 이런 놀라운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며 다윗은 바로 그것을 위해 기도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로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 다윗이 기도하는 바는 자기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판단해 볼 때 자기 인생과 자기 집안이 잘되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하나님께 그 소원 목록을 나열한 기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다윗과 그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 오직 그것이 '그 말씀하신 대로 행해지고 이루어지기 위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통하여 이루실 일'이란 궁극적으로 "사람으로 영원히 주의 이름을 높이도록" 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도록 만들 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다윗의 집안은 결과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할 일'에 쓰이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자기 가문이 주 앞에서 견고히 서고 자기 자손이 좋은 것으로 받고 하나님께서 자기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 확실히 성취되고 하는 것들은 결코 다윗 집안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님을 잘 깨닫고 있었습니다.
다윗 집안이 '하나님의 크신 뜻을 위하여 쓰이는' 자자손손이 되어 갈 때, 다윗 집안이 대대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 가운데 거하게' 될 때, 그 다윗 집안은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는 집안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 다윗 집을 통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날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 집에 내리신 축복은 다윗 집안사람들만 받아먹고 끝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유종지미를 거두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바로 그와 같은 일이 자기 집을 통하여 영원히 이어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윗의 아들들과 손자들을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기도는 먼 훗날 다윗의 집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리가 되신 교회가 세워졌을 때, 그 '다윗의 집'은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이끌어서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정이, 우리 가족이, 우리 가문이 대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야말로 적어도 가장으로서 가지는 자기 집안에 대한 최대의 소망이요 기도 제목이 되어야만 합니다.
어떻게 그런 멋지고도 원대한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 집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교회가 됨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왕 중의 왕'을 집 주인으로 모시게 되면 그 집안 전체의 격이 절로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사'의 흐름을 타는 가정이 되면 그 가문이 속한 계층 자체가 최고로 업그레이드될 수밖에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자기 집을 하나의 교회, 작지만 그러나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유일하고도 참된 주인으로 모시는 진짜 교회로 세우게 되면, 그 집안의 가장은 장로가 되고 그 아내는 권사가 되고 그 자녀들 중에는 '별님 서원자'들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온 가족이 각각 '가든지 보내든지' 전도와 선교의 사명에 쓰이게 됨으로써 결국 많은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이끌어 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 집은 틀림없이 사람들로 하여금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시라" 즉 '하나님은 정말 저렇게 예수님을 믿는 가족들의 하나님이시다.'라는 소리를 발하도록 만들게 됩니다.
주위 사람들의 입에서 '저런 기독신자 가족들이 섬기는 하나님이야말로 참 하나님이시다.'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그야말로 "주의 이름을 높이도록" 만드는 영광스러운 집안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집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으로 모시는 교회로 만들고 그로 인하여 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별과 같은 가문으로 세우는 것 - 한 집안이 누릴 수 있는 이 최고의 축복과 명예를 바로 '나와 내 자녀와 내 후손'이 누리게 해 달라고 진정으로 소망하며 기도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다윗의 집안은 세상적으로 볼 때에도 정말 자랑할 만한 집안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집안은 왕가였습니다.
소위 세도가의 사돈의 팔촌만 되어도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뻐기는 세상인데, 이스라엘의 최전성기의 정통 왕가였으니 그 얼마나 대단한 집안이었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그런 것은 조금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집안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시키는 데에 사용된 것'을 최고로 기뻐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안도 '이스라엘의 선민들과 꼭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택자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을 두고 감사 감격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기 집안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한 왕조로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신앙의 가문으로서 영원히 이름이 남기를 그처럼 간절히 소원했던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소원대로 우리 집에 무엇을 내려 주셔야만 복 된 집안이 되는 것이겠습니까?
오히려 우리 집안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대대로 쓰이게 되는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과분한 특권이며 감당 못할 축복인 줄 알고 이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을 수준 높은 이웃들이 있는 곳에, 좋은 학군에, 경치 좋고 평화로운 곳에 살도록 해 주셔야 남들 앞에서 어깨를 펼 만한 자랑이 되겠습니까?
나로 하여금, 나의 자녀로 하여금 참 하나님을 알게 하고 그 베푸신 구원을 누리게 하신 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 우리 가정을 심어 주신 것을 두고 백번 천번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집안에서 판검사가 나오고 국회의원이 나오게 해 주시면 그보다 더 명예로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 세속적인 복이 아니라, 우리 가정 자체가 진정한 작은 교회를 이루어서 대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집안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적어도 '가정의 제사장' 된 가장이라면 하루도 빠짐없이 간절히 기도드리는 최고의 소원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미국의 명문대학교에 가 보면 각 건물들이 그 기부자의 이름을 따라 지어진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적어도 그 대학교가 존속하는 한 그 기부자의 이름과 그 가문의 영광은 영원히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집안이 교회를 통하여 영원히 누리게 되는 가문의 영광은 더욱 어떠하겠습니까?
교회에 자기 아버지의 이름이 장로로서 남겨지는 것, 헌당기념관에 자기 가족이 '생애 최고의 것을 바친' 충성의 기록이 새겨져 있는 것, 할아버지 대에서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다 예수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경향교회의 등록교인'으로 속하게 된 것 - 그야말로 영광스러운 신앙의 명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선한 일에 충성하는 데에 마음과 뜻이 일치하는 가족, 예수 십자가 구원의 확신을 한 명도 빠짐없이 공유하는 가족,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왕국인 교회를 통하여 최고로 명예로운 이름을 남기는 명문 가족, 실로 하나님께서 '주의 종과 그 집'에 내려 주시는 이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경향의 모든 성도들과 가정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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