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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하나님 (시 68:·19) - 근심,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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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짐을 지시는 주 하나님 (시 68:·19) 

  
어제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소식에 모두 놀라셨을 줄 압니다. 고인이 남긴 유서를 보면 그가 당한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됩니다. 투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일로 전직 대통령의 비극의 악순환이 종식되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져봅니다. 

이런 사태를 보면서 새삼 인생무상을 느끼게 됩니다. 정말 인생이 별게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합니다.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고 최고의 권력을 누려도 인생의 짐은 누구에게나 무거운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인생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생은 예외 없이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사람마다 종류가 다르고, 정도에 차이가 있지만 누구나 이렇게 삽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생의 짐은 그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1만 1천 근(11,000근)이다.” 너무 힘이 들 때 흔히 뭐라고 하죠? 몸이 천근만근이라고 하잖아요. 숫자적으로만 따져 봐도 도저히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무게입니다. 그만큼 인생 살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우리 인생이 너무 가련하고 불쌍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생의 짐이 무겁지만, 그 짐을 나 혼자서 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대신 져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그런 약속입니다. 시편 68편은 다윗의 시인데, 아마 외적과의 전쟁(아람과 암몬 족속과의 전쟁, 삼하10~11장)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을 찬양한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다윗은 그 때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고 기쁨으로 찬양합니다. 19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시죠.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셀라)” 

여기서 ‘셀라’는 일종의 음표인데 학자들의 견해가 다양합니다. 그 중에 일리가 있는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립니다. 첫째로, 잠시 쉬면서 묵상하라는 뜻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둘째로, 시편이 모두 노래였는데 음을 올려서 부르라는 표시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굳이 소리 내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무겁고 힘든 짐을 하나님이 대신 져 주신다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의 짐을 혼자 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만일 그렇게 하면 그 자체로 불신앙이요 불쌍한 인생이 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붙드시고, 인생의 짐을 져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평안하고 행복한 인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우리 인생에 지워진 짐 : 죄, 문제, 고난, 질병, 죽음

먼저 우리 인생에 지워진 짐이 어떤 것들인지 잠시 살펴보죠. 무수히 많죠. 죄의 짐, 온갖 문제의 짐, 고난의 짐, 질병의 짐,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짐 등입니다. 이 모든 짐은 인간의 죄로부터 유래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원죄(原罪 Original Sin), 

그리고 인생 살 동안 스스로 저지르는 자범죄(自犯罪 Personal Sin)가 우리 인생을 고단하게 만듭니다. 한 마디로 인생은 생로병사(生老病死)입니다. 

시편 90편 모세의 시를 보면, 이렇게 고단한 인생을 가리켜 뭐라고 표현합니까? 시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칠팔십 년, 아니 그 이상을 살아도 인생만사가 수고요 슬픔뿐이라고 말합니다. 게다가 인생이 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겁니다. 

인생의 큰 고난을 경험한 욥은 또 인생을 뭐라고 표현합니까? 욥14:1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생애가 짧고 걱정이 가득하며”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란 연약한 인생이란 뜻입니다. 그 생애가 짧은데다가 그나마 온갖 걱정거리로 가득하다는 겁니다. 

이렇게 힘들고 괴로운 인생을 홀로 살아간다는 게 너무 힘듭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근심합니다. 몸부림칩니다. 술을 마시고 이런 저런 탈출구를 찾아봅니다. 그래도 안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인 방법은 그 어느 것이라도 인생의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 못합니다. 때로는 인간의 몸부림이 가상해 보이지만, 사실은 불신앙이요 더군다나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한 학생이 대낮에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교수님이 지나가다 한 마디 합니다. “자네, 대낮에 웬 술인가? 그것도 캠퍼스에서.” 학생이 천연덕스럽게 말합니다. “교수님, 저는 고민이 많아서 그럽니다. 술로 모든 고민들을 떠내려 보내려고 합니다.” 그러자 교수님이 일침을 놓았습니다. “그래? 이해는 가네만, 착각일세. 그 녀석들은 최고 수영선수라 죽지 않을 걸.” 

그렇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은 걱정한다고 근심한다고, 술을 마신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인간의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한 가지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분만이 우리 짐을 지시는 주님이십니다! 
  

[2] 우리 짐을 지시는 하나님 : 날마다 무한한 사랑과 능력으로 

오직 하나님만이 무한한 사랑과 능력으로 우리의 짐을 덜어주실 수 있습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아무리 마셔도 공기는 다함이 없는 것처럼, 아무리 사용해도 바닷물이 다함이 없는 것처럼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만이 우리를 모든 고민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다시 19절 보면, 어떻게 해 주신다고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 ” 날마다 우리 짐을 져주신다고 했습니다. 1년 365일 매일 매일 그렇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시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로다” 인간은 아무리 잘 돌봐주는 것 같이 보여도 자신이 연약하기 때문에 자고 졸고 그럽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분초마다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놀라운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한 사53:4~5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 ” 예수님이 우리의 인생의 짐(죄, 질고, 슬픔 ...)을 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요1:29 “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골고다 언덕으로 무거운 십자가 지고 올라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게 바로 십자가 고난이요 십자가 대속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었다가 장사되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짐과 온갖 인생의 짐을 지셨음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은,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초청하십니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의 짐을 져 주리라!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3]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는 방법 : 맡기기, 순종하기, 기도하기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인생의 짐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세 가지를 하면 됩니다. 

① 맡기기 :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해결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시55:22 보면, 역시 다윗의 시인데 무라고 말씀합니까?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Cast thy burden upon the LORD-KJV)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 하시리로다” 하나님께 짐을 맡기라고 했습니다. 맡긴다는 단어는 영어 성경에 보니까 cast(던지다)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마치 던져버리듯 모든 짐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겁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이고 손쉽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사람들을 찾아가고 세상 것들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쓸데없습니다. 시146:3~5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인생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는 게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 수치로 계산해 봐도 분명합니다. 한 심리학자(어니 J. 젤린스키, 「느리게 사는 즐거움」중에서)가 인생의 걱정거리를 면밀히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30%는 이미 일어난 일, 22%는 사소한 일, 4%는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일 등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걱정하고 고민한 것들 가운데 이런 게 있잖아요. 병에 걸리지 않을 사람도 병에 걸리면 어쩌지 하고 고민합니다.(일어나지 않을 일) 과거에 대학 입시에 낙방했던 것 수십 년 전 일인데 계속 생각하고 고민합니다.(이미 일어난 일) 집에서 나왔을 때 옷을 잘못 입고 나왔는데 남이 어떻게 볼까 계속 신경 씁니다.(사소한 일) 키가 작다고 계속 비관합니다.(절대 바꿀 수 없는 일) 비행기 탈 때 이코노미 사이즈가 얼마나 좋은 줄도 모르고 ...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은 생각을 바꾸면 됩니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게 도합 96%입니다. 

정말 내가 신경 쓰고 처리할 일은 나머지 4%에 불과합니다. 그러니까 인생의 거의 모든 게 하나님 앞에 맡기면 평안할 것들이란 사실입니다. 그런데 96%까지 다 짊어지고 가려니까 고통스런 겁니다. 

그런데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조차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얼마나 어리석고 멍청한 짓인지 모릅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유명한 에피소드이죠. 6.25 당시 한 여인이 머리에 짐을 잔뜩 이고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미군 장교가 트럭을 세우고 태워줍니다. 그런데 한참 달리는데 백미러로 보니까 이상합니다. 그 여인이 여전히 짐을 머리에 이고 힘들게 서 있는 겁니다. 그래서 통역관을 통해 왜 그런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인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사람 태워 준 것도 너무 감사한데 염치없이 짐까지 맡길 수 있나요?" 참 착한가요? 아니, 어리석은 겁니다. 신앙생활을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맡겨야 됩니다. 그래야 편안해집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맡아서 해결해 주십니다. 

여러 직업들 가운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가장 대표적인 직업은 아마 스포츠 프로팀 감독일 겁니다. 시합을 앞두고, 하는 동안, 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지난 번 WBC 세계야구대회에서 한국 팀을 준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의 이야기입니다. 

「週間朝鮮」을 보니까 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용인에 있는 교회 안수집사님이라고 합니다. 기자가 여러 가지 질문을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이런 겁니다. “감독님, 승패 갈리는 긴장 속에서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나요?” 그랬더니 김 감독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예배를 통해서죠. 특히 찬송가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 ’ 좋아하죠. 이 찬송가를 부르면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마음이 편해져요. 그래서인지 노래방에 가서까지 꼭 부르게 되죠.” 

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앞에 있는 고난이나 걱정거리는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터널처럼 반드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면 그렇게 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평강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② 순종하기 :  

두 번째, 하나님께 순종하면 인생의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본문 19절을 다시 보세요.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主)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 ... ” 

하나님은 누구시라고요? 주!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죄인’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내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내가 주인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 내가 태어났나요? 죽을 때 내가 죽나요? 살아가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일들이 내 마음대로 되나요?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로 이뤄지는 겁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주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고백하지 않습니까? 나는 죄인이라 무지합니다. 무능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이라도 내 판단대로 내 마음대로 살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인생의 짐을 맡기고, 주님의 뜻대로 말씀대로 순종하며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무거운 짐도 벗고 형통하게 됩니다. 마치 ‘차선 지키기’와 같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는데 내 멋대로 하면 차선도 안 지키고 달리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입니다. 사고가 나기 쉽습니다. 차선을 지켜야 안전합니다. 잘 나갑니다. 자동차들이 차선을 지키며 달리는 모습을 보면 마치 물이 흐르듯 시원합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차선을 지켜야 합니다. 인생의 차선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형통합니다. 반대로 차선을 지키지 않으면 불신앙이요 범죄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습니까? 정말로 한 짐이죠. 그때 하나님이 그를 격려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수1: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하나님의 율법 즉 말씀만 지키면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마11:28~30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먼저 주님께 나아가 짐을 맡기고 내려놓으면 평안해집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주님의 명에를 메면 더욱 평안해집니다. 주님의 멍에는 주님의 말씀이요 주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무거운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볍고 인생을 평안하고 형통하게 해 줍니다. 부디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뜻대로 순종함으로 늘 평안하고 형통한 인생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기도하기 :

세 번째, 기도하면 인생의 짐을 벗을 수 있습니다. 빌4:6~7 “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참 이상합니다. 걱정 근심할 시간은 충분한데 기도할 시간은 부족합니다. 그래서 인생의 짐이 무거운 겁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세요. 걱정하는 데 시간이 모자란 적 있나요? 모자라면 밤샘을 해서라도 걱정 근심합니다. 반면에 기도 시간은 어떤가요? 늘 모자랍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핑계도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걱정 근심할 시간에 기도합니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즐겨 부르는 복음송 중에 이런 곡이 있죠.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를 드리세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요! “내가 일하면 내가 일할 뿐이지만, 내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내가 하면 내 작품입니다. 아무리 애써봤자 삽질 수준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을 인도해 주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작품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일하는 것 하고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하고 어느 편이 유리합니까? 두말 하면 잔소리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답답할 때 암담할 때 착잡할 때 인생의 짐이 무거워 눈물이 흐를 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여러 해 된 이야기입니다만, 전주의 한 교회 이야기입니다. 개척한지 2년 됐는데 전세로 얻은 건물을 예배 처소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와서 한 달 안에 비워주든가 전세보증금 올려주든가 둘 중의 하나는 선택하라고 통보합니다. 당시 교인수라야 학생 수까지 35명에 불과하고 부자 교인도 없어서 고민이었습니다. 목사님이 백방으로 돈을 구하려 다녔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전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목사님은 이제는 정말 기도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전교인에게 40일 작정 기도를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산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교인 중 몇 분도 따라갔습니다. 올라간 산은 ‘강청산’이었습니다. 그곳에 가서 강청 기도를 드렸습니다. 

밤새 산 기도를 마치고 다음 날 내려오는데 중턱쯤 에 마치 미소 짓는 것처럼 빨간 꽃송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삼이었습니다. 아주 크고 오래된 산삼이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세 뿌리, 그 다음날에는 네 뿌리 도합 여덟 뿌리를 발견했습니다. 우석대 한의대 교수에게 감정해보았더니 1천만 원을 호가하는 3백 년 된 산삼들이었습니다. 

기도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겁니다. 놀고먹으며 요행을 바라는 것은 불신앙이지만, 인간의 일을 다 해도 막막할 때 기도하는 것은 좋은 신앙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들에게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는데, 동일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습니까? 

여러분! 어떤 인생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짐을 지시는 우리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맡기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반드시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짐을 지시는 하나님만 굳게 의지함으로 고단한 인생길에 평강 가운데 늘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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