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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훈련 (딤전 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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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훈련 (딤전 4:6~16)


어느 날 미국의 백만장자 밀톤이 불면증에 걸려는데 백방으로 노력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밀톤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스위스에 있는 20세기의 최고의 의사이자 최고의 심리학자인 칼 융을 찾아갔습니다. 상담을 마친 융은 밀톤에게 모스크바 교외에 있는 한 수도원 원장을 찾아가 보라며 소개서를 써 주었습니다. 밀톤은 그 즉시 모스크바로 날아가서 그 수도원장을 만났습니다. 융의 소개서를 읽고 밀톤과 대화를 나눈 수도원장이 밀톤에게 ‘내가 무엇을 지시하든지 그대로 하시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밀톤은 ‘물론입니다. 내가 이 불면증이 나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하루에 주기도문을 정성껏 3백 번을 외우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밀톤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고는 정성껏 주기도문을 3백 번 외웠습니다. 이튿날에도 수도원장은 밀톤에게 ‘오늘은 주기도문을 6백 번 외우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밀톤은 주기도문을 6백 번 외웠습니다. 다음날도 수도원장은 ‘오늘은 주기도문을 9백 번 외우십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밀톤은 수도원장이 지시하는 대로 날마다 3백 번씩 더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주기도문을 하루에 6천 번 외워야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막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하려고 할 때 밀톤에게 갑자기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오랜 가뭄 끝에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그의 몸에서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순간 밀톤은 자신이 완전히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때까지 그곳에서 어떤 약이나 의학적인 처방을 받은 일이 없었는데도 그의 병은 깨끗이 나은 것입니다. 밀톤은 융의 처방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융은 밀톤을 상담하면서 그에게서 영적인 영양실조를 발견했습니다. 융은 영적인 영양실조를 ‘영적 욕구’라로 불렀습니다. 융은 영적 욕구로 인해 병을 앓는 환자들에게 이 욕구를 강하게 채워줄 수 있는 신앙적인 방법들을 제시해주었습니다. 그는 밀톤의 불면증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수도원의 수도원장에게 보낸 것입니다. 수도원장은 밀톤의 불면증에 대한 원인을 융의 소개서를 통해서 알고는 밀톤에게 주기도문을 반복해서 외우는 일을 시킴으로 그의 영적인 영양실조를 회복시켰습니다. 밀톤이 수도원에 거하며 주기도문을 외우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서 영적인 고갈로부터 찾아온 불면증으로부터 자유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수도원장이 밀톤의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주기도문을 반복하는 영적인 반복 학습이었습니다.   

모든 영역에 있어서 반복 학습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 경영학에서 뜨는 이론이 있습니다. 그 이론을 주장한 학자를 제가 기억하지 못합니다만 그 학자의 이론에 의하면 어느 분야가 되었든 그 분야의 최고의 사람들을 연구해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3시간 이상씩 일만 번 이상을 자신의 관심 분야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만 번을 반복한다는 것은 한 분야에 대략 10년을 집중에서 투자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저의 작은 아이와 길을 가다가 실내 야구 연습장에서 오래간만에 공을 한번 쳐봤습니다. 500원을 기계에 넣으면 공이 10개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장갑을 끼고 공을 20개를 치고 났더니 방망이를 잡았던 손바닥이 아프더라구요. 야구 선수가 최고의 타자가 되기 위해서 하루에 천개 이상의 타격 연습을 한다고 합니다. 온갖 구질의 볼을 대비해서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입니다. 하루에 천개 이상의 타격 연습을 하면서 손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타자로서의 성공을 꿈꾸는 것입니다. 

집사님의 딸 지선 양이 독일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며 유학을 하고 있습니다. 지선양이 잠시 귀국하면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습합니다. 하루는 여름에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습하는데 가죽 장갑을 끼고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연습이 끝나고 장갑을 벗으면 손에 땀이 흔근했습니다. 왜 가죽 장갑을 끼고 연습하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가죽 장갑을 끼고 연습을 한 후에 장갑을 벗고 피아노를 치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달리기를 할 때 모래 주머니를 차고 연습을 하다가 모래 주머니를 벗은 후에 달리면 날아갈 것같은 기분으로 빨리 달리는 것과 같은 원리인 것 같습니다. 

운동을 하든, 경영을 하든, 공부를 하든, 창작 활동을 하든, 무엇을 하든지 반복 학습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반복 학습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훈련시키시는데 반복의 방법을 많이 사용하셨습니다. 반복 학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을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셨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에 3대 절기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시고, 40년의 광야 생활을 인도하셔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에 유월절, 장막절, 오순절의 3대 절기를 의무적으로 지키게 하셨습니다. 매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3대 절기를 지키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주변 환경이 바뀌어도 절기를 반복해서 지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배우고 고백하게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 철저하게 안식일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던 모든 일손을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하루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며 하나님의 정신을 가지고 오는 한 주간을 살 수 있도록 영적으로 무장하는 날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마가 다락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면서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찬식을 통해 예수님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매 순간마다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성찬식을 행했습니다. 예배 때마다 반복되는 성찬식을 통해 잔과 떡을 떼며 예수님이 나를 위해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기억하게 하셨습니다. 성찬식을 반복함으로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반복 학습을 통해 우리들의 신앙을 훈련하고 연단시키시기 원하시는데 우리들은 반복 학습을 지루해 하고 싫어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합니다. 새로운 것을 듣기 원하고, 새로운 것을 보기 원합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원합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기본과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그 위에 아무리 새로운 것을 쌓으려 해도 기초가 약하기 때문에 곧 무너지고 맙니다. 그러나 기초가 튼튼하면 그 위에 새로운 것을 쌓아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반복 학습을 통해서 신앙의 열매를 거두려면 최소한 3년 이상이 걸립니다. 그 3년이라는 시간을 말씀드리는 근거는 예수님께서 12 제자를 세우시는데 3년의 공생애를 함께 하신 것을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각이 바뀌어 좋은 습관으로 자리를 잡는데는 기본적으로 3년의 시간이 걸려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영성의 좋은 습관을 세우는데 있어서 3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응답을 받는데는 기다림의 시간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단지 몇 번, 며칠을 기도한 후에 쉽게 포기하며 하나님께서 응답을 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우리들이 기도의 깊이와 넓이를 경험하며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가운데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3년은 기도해야 합니다. 깊은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릴 때는 3년간은 내가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간절히 고하며 씨름하겠다는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예배는 반복되는 신앙의 훈련의 장입니다. 하나님의 앞에 드려지는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우리의 신앙을 세우시고 축복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배의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예배를 쉽게 생각합니다. 집안에서 부부가 다투면 ‘나 교회 안나가! 나 오늘 예배 안드려!’입니다. 예배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예배의 의미와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그러나 예배의 의미와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와 핑계를 찾습니다. 그런 사람은 핑계만 있으면 예배를 빠집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는 공적인 예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생활 속에서의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공적인 예배를 통해 훈련된 사람이 생활 속에서의 예배를 소중히 여깁니다. 예배도 반복을 통해 예배의 영성을 익힐 수가 있습니다. 영적인 기초는 반복을 통해서 세워집니다. 

저는 사도 바울의 섬김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그는 대단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는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는 신약 성경의 거의 반을 기록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놀라운 이적과 기적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그가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서 온갖 고난과 죽음의 고비를 수도 없이 경험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는 끊임없이 반복하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메섹에 가는 도중에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건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역을 하면서 수시로 다메섹 가는 도중에 자신이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경험을 간증합니다. 그의 신앙과 사역은 바로 다메섹에 가는 도중에 부활의 예수님을 만난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그 사건을 말합니다. 그 사건을 되새기고 되새깁니다. 다메섹에서의 사건은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과의 첫 사랑의 경험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첫 사랑을 잊지를 않았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힘들 때면 그는 예수님과의 첫 만남의 감격을 다시 되새겼습니다. 사역을 하다가 게을러지거나, 교만한 마음이 들면 그는 다메섹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났던 그 사건을 기억했습니다. 바울은 평생을 다메섹에서 만난 예수님의 사건을 기억했고 그 사건 위에 자신의 믿음을 세웠습니다. 

저는 이런 신앙을 되새김의 신앙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되새김질 한다는 것은 한번 삼킨 먹이를 다시 게워 내어 씹는 것을 말합니다. 소와 낙타들이 음식을 먹고 그것을 다시 게워 다시 씹으며 소화를 시키는 것을 되새김질이라고 말합니다. 성숙한 믿음은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 만남의 장소, 만남의 감동을 잊지 않고 그 때의 감격을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성숙하고 능력있는 신앙인이 되려면 하나님을 만난 감격을 마음 깊은 곳에 간직하고 삶의 자리에서 그것을 되새김질할 수 있어야 합니다. 되새김질의 신앙은 어떤 어려움과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좋은 일꾼이 되려면 경건의 훈련을 쌓으라고 말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쌓는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삶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를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 되새김질할 때 그것이 금생과 내생에 복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5-16절에서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되새김질하는 경건의 훈련을 쉬지 말고 계속하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반복은 좋은 습관을 갖게 하고, 나쁜 반복은 나쁜 습관을 갖게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하는 삶으로 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배 드리는 것을 싫어하던 사람이 예배를 기쁘게 드리는 것을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섬긴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하루 아침에 이뤄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들을 억지가 아닌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신앙의 자리에 서기까지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성령님의 감동이 있는 가운데 반복되는 신앙의 되새김질 속에서 신앙의 좋은 습관으로 자리를 잡을 때 가능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배와 기도, 말씀과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경건한 삶을 되새김질하는 가운데 귀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경건한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누리는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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