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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가정을 회복 시킨 룻 (룻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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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을 회복 시킨 룻 (룻 1:1~6)


오늘은 지난주일 선포한 ‘다음 세대를 품기 위한’ 교육주간의 마지막 날이자, 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오후에는 교육위원회가 준비한 ‘교회학교 부흥을 위한 방안 연구’라는 심포지엄이 있습니다. 세상의 어느 부모인들 자식 잘 되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자식을 위하는 방법은, 부모마다 각각 다 다릅니다. 자식교육의 방법이 어떠냐에 따라서 자식의 미래와 장래 진로가 결정됩니다.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중국 제나라 시대 혼기가 가득 찬 한 처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동쪽에 있는 집과 서쪽에 있는 집에서 동시에 청혼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동쪽 집은 대단한 부자였지만 그 집 아들은 둘도 없는 추남이었습니다. 반면에 서쪽 집은 찢어지도록 가난했으나 아들은 빼어난 외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처녀의 부모는 아무리 고민고민해도 결정을 내릴 수가 없어서, 당사자인 딸의 결정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러고는 딸에게 묻습니다. 

“얘야, 너는 어느 집으로 시집가고 싶으냐? 동쪽 집이면 왼쪽 어깨의 옷을 내리고 서쪽 집이면 오른쪽 어깨의 옷을 내리도록 하여라.” 아버지가 쉽게 결정하지 못한 일을, 딸이라고 해서 무슨 대수가 있겠습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딸이, 갑자기 양쪽 어깨의 옷을 모두 내리며 말했습니다. “낮에는 동쪽 집에 가서 먹고, 밤에는 서쪽 집에 가서 자고 싶어요!” 바로 이 이야기에서,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유명한 고사성어가 유래되었습니다.

동가식서가숙이라는 말은, 양다리 걸치고 기회주의자로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이 동가식서가숙합니다. 사실은 그럴 수 없는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쪽도 기웃, 저쪽도 기웃하며 사는 거지요.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오늘 본문에 한 가정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사적인 배경은, 이스라엘에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 중 어느 때입니다(여호수아가 죽은 후 첫 사사 옷니엘이 등장할 때부터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이 등장할 때까지 약 350년간의 시대, 사사 기드온의 시대가 아닌가 추정합니다). 그 때,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다 합니다. 그 흉년은 기후로 인한 흉년이 아닙니다. 

성경은 사사시대의 특징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 25). 하나님의 백성들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는 뜻이 무엇일까요? 종교적으로 타락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쇠퇴衰頹하였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 바알과 아세라를 하나님 대신으로 섬겼다는 말입니다. 그 주어진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흉년입니다. 결국, 흉년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께 징계였다는 뜻이지요.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 할 때, 흉년이라는 징계의 막대기를 쓰신 것을 봅니다. 흉년은, 자본주의시대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경제위기’와도 같습니다. 유치원 때부터 명문대학 입학을 위한 입시교육에 All In하는 우리나라 자녀교육이지만, 교육효과는 흉년 수준입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됩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해도, 50대 중반이면 일을 그만 두고 나와야 합니다. 명문대학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교육은 열심히 시키지만, 우리들의 고민입니다.

다윗 왕 때, 국력이 강성해지자 교만해진 다윗이 자기가 다스리던 나라의 규모와 크기, 힘을 자랑하고 싶어서, 인구조사를 합니다. 왕정국가를 설립한 지 2대 왕인 다윗에게,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강대하고 부한 나라를 이루었으니, 왜 그런 맘 들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인구를 명합니다. 그 때, 다윗의 군사령관이었던 요압 장군이 충언을 합니다. “요압이 왕께 아뢰되, 이 백성이 얼마든지,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백 배나 더하게 하사 내 주 왕의 눈으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런데 내 주 왕은 어찌하여 이런 일을 기뻐하시나이까?” 다윗은 군사령관 요압 장군의 충언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십니다.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하십니다. [(1) 7년 흉년이 있을 것이다. (2) 다윗이 원수에게 쫓겨 석 달 동안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될 것이다. (3) 이스라엘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있을 것이다.] 다윗이 이 세 가지 하나님의 징계 중에, 어느 것을 택했을까요? 사흘 전염병을 택합니다. 그러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전염병으로 죽은 백성이, 七萬 명이 되었다 합니다(삼하 24, 1-15).

다윗은 7년 흉년을 택하지 않고, 사흘 전염병을 택했습니다. 흉년이, 나라를 통치하는 통치자나, 백성 할 것 없이, 가장 무서운 징계라는 말이지요. 생존이 위협받는 경제위기 7년, 견딜 수가 있겠습니까? 온 국민이 7년 동안 일거리가 없고 먹을거리도 없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살아남을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을 옆으로 돌려세우는 교만죄가 그만큼 무섭습니다. 

이보다 더 큰 흉년 위기가 또 하나 더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饑饉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處女와 젊은 男子가 다 渴하여 쓰러지리라”(암 8, 11). 사사시대가 바로 이런 시대였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시대에도 그렇습니다.

살아 있고, 活力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銳利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얻지 못합니다(히 4, 12). 세상은 좋은 상품 싸게 팔면, 대박 터뜨립니다. 좋은 제품 값싸게 준다는데, 누가 마다할 사람 있겠습니까? 물건은 때가 지나면 바겐세일도 하고 할인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어느 때가 절대로 값싸게 팔 수도 없고, 값싸게 살 수도 없는 제품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정가품목입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예수님 따르는 자들의 고난, 십자가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예수 믿으면 영생, 평안, 범사 잘 됨, 긍정적인 말로 포장된 값싼 복음으로 팔려고만 합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겁니다. 우리 시대 목사에게 가장 큰 죄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인들을 재미있게 해 주지 못하는 목사의 죄가 가장 크다고 합니다(Fun시대, 감성시대, 느낌시대).

본문으로 돌아가서, 사사시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의 흉년이 온 요인이 무엇일까요? 경제위기 이전에, 선행한 것이 있습니다. 말씀의 흉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는 시대였다는 겁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범죄하고, 우상숭배 한 것입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징계이지요. 그 징계가, 약속의 가나안에 든 흉년입니다. 기후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유다 베들레헴(떡집, בית לחם) 에브랏에 한 유력한 가정, 집안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 이름은 ‘엘리멜렉’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는 뜻입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에는 그의 부모의 믿음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의 가까운 집안 어른 중에 ‘보아스’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그는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지방의 유지였습니다. 엘리멜렉의 부인은 ‘나오미’였습니다(‘나의 기쁨’, ‘나의 즐거움’, 은혜스러운 자’, ‘사랑스러운 자’라는 뜻). 두 아들도 있었습니다. 큰 아들이 ‘말론’ 둘째 아들이 ‘기룐’입니다. 

이 사람들은, 베들레헴에서도 남다르게 풍족한 삶을 살던 집안이요, 가정입니다. 나오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 부르느냐”(룻 1, 21). 엘리멜렉의 가정은, 남다른 부요한 집안, 가정이었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이 온 가족을 데리고 이방 땅, 모압 지방(모압들판, 아르논 강을 중심으로 펼쳐진 들판, 초지)에 이주해서 산 일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는 흉년을 단순히, 기후문제나 경제문제로만 생각했던 겁니다.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긴 하지만, 더 이상 희망은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자신이 이미 일궈놓은 부와 재물을 유지하기 힘든 땅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흉년이들자,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겁니다. 남들은 다 가산이 무너져도, 엘리멜렉은 흉년 때문에 일궈놓은 가산을 잃어버릴 수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자신의 富를 보장해주고, 오히려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더 부요하게 해 줄 기회의 땅이라 생각된 모압을 선택한 겁니다. 
요즘 말하면, 이민 갔다는 말입니다. 일시적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서 모압지방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이참에, 언약의 땅을 포기하고 이방 땅이지만 모압에서의 제2의 도약을 꿈꾸며 永住하기 위해서 갔다는 말입니다. 

나오미의 가정은, 언약의 땅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에서, 흉년이 든 이유인, 하나님 떠난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구하기보다는, 이방 땅 모압 아르논 강 주변에 펼쳐진 초원지에서 농사지으며 정착하기 위해서, 영구 이주한 겁니다. 여러분은,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 엘리멜렉 가정의 선택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구약학자 Albright는 사사시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방인의 땅으로 移住하였다는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주는, 전쟁과 기근, 역병 등과 같은 천재지변이나 극한적인 상황에서만 시행되었다. 또한 당시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은 자신들의 지역에서 믿었던 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移住하여 간 地域의 神을 섬기겠다는 의도를 내포하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나오미 가정, 즉 엘리멜렉의 가정 두 아들 말론과 기룐 가정은, 이미 확보한 부와 기득권을 유지하고 더 보장된 부와 재물의 풍요로움을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모압 땅의 신, ‘그모스’와 ‘몰렉’을 섬기려고 작정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 유다 베들레헴(떡집) 에브랏을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자녀교육을 위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자녀의 대학입시교육을 위해서, 자녀들의 취업을 위해서, 결혼문제를 위해서, 하나님을 포기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세속적인 교육방식을 따르기로 작정했다, 결단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만일, 여러분에게 고3 수험생 자녀가 있으시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주어지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3 때, 1년만이라도 교회 나가지 않고, 예배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공부하지 않고 학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에게 SKY대학의 합격을 보장해준다고 하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SKY대학에 못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주일성수신앙을 포기할 순 없지! 하시겠습니까? 뭐 평생 예수 믿을 건데, 고3 1년 신앙생활 유보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대수냐? 하시겠습니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모 가전업계 선전도 있지만, 속을 필요가 없지요. 어느 회사의 냉장고를 사도, 거기서 거깁니다. 기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문제는, 평생을 좌우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자가 모든 것을 선택하는 자입니다. 

엘리멜렉 가정 보십시오. 모압 땅에 이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오미의 남편 유력한 사람, 풍족한 살림과 함께 모압 땅으로 이주한 가장, 꿈이 있던 사람, 남다르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야망이 있던 남편, 아버지가 어떻게 되고 맙니까? 이주하자마자 죽고 맙니다(하나님의 징벌; 룻 1, 21). 바로 그 때, 나오미가 정신 차리고 두 아들 데리고 베들레헴 에브랏으로 돌아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질 못했습니다. 

거기서 10년 더 눌러 삽니다(돌아올, 하나님 섬길, 의지가 없었다). 마침내는 두 아들들을 모압 여인에게 장가들입니다. 맏며느리가 룻이요, 둘째가 오르바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그 땅 사람과 완전히 동화되기로 작정했다, 그 땅 사람이 되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모압 땅에서 영주하기 위해서 선택한 일종의 안전장치였던 셈이지요(결혼이, 가장 손쉽게 택할 수 있는 사회적인 안정장치).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설상가상으로 장가든 두 아들마저 죽고 맙니다. 5절 말씀 보십시오(직역). “또한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죽었다, 그리고 그 여인은 그녀의 두 아들들과 그녀의 남편 뒤에 남겨졌다(객지에서 혈혈단신이 되었다).” 남편은 10년 전에 이미 죽었습니다. 의지하던 두 아들마저 죽었습니다. 노년의 나오미와 두 자부, 세 여자만 남았습니다.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입니다. 홀로된 여인, 그 중에도 가난한 홀로 된 여인은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가장 불쌍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지금 나오미가 그렇습니다.

더 이상의 희망이 없습니다. 바로 그때, 나오미에게 ‘복음’(GodNews)이 전해집니다. 6절입니다.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목자가 양떼를 보살피기 위해서 찾아가서, 양들을 계수하며 형편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 그들에게 糧食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베들레헴(떡집)에 떡이 생겼다는 소식입니다. 없던 떡이 어떻게 생겼습니까?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심으로···, 그것이 나오미에게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상실이 너무 큽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혈혈단신으로 귀국의사를 가진 나오미에게,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 인물이 누굽니까? 그의 맏며느리 ‘룻’입니다. 룻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시는 어머니를 따르기로 작정합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겠다는 분명한 신앙고백도 합니다. 

모압 여인 이방인 ‘룻’이 다 쓰러진 나오미의 가정과 가문을 회복시킵니다. 룻이 나오미 가정을 회복시키는 복이 되었지만, 그러나 나오미 가정은 이미 너무나 큰 상실을 맛보아야만 했습니다. 떡집을 떠나 하나님을 멀리한 영적배반의 대가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산 대가가 너무 컸습니다. 상실 뒤의 회복도 귀합니다. 그러나 흉년의 때이지만 약속의 땅을 지키면서 하나님 경외하는 신앙은 더 귀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찾으십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가치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의 말씀을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삶의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세속적인 부와 명예, 형통을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으로만 형통하는, 하나님의 자녀, 백성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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