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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본에 충실하자 (롬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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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에 충실하자 (롬 12:1~2)  
 

롬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오늘은 웨슬리 회심 271주년 기념 주일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 이후, 타락과 멸망의 길로 가던 영국을 구원하였고, 전 세계로의 복음 증거를 통해, 결국 이 땅에까지 감리교가 포교 되었으며, 우리 교회도 1972년, 이리교회로부터 분립 및 창립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제가 당시 있지 않아서 잘 알 수는 없지만 아름다운 간증거리 가득한 좋은 교회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37년, 짧은 역사를 맞이한 영생교회이지만, 우리 교회가 정말 조국의 역사에 보탬이 되고 세상에 축복이 되는 교회가 되어가기를 축복합니다.
정녕 조국의 역사에 보탬이 되고 세상의 축복이 될 수 있는 교회. 그런 교회가 되기 위하여 우리는 웨슬리 회심 주일에 우리도 새로운 회심의 자리로 나가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어 세상에 복을 나누는 교회, 세상의 리더자로 세워지는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 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2002년 축구 국가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네델란드)을 빼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의 리더쉽은 세 가지로 말할 수 있답니다.
그 첫 번째는 선수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리더십이라고 합니다. 전에 선수들은 공만 쫓아다니기 바빴는데 선수들은 󰡐왜󰡑를 묻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질문을 하다보니 창의적 대안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수비수들도 상황에 맞게 변형하는 󰡐플렉시블 백(Flexible back)에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그 다음은 정당한 경쟁의 리더십입니다. 히딩크 감독은 철저하게 실력으로만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경쟁을 야기시켰고 그 결과 최상의 선수를 뽑았습니다.

만약 스타의 이름값으로 선수를 선발했다면 송종국 김남일 등과 같은 선수는 결코 선발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건강한 리더십은 공정성이며 그것은 항상 최상의 결과를 낳게 하는 비결이라고 말합니다.
세 번째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기본을 강화하는 리더십입니다. 히딩크 감독의 축구에서 가장 변화된 것은 강인한 체력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전·후반 90분을 열심히 뛸 수 있는 기초 체력이 뒷받침돼 좋은 결과를 얻은 것입니다. 기본기가 충실한 축구 그래서 선수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패스 연습은 축구를 시작한 이래 계속했지만 이제는 이 패스를 언제 어디로 얼마나 강하게 또는 약하게 앞으로 혹은 뒤로 줄 것인가를 생각하며 패스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 축구가 세계를 놀라게 한 것은 이 같은 기본기를 충실히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기본기에 충실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본기는 무엇입니까?
이 기본기는 신앙의 연륜으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이 우리에게 주는 힘도 아닙니다.

연륜, 직분, 익숙함이 우리에게 기본기를 저절로 갖추어 주는 조건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 웨슬리 회심 주일을 맞이하여서, 신앙생활, 교회생활에서 필요한 기초 체력은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거룩한 산 제물이 되십시오. -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하다.” “예배 드리다.” - 어떤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일까요?
예배라는 말 속에 이미 드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에 “예배하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면 예배한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예배와 제사는 실상 동의어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라 하였고, 신약시대 이후에는 “예배”라고 말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경배하려 갈 때 여호와 앞에 인간들의 죄를 속량받기 위하여 제물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그 제물은 예배자의 죄를 대신 지고 속죄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물은 소, 양, 염소, 때로는 비둘기 등이었습니다. 이렇게 생명체를 대신 드리는 것은 인간의 죄는 피 흘림으로써만 용서받을 수 있기에 짐승이 대속의 제물이 되어 피 흘려 희생된 것입니다.

히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즉 피는 생명으로,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값으로 죽음의 형벌을 받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러 나오는 자는 대속의 피의 제물을 바쳐야 했고, 1년에 한 번은 대제사장이 민족 전체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대속죄일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한 번에 드릴 속죄 제물이 필요했습니다. 그 속죄 제물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피 흘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단번에 속죄제의 제물이 되셔서 피 흘려 속량했기 때문에 이제는 피의 제사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란 말보다는 예배란 단어로 바꿔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 흘림 때문이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생명을 우리가 누리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편에서는 값없이 얻은 구원같지만, 실상은 하나님께서 친히 생명 값을 대신 치루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제사가 아닌 예배를 하는 우리들은 이 예배를 통해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얻은 생명을 주님께 전적으로 드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이제는 나 사는 것 아니요, 주 내 안에 사네. / 이제는 나 사는 것 아니요, 나 주 안에 사네.

예배하는 자마다 이제는 내가 나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 되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양한 예배의 요소들 중 특별히 다음의 다섯 가지 요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은혜에 응답하며, 세상 속에서 은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찬양, 감사. / 회개, 용서. / 드림, 헌신. / 말씀, 은혜. / 결단, 파송.

예배에 성공하지 않고서는 삶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를 누리지 않고서는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은 내 힘, 내 뜻, 내 의지대로 되어지는 세상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세 전에도 계시고, 오늘을 운행해 가시며, 내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내 삶을 드리시고, 그 삶을 의탁하므로 하나님의 뜻이 나의 것 되고, 하나님의 계획에 맞추어 복주시고 선한 자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의도하심대로 승리하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2.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 구별되어야 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란 어떤 시대를 말하는 것입니까? 이 글은 로마인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당시의 로마 사회는 타락한 사회였습니다. 각종 우상이 범람하는 곳이었고, 가는 곳마다 신전이 있어서, 각 종 우상을 섬기던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물질이 풍요로웠기에 그 만큼 부도덕한 소비생활을 했습니다. 쾌락적이며 본능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일에 사람들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사람의 목숨도 그리 대단치 않게 여겼으며, 힘 있는 자의 즐거움을 위하여서는 사람과 동물을 원형극장 함께 넣고 결투를 시켜서, 사람의 목숨이나 동물의 목숨이 그리 큰 차이를 두지 않는 자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곤 하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순결을 지켜야 했습니다. 핍박과 타락한 시대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했던 것입니다. 이때에 그리스도인이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인 방법입니다. 깊은 산이나 동굴로 피해 자신의 믿음을 지키는 방법입니다. 그 유산들 중의 하나가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신앙을 지키던 수도원이 바로 그것입니다.

또 하나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세상 안에서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개혁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이것입니다. 세상을 떠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안에 있으라. 그러나 세상을 본 받지는 말라”는 말씀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원래 세상은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점점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있어야 할 책임이 분명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떤가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가리켜 자본주의 시대라 일컫습니다.
말 그대로 자본이 최고인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일조차도 때로는 우리가 최고로 여기는 자본 때문에 믿는 경우도 있을 만큼 우리는 자본 만능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 능력, 힘, 권세 -> 현실에서는 모두 동의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힘을 숭상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자본과 힘이 작으면 지쳐 쓰러지는 것이 다반사입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이 말씀에 동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힘으로 할 때 우리는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몫이 아닙니다.

고후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위에서 능력 주셔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말, 행동, 생각,봉사, 형제 사랑에서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이렇게 주님의 생명임을 알고 주님께 바치고 맡겨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을 일컬어 성도라고 말합니다.

성도 - 거룩한 무리 - 구별하여 마치다, 봉헌하다 / 구별된 (것), 봉헌된 (것), 거룩해진 (것), 거룩함.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은 안다고 했습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저 지식적으로 안다 하여, 혹은 교회의 멤버라 하여서 그가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 내 힘이 적을지라도 교회의 신앙 이력이 짧을지라도, 내 직분은 혹시 없을지라도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진 자라면, 내 것과 관계없이 우리는 강한 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작은 자이되, 우리 하나님은 전능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연약함과 비교할 수 없는 권능자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종이 한 장을 손가락으로 구멍 내는 일은 쉬운 일이나 단단한 벽에 단단히 붙어 있는 종이에 구멍을 낼 수는 없는 법입니다.
세상과 구별되어 주님께 붙어 있는 영생교우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변화를 받으십시오. -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럼 변화되어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시장에서 싸우는 두 사람을 지켜 보던 어떤 한 사람이 말합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싸우는거야? 교회 다니나 봐?”

리처드 피스(Richad Peace)의 <신약이 말하는 회심>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특징은 회심이 순간적 경험이기도 하지만 과정적이기도 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저자는 회심을 일회적 사건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과정적으로 보는 관점을 교회 공동체가 가질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회심을 설명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오기까지의 세 가지의 요소가 있음을 말합니다.

첫째는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실상이 어떠한지 보아야 하는데, 변화가 일어나려면 반드시 이러한 인식의 눈이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자신의 실상을 보았으면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 돌아서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어둠의 길에서 하나님의 길로의 방향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돌아섰다는 것은 삶의 변화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심은 “깨달음 - 회개 - 변화”의 과정임을 저자는 사도행전을 근거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인 학교에 입교하신 사랑하는 영생교회 여러분.
좀 바뀝시다. 이제 설득당해 봅시다.
거룩한 사람이 됩시다. - 고상한 생각, 거룩한 목표

무엇 때문에 일하십니까? - 
쌩떽쥐뻬리는 어린 왕자가 만난 청소부를 통해서 이렇게 답합니다.
“지구의 한 모퉁이를 청소하는 중입니다.”

무엇 때문에 공부하십니까? -> 어느 독지가에게 장학금 지원 요청한 한 학생 -> 면접.
무엇 때문에 공부합니까? -> 좋은 대학.
좋은 대학에 간 다음에는? -> 출세.
그 다음엔? -> 좋은 여자와 결혼? -> 아이 낳고 잘 살 것 -> 늙게 되겠죠? -> 죽게 되겠죠?
죽은 다음엔? -> 글쎄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하여 모르는 이에게 어떻게 현세의 삶에 고상하고 거룩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
까? 장학금을 드릴 수 없습니다.”

이제는 내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이 표출되는 언어생활을 바꾸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은혜와 결단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신 여러분.
집에 돌아가며 화가 머리끝까지 날만한 상황이 될지라도 그것에 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살아가며 “죽겠다”라는 단어는 사라지게 만드십시오.
내 언어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내 언어에서 사랑이 나타나도록 하십시오.
내 언어에서 평화가 만들어지도록 하십시오.
내 언어에서 행복이 만들어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내 삶을 이제는 더 이상 이 땅의 가치관 합숙소로 만들지 않겠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한 자, 드려진 자로, 
이제는 하나님의 뜻이 내 뜻이 되게 하고, 하나님의 의지가 내 의지가 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거룩히 구별된 자로 남은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주의 자녀들,
바로 그 이름이 영생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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