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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행복이 넘치는 우리가정 (잠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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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넘치는 우리가정 (잠 17:1)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예배’에 초점을 맞춰 3주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결론이 될 것입니다. 
1970년도에 출판된 엘빈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이라는 책을 보신 분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미래에 대해서 한 개인의 의견을 밝힌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여러 가지의 데이터를 종합해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전망해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충격’ 제11장의 제목은 ‘파괴될 가족’이라는 무서운 타이틀입니다. 
미래사회는 초 산업시대가 되어서 생명공학이나 생식생물학이 발달할 것입니다. 
연구실에서 시험관 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한 방송의 토크쇼에 나온 얘기입니다. 
한 남자의 정자 은행에서 여덟 여자가 각자 한 자녀씩 여덟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 남자와 여덟 여자와 여덟 자식이 다 방송에 나왔습니다. 

분명히 핏줄로 보면 부자지간이고, 서로가 형제자매지간이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습니다. 
父情도 없고, 형제애도 없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된다면 가족이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앞으로 이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또 미래 사회에는 성윤리가 파괴되어 지금 우리가 죄악시하는 계약결혼이나 실험결혼 등이 성행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성연애가 공공연히 법적으로 공인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가족이라는 말은 없어지고, 가정은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토플러는 예언하고 있습니다. 
토플러의 이 예언은 30년이 채 가기도 전에 우리의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위험들이 시시각각 우리 가정에 밀려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우리는 5월 가정의 달을 보내고 있습니다. 

1. 돈이 가정에 행복을 줍니까? 

어제 우리 국민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했습니다.(2009년 5월 23일) 
이 비보를 듣고 설명할 수 없는 허망감에 사로잡혔습니다. 
돈이 뭐 길래 돈 600만 불 때문에 몰리고 몰리다가 결국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을까? 
권력이 뭐 길래 그렇게 쫓고 쫓기다가 죽음으로 끝내고 말았을까? 
돈이고, 권력이고, 다 살자고 하는 짓인데........ 
여러분은 이 비보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습니까? 

먼저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질문은, ‘돈이 가정에 행복을 주는가?’입니다. 
본문으로 읽은 잠언 17:1절은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성서에 보면,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낫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주고받는 쉬운 말로 표현한다면, “돈이 있으면 다 뭐합니까? 마음이 편해야지!”라는 뜻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은 매우 가난한 집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육선이 가득하다’는 것은 부유함을 상징합니다. 
‘육선’이란 고기를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비둘기, 양, 소로 제사를 드립니다. 
제사를 드린 다음, 그 가정 식구들이 그 고기를 나누어 먹습니다. 
고깃간에 고기가 가득하다는 것은  양과 소를 제물로 드렸다는 것이고, 그만큼 생활이 넉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말씀은, 재물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지요. 
오히려 성경은 재물이 많으면 행복해지기보다는 불행해지기 쉽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몇 구절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다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7:1절) 
재물이 많으면 번뇌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잠 15:16절) 
재물이 많으면 미움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 15:17절) 
재물이 많으면 욕심이 더 사나와진다고 했습니다. 
“한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 (전 4:6절) 

그런데 우리는 ‘재물은 곧 행복’이란 등식을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인간에 준 가장 큰 폐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하고 있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한 평이라도 더 늘리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가던 길을 멈추어 서서 행복하기 위해 애쓰는 이 일이 오히려 불행의 씨앗이 되고 있지나 않은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가난했을 때에는 가족들끼리 서로 이해하고, 끈끈한 정으로 뭉치고, 행복했었는데 밥술이나 먹고 살면서부터 그 돈 때문에 타락하게 되고, 자식들 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부모에게 원망이 생기고, 형제간에 미워하는 예를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이 봤습니까? 

성경은 재물로 행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재물이 많으면 욕심은 더 사나와지고, 다툼은 일어나고, 미움이 생기고, 번뇌가 생긴다는 성경의 말씀을 귓등으로 넘기지 맙시다. 

그러나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루는 것보다 나으리라.”는 말씀은 재물이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라고 하셨지 ‘먹을 것이 없어도’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해도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돈이 극히 필요 없는 수도사이거나 속과 겉이 다른 위선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현실 삶에서 가난에 찌들면 행복하기 힘듭니다. 
솔직한 마음입니다. 
가난해서 몸이 아픈데도 병원에 갈 수 없다면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재물이 많으면 불행해지기 쉽다고 했는데 현실은 재물이 없으면 불행해지기 쉽습니다. 
이것이 물질이 주는 아이러니입니다.  

2. 가정의 행복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재물이 우리 가정에 행복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땀 흘려 번 돈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살찌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행복하려면, 우리 가정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재물을 비롯한 모든 것 위에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 가정의 가장이심을 자주 고백하고 확인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예배입니다. 

시 128:1-4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땀을 흘린 대로 그것이 복이 되고, 내실에 있는 아내와 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이 행복하려면 우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의 첫 번째 조건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생활과 가정행복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가정의 행복을 깨는 요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금방 깨닫게 됩니다. 
가정에 하나님을 모시고, 가족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정의 행복을 깨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만 지적해보겠습니다. 

① 속이는 것이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갑니다. 

남편이 아내를 속이고, 아내가 남편을 속이고, 자녀들이 부모를 속이면서도 가정의 행복을 얘기한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여기서 ‘속인다.’라는 말은 가족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저버리고, 가정의 행복을 해치는 의롭지 못하고, 선하지 못하고,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고 그것을 숨기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일들이 그런 것에 해당하는지를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속이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속이면 속임을 당한 가족은 배신감을 느끼게 됩니다. 
배신감을 느끼면 입을 다물게 됩니다. 
대화가 없어집니다. 
집안분위기가 냉랭해집니다. 
대화가 없어지면 불신은 더 깊어져만 갑니다. 
남의 눈이 무서워, 자식들의 눈이 무서워 살아가긴 하지만 사는 게 아닙니다.  
결국 속인다는 것은 가정을 지옥으로 만듭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솔직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잘못을 시인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대화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현대의 가정이 지옥으로 되어가는 것은 대화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우주비행사 미카엘 콜린스가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보고를 했습니다. 
남자는 하루 평균 25,000마디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자는 하루 평균 30,000마디의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해야 만족감을 얻는다는 거지요. 
그런데 남자는 직장에서 25,000마디의 말을 다 해버리고 집에 돌아올 때는 너무 지쳐서 말할 기운조차 없습니다. 

말하기도 싫고, 말 듣기도 싫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집에 말할 상대자가 없으니까 30,000마디를 고스란히 안고 남편이 집에 돌아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에 지친 남편은 아내의 말을 제대로 받아주지도 않고, 대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무슨 남자가 이렇게 재미가 없느냐?’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런 입장을 서로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아무튼 솔직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의 옳지 못한 부분을, 선하지 못한 부분을, 바르지 못한 부분을 솔직히 토해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 용기는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술을 한잔 먹으면 얻을 수 있습니까? 
이 용기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또 상대방의 허물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 사랑은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세월이 지나면 그냥 첫 사랑이 회복됩니까? 
이 사랑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에서 권능이란 고백할 수 있는 용기, 용서할 수 있는 사랑을 포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이 가정의 행복을 회복시킵니다. 

요즈음 흔히 세 쌍 중에 한 쌍이 이혼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계에 의하면 주일날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부부는 40쌍 가운데 하나 정도 이혼한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가정예배를 드리는 부부- 집안에 기도와 찬송소리가 들리고, 마음을 합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가정에서는 이혼과 같은 심각한 사고를 일으키는 경우는 400쌍 가운데 1가정 정도라고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계셔야 가정에 행복이 깃든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죄인이기에 우리 가정에 문제가 전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풀고, 이 응어리를 녹이고, 행복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믿음이 꼭 필요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② 빈곤의식이 가정의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사람들의 의식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것은 빈곤의식과 부요의식입니다. 
빈곤의식이란 ‘우리 집에는 남의 집처럼 뭐가 없다.’, ‘우리 남편은 돈을 잘 못 벌어온다.’, ‘우리 남편은 자상함이 부족하다.’, ‘우리 아내는 요리솜씨가 없다’ 등, ‘없다’, ‘부족하다’, ‘모자란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을 ‘빈곤의식’이라고 합니다. 
부요의식이란 ‘우리 집엔 이것이 있다’, ‘우리 남편은 이런 장점이 있다.’, ‘내 아내에게는 이런 특별한 점이 있다.’ 등, ‘있다’, ‘넉넉하다’, ‘넘친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딸 다섯을 둔 두 가정이 있었습니다. 
두 가정이 다 아들 하나 얻고자 낳다보니 딸이 다섯이나 됐습니다. (그냥 예로 드는 것입니다.) 
빈곤의식을 가진 남편을 둔 가정입니다. 
그 아버지는 딸들을 보고 ‘계집애’라고 부릅니다. 
‘저 계집애 중에서 하나만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늘 아들이 없음을 아쉬워합니다. 
그러니까 딸들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무슨 죄를 지은 사람들처럼 아버지의 눈치를 봅니다. 
아내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주눅이 들어 숨도 크게 쉬지 못합니다. 

이런 가정에 무슨 행복이 있겠어요? 
부요의식을 가진 남편을 둔 가정입니다. 
그 아버지는 딸들을 보고 ‘공주’라고 부릅니다. 
첫째 공주는 점잖아서 좋고, 둘째 공주는 공부를 잘해서 좋고, 셋째 공주는 심부름을 잘해서 좋고, 넷째 공주는 청소를 깨끗이 해서 좋고, 막내 공주는 재롱을 잘 피워서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딸들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팔에 매어달리고, 뽀뽀를 하고 좋아합니다. 

어느 가정이 행복하겠습니까? 
어떤 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하겠습니까? 
아무리 집안에 많은 것을 쌓아 놓았더라도 빈곤의식을 가지고 살면 불행하고, 집에 부족함이 좀 있다하더라도 부요의식을 가지고 살면 행복합니다. 

기독교 상담학자 J.E. 아담스에게 어느 날 한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이 부부는 서로 상대방을 심하게 거부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부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자, 가방을 뒤적거리다가 노트 한 권을 꺼냈습니다. 
두꺼운 노트에는 결혼 생활 13년 동안 남편의 잘못된 일, 부족한 점이 조목조목 적혀 있었습니다. 
그 노트 앞면에는 남편의 잘못을 쉽게 찾도록 색인표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 여자가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남편의 단점, 잘못된 점, 부족한 점만 찾아내는 이 여자가 결혼할 자격이 있습니까? 
빈곤의식에 사로잡힌 이 여자가 어느 때에 만족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결혼생활 13년 동안, 남편의 좋은 점, 장점, 잘난 점을 찾아서 기록할 수 있었다면 그 가정은 어떠했을까요? 
이 빈곤의식은 여건이 변화되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좀 생겼다고, 지위가 높아졌다고, 상황이 호전되었다고 고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거지는 아무리 밥을 많이 먹어도 배고픔을 느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 빈곤의식에 사로잡히면 자기 자신에게서도 늘 부족한 점을 찾아내서 열등감에 빠집니다. 
자기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하면 남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빈곤의식에 사로잡히면 다른 사람에게서도 단점을 찾아내서 쉽게 비난합니다. 
그러니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이 빈곤의식을 어떻게 하면 부요의식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믿음밖에는 없습니다. 
바울사도는 부요의식으로 가득한 마게도냐 교인들을 다음과 같이 칭찬합니다. 

고후 8:1-2절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회와 교인들에게는 ‘넘치는 기쁨’, ‘넘치도록 풍성한 연보’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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