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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무슨 밭일까? (막 4: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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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밭일까? (막 4:1~20) 
 

1. 씨 뿌리고 모 내는 계절

지난 21일은 24절기 가운데 “소만(小滿)”이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음력(陰曆)을 사용하던 동양권에서는 달의 운행과 변화를 보고 만든 음력이 계절의 주기와 맞지 않다는 것, 즉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일조량, 강수량, 기온 등과는 관계가 없어서 양력(陽曆)에 따라 농사와 관련된 절기를 만든 것이 24절기입니다. 그 가운데 <봄 절기>는 입춘(立春), 우수(雨水), 경칩(驚蟄), 춘분(春分), 청명(淸明), 곡우(穀雨) 입니다. 그리고 지난 5월 5일이 입하(立夏)였는데요, 그때부터 여름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입하 다음에 오는 절기가 바로 소만(小滿) 입니다. 이 “소만”이라는 절기의 이름 뜻은 ‘만물이 점차 생장(生長)하여 가득 찬다’는 의미와 더불어, “작을 소(小), 찰 만(滿)”이라는 이름으로 “채울 충(滿) 찰 만(滿)”, 즉 충만의 의미와 비교하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소만 때의 한낮의 날씨가 여름날씨 같으나 여름에 조금 모자라고, 신록(新綠)의 계절로서 만물이 푸르지만 그 역시 조금 부족해 보이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금 모자라지만, 그래도 만족할만한 시기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이 “소만”입니다. 

예로부터 소만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논농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이 무렵에 보리를 베고, 곧바로 이어서 모내기를 하고, 또 다른 여러 밭작물에 대한 김매기에 바빠졌습니다. 대부분 도시 생활을 하는 여러분들에게 농사와 관련된 일들이 다소 거리감 있게 여겨질 수도 있으나, 주님께서 당시 사람들과 또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일반적이고 익숙한 <씨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기에, 오늘 저와 함께 농번기가 시작된 농촌으로, 그리고 예수님 당시의 팔레스타인의 전원으로 떠나보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가장 쉽게 진리의 말씀을 깨달을 수 있도록 그들에게 익숙한 비유를 많이 말씀하셨는데, 오늘 본문이 바로 그 중의 하나입니다. 물론 이 말씀을 들은 후 논과 밭으로 가서 씨를 뿌리고 땅을 가꾸라는 뜻은 아닙니다. 논과 밭에 씨뿌리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지금 여러분의 마음 밭, 지금 여러분의 영적인 토양이 어떠한지를 살피라’는 것이 오늘 본문의 의도입니다. 

2. 씨 뿌리는 비유의 배경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데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마가가 1장에서부터 놓치지 않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죄의 용서를 선언하시고, 권위 있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시고, 또 당시의 신학자들인 서기관 등과의 논쟁을 압도하셨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그에 대한 반응이 두 가지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보고 들은 사람들이 다 놀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라고 하는 반응이었습니다(2:12). 그러나 그 반대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3장 31절을 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자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의 거센 반대 역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반대자들은 예수님을 거짓 선지자로, 백성을 오도하는 사람으로, 심지어 귀신들렸거나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 즉 마귀의 힘을 입어 그런다고 비판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는 미쳤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런 비난이 본격적으로 일어나자 당황한 것은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변에서 하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하니까, 예수님을 강제로 데리고 와서 집에 가두든지 아니면 어떻게 해 볼 것이라며 나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같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거기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반대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을 때, 주님은 오늘 본문의 <씨 뿌리는 비유>, 조금 다른 각도로 보면 <네 가지 밭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그 동안 백성들을 가르치시면서 그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이 대체로 네 가지였다는 말씀이지요. 길가와 같이 완악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흙이 얇은 돌밭과 같아서 싹이 나기는 하지만 금방 말라버리는 것과 같은 변화무쌍한 백성들, 가시덤불에 덮여 있는 밭같이 씨가 떨어져도 가시가 그 기운을 막으므로 장성하지 못하고 마는, 말하자면 자연이나 사회와 주변 환경에 눌려서 기를 펴지 못하고 늘 패배자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옥토와 같이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구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네 가지 밭에 대한 비유의 말씀하심으로서 당신께서 선포하시는 진리의 말씀에 대해 올바르게 반응하고, 그에 합당한 열매 맺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이 기대는 오늘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3. 네 가지의 밭

이제 <씨 뿌리는 비유>에 나오는 <네 가지 밭>을 생각해 봅시다. 

1) 길가와 같은 마음 밭

첫째는 길가와 같은 굳은 밭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농지는 가늘고 길게 나누어져 있었고, 길과 밭의 구분이 힘들 정도로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으며, 밭의 이랑과 이랑 사이에 물이 흘러가도록 만드는 고랑이라는 것도 정확하지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밭인지 길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땅에 씨를 뿌리는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요. 첫 번째 방법은 길에 서서 밭을 향하여 씨를 흩날리듯이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은 나귀의 등에다 씨 자루를 싣고, 씨가 든 자루의 모퉁이를 잘라 구멍을 낸 뒤에 농부가 나귀를 몰고 왔다 갔다 하면서 씨를 뿌리는 방법입니다. 우리나라는 씨를 일일이 심기 때문에 이스라엘처럼 씨를 흩뿌리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습니다만, 당시 이스라엘은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씨가 밭고랑에 떨어지기도 하고, 또 밭과 밭 사이 길에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길가에 뿌려진 씨는 새들에게 먹히거나 길을 지나는 사람의 발에 밟히기 때문에 제대로 자라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이 첫 번째 밭이 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말씀이 자신에게 선포될 때, 제대로 그 말씀을 경청하지 않는 사람, 그 말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 결국 그 말씀을 거부해버리는 사람의 마음을 뜻합니다. 왜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거부했을까요? 길도 원래는 부드러운 흙으로 되어 있었지만, 사람과 동물 등이 지나다니면서 밟히고 다져져서 딱딱한 땅이 된 것입니다. 즉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아예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머릿속이 인간적인 것으로 세상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정신과 문화와 마귀가 그 마음을 딱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말씀을 받으려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기독교의 진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들으려고 하지 않은 것이지요. 오히려 귀찮은 것으로 생각 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 그들은 기독교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주님과 진리의 말씀을 적대시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길가와 같은 마음 밭의 소유자들입니다. 

2) 흙이 얕은 돌밭

예수님이 말씀하신 두 번째 마음 밭은 “흙이 얇은 돌밭” 같은 마음입니다. 이스라엘은 평야보다 산이 더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밭들은 대부분 바위투성이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밭에 씨를 뿌리다 보면 돌밭이나 제법 큰 바위 위에 흙이 얇게 깔려 있는 땅에 씨가 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땅에 뿌려진 씨도 싹을 낼 수는 있습니다만, 너무 흙이 얇기 때문에 뿌리가 내리지 못해서 땅으로부터 수분과 양분을 흡수하지 못해 결국 해가 날 때 말라 죽고 맙니다. 

흙이 얇은 돌밭과 같은 마음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그것은 잠시일 뿐 시험을 받을 때에 넘어지는 사람을 뜻합니다(16,17). 즉 말씀이 선포될 때에는 아주 정열적으로 반응하지만, 그 말씀이 그 사람의 마음에, 영혼에, 삶에, 인격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경우이지요. 이런 유형의 사람은 말씀을 잘 듣고, 은혜도 받고, 신앙생활도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순종도 잘 하고, 봉사도 열심히 잘 합니다. 그러나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면 곧바로 흔들립니다. 삶의 시련과 위기가 닥쳐오면, 쉽게 좌절하고 어떤 때는 신앙마저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결국에 가서는 아예 신앙생활, 교회생활에 등을 돌려버리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에 뿌리를 내리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 예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훈련을 통해 말씀이 인격과 습관과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전도자는 성도들이 교회로 인도한 “1백 명 가운데 … 95 명은 … 성숙할 때까지 돌보아주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대개가 도중에 넘어진다는 말이지요. 말씀이 여러분 속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리도록,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과 인격을 바꾸는 것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3) 가시떨기 밭

주님이 말씀하신 세 번째 밭은 가시떨기 밭입니다. 팔레스타인의 농부들은 밭이나 밭 주변에 있는 가시 덩굴을 윗부분만 잘라서 불살라 버리기 때문에 얼핏 볼 때는 말끔해 보이지만 땅 밑에는 가시의 뿌리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금방 가시 덩굴이 다시 무성해졌다고 합니다. 이 가시 덩굴은 곡식의 씨보다 더 강인한 생명력과 성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곡식보다 훨씬 더 잘 자라고 빨리 자라 곡식의 생명을 막아 버렸습니다. 

농부가 뿌린 씨가 이런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18,19)”를 뜻합니다. 즉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나,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육체적인 쾌락 때문에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로 성장하지 못하고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을 실천하고 그 말씀대로 믿고 살아가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으로 인하여 말씀을 잃기 보다는 도리어 말씀으로 그것을 이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4) 좋은 땅 밭

주님이 말씀하신 네 번째 밭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 8:15)”를 말합니다. 즉 “좋은 땅”이란 “착하고 좋은 마음”을 말하는데요, 이런 마음은 스펀지와 같이 말씀을 듣는 즉시 그 말씀을 흡수하는 마음, 즉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입니다. 

❶ 따라서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지식, 의견이 많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잘 듣지 못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듣기는 듣는데 마음 문을 닫고, 생각을 멈추어 버리거나, 아니면 자신의 생각이나 여타의 것을 섞어가면서 말씀을 받습니다. 그래서는 옥토가 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그동안 여러분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것을 비우는 것부터 먼저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의 스펀지가 되어 듣는 그대로 흡수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❷ 두 번째로 좋은 밭은 그 말씀을 그대로 “지키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굳게 붙잡다, 소유하다, 정박하다’는 뜻입니다. 즉 그 말씀이 그의 마음과 영혼과 삶에 그대로 머무는 것, 혹은 말씀의 항구에 정박한 배와 같이 되는 것,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생활은 언제나 행동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기독교는 사색이 아니라 실천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는 행동이 습관과 인격과 삶의 변화를 낳고, 인간관계의 변화와 성숙을 낳고, 그리고 그렇게 살아감으로서 이 세상과 주위 사람들을 더 살맛나게 만들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또 하나의 열매인 것이죠.

❸ 세 번째로 좋은 밭은 “인내”하는 마음 밭을 말합니다. 인내란 기다리는 것입니다. 씨가 뿌려져 자라서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싹을 내고 자라며 열매를 맺고 익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합니까? 또 인내란 시련과 유혹을 이겨내는 것입니다. 씨는 자라면서 태풍을 견뎌내고, 뜨거운 폭양을 이겨내며, 수많은 병해충을 이겨냅니다. 이렇게 곡식은 길고 긴 시간과 여러 가지 악조건을 이겨낸 끝에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죠. 

주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들은 마음이 옥토라는 것은 저절로 열매가 맺히고 저절로 익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옥토는 인내하는 밭이고 기다리는 밭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 반드시 그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그 말씀이 여러분의 삶에 그대로 되기까지 기다리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좋은 마음 밭의 성도는 어떤 시험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 시련 가운데서도 말씀을 놓치지 않고 그 시험을 이겨내는 사람입니다. 또한 삶의 온갖 염려를 인내함으로서 이겨냅니다. 물질적인 유혹 앞에서도 인내합니다. 쾌락 앞에서도 인내합니다. 그는 그 어떤 유혹과도 싸워 이김으로서, 결국 주님이 원하시는 삶의 열매를 거두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시기 바랍니다.

4. 좋은 밭 만들기

한참 우리나라 사과 농사가 잘 되던 때에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최고의 신품종 사과 묘목을 사다 심었습니다. 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달리 사과나무가 병충해에 시달리고, 또 잎만 무성할 뿐 열매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것을 팔아버렸습니다. 그것을 산 사람 역시 과수원을 인수하여 3년이나 지났지만 별 성과가 없자, 그 사람도 팔려고 내 놓았습니다. 하지만 소문이 나쁘게 나서 사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손해를 감수하면서 헐값에 팔겠다고 신문광고를 내고 현수막도 내걸었습니다. 그러던 중에는 어떤 외지 사람 하나가 아주 헐값에 과수원을 인수받아서 사과 농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또 한 사람 헛고생하러 왔다’고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과수원을 인수한 사람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가지를 아낌없이 잘라버렸고, 땅을 깊숙이 판 뒤에 거름을 넣었으며, 그리고 아주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사과를 따기 시작했는데요. 그 맛이 좋다며 사람들이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러면서 사과가 비싸게 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아주 비싼 가격으로 그 과수원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나섰고, 심지어 30배가 넘는 가격에 과수원을 인수하겠다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 그러나 주인은 “내가 왜 팔겠느냐?”며 과수원을 팔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네 사람들이 이 주인에게 물었습니다.
“병충해도 많고 열매도 제대로 맺히지 않던 과수원을 어떻게 전혀 다른 과수원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까?” 그러자 과수원 주인은 “제 마음대로 무성하게 자라난 사과나무 가지를 아낌없이 잘라버렸고, 땅을 깊숙이 파서 거름을 주었으며, 그리고 열심히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과수원의 최초 주인이 최고 품종의 사과 묘목을 심은 것처럼 여러분의 마음 밭에 뿌려지는 씨도 최고의 것입니다. 왜요? 우리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말 중요한 것은 씨보다 말씀의 씨가 ‘어떤 땅에 떨어지느냐’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당시 농사짓는 방법을 예의주시하신 뒤에 씨가 뿌려지기는 하는데 길가에도 떨어지고, 돌밭에도 떨어지고, 가시덤불에도 떨어지고, 제대로 된 밭에도 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말씀을 받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이것은 오늘 여러분에게도 해당 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밭, 영혼의 밭이 어떠냐에 따라서 결실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자주 듣는데도 좋은 결실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마음 밭의 토양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묵상하고, 성경쓰기하고, 여러 가지 교육이나 훈련에 참석하고, 교회의 각종 봉사에도 참여하지만, 마음 밭 즉 영혼의 토양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헛농사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마음 밭은 어떻습니까? 어떤 말씀의 씨가 들어와도 잘 자랄 수 있으며, 어떤 병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재해와 난관과 시련이 와도 이겨낼 수 있으며,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하여 풍성하고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입니까?

이런 땅을 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타고난 좋은 땅은 없습니다. 설사 있다손 치더라도 가꾸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면 아무리 좋은 땅도 잡초가 무성한 폐허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 밭을 좋은 땅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마음 밭을 최고의 토양으로 가꾸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농사짓는 분들 얘기로 좋은 땅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퇴비'라고 하더라고요. 그들의 말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여러분이 좋은 밭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썩어야 한다는 것, 즉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경험, 지식,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그 모든 것을 없애야만 진짜 좋은 토양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본문의 네 가지 밭을 다음과 같이 설명을 했는데, 참 일리가 있더라고요. “길가 밭은 주님의 말씀에 지적으로 동의만 하는 것이다(知的同意). 자갈밭은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동의만으로 끝나는 경우이다(情的同意). 가시밭은 입술로 동의하고 고백하는 것으로 끝나는 신앙이다(口頭的同意).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밭은 옥토(沃土) 밭으로서 삶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行動的 同意).”

이 말처럼 설교를 들어도 지적인 동의만 하고 행동은 대충 아무렇게 하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적 동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위 은혜 받았다면서 감동을 받고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맛보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입니다. 또 가시밭과 같은 마음이란 말씀을 들을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하! 그렇구먼!”하는 반응을 보이고, 기분이 좋을 때는 “아멘”도 합니다. 하지만 그 역시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밭이 귀로 주의 음성을 듣고, 뜨겁고도 감동적으로 동의하면서 전심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어떤 환경의 영향에도 굴복하지 않고 그 말씀을 입술로 선포하며, 나아가 그 말씀을 행함으로 좋은 밭이 되어 개인과 가정과 일터에서 풍성하고 알찬 열매 맺으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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