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010.07.03 08:27

주님의 뜻 (마 6:9~13)

조회 수 36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주님의 뜻 (마 6:9~13)


어제 일어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서거 소식은, 온 국민들에게 너무나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깨끗한 정치를 구현해 보려고 무척이나 애쓴 분으로 기억이 되고, 따라서 그분과 관련된 금전적인 비리 소식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의 급작스런 서거 소식에 실로 애석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됩니다. 그가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더라면 양심의 고통을 그런 식으로 해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이성은, 그가 아무리 총명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너무도 어리석은 판단을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고통이 죽음과 함께 끝날 것이라는 생각은 그의 엄청난 착각입니다. 

그의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이 명명백백하게 증명되지도 않을 것이고, 또한 역사는 그의 비참한 선택을 잘한 것으로 기록하지도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죽음으로 일시적인 동정은 받을지언정, 결코 아무런 명예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의 비참한 죽음의 선택은 너무도 이기적인 죄라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자기의 도덕적인 청렴성 때문에 그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보아야 하는 그의 아내나 자식들이 겪을 고통과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 또한 그렇지 않아도 자살자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보다 더 많은 세태 속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인사가 그런 식으로 목숨을 끊어버리면, 생명경시 풍조가 더욱 만연하게 될 것이 뻔한데, 처자식이고 국민이고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자기 양심의 고통에서만 벗어나고자 그러한 선택을 하였으니, 철저하게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란 우리가 ‘크로스 웨이’ 교재에서 배운 대로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가 곧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물론이고, 국민의 뜻, 사랑하는 처자식의 뜻, 그를 아끼던 많은 친지들의 뜻을 모두 저버리고 오직 자신의 뜻을 따라서 생을 마감해 버린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주기도문 강해 설교는, 과연 우리가 누구의 뜻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 있어서, 정신의 모범, 순서의 모범이라고 했습니다. 주기도에는 주기도의 정신으로, 주기도의 순서로 기도하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기도문 첫 번째 부분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내용이고, 두 번째 부분은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는 내용이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주기도의 세 번째 부분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할 때’ 그 이름은 물론 하나님의 이름을 의미하고,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기도할 때, 역시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기도할 때, 그 뜻 역시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의 뜻이나 의지나 생각이 아닌, 하나님 자신의 뜻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주기도에는 우리의 어떤 필요를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는, 강력한 교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양들이 있다고 합니다. 양의 무리가 많아서 앞의 양들이 풀을 뜯어먹으면, 뒤의 양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뒤에서 밉니다. 뒤에서 미니 앞에서는 밀리다가 결국 뛰게 됩니다. 그런데 뒤에 있는 양들도, 앞의 양들이 뛰기 때문에 같이 뜁니다. 양은 무리에서 이탈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달립니다. 앞의 양들은 뒤에서 미니까 뛰고, 뒤의 양들은 앞의 양들이 뛰니까 뛰고, 결국 왜 뛰는지도 모르는 채 뛰다가, 벼랑으로 떨어져 죽는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들 중에도 이와 유사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열심히 뛰며 삽니다. 부지런히 성실하게 앞만 보고 달립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곧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의 뜻, 자기의 소원, 자기의 의지대로 살아가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에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하고 사는 사람이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익명의 한 성도는 “하나님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시는지를 발견하고, 똑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자는 복 있는 자이다.”고 했습니다. 또한 조지 트르에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가장 위대한 지식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의 뜻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그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딤후 1:9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자기의 뜻’이란 말씀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은 하나님의 ‘자기 뜻’에 근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주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분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지게 하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엡 1:9에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기쁘심’이란 말로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기로 예정하신 뜻은 하나님의 기쁘심이라는 것입니다.

엡 1:11에는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 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뜻을 가리켜 ‘하나님의 원’ 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 자신의 염원, 하나님의 소원이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행 2:23에는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 곧 하나님의 예정,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의 뜻이란 하나님의 목적이요, 하나님의 기쁘심이요, 하나님의 소원이시요, 하나님의 계획”을 의미합니다. 

히 6:17에는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라고 했습니다. 인심은 조석변이라고 합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롬 9:19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뇨?”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땅위에서 실현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늘나라는 어떠한 나라입니까? 여러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으나, 하늘나라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실현되고 성취된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 103:21에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늘나라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 뜻을 받들기 위해 기다리다가, 주님의 분부가 떨어지기만 하면 당장에 실천하는, 즉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게 실현되는 나라인 것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한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뜻, 하늘나라의 이상이 땅에서도 성취되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다르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은 죄인들에게 거절되고 있기 때문에, 이 땅은 어둡고, 혼란하고 괴롭습니다. 이 땅의 모든 혼란과, 사람들 마음속의 온갖 갈등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라는 찬미를 드리며,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 수행하므로 아름답고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데, 이 땅의 죄인들은 쉴 새 없이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뜻대로 마옵시고, 내 뜻대로 되게 하소서” 하는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혼란이 오고 갈등이 생기고, 그래서 죄악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주기도문 셋째 부분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몇 가지 책임이 있습니다.

1.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강물에 비교한다면, 기도란 수도관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기도라는 수도관을 통해서 강물처럼 밀려옵니다. 그러므로 기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도 없고, 기도 없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통해서 그의 뜻을 실현하시기 때문입니다.

왕상 18장을 보면, 아합왕 때에 심한 가뭄이 들어, 많은 사람이 기근으로 허덕일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불러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 후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엎드려 기도하였고, 엘리야의 기도 후에 비로소 하늘은 비를 쏟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를 주시기로 작정하셨고, 그 뜻은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서 실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도처에서, 어느 날 그를 믿는 백성들에게 성령이 부어질 것을 약속하셨고, 요엘 선지자는 그 하나님의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는 영광스런 그 날을 예언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그 약속을 믿고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120문도 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기로 한 하나님의 약속은,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할 때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기도하는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자가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나,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행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2.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은 나의 뜻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뜻, 자기의 소원만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하고 기도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좇아가고,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자기의 뜻, 즉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했습니다. 이는 자신의 뜻 앞에서는 날마다 죽으며, 매일 매일,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만을 좇아 복종하여 살려고 하는, 위대한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기도도 마땅히 내 생활 속에 하나님의 뜻을 제일로 삼고, “주여, 주님의 뜻이 내 생애를 통하여,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 앞에 모든 것을 기쁘게 자원하여 바치는 삶을 사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요 4:34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취하듯,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양식으로 취하셨고,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즐겁게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요 6:38, 39에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니이체는 “운명을 피할 수 없거든 운명을 사랑하라. 달리 길이 없지 않은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 달리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행함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인 것을 믿기에, 기쁘고 즐겁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할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아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려면 먼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너무도 분명하게 밝혀져 있습니다. 요 6:40에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우리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심히 기뻐하시고, 심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살전 4:3에는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했고, 살전 5:16-18에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얼마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들입니까? 

또 하나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 아는 것이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만한 자리에, 위치에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롬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전에 한 가지 조건이 전제되어 있는데, 12:1에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리에 설 수 있느냐? 그것은 우리가 우리 몸을 하나님 앞에 드린 후에, 내가 참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참으로 주님의 뜻을 행하고자 원하여,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바쳤을 때,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런던의 에그리컬쳐 홀에서 어느 날 15,000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열고자 유명한 설교의 왕자 스펄죤 목사님께 설교를 요청하였습니다. 스펄죤 목사님은 매우 분주하여 그 집회의 설교를 사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최측에서 “15,000명이나 모입니다. 이 많은 군중이 모이는데, 설교해 주시지 않으시렵니까?” 라고 독촉하자, 스펄죤 목사님은 “15,000명이 모이는 문제가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라고 충고해 주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기 환경과 처지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지극히 적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현실에 대한 불만 속에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과거에 대하여 후회하며, 현실에 대한 불만 속에서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현재에 대하여 불만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현재에 대한 불만은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확신하는 성도들에게는, 고난 가운데도 유익이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이나 팔자를 믿는 사람은, 귀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고난의 의미를 전적으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하나님께 물어 보며 겸손히 마음을 열면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한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교에 갈 만큼 넉넉하지도 못했고, 어느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할 만한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사진술을 배워서 사진 기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진술을 엮어 놓은 책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편지를 받은 서점의 착오로, 사진술에 대한 책은 오지 않고 대신 발성법에 대한 책이 왔습니다. 그 소년은 너무 가난하여 그 책을 돌려보낼 만한 우송료도 없었거니와, 반송하는 방법도 몰랐습니다. 소년의 실망은 컸습니다. 그 소년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실망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할 수 없이 발성법에 대한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소년이 바로 발성법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성악가가 된 차리맥카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죤 뉴톤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신다면, 여러분은 이 단 하나의 기회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그리고 스스로 “만약 하나님께서 단 하나의 선택의 권한을 주신다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그것을 선택해 주실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내가 무엇이 필요한가를 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내가 나를 아는 것 이상으로 내 미래를 아시고, 내가 내 미래를 완벽하게 계획하는 것 이상으로, 내 미래를 완벽하게 계획하며 섭리하시는 분은 한 분 뿐이심을 알기에, 그 단 하나의 선택을 하나님께 맡기어, 하나님의 뜻이 내 일생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겠습니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확신 속에서 우리는 나의 뜻, 나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라고,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짧은주소 : https://goo.gl/8ZrhPT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글쓴이
33276 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살전 1:2~4) file 2010.07.03 242 운영자
33275 설교 부지런히 가르치라 (신 6:4~9) file 2010.07.03 192 운영자
33274 설교 물로 된 포도주 (요 2:1~12) file 2010.07.03 266 운영자
33273 설교 거듭난 사람들 (요 3:1-15) file 2010.07.03 247 운영자
33272 설교 행복한 가정 (시 133:1~3) file 2010.07.03 364 운영자
33271 설교 주님의 날 (살전 4:13~5:11) file 2010.07.03 262 운영자
33270 설교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요 17:6~19) file 2010.07.03 409 운영자
33269 설교 주의 권능의 날 (시110:1~3, 눅 7:11~17) file 2010.07.03 339 운영자
33268 설교 무거운 짐 (롬 9:1~3) file 2010.07.03 285 운영자
33267 설교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롬 13:8~10) file 2010.07.03 476 운영자
33266 설교 상처의 치유 (시 27:7~10) file 2010.07.03 438 운영자
33265 설교 좋은 친구들 (막 2:1~5) file 2010.07.03 439 운영자
33264 설교 예수안에 있는 은혜 (엡 1:3~7) file 2010.07.03 415 운영자
33263 설교 하나님 만남의 은총 (딤전 1:12~17) file 2010.07.03 250 운영자
» 설교 주님의 뜻 (마 6:9~13) file 2010.07.03 369 운영자
33261 설교 나는 무슨 밭일까? (막 4:1~20) file 2010.07.03 234 운영자
33260 설교 [가정의달] 행복이 넘치는 우리가정 (잠 17:1) file 2010.07.03 355 운영자
33259 설교 사랑이 충만한 사람 (눅 7:36~47) file 2010.07.03 212 운영자
33258 설교 기본에 충실하자 (롬 12:1~2) file 2010.07.03 553 운영자
33257 설교 보배로운 믿음 (벧후 1:1~11) file 2010.07.03 320 운영자
Board Pagination Prev 1 ... 3795 3796 3797 3798 3799 3800 3801 3802 3803 3804 ... 5463 Next
/ 5463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