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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안에 있는 은혜 (엡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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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안에 있는 은혜 (엡 1:3~7)


  Master of Influence라고 하는 아주 특별한 상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한 영향을 끼친 사람에게 주는 특별한 상입니다.  전 미국 강연가 협회가 유명한 대중연설가로 인정해서 주는 상인데  최고의 동기부여가, 또 자기개발과 성공학의 대가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상을 받은 사람중에 지그 지글러라는 이가 있는데 75세에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썼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책입니다.  그는 책의 결론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은 감사뿐이었다.  감사 외에 다른 할 말이 없는 그러한 일생이었다."  지글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자신은 혼자서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천사가 나를 늘 지켜주셨다'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또한 가족들에게 특별히 감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그 이웃들에게 감사합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참으로 내게 고마운 분들이다.   

감사외에 다른 말이 없다'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인생이 성공합니다. 남보다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인생을 풍성하게 사는 비결은 감사입니다. 그런데 감사는 은혜를 깨닫는데서 출발합니다. 모든 것이 은혜라는 사실에 눈을 뜨면 감사와 함께 행복감이 밀려옵니다. 
  
예수안에는 온갖 보화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6절에 하나님이 우리로 자녀삼으신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7절에는 '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라고 우리에게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여러분, 예수안에서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 아름다운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안에는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1. 예수안에는 신령한 복이 가득합니다.(3)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읽은 에베소서는 바울사도가 전도하다가 잡힌 로마의 감옥에서 쇠사슬에 매인채로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런데 그는 1장 3절의 이 편지의 서두를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지금 극한 고난을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을까요? 뿐만 아니라  이 편지를 받는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하나님을 찬미하자고 강조합니다. 왜입니까? 그것은  자신과 우리에게 허락된 하늘에 속한 어마어마한 영적인 축복들 때문입니다.
  
우리 위해 준비된 영적인 축복들은 무엇들일까요?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축복은  우리를 선택하시고 당신의 자녀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본래 우리는 그의 자녀가 아니었는데 은혜로 자녀가 되어 양자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4절과 5절 말씀입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그분 보시기에 더럽고 추한 존재인가를 아시고도 우리가 마침내 거룩하고 흠이없는 자녀로 그앞에 설 것을 기대하시며 우리를 그의 자녀 삼기로 창세전부터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은 영적인 복을 뜻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영적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으며 산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속하여 하늘의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에는 온갖 영적인 복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8:32에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주일날 교회는 오지만 설교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설교를 비판만 일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전임교수로 옮기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목사님께 기도 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교회 여름 수련회에 참가할 것을 종용하셨습니다. 거듭 거절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모교 교수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3박4일 수련회 가는 시간조차 낼 수 없는 거니? 네가 하나님이라면 네 기도를 들어주고 싶을까?' 순간  얄팍한 계산의식이 발동하여 수련회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수련회 준비 기간에 귀찮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목사님께서 성경공부 팀장을 맡으라는 것이었다.  "목사님,저는 대학 입학 이후 성경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런 제가 어떻게 리더를 합니까. 못하겠습니다." 목사님의 요청은 간곡하고 집요했습니다. 결국   "성경 내용 중에 이해하는 부분만 가르치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그냥 넘어가겠다"고 타협한 뒤 팀장직을 수락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공부 마지막 시간에 각 팀장이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경험을 간증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은혜거리'가 없었기 때문에 난감했습니다. 급한 마음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내일 모레 간증시간 전까지 은혜를 주십쇼. 은혜를 안 주시면 저야 그만이지만 하나님은 덕 될 게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은혜거리는 생기지 않았다. 
  
팀장 교육을 마치기 하루 전 새벽기도 때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았는데  분명하고 확실한 음성을 들렸습니다. "내 아들아,지금까지 내가 너를 지켜준 게 다 은혜가 아니더냐.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아무런 은혜가 없다니…." 천둥 같기도 하고,뭐라고 형언하기 힘든 목소리 뒤로 인생의 중요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그땐 참 다행이었지,운이 좋았지. 그 모든 것이 다 하나님 은혜였구나,  은혜였어. 하나님은 정말 나를 처음부터 사랑하셨구나. 나는 이미 하나님의 '터치'를 받은 사람이었구나.' 주르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으로 그렇게 오랜 시간 울었습니다. 
  
그 뒤로 삶은 180도 변했습니다. 나는 하루종일 법서(法書)를 봐도 지루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법서가 눈에 안 들어오고 대신 성경은 읽어도 읽어도 그렇게 달콤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제13대 공정거래위원장을 지냈던 권오성교수의 간증입니다.  

  여러분, 예수안에 깊이 들어가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리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됨의 축복을 맛보며 큰 은혜를 깨닫고 심령이 새롭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안에는 평강이 가득합니다.(7)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평강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삶의 환경은 더없이 편해졌지만, 이에 반비례하여 스트레스는 날마다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마음속에 진정한 평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넘치면 세상의 근심, 걱정이 흔들어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더러운 사단의 세력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범죄하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권세아래 눌려 범죄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며 평안을 잃어버리고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점점 빼앗겨 평안을 잃어버린채 염려와 두려움에 시달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러한 때 무엇이 우리를 변화시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변화시키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 삶은 하나님의 평강으로 넘쳐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받고 변화되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평강을 누리려면 예수님앞에 나아가 우리의 모든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의 보혈에 우리의 마음을 적시며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7절에는 속량 곧 죄사함이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우리는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 속량이란 말은 본래 '값을 치르고 다시 산다'와 '다시 사서 자유를 준다'는 이중적인 뜻을 지닙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이 기록되던 당시 노예시장에서 사용되던 단어이었습니다. 

로마가 지배하던 시절 노예를 거느리는 것은 신분의 상징이었고 당시 정복지에서 잡혀온 노예들은 고가로 거래되었습니다. 이런 광경을 연상해 보십시오. 누군가가 한 노예를 두고 흥정을 벌려 비싼 값을 치르고 그를 산 다음 그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이제 너는 자유인이다. 부디 행복하게 살아라."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실제로 로마의 주인들 가운데 자비로운 주인들은 자신의 노예들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는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속량의 뜻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히틀러가 특별히 신뢰하던 신복 중 하나인 알베르트 슈페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제2차 대전을 치를 때, 독일 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공장을 100% 가동시키는데 천재적인 지혜를 발휘했던 공학자였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범 24명이 재판을 받았는데, 그 가운데 슈페르도 있었습니다. 다른 전범들은 모두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자신의 죄를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슈페르만이 자신의 죄를 법정에서 인정하여 20년 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형을 살고 나오자마자 여러 권을 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권의 책을 쓴 직후, 미국 ABC 방송 기자가 그와 함께 인터뷰를 한 일이 있습니다.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슈페르 씨, 당신이 초창기에 쓴 책을 보면, 나의 죄는 절대로 용서 받을 수도 없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된다.는 말이 있던데요.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슈페르가 아주 슬픈 기색을 띠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내 죄값을 치르느라고 20년 형무소 생활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 값을 다 치르고 석방이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자유인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에는 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범한 죄는 절대 용서 받을 수가 없다고, 그리고 용서 받아서도 안 되는 죄라고 생각합니다. 2차 대전 때, 희생당한 수백만의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 죄는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그가 형무소에서 나오고 나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범죄를 철저하게 책임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처절하게 참회의 길을 찾고 있었지만, 죄책감에서 자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신 힘으로는 죄책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무섭고 잔인한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인터뷰를 끝내고 몇 일 지나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스스로 자기 죄에서 빠져 나올 수 있습니까? 죄를 범한 후 양심에 남아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나 자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에게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아무리 죄 문제를 내 스스로 처리하고 그것이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해도 자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나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이웃에게 범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께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내 죄 문제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말미암아 죄의 노예로 살던 사람들의 죄를 해결해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피값으로 우리를 사시고 우리에게 죄에서의 자유 곧 죄사함을 선언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구원받고 죄사함 받은 우리에게 평강을 누리며 사는 복을 베푸셨습니다. 
  
여러분 예수안에 사십니까?  예수안에서 그의 피로 여러분의 모든 죄를 깨끗이 사함을 받으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죄와 함께 두려움도 염려와 근심도 다 맡겨버리고 평강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일본에 우찌무라 간죠라고 하는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가 있다면 그것은 질병도 실패도 배신당하는 것도 아니다.  만일에 저주가 있다면 세가지이다.  하나는 하나님이 믿어지지 않는 것,  두 번째는 성경을 읽어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  세 번째는 감사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다."   우찌무라 간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감사는 은혜에 대한 마땅한 응답이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은혜가 넘치면 감사가 풍성해지고 행복이 밀려옵니다. 그러나 은혜가 사라지면 짜증과 불행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행복하게 살려면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행복하려면 가족들 모두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어디에서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안에 은혜가 넘칩니다. 다른 곳에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안에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안에 들어와야 은혜받습니다. 

예수 주변에서만 맴돌지 말고 예수안에 깊이 들어와야 은혜가 넘칩니다. 예배를 통하여 예수님안으로 깊이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깊은 기도를 통하여 날마다 더욱 예수님께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말씀묵상을 통하여 예수님안으로 깊숙히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여러분의 마음에 항상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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