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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처의 치유 (시 27: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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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의 치유 (시 27:7~10) 
 
 
사람은 머리(mind)로 인생을 도모하지만 마음(heart)으로 인생을 겪어갑니다. 사람은 머리로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지만 마음으로 행복과 불행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인생에서 마음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인생을 힘겹게 느끼게 되는 것은 마음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심각한 문제가 다가온다고 해도 마음이 힘들지 않으면 결코 인생은 위기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마음이 힘이 들면 인생은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의 상처입니다. 우선 이 마음의 상처는 마음을 아프게 만듭니다. 마음이 아프게 되면 행복은 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이 마음의 상처가 깊어지면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 마음이 병들게 되면 불행이 깊게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는 빨리 치유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겪는 마음의 상처 가운데 가장 흔한 것이 “거절당함”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이 거절당함입니다.

한 자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7녀1남의 집안에서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났답니다. 자기가 태어나는 순간 엄마는 또 딸임을 아시고 대성통곡을 하셨답니다. 이름도 “딸은 그만”이란 뜻으로 “끝순이”라고 불렀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자기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동생이 태어났는데 아들이었답니다. 그날 엄마는 너무 기뻐서 우셨답니다. 그날로부터 온 가족들의 관심은 온통 동생에게 쏠려있었답니다. 그날 이후로 자기는 찬밥도 그런 찬밥이 없었답니다.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마음속에는 견디기 어려운 소외감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또한 늘 마음이 우울하고 짓누르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거절당한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큰 상처입니다. 이 상처를 치유받지 못하면 이것이 하나의 마음의 병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마음의 상처의 뿌리 노릇을 합니다. 우리의 인격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더 나아가 인생 자체를 망가뜨립니다.

성경을 보면 가인이라는 인물이 나옵니다. 저가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 스스로 거절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상처를 치유받지 못했습니다. 그 상처 때문에 일어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인생 자체가 망가져버린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라는 인물도 나옵니다. 어려서 어쩔 수 없이 강에 버려졌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입양되어 왕궁에서 자랐습니다. 양자로의 설움도 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거절의 상처를 안고 자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가 하나님을 만나서 택함을 받게 됩니다. 거절의 상처를 치유받고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에 크고 작은 거절의 상처를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 상처를 치유 받을 때 전화위복이 되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가 덧나고 깊어질 때 인생 자체를 망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거절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거절의 상처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갖가지 거절을 경험합니다. 이것을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버림받음’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조직에서 버림받을 때가 있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아 고아가 됐다든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연을 당했다든지, 입학시험에서 낙방을 했다든지, 다니던 회사에서 퇴직을 당했다든지... 이럴 때 깊은 거절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둘째, ‘외면당함’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조직에서 외면당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당합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중받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에게 잊혀집니다. 이럴 때 또 다른 거절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셋째, ‘비난받음’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조직에서 비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초지종을 알아보지도 않고 비난을 퍼붓습니다. 인터넷에 악풀이 달립니다. 억울하고 원통하지만 자기 말을 들어주지를 않습니다. 이럴 때도 거절의 상처를 받게 됩니다.

넷째, ‘배반당함’입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또는 어떤 조직에서 배반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토록 믿었는데 배반을 당했습니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배반을 당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데 배반당했습니다. 이럴 때 정말 깊은 거절의 상처를 받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거절의 상처를 받고 나면 마음에 큰 문제가 생깁니다.

첫째, 마음이 아픕니다. 렘 3:13을 보면 “활을 당겨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심이여”라고 했습니다. 마치 마음에 화살이라도 꽂힌 것처럼 마음에 큰 고통이 있습니다. 

둘째, 화가 납니다. “사람들이 왜 나를 거절할까?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너무들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망하게 되고 심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셋째, 자학합니다. “왜 내가 거절당했을까? 다 나 때문이야 나는 형편없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열등감이 생겨나게 되고 심하면 자학하게 됩니다.

넷째, 믿지 못합니다. “이번에도 또 거절당하지 않을까? 저 사람도 나를 거절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자꾸 거절당하는 생각만 떠오릅니다. 사람들을 믿지 못하게 되고 심하면 도망쳐버리게 됩니다.

이런 거절의 상처들은 우리를 점점 깊은 불행의 늪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점점 더 상처가 깊어지게 되면서 우리를 파멸로 몰아갑니다. 

거절당한 마음의 치유

그러면 이런 거절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받을 수 있을까요? 거절당한 마음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부모조차 나를 버릴 수 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서 거절의 상처를 받습니다. 심한 경우 나를 낳아 주신 부모에게서조차 거절의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를 영접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십니다. 우리는 주의 품안에 안기게 될 때 거절의 상처를 치유받게 됩니다.

이렇게 거절의 상처를 하나님께서 치유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출 15:26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히브리어 원어로는 “여호와 라파”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치료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선 하나님께서 우리를 치료하시려고 기다리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처를 고치실 능력이 있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면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눅 17:11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10명을 고쳐주시는 기사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마을에 들어가시는 중이셨습니다. 나병환자 10명이 저 멀리에서 예수님께 소리쳐 말씀드렸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저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셨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철저하게 격리되었습니다. 레위기 13장을 보면 저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취급 받아서 성전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전염을 우려해 마을 안에서 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철저하게 가족들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사회에서 버림을 받았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도 버림 받은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정말 깊은 거절의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이들이 예수님께서 마을로 들어가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습니다. 자칫 돌에 맞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먼발치에서라도 예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소리를 질렀습니다. 저들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 앞에 나오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지금 나아오십시오. 그러면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상처를 드러내십시오

시편 39편 2-3절을 보면. “내가 잠잠하여 선한 말도 발하지 아니하니 나의 근심이 더 심하도다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상처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으면 고통이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상처를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은 마치 뜨거운 숯불을 내 가슴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질병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울화병이라는 병입니다. 이 울화병은 “억울한 감정이 쌓인 후에 계속 누적되어 결국 불과 같은 형태로 폭발하는 질환”을 말합니다. 이 울화병은 우선 심리적으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초조 불안하며 신경질적이 됩니다. 다음으로 육체적으로도 증상이 나타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옆구리가 잘 결리며 속이 쓰리거나 눈이 쉽게 피로합니다. 그리고 두통과 현기증을 동반하고 심하면 졸도하거나 사지가 마비되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거절의 상처를 담아두면 안됩니다. 큰 병이 됩니다. 이제 토해 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 쏟아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상한 심정을 그대로 말씀드려야 합니다. 거절의 상처는 거기서부터 치유가 됩니다.

욥 10:1 이하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욥은 상처투성이인 마음의 고통을 하나님 앞에 있는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을 그대로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자기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을 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숨기거나 과장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다 이해하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십니다.

셋째, 거절했던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히 12:1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쓴 뿌리가 남아있으면 두고두고 우리를 괴롭힌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거절의 상처를 치유받았다고 해도 쓴 뿌리를 그대로 두면 또 다시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거절의 상처의 쓴 뿌리는 우리를 거절했던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입니다.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쓴 뿌리로 남아있는 한 우리는 거절의 상처를 온전히 치유받을 수 없습니다.

마 18: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용서에 대해 교훈하신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상대방이 어떤 잘못을 범했어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상대방이 그 잘못을 끝없이 반복해도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용서해야 할까요? 나 자신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적개심과 복수심이 남아있는 한 내 마음의 상처는 또 덧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쓴 뿌리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절의 상처는 나를 거절한 사람들을 용서할 때 깨끗하게 치유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나를 위해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소중한 선물인 것입니다.

넷째, 나 자신을 용납하십시오.

롬 15: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주님께서 우리를 용납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고 용납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연약한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용납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거절할 지 몰라도 주님은 나를 용납하셨습니다. 비록 나 자신도 나를 거절할 지 몰라도 주님은 나를 용납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받으신 사람들입니다. 이 점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 모습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눈에 비친 내 모습입니다. 거절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봅니다. 둘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입니다. 거절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해석합니다. 그리고 셋은 하나님의 눈에 비친 내 모습입니다. 거절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도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님은 귀하고 사랑스럽게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내 자신을 용납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내 자신을 존중해야 합니다. 

한 자매의 고백을 들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를 부를 때 다른 사람들 이야기로만 생각했었답니다. 자기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하던 중에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게 됐답니다. 그러면서 그 말에 아멘으로 동의할 수 있게 됐답니다.

이제는 이 찬양을 입에 달고 산답니다. “감사해요 깨닫지 못했었는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항상 날 향하고 있었다는 걸”
그렇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주님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용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거절의 상처는 온전하게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이 험한 세상을 살면서 갖가지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특히 거절의 상처를 받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마음이 힘들고 불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거절의 상처를 치유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 그분께 나아가십시오. 그분께 있는 그대로 상처를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나를 거절했던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내 자신을 용납하시고 사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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