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요 17:6~19)

  • 잡초 잡초
  • 529
  • 0

첨부 1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  (요 17:6~19)  

 
범죄학자들이 깨진 유리창에 관해서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깨진 유리창은 그대로 방치해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진 유리창을 제 때에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둘 것 같으면 얼마 못 가서 그 건물은 여기저기 파손되고 결국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깨진 유리창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건물은 주인이 포기한 건물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해도 괜찮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야 합니까?
혹시 우리의 모습에서 깨진 유리창이 보이지 않습니까? 단지 겉모습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함부로 대해도 괜찮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좋습니까? 결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전에는 그래도 괜찮았던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취급하든지 별 상관이 없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존재입니까? 주님이 우리를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보배로운 피로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주님이 친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새 생명을 얻었습니다. 때문에 그 누구도, 그 어떤 이유로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우리를 미워할 수는 있습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이 우리를 미워한다면 그 까닭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이 복된 소식을 널리 전하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를 경멸할 수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무렇게나 대해도 괜찮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앞에 두고서 제자들을 위해서 마지막으로 기도하신 대제사장의 기도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위한 주님의 고별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서 주님은 단지 그 때 그 제자들뿐 아니고 오늘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먼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여기서 그들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제자들입니다. 그 때 그 제자들뿐 아니고 오고 오는 세대 속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이 누구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것입니다. 때문에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누구에게 속했는가 하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으면 우리도 또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비록 지금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있어서 당분간 여기 머물지만 일을 다 마치면 주님처럼 우리도 아버지께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소유된 자들이요 때가 되면 그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제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이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을 보전해 주시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이 세상은 정말 어둡고 캄캄합니다. 또 이 세상은 온통 죄가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명을 보전하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오직 그 이름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아울러 제자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주님은 주님이 아버지와 하나가 되신 것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상 일로 하나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일로 하나가 될 수 없고 또 그렇게 되어서도 아니 됩니다. 다만 우리는 예배드리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선한 일을 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하고 전도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에 있어서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고 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주님은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가시기 위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받으신 사명이 바로 십자가였습니다. 주님은 받으신 그 사명을 감당하심에 있어서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십자가를 지실 때에 억지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충성을 다하시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까닭은 제자들도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7:13)
기쁨을 세상에서 찾으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입니다. 다만 우리가 맡은 바 사명에 충성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그 기쁨을 우리 안에 충만하게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명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마가의 다락방에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던 베드로가 한 말 속에서 우리는 그 사명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사도행전 1장 21절, 22절 말씀입니다.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주님의 부활을 증언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주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음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명에 우리가 충성할 때에 우리에게 주님의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셨음을 특별히 강조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6~17)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것은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주님처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비록 거룩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해야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까?
세상에 살면서 어떻게 우리가 세상에 속하지 않을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 방법은 오직 진리로만 가능합니다. 때문에 주님은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진리로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진리란 성령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습니다. 왜냐 하면 성령이 바로 진리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이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으로 충만할 것 같으면 우리뿐 아니라 우리 주위도 성령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어제 신문에서 독자가 쓴 글을 읽고 매우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어떤 시민이 쓴 글이었습니다.
'얼마 전 경기도의 비포장 산길을 운전하고 있었다. 그런데 앞서 가는 산불 감시원의 차량에서 창문이 열리더니 담뱃재를 바깥으로 털어내는 것이 아닌가.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차량에서는 산불 예방 수칙이 큰 소리로 나오고 있었다. 최근 국립공원에서나 산행 시 라이터와 기타 화기를 소지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니 이는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진정으로 산불 예방과 안전을 위한다면 감시원들 자신이 몸소 실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주님을 구주로 믿는 우리는 과연 지금까지 무엇을 했습니까?
아니 스스로 주님의 제자라고 자처하는 우리가 과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자신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또한 이 세상을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어떤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코 세상에 속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거룩해져야 합니다. 거룩한 삶은 오직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에 비로소 가능합니다. 더 이상 우리에게서 깨진 유리창이 발견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룩해질 때 비로소 이 세상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 어두운 세상에 소망의 빛을 밝게 비추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