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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살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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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살전 1:2~4)


신앙의 모범이었던 데살로니가교회처럼
우리 삶에도 믿음·사랑·소망이 늘 있어야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데살로니가전서 1장 2∼4절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 실라와 함께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3주 동안 데살로니가에서 열심히 말씀을 전했는데, 그들의 말씀을 듣고 헬라인의 큰 무리와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바울과 실라를 시기해 불량배를 동원, 소동을 일으켰고, 그들은 더 이상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뒤에도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한 핍박은 계속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살로니가교회는 어려움 속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인내함으로 놀랍게 부흥 성장했고, 성도 간의 따뜻한 우애로 마게도냐와 아가야뿐 아니라 온 지역에 아름다운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가 됐습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성도들에게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자랑했습니다.

1. 믿음으로 일하는 교회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었으며, 나사렛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자 자신들의 구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가 죽으셨으나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시고 부활하셨다는 것, 그리고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가 다시 오시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은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는’ 믿음으로, 그들의 삶의 전 영역에서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단순히 머리나 가슴, 입술로만 믿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안이나 예배 때만 나타나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실천하는 믿음의 본을 보였습니다. 말씀을 실천함으로 그들의 삶은 변화됐고, 사람들은 변화된 그들의 삶을 보고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칭찬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우상을 버림’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행동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교도들이요, 우상숭배자들이었던 그들은 복음을 듣고 이전에 섬기던 우상을 과감히 버리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모습이 아닌 것은 과감히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기도와 성경공부는 잘 하는데, 예배 참석은 잘 하는데, 주위에 헐벗고 굶주린 사람이 있는데도 그들을 모른 체 한다면 그런 사람의 믿음은 살아 역사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역사하는’ 믿음입니까? 머리나 가슴이나 입으로만 믿는 믿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타나는 믿음입니까? 우리의 믿음이 교회 안이나 예배 때만 나타나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인해 인격과 생활이 달라지고, 믿음으로 인해 믿지 않는 사람들과 구별되며, 믿음 때문에 일반인에게 칭찬받는 성도로서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사랑으로 수고하는 교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사랑을 실천하되 수고와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수고’란 육체적인 피로를 일으킬 만큼 ‘고된 일’을 하는 것으로, 진정한 사랑에는 희생과 수고가 따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주님을 희생과 기쁨으로 섬기게 됐습니다. 마리아는 노동자의 1년 봉급에 해당하는 300데나리온 나가는 비싼 향유를 주님 발에 붓고 자신의 머리털과 눈물로 주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랑으로 수고하고 희생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은 주님으로부터 그 누구에게도 받지 못할 큰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주님과 이웃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극심한 가난 중에도 넘치는 기쁨으로 풍성한 연보를 드려 병자와 굶주린 자, 나그네와 과부와 고아를 돌보고 구제했으며, 모진 박해를 이겨내고 복음을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본에 유명한 정치가요 교육자였던 가다오까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일에 휘말려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 일을 너무 견딜 수 없어 마음에 불만을 품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발견하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생각하면 나 같은 죄인이 화장실 청소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이제부터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의 발을 씻기는데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출감한 후, 자신이 출석하는 코오치 교회에 가서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장로님이 되고 국회의원이 되고 더 나아가 국회의장이 된 후에도, 그는 결코 교만하지 않고 교회 현관에서 교인들을 안내하고 신발을 정리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섬김의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게 됐습니다.
 행동이 없으면 참 사랑이 아닙니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이 아무리 가슴에 뜨겁게 자리 잡고 있을지라도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주는 삶입니다. 모범적인 교회는 주는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는 자에게 은혜와 복을 받게 하십니다. 주는 교회에 주님의 크신 은혜와 복이 임합니다. 

3. 소망 가운데 인내하는 교회

인내란 ‘용감한 군인이 극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버텨나가는 기상(氣像)’을 의미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우상으로 가득한 이방 도시에서 외국인인 바울과 실라가 전해준 기독교 복음을 믿고 따랐습니다. 그 결과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 당국으로부터 황제 숭배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했고, 사회적으로는 유대교인들에게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소외당했고 직장에서도 핍박을 당했습니다. 가족과 재산을 잃기도 했고,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소망 가운데 모든 환난을 잘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소망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습니다. 미래가 보장되면 고난을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을 때에는 작은 어려움도 견뎌 내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소망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환난 속에서 인내를 이룰 수 있게 하였을까요? 바로 재림에 대한 소망이었습니다. 재림은 기약이 없습니다. 재림에 대한 소망에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변치 않는 소망에 믿음의 닻을 내리고 그 모진 시련과 환난, 시험을 이겨냈습니다.

 숲속에서 벌목꾼들이 백년이 넘는 거목을 벌채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시간 힘들게 나무를 잘랐을 때 그들은 기이한 나이테를 발견했습니다. 나무의 수명을 보여주는 10개의 나이테가 있었는데, 안쪽의 다섯 개는 그 간격이 매우 촘촘했고, 바깥쪽의 다섯 개는 그 간격이 넓었습니다. 벌목꾼은 조밀하게 붙어있는 다섯 개의 나이테를 보고 말했습니다. “이 나무는 5년의 가뭄 기간에 크게 자라지는 못했지만, 가뭄으로 인해 부족한 양분과 수분을 얻기 위해 더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됐고, 뿌리가 강화되면서 더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게 됐다네. 고난을 이겨내었기에 거목이 될 수 있었던 거야. 그 이후에 생긴 나이테가 넓은 간격을 두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일세”

사람에게는 누구나 크든 작든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에 대한 소망을 확실히 하고 모든 어려움과 시련과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들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아 제 자리 걸음만 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전도를 해도 뚜렷한 열매가 없고 오히려 핍박을 받아 힘이 빠질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내 존재, 나의 수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때도 우리는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내함으로 선을 행하면, 주님의 때에 주께서 열매를 맺게 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처럼, 우리에게도 ‘믿음, 사랑, 소망’이 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이 수고하고 희생하는 사랑이 되며 우리의 소망이 인내하게 만드는 소망이 되어, 주님과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께 대한 저희들의 믿음이 삶 가운데 역사를 이루어 내는 산 믿음이 되게 하옵소서. 사랑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소망을 두고 인내하여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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