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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교회 리더 (고전 4:14~16)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한 마을로 들어가서 
마을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마을을 지키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러자 마을사람은 ‘아, 
경찰서장을 찾으시는군요.’하면서 그리로 안내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말했습니
다.  ‘아니, 저는 마을을 지키는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마을 사람은 ‘그렇다면 수비대장을 말씀
하십니까?’  그러자 이 말을 듣던 사람은 다시 말하였습니다.  ‘아니요, 제가 찾는 사람은 마을의 
랍비입니다.’  랍비는 선생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깊은 의식 속에 선생을 마을을 지키
는 자라고 믿었습니다.  국가나 마을이나 크고 작은 공동체를 이끄는 자는 바로 선생이라는 것입
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이런 의식 속에서 국가관과 역사관, 그리고 신앙관도 형성이 되었습니
다.  선생이 이처럼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선생(先生)’이라고 사용하는 말의 뜻은 ‘먼저 태어났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가르치
는 사람의 의미로 널리 사용하면서 교사, 스승과 함께 통용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이 먼저 태어났
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모두가 다 선생입니다.  갓난아이가 아니니 누
구나 먼저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는 선생이란 말보다 더 좋은 단어가 하나 있
습니다.  바로 ‘리더(leader)’라는 말입니다.  리더는 어떤 단체의 지도자, 혹은 앞서 이끄는 자를 뜻
합니다.  리더가 누구입니까?  먼저 태어난 자가 리더요, 먼저 믿은 자가 리더입니다.  먼저 배운 
자가 리더요, 먼저 터득한 자가 리더입니다.  먼저 믿은 자가 리더요, 먼저 교회에 발을 디딘 자가 
리더요, 먼저 직분을 받은 자도 리더입니다.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서 우리는 모두 리더입니다.  특히 교회를 이끄는 리더입니다.  리더가 잘해야 공동체가 잘됩니다.  
리더의 역할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리더는 어떤 사람일까요?  그것을 바울을 
통해 찾으려고 합니다.  과연 바람직한 교회리더는 어떤 모습일까요?  

첫째는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16절에서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1장에
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바울이 교회에 편지하면서 ‘나를 본받으라’는 말은 보통 잘 사용하지 않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어
려운 말이고, 매우 힘든 말입니다.  어쩌면 교만해 보이기도 하는 말입니다.  설령 본받을 것이 있
더라도 자기 입으로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특히 고
린도교회에 사용을 했습니다.  그것도 반복하여 말합니다.  그 이유는 사도권에 대한 논쟁의 종지
부를 찍기 위함입니다.  아울러 교회의 리더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리더가 되어야 하는 가를 가르
치기 위함이라고 봅니다.  바울의 삶은 한마디로 본을 보이기 위한 삶이었습니다.  힘과 정성을 다
해, 열정과 수고를 다해 부끄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당당히 본받으라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본을 보였고, 계속해서 본을 보이며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제자들을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소위 세족식을 행하셨습니다.  
당시 발은 신체가운데 가장 더러운 부분으로 여겼습니다.  특히 사막의 나라이기에 실제로 발이 
더러웠습니다.  그래서 발을 씻는 일은 종이 하던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대야에 물을 떠서 친
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제자들은 황송해 하고, 의아해 하며 그야말로 몸 둘 바를 몰랐
습니다.  그렇게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
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13:12-15)

여러분, 주님은 본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말씀만 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셨습니다.  사랑하라 
말씀하시면서 사랑하셨고, 용서하라 말씀하시면서 용서하셨습니다.  전도하라 하시면서 전도하셨
고, 기도하라 말씀하시면서 밤과 낮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생애는 온통 본을 보이는 
삶이었습니다.  그 주님을 바울이 가장 잘 닮은 것입니다.  

여러분, 본을 보이는 교사,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교육입니다.  이것이 가장 확
실한 교육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애써 가르치지 않아도, 말없이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 가장 완벽
한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따르는 자는 본 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모방의 천재입니다.  
부모의 말, 행동을 그대로 따라합니다.  완벽하게 따라합니다.  이제 우리는 리더로서 본을 보이도
록 힘써야 합니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고, 생각보다 행동이 필요한 때입니다.  나의 모든 행동
이 본이 됩니다.  그것으로 주님의 뜻을 이룹니다.  이 시간 리더로서, 성도로서 자신을 돌아보십
시오.  나는 본을 보이고 있습니까?  나는 바울처럼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주님을 따라가고 있
습니까?  이제 우리의 부끄럽고 연약한 모습을 돌아보고, 바울처럼, 주님처럼 본을 보이기를 다짐
하면서 좋은 리더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영적생산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14절에서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또한 
15절에서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 자녀라는 말이
나, 낳았다는 말은 무엇보다도 생산의 의미를 갖습니다.  바울은 결혼하지 않았기에 그에게는 육신
의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았습니다.  특히 디모데와 디도와 오네
시모와 같은 자를 일컬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고린도교인 
전체를 가리켜서 ‘믿음으로 낳았다’고 말합니다.  여기 복음으로 낳았다는 것은 영적생산을 의미합
니다.  이 말은 여기만이 아니라 바울의 편지에서 많이 반복되고, 많이 강조하는 말 중의 하나입니
다.  바울은 복음으로 사람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그의 기쁨이고, 자랑하고, 면류관이었습니다.  자
녀의 낳아 기쁨을 누리는 부모처럼, 그는 복음으로 사람을 낳아 많은 기쁨을 가졌습니다.  그러니
까 리더는 생산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복음으로 사람을 낳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리더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복음으로 사람을 낳기 위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해산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자녀는 저절로 
낳아지지 않습니다.  아이는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아
이가 어머니의 태를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러나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반드시 해산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큰 수고 후에 아이는 태어납니다.  복음으로 사람을 낳는 것도 마찬가지입
니다.  그냥 낳지 않습니다.  반드시 해산의 수고를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나
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
니...”  특히 바울은 본문 바로 앞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
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
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또한 영적생산은 해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젠 낳은 아이가 자라야 합니다.  젖을 먹고, 움직
이고, 활동하면서 자라야 합니다.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어머니는 더욱 수고합니다.  
해산의 수고 못지않게 이젠 자라게 하기 위한 수고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경험한 생산의 역
사입니다.  바울도 복음으로 낳기 위해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또한 자라게 하기 위해 더욱 
열정을 쏟았습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아직 연약하고 성숙하지 못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성
장에 온 힘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고전3:1-2)  그는 복음으로 태어난 성도들에게 젖을 먹이고, 이젠 밥을 먹는 성숙한 사
람으로 만들기 위해 더욱 수고했습니다.  이것이 교회리더로서 보여준 바울의 삶입니다.

우리가 리더와 교사로 주님의 뒤를 따르기 원한다면 바울과 같이 수고해야 합니다.  이제 복음으
로 사람을 생산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것만큼 소중한 기쁨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쁨
이요, 우리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영적생산에 집중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음으로 사람을 생산
한 경험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전도로 주님을 믿게 된 형제와 자매가 있습니까?  지금까지 믿음
생활하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복음으로 낳았습니까?  이 일을 위해 얼마나 해산하는 수고를 감
당하고 있습니까?  눈물로 씨를 뿌리지 않으면 기쁨으로 거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복음으로 낳은 사람을 잘 길러야 합니다.  그들에게 좋은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이 또 다른 사람을 생산할 수 있도록 잘 키워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
리더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리더로 부름 받은 우리가 할 사명입니다.  한순간도 리더임을 잊지 말
고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아비의 심정을 갖는 것입니다. 
고린도서는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입니다.  바울에 세운 교회가운데 고린도교회는 문
제가 많은 교회였고, 공격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바울 자신에게 향한 공격도 있었습
니다.  바울을 향한 공격의 핵심적인 내용은 사도권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과연 바울이 사도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교회안에 가만히 들어온 거짓교사들이 이것을 흔들었습니다.  바울은 이것
을 증명하기 위해 아비의 심정을 강조합니다.  당시 거짓을 가르치는 스승과는 달리 자신은 무엇
보다도 아비의 심정으로 성도를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
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이렇게 그는 아비의 마음을 강조합니다.  단지 스승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비요,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심장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스승은 ‘몽학선생’이란 말입니다.  몽학선생(paidagōgos)은 고대 로마사회에서 귀
족 자녀들의 교육을 돕는 가정교사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자녀들이 학교에 익숙해지도록 초등
학문을 가르쳤고, 학교까지 안전하게 데려가고 데려오는 일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자녀
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했으며 곁길로 가지 못하도록 했고 그들을 훈련시킬 권리도 주어졌습니
다.  그렇지만 그들의 신분은 주인의 명령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노예였고 그들의 기능은 주인집
자녀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만 필요한 한시적인 관계였습니다.  물론 이런 몽학선생의 역할도 귀합
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훈계하고, 이끌어 주는 일만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
십시오.  몽학선생이 주인의 자녀를 돌보고 사랑한다고 해도 아비와 비할 수가 있습니까?  아비는 
선생과 다릅니다.  

아비는 자녀를 향한 깊은 사랑이 있습니다.  자녀를 향한 보호가 있고, 희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긍휼과 자비가 있습니다.  스승이 귀하지만 어찌 아비와 비합니까?  바울은 
바로 그 아비의 심정으로 성도를 대한 것입니다.  그는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했고, 보호했습니다.  
그들을 위해 희생했고, 긍휼과 자비로 대했습니다.  바울의 이런 아비의 심정이 성도의 가슴에 깊
이 새겨져 큰 힘을 얻은 것입니다. 

바울의 가진 아비의 심정은 곧 하나님의 심정이고, 또한 주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
리를 대하실 때 단지 스승의 마음으로 가르치려고만 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아비의 심정으로 긍
휼과 자비로 다가오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셨던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분명 유능하고, 탁월한 랍비요, 스승이지만 단지 가르치는 교사로 사람을 
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비의 심정으로 사람을 보셨습니다.  아비가 자녀를 불쌍히 여김같이 불쌍히 
여기셨고,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부모처럼 자기 몸을 갈
기갈기 찢어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입니다.  바울은 그 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스승보다 깊은 아비의 심정으로 산 것입니다.

지금 우리교회에 대심방이 한참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정별 심방이라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라 
여겨집니다.  쉽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성도의 가정을 방문하면서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
다.  가정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었습니다.  말 못할 고민과 아픔이 내면 깊은 곳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가정은 눈물 없이는 지내지 못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당장 먹고 사는 문
제 때문에 살길이 막막한 가정도 있었습니다.  그런 여러 가정을 보면서 저는 잠시 부끄럽기도 했
습니다.  이런 가정을 보면서 저는 자연히 기도가 간절해 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
로 아비의 심정임을 알았습니다.  스승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지도자가 아니라, 아비의 
심정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심정으로 가정을 바라보자 하나님의 시선이 그곳에 임함을 알
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성도를 사랑하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런 마음입니다.  우리 모두 아비의 심정을 가지라는 것입니
다.  아비의 심정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기고, 바라보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것입
니다.  그런 곳에 힘이 생기고,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바로 그곳에 하나님의 시선이 머물기 때
문입니다. 

복음성가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나의 마음이 있기를 
원해요/ 아버지 당신의 눈물이 고인 곳에/ 나의 눈물이 고이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바라보는 
영혼에게/ 나의 두 눈이 향하길 원해요/ 아버지 당신이 울고 있는 어두운 땅에/ 나의 두 발이 향
하길 원해요/ 나의 마음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뜻 아버지의 뜻이 될 수 있기를/ 나의 온 
몸이 아버지의 마음 알아/ 내 모든 삶 당신의 삶 되기를...’

여러분, 이제 아비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아비의 긍휼로 성도를 보아야 합니다.  아
비의 심정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나도 머물러야 하고, 하나
님이 긍휼히 여기는 사람을 나도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깊이 사람을 사랑하
고, 성도를 이해하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교회를 더욱 섬기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비의 심정을 
가진 좋은 교사, 좋은 교회의 리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리더입니다.  교회의 리더요, 영적인 리더입니다.  좋은 리더의 모습을 바울에게서 찾
습니다.  그것은 본을 보인 것이고, 해산의 수고와 열정으로 사람을 낳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비
의 심정으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바울처럼 좋은 리더, 좋은 교사가 되기
를 다짐하면서 한주간도 승리의 길을 향해 힘 있게 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짧은주소 : https://goo.gl/E3Zvi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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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79 설교 [가정의달]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 (마 19:3~9) file 2010.07.03 608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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