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배 (삼하 6:16~23)

  • 잡초 잡초
  • 884
  • 0

첨부 1


예배 (삼하 6:16~23)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2)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3)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4)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 (15)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6)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7)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8)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19)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0)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1)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2)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23)
<사무엘하 6장 12~23절>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하여 주심 감사합니다. 
은혜와 기쁨으로 찬양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 은혜에 감격하여 오늘 모였습니다.
세상에서 상하고 찢겼던 마음을 추스르고 하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 작은 일에 불안해하며 근심하고 살았습니다. 
시련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를 붙잡아 주셔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살게 하시고 …
고난의 폭풍 속에서도 승리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군대, 객지, 외국으로 흩어져 있는 우리교회 성도들
어느 자리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병으로 고통 받는 성도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은혜의 주인공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부족한 종이, 말씀 들고 섰습니다.
능력 있게 전하게 하시고 은혜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여러분의 범사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선천성 무감각증’(Congenital Insensitivity to Pain with Anhidrosis, CIPA)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감각신호를 뇌로 보내는 신경섬유가 발달하지 못해
통점, 냉점, 온점 … 등의 감각을 뇌에서 인식하지 못하는 질병입니다. 

「한센병(Hansen's Disease)」, 「나병(Leprosy)」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한때는 경멸하는 뜻으로 <문둥병>이라고도 했습니다.
이 한센병도 고통의 아픔을 전달하는 신경체계가 파괴되는 병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정부의 주도하에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을
소록도에 격리시켜 모진 고통을 주었습니다. 때려죽이기도 하고 땅에 묻기도 했습니다. 
(2009. 5. 16. TV 뉴스 참조)

그런데 국무총리가 소록도에 가서 그동안 국가가 한 일에 대해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잘 한 일입니다. 후에는 대통령도 소록도에 가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도 한센병 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선천적인 무감각증 환자는 일상생활에서 배고픔, 피곤함 … 등은 정상인과 똑같지만
고통, 뜨거움, 차가움과 같은 감각은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고열이 나면서 죽게 됩니다.
<『생명의 삶 플러스』 2009년 3월호. 참조>

여러분 중에, 고통이 있고, 힘들고, 짜증나고, 무슨 일이 잘 안되어 괴로워하십니까?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괴로움, 짜증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감사한 일입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다가오는 병이 무서운 것입니다.
망해가는 지 모르면서 망해가는 것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잘 안 풀려 답답하고 속상한 것,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지금 자신에게 고통이 없다면 더 감사하고
고통이 있다면 거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
오늘 본문말씀은 다윗이 왕이 된 후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내용입니다. 

언약궤(Ark of the Covenant)는 
- 증거의 궤(출 25:21~22) 
- 이스라엘 하나님의 궤(삼상 5:7),
- 주 여호와의 궤(왕상 2:26) 라고 불렸던 상자입니다. 
그 안에 십계명을 새긴 두 돌판(신10:1~ )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민17:8~11, 히9:4~5),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출16:33~34)를 넣어두었습니다.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귀한 물건입니다. 

엘리 제사장 시대에, 이스라엘은 에벤에셀에서 블레셋과 전쟁을 했습니다.(삼상 4:1~11)
그 때, 이스라엘 군대는 언약궤를 전쟁터에 가져오면 승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 사람을 보내 언약궤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삼상 4:5)

그렇지만 언약궤를 단순히 수호신으로만 생각했던 이스라엘은
그 전투에서 3만 군사가 전사하며 대패했고(삼상 4:10),
언약궤도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삼상 4:11)

이스라엘로부터 언약궤를 빼앗은 블레셋은 그 언약궤 때문에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가 가는 블레셋 성읍마다
독한 종기의 재앙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삼상 5:6,9)
결국 블레셋 방백(지도자)들이 모여 언약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했고
그 언약궤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졌고 사람들은 아비나답의 아들 엘리아살에게 언약궤를 지키도록 했습니다.(삼상 7:1)

그로부터 70여년이 흘렀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왕권이 안정되자 아비나답의 집에 있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게 되었습니다.

언약궤가 새 수레에 실려 나오자 사람들은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삼하 6:5) 그런데 수레를 잘 끌던 소들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흔들렸습니다.
그때 옆에 있었던 웃사가 재빠르게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웃사를 치셨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삼하 6:7)

하나님께 웃사를 치신 이유는 웃사가 하나님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안전을 염려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수호신이 아니고 우리가 지켜 보호해야 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러나 웃사는 하나님의 궤를 넘어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웃사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고
언약궤가 옮겨지는 시간에도 언약궤 곁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웃사는 언약궤에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자신은 정작 예배자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하나님께 예배할 때
웃사 자신은 예배자가 아니라 예배를 지키는 사람으로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도 수많은 분들의 섬김이 있어 가능합니다.
우리교회는 주일이면 새벽부터 저녁예배까지 8번의 예배가 진행됩니다.
그 예배에 안내/주차안내 / 교사 / 찬양대, 찬양단, 오케스트라
헌금위원 / 인터넷 중계 / 차량운전 /
방송(음향, 조명, 자막, 영상) … 청소 / 꽃꽂이 /
주방봉사, 다과음료(기드온) / 강단 밑 기도 …
수많은 그분들이 숨어서 이름 없이 빛없이 섬기기 때문에
이 예배가 은혜롭게 드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를 위해 무엇을 하든지 안하든지 모든 사람 각자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예배를 소홀히 하고 일하는 것만, 봉사만 … 열심히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내하느라, 주방에서 음식 만드느라, 방송중계 하느라 …
자기 예배는 소홀히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의 예배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성실한 예배인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이 … 힘을 다하여 춤을 … 

웃사가 언약궤를 붙잡았다가 죽는 사건 때문에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일이 중단되었습니다. 
석 달 후에 다윗은 다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동할 때, 
반드시 레위인인 고핫 자손들에게 언약궤를 어깨에 메라고 하셨습니다. (민 4:15)
그런데 왜 그랬는지 웃사는 언약궤를 수레에 얹어 옮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대로 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기쁨이 충만하여, 감사하며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 ”(삼하 6:14) 추었습니다. 
그 때, 사울의 딸이면서 다윗의 아내가 된 미갈이 
언약궤가 성으로 들어오는 광경을 창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본문 16절을 봅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삼하 6:16)

다윗은 성공적으로 언약궤를 옮겼고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그 기쁨을 나누기 위해 모든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고 (삼하6:19)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 건포도 한 덩이씩) 자기 가족에게 축복하러 왕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상상 해 보십시오. 
다윗이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는 다윗을 맞는 아내 ‘미갈’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 20절을 <쉬운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 … 오늘은 이스라엘의 왕이 체면을 잃었군요. 
당신은 당신 신하들의 여종이 보는 앞에서 몸을 드러내었어요. 
당신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몸을 드러내는 바보 같았어요.”(삼하 6:20)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기뻐 춤춘 것을 방탕한 자의 행동으로 내리 깔았습니다. 
‘신하들 앞에서 그런 행동을 해도 왕의 체면을 잃을 텐데,
신하들의 여종들 앞에서 부끄러움도 모르고 속살을 드러내는 바보짓’을 했다며
다윗을 몰아세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갈이 좋은 아내입니까? 
미갈은 집에 들어오는 남편에게 핀잔을 주며 바보짓을 했다고 비웃었습니다.

퇴계 이황은 조선 선조 때 학문은 물론 세상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정생활은 그리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이황의 인품을 믿었던 스승이 자신의 딸을 아내로 거두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딸은 어릴 때 사화를 겪은 충격으로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황은 스승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아내를 감싸주며
평생 남편의 도리를 다하며 살았습니다. 

어느 날 이황이 부부문제로 힘들어하는 제자에게 
집에 들어가기 전 사립문 앞에서 읽으라고 편지를 주었습니다. 
그 제자는 스승의 말대로 집 사립문 앞에서 스승이 써 준 편지를 뜯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사립문은 가정과 세상의 경계 지점이네. 
가정은 세상의 가치가 적용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이네. 
집 밖에서 있었던 울분과 괴로움은 집안으로 들이지 말고
사립문 앞에서 마음을 정화하고 들어가야 하네 … ’
<송길원, 『송길원의 행복 통조림』, 물푸레, 참조>

어떤 남편들은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가정에 들어가서 풉니다. 
어떤 아내들은 가정에서 겪었던 힘든 일들을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풉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가정 분위기를 망칩니다. 편한 휴식처가 되어야 하는 가정이 더 힘들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침에 일하러 가기 위한 준비는 철저히 하는데 
가정의 행복이 시작되는 퇴근 시간을 준비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집에 다시 들어가는 준비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편은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기 전에 사회에서 받았던 절망, 한숨, 걱정은 모두 내려놓고
기쁜 얼굴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집 문을 열어야 합니다. 
아내는 대문이 열릴 때 ‘우리 집의 꽃은 나다’라는 생각으로 
환한 미소로 남편을 맞아야 합니다. (집에 꽃꽂을 것 없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춤추며 찬양하고, 백성들을 축복하며 먹을 것을 나누어 준 남편,
왕인 남편이 돌아오는데 왕비 미갈은 왕에게 바보짓을 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 당시에 춤을 추는 것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춤과는 많이 다릅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종교 의식이 거행될 때 춤을 많이 추었습니다. 
그때는 대부분 전문적인 무용수들이 춤을 추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상태에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갈이 볼 때, 다윗이 힘을 다하여 춤을 춘 것은 신분에 맞지 않는 경망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비난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다윗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본문 21~22절에, <쉬운성경> 
“다윗이 미갈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호와 앞에서 그런 일을 했소. 
여호와께서는 당신 아버지가 아니라 나를 선택하셨소. 
여호와께서는 사울의 집안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으셨소.
여호와께서는 나를 여호와의 백성인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 주셨소.
그러므로 나는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오. 
앞으로 더 낮아져서 체면을 잃는 일이 많을지라도, 여호와 앞에서는 그렇게 되고 싶소. 
그러나 당신이 말한 그 여종들은 나를 존경할 것이오.”(삼하 6:21~22)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아주신 일을 기억하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행동이 천하고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행동이었다고 했던 것입니다. 

언약궤에 관심이 없었던 사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자신의 통치 기간 중 단 한 번도 언약궤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언약궤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5장 22절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출 25:22)고 했습니다. 

사울이 언약궤에 관심이 없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려고 하지 않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삼상15:9) 
그래서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한다고까지 하셨습니다.(삼상 15:11)
그 후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사울은 왕의 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말을 듣고도(삼상15:28)
백성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려고만 했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이 자기를 높여주기를 원했습니다. 
사무엘상 15장 30절에, 
“ …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삼상 15:30)라고 했습니다. 
미갈도 남편 다윗왕이 왕으로서 위엄을 유지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궤 앞에서 춤까지 춰가며 기뻐하는 다윗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미갈의 잘못은 그 아버지 사울의 잘못과 똑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체면이나 지켜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직책을 가졌는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는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사람들과 똑같은 한 사람의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갈은 남편의 체면만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생각만 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기뻐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귀하게 생각하는 자리에 있든지 … 그렇지 않든지 … 
어떤 직책이나 직분을 가졌든지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예배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왕의 왕 되시는 하나님께
온 힘을 다해 / 온 맘 다해 / 최선을 다해 / 최고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예배, 춤추는 것 … 

오늘 본문이 있는 사무엘하 6장에만 6번의 ‘춤춘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은유: metaphor - 사물의 본뜻을 숨기고 다만 겉으로 비유하는 방법)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다윗이 춤추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오실 때, 어쩔 수 없이 오고 싶지 않은데 끌려오셨습니까?
조금 전까지 그런 마음이었다 해도 지금부터 기쁜 마음으로 예배드리시기 바랍니다.
평안과 감사의 마음으로 … 기쁘게, 흥겹게 춤추는 기분으로 …
다윗은 왕의 체면과 자존심과 위엄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온 맘 다해 / 힘을 다해 춤을 추며 찬양하고 최고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 다윗은, 비록 범죄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칭찬을 받았고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이 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드리는 여러분도 그런 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해야 할 마땅한 도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하기 위해 부름 받았습니다.(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그러나 신앙생활의 연수가 계속 쌓이다보면 습관적으로 / 기계적으로 예배드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늘 혼자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 목회의 기술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설교하는 기술자, 예배 인도하는 기술자,
위로하는 기술자 …’가 되지 않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교회 부교역자들에게도 ‘기술자가 되면 안된다. 늘 하는 심방이라고 
성경, 찬송 들고 그냥 가면 안된다. 심방하는 가정을 위해 기도로 준비하고 
그 가정을 살피고 준비하고 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찬양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악보 잘 보고 소리만 내는 사람은 기술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만약 기술자가 되면 그저 종교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을 다해 … , 열정적으로 … , 과하다 싶을 정도로 … 
최선을 다해 예배 드려야합니다.
준비하는 예배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예배자, 
그 마음이 옷이 벗어질 만큼의 행동으로 드러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 … 

예배란 하나님 앞에 경배하고 섬기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준비된 마음과 그 마음이 담긴 단정함도 갖춰야 합니다.

예배자는 가장 높고 귀한 분에게 절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예배’라는 말 자체가 ‘예를 갖추어 절한다’는 뜻이 담긴 단어입니다.

아들이 결혼해서 며느리를 맞았는데 신혼여행 다녀온 며느리가 한복은 곱게 차려입었는데 
버선도 안 신고, 양말도 안 신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어머니 절 받으세요’라고 한다면 좋겠습니까.
절이라는 것은 예를 갖추어 하는 것입니다.
버선을 신지 않았다면 최소한 양말이라도 신어야 합니다.

남자들은 양복 정장을 입습니다. 누구를 만나서 인사할 때는 앞단추를 잠그고 인사해야 합니다.
혼자 있을 때야 단추를 잠그지 않더라도 괜찮지만 …
그래도 단추 하나 정도는 잠그고 있는 모습이 단정한 차림입니다.
그것이 예의입니다.

사실 여자들이 화장하는 것도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기 위한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단정하게 보이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를 갖춰 드리는 예배에 
소풍가는 차림이나 목욕탕 가는 차림, 수영장 가는 것 같은 옷으로는 오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새 옷 / 비싼 옷을 입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진 것 중에서 깨끗하게 하여 단정하게 입고 오면 되는 것입니다. 
예배시간을 지키는 것 … 예배 순서 순서에 적극 참여하는 것 …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서 오늘 강단에서 목사님을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이 
‘왜 내가 들어야 하는 지, 내가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지 
무슨 말씀을 내게 주실지 …’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않는 정성된 예물을 드리는 것 …
이 모든 것이 다윗이 힘을 다해 춤추던 것처럼 “힘을 다함”이 필요합니다. (삼하 6:14)

거룩한 산 제물 … 영적 예배

예배가 얼마나 중요하면 가인과 아벨의 예배를 신약, 구약 성경에 다 기록해 놓았겠습니까!
예배는 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축도는 또 다른 예배의 시작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 …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고 했습니다. 

‘산 제물’,‘산 제사’라는 말은 ‘삶으로 예배를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매 순간순간마다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정에서 … 일터에서 … 여러분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 , 아내가 남편에게 …
부모가 자식에게 … , 자식이 부모에게 …
형제간에 하는 말과 행동 모두가 하나님께서 기뻐 하실만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말과 행동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다와야 합니다. 조금 벌더라도 정직하게 하고 … 힘들어도 무례함이 없고 … 
어려워도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 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어느 곳에 가든지 세 가지를 준비했습니다. 
‘장막(천막)’을 쳤고,‘우물’을 팠고, 예배를 드렸습니다(제단).
그런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장막을 세우고 우물은 팠지만, 예배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예배드리는 것에 힘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롯은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를 창조하신 이후 예배는 계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십니다.(요 4:23)
오늘 우리의 예배도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순간 순간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해” 춤을 추었던 다윗과 같은
예배자의 삶, 예배에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예배의 자리에 주인공이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예배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예배로 인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들은 은혜를 받고 우리는 예배자로서 부끄러움 없음을 드러내는
복된 주인공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에서 땀 흘려 애써 모은 물질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우리의 목소리로 찬양하는 것도, 
우리의 목소리로 기도하는 것도 
모든 범사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것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줄로 믿고
모든 것 감사드리며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