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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방탕과 음란의 죄 (벧전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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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탕과 음란의 죄 (벧전 4:1~3) 
 
 
❚성격차이?

여러분 혹시 ‘부부의 날’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아니, 어린이날, 어버이날은 들어봤어도 부부의 날은 처음 들어본다” 하시는 분이 많겠지요. 가정의 달인 5월에 가정과 관련된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만 있는 줄 아는 분이 많습니다만 이밖에도 2007년부터 “부부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가자”는 취지로 매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이 ‘부부의 날’이 무색할 정도로 부부 문제가 심각합니다.

2008년 통계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우리나라 이혼건수는 총 11만 6500건으로 1970년대에 비해 10배나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혼 사유를 조사해 보니 1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격 차이’입니다. 전체 사유 중 47.8%로 절반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성격 차이’라는 것이 엄밀하게 따지면 말이 안 됩니다. 왜냐? 부부가 성격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전혀 다른 남남이 만나 부부가 되는데 성격이 다른 것이 당연하지 어떻게 성격이 똑같을 수 있습니까? 실제로 성격이 비슷한 부부보다 다른 사람이 만날 확률이 높고 그래야 잘 산답니다. 성격이 똑같으면 더 잘 살 것 같지만 서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네요. 그래서 부부가 성격차이 나는 것은 당연하고 어쩌면 더 바람직한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왜 성격 차이가 이혼 사유 1위일까요? 전문가들은 실제 이유는 따로 있는데 그것을 드러내기 싫어서 상투적으로 하는 말이 ‘성격 차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이혼하는 부부를 깊이 파헤쳐보면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답니다. 실제적인 이혼 사유는 배우자의 외도, 알코올, 폭력, 첫 아이 출산 이후의 변화, 금전적인 갈등, 소원해진 부부관계 등이고 이 중에 늘 1,2,3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배우자의 외도, 가정 폭력, 경제 문제입니다. 

그만큼 우리 가정 속에 이런 문제들이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고 이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는 부부와 가정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혼이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전에 비해 교회에서 이혼 이야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성도들 가정 중에 이혼의 아픔을 겪는 가정이 그만큼 많기 때문입니다. 장로 권사 등 교회 중직자나 목회자 가정 중에도 이런 가정이 많다보니 이혼 이야기를 하면 참 예민해 집니다. 그러니 점점 목회자들이 이혼 이야기를 안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간 분명히 구분합시다. 이혼을 무조건 나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 이혼한 사람을 무조건 정죄해서 교회 못 나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이혼을 금지하면서도 음행한 경우는 예외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이혼한 가정마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니 무조건 정죄하지는 맙시다. 오히려 교회가 품고 상처를 치유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혼이 결코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불행이 가정에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최선도 다해보지 않고 단순히 ‘성격 차이’니 하며 가정을 파괴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우리 가정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 가정의 달 세 번째 주일을 맞아 우리 가정이 무너지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우리 가정이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가정, 복 받은 가정이 되기 위해 우리 가정을 가장 위협하는 음란의 틈, 방탕의 틈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예수 믿기 전과 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예수님을 만나면 없어져야 할 옛 습관 여섯 가지가 나옵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함께 읽겠습니다.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믿은 후에는 다시는 옛날 지었던 죄, 예수 믿기 전에 지었던 죄를 짓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 믿고 버려야 할 대표적인 옛 습관, 죄들은 어떤 것이 있느냐? 3절에 여섯 가지가 나옵니다. 이 여섯 가지를 같이 찾아볼까요?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입니다. 그런데 이 여섯 가지는 다시 세 가지 종류로 구분됩니다.

처음과 두 번째 나오는 ‘음란’과 ‘정욕’은 성(性)과 관계된 죄악입니다. ‘음란’은 절제하지 못해서 짓는 성적인 죄를 뜻하고 ‘정욕’은 더러운 죄에 대한 욕망이 내 마음 속에 감추어진 상태를 뜻합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나온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은 모두가 술과 관련된 죄악들입니다. ‘술 취함’은 술을 마시고 중얼거리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방탕’은 술 취한 사람들이 거리를 쏘다니며 노래하고 떠드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술에 취하면 사람은 이성을 잃고 자제하지 못합니다. 평상시에 안 하던 짓을 합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마구 떠들거나 중얼거리기도 하고, 비틀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고 노래도 고래고래 부르고 길바닥 아무데나 쓰러져 자기도 합니다. 경험해 본 분은 아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온 ‘향락’은 ‘큰 술잔치’를 뜻합니다. 그런데 왜 본문에서 술에 관계된 말이 세 개나 나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술이 사람을 향락과 방탕에 빠뜨리는 대표적인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술 취함’ ‘방탕’ ‘향락’은 꼭 술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적인 향락과 방탕에 빠져 이성을 잃고 더 이상 자신을 제어(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태를 뜻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여섯 번째 나온 무법한 우상 숭배는 말 그대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두 주 전 “불신앙의 틈”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말씀을 나눈 바 있습니다.

자, 정리를 해봅시다. 오늘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제대로 예수 믿고 제대로 신앙생활 하게 되면 이 세 가지를 꼭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 죄악에 속해 어둠의 자녀로 살 때 지녔던 습관과 죄들입니다. 먼저 ‘음란’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성적인 방탕, 성적인 죄가 그 하나입니다. 다음으로는 ‘술 취함’이라는 말로 대표되는 방탕한 삶, 세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우상 숭배와 불신앙입니다. 이 세 가지만 버리면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성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나 자신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가족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정과 가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세 가지를 해결하지 못하고 예수 믿은 후에도, 교회 다닌 후에도 여전히 음란 죄, 방탕 죄, 우상 숭배 죄를 짓고 살면 어떻게 되느냐? 나 자신만 죄 짓고 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정이 깨지고 내 가족이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가정에 틈이 생겨서 결국 가정을 무너지고 망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죄가 이 세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와 불신앙에 대해서는 이미 두 주 전 말씀드렸기에 오늘은 나머지 두 가지, 즉 음란과 방탕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음란과 방탕이라는 전염병

가정 안에서 한 사람의 음란이나 방탕은 전체 가족에서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혼자 타락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음란과 방탕이 온 가족에게 아픔을 주고 가정에 금이 가게 만들어 가정 전체를 무너뜨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가장인 남편이 음란죄에 빠져 외도를 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부부 사이의 신뢰감에 금이 가게 됩니다.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남편이 그런 이중적인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아내는 남편이 무슨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믿지 않게 됩니다. 그동안 남편이 자신을 수없이 속이고 거짓말을 해왔다는 생각 때문에 결혼생활 전체가 거짓이라고 생각하게 되어 극도의 배신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 

남편에 대한 미움과 경멸 때문에 도저히 하루라도 같이 살기 어렵게 됩니다. 물론 그러다가 이혼하면 그 가정은 해체됩니다. 하지만 꼭 이혼하지 않더라도, 가정을 깨지 않으려고 꾹 참고 살더라도 그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안 믿는데, 미워하고 경멸하는데 어떻게 정상적인 부부겠습니까?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런 때 느끼는 고통은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느끼는 고통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하니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지 않습니까?

더 무서운 것은, 부모의 음란이나 방탕이 자녀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이 잘 되면 온 가정이 잘 되고, 한 사람이 실패하고 고통당하면 온 가정이 다 고통당하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운명 공동체를 “한 배를 탔다”고 표현합니다. 꼭 맞는 말입니다. 한 배를 타면 풍랑을 맞아 침몰해도 같이 죽는 것이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면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845년 아일랜드의 감자밭에 입고병(立枯病)이라는 전염병이 돌면서 수년간 대기근이 이어져 100만 명이 죽고 100만 명은 세계 각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가운데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는데 당시 아일랜드를 떠난 이민선이 대서양을 건너 6주 간 항해하는 사이에 전체 승객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가족이 죽으면 망망대해에 시신 묻을 곳이 어디 있습니까? 배에 남겨 둘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남편을, 아내를, 어린 자녀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야 했습니다.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생겼을까요? 지저분한 배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병에 걸리면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 다 전염되었기 때문입니다. 

망망대해를 항해하는데 중간에 혼자 내리고 싶다고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그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살면 다 같이 살고 죽으면 다 같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 가정이 이와 똑같습니다. 온 가족은 한 배를 탔습니다.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병에 걸리면 한 배에 탄 가족들이 다 전염됩니다. 특히 부모의 죄는 자녀에게 전염(傳染)됩니다. 이 ‘전염’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입니다. 더러운 병이 전염되는 것처럼 이 음란과 방탕은 다른 가족에게, 특히 자녀들에게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부모의 음란과 방탕 병은 거의 자녀에게 전염되어 자녀도 그런 사람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 부모에 그 자녀

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재미있는 조사를 했습니다. 부모가 그 자녀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떤지 연구한 것입니다. 위원회는 이 조사를 위해 18세기에 살던 두 사람의 표본 모델을 선정했습니다. 동 시대에 같은 지역에 같은 경제적 조건과 같은 가족 수를 가진 두 가정을 표본으로 정했는데 한 사람은 프린스턴 대학 설립자요 미국 부흥 운동을 일으킨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였고, 다른 한 사람은 뉴욕에서 술집을 경영하여 거부가 된 마커스 슐츠(Marcus Schultz)였습니다.  위원회에서는 이 두 사람의 후손들을 5대에 걸쳐 면밀하게 추적하고 그들의 인적 사항을 컴퓨터에 입력해 통계를 뽑았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5대에 걸친 후손들은 모두 8백 96명이었는데 그 가운데 대학 총장이 12명, 교수 65명, 의사가 60명, 목회자가 100명, 군인이 75명, 저술가 85명, 변호사 판사 등 법조인이 130명, 공무원 80명이었습니다. 이밖에도 부통령이 1명 나왔고 상원의원도 4명이나 있었습니다. 반면 같은 시대에 살았던 슐츠의 후손은 1천 62명이나 되었는데 그 가운데 교도소에 수감됐던 사람이 96명, 정신병자나 알코올 중독자가 58명, 창녀가 65명, 영세민이 2백 86명, 제대로 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이 4백 60명이나 됐습니다.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아버지가,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부모가 얼마나 잘 살고 출세했느냐가 아니라 그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부모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면 그 자녀도 같은 가치관을 가지게 됩니다. 하지만 부모가 비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고 음란과 방탕에 빠지면 자녀에게 그대로 전염됩니다. 그래서 그 자녀뿐 아니라 후손 대대로 나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여호와께서 아버지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민 14:18)고 말씀합니다. 잘못 이해하면 아버지의 죄 때문에 죄 없는 자식들이 피해를 본다고 억울해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라 부모의 죄가 자녀뿐 아니라 후손들 대대손손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 지 설명한 것입니다.

최근에 몇 가지 재미있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부모의 비만이 자녀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모두 비만인 경우 자녀가 비만일 확률이 3배 정도 높다고 합니다. 또 부모가 담배를 피우면 자녀에게 아토피 피부염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나왔습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면 옆에 있는 자녀도 간접흡연을 하게 되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아토피에 걸릴 확률이 2.7배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부모가 우울증이 있으면 자녀도 우울증을 비롯해, 성격장애 등이 일찍 나타날 위험이 높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부모의 비만도, 흡연도, 우울증도 이렇게 자녀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하물며 부모의 죄는, 음란이나 방탕은 어떨까요? 안드레 브룩스(Andree Brooks)라는 분은 이렇게 말합니다. 

“부모가 외도를 하면 자녀들은 매우 놀라고 불안해하면서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들도 옳지 못한 짓을 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다. 부모의 외도를 자녀들이 알게 되면 결혼과 가정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된다.” 자녀들은 부모의 외도를 혐오하면서 성장하지만 나중에 부모처럼 외도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 그들을 ‘잠재적 외도자’라고 부릅니다. 또한 외도한 부모를 극도로 혐오하여 이성 기피증에 걸리기도 합니다. 자녀들은 가족 간의 신뢰가 깨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가정과 인간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중에 자녀 가운데 외도하거나 가정이 깨지거나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껴 아내 사라를 그랄 왕 아비멜렉에게 보냅니다(창 20장). 자기 살려고 마누라 팔아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중에 아들 이삭도 블레셋 땅에서 똑같은 이유로 자기 아내 리브가를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보냅니다. 아버지가 하는 행동을 보고 자녀가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성군 다윗도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게 음욕을 품고 일생에 단 한 번 간음을 하는데 큰 아들인 암논도 이복누이 다말을 범하는 음란죄를 짓습니다. 솔로몬은 후궁을 많이 거느리다가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렇게 가정 안에서 우리의 책임은 큰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가치관이나 행동이 가족 전체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나 한 사람의 음란과 방탕이 나 혼자 망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가족 전체, 배우자, 자녀와 후손 대대에 이르기까지 나쁜 죄로 전염됩니다. 부모가 음행하면 자녀도 음행하는 사람이 되고 부모가 술 취하고 방탕하면 자녀도 그렇게 됩니다. 나 한 사람의 순간적인 쾌락을 위해 저지른 짓이 음란죄가 되고 방탕죄가 되어 내 가정이라는 배에 금을 가게하고 그 배가 가라앉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 가정이라는 배에 탄 모든 식구는 다 죽는 것입니다.

❚천 대에 걸쳐 은혜 받는 가문이 되려면

마지막으로 이런 음란죄와 방탕죄를 이기는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답은 출애굽기 20장 5절과 6절에 나와 있습니다.

5...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여기 최악의 가정과 최선의 가정이 함께 나옵니다. 앞서 설명한 대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특히 음란이나 방탕의 죄를 지으면 후손 삼사 대까지 그 죄가 전염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이 5절에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6절에는 이 삼사 대와 비교할 수 없는 숫자가 나옵니다. 천(1,000) 대입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자녀와 후손이 천 대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복을 받고 살 수 있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바로 “나(여호와)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4절과 5절에서 말세에 일어날 현상을 설명하며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4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쾌락을 더 사랑하면 우리 자신이 죄를 지을 뿐 아니라 내 가정 전체와 후손까지 삼사 대, 아니 대대손손 죄에 사로잡혀 살게 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겉으로는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음란과 방탕과 쾌락을 사랑하는 옛 사람의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거기 사로잡혀 살면 신앙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나 자신뿐 아니라 내 가정 전체와 후손들이 대대손손 하나님의 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가장인 내가, 부모인 내가, 가정의 구성원인 내가 정신 차리고 예수 믿기 전 가졌던 음란과 방탕과 쾌락을 사랑하는 구습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뜻대로 살게 되면 나 자신뿐 아니라 내 가정 전체와 후손이 천 대에 걸쳐 복 받고 은혜 받는 영적인 명문 가정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 가정, 내 자녀, 내 자손을 책임지신다는 것입니다. 마커스 슐츠가 아닌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처럼 말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이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이 천 대에 걸쳐 복 받은 가정 되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현재 여러분이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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