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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행복을 꿈꾸는 가정 (룻 1: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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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꿈꾸는 가정 (룻 1:15~18)


모두가 행복을 꿈꿉니다. 하지만 행복이 모두의 것은 아닙니다. 행복은 오직 행복을 누릴 가치가 있는 사람들만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까요?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런 행복한 가정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던 한 여인을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슬프나 즐거우나 가족과 함께 함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어느 아빠의 감동적인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을 먼저 소개합니다.

아내가 어이없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언 4년. 지금도 아내의 자리는 크기만 합니다
어느 날 출장일로 아이에게 아침도 챙겨주지 못한 채 출근길에 올랐습니다.
그 날 저녁 아이와 인사를 나눈 뒤에 양복 상의를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는 침대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그 순간 뭔가가 느껴졌습니다…….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발이 이불에 퍼질러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컵라면이 이불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 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 장딴지며 엉덩이며 마구 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리는 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 녀석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레인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 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워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리려고 식을까 봐 이불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가슴이 메어왔습니다. 아들 앞에서 눈물보이기 싫어 화장실에 가서 수돗물을 틀어놓고 울었습니다.
일 년 전에 그 일이 있고 난 후 저 나름대로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이제 7살 내년이면 학교 갈 나이죠. 

얼마 전 아이에게 또 매를 들었습니다. 일하고 있는데 회사로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에 나오지 않았다고.
너무 다급해진 마음에 회사에 조퇴를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찾았죠. 
동네를 이 잡듯 뒤지면서 아이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놈이 혼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더군요. 집으로 데리고 와서 화가 나서 마구 때렸습니다.
하지만 단 한차례의 변명도 하지 않고 잘못했다고만 빌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부모님을 불러놓고 재롱잔치를 한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아이는 유치원에서 글자를 배웠다며 하루 종일 자기 방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채 글을 써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아이는 학교에 진학했죠. 그런데 또 한 차례 사고를 쳤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날. 일을 마치고 퇴근을 하려고 하는데 한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우리 동네 우체국 출장소였는데……. 우리 아이가 주소도 쓰지 않고 우표도 부치지 않은 채 편지 300여 통을 넣는 바람에 연말에 우체국 업무가 지장을 끼친다고 온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또 일 저질렀다는 생각에 불러서 또 매를 들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맞는데도 한마디 변명도 하지 않은 채 잘못했다는 말만 하더군요.
그리고 우체국 가서 편지를 받아 온 후 아이를 불러놓고 왜 이런 짓을 했냐고 하니 아이는 울먹이며 엄마한테 쓴 편지라고.

순간 울컥하며 나의 눈시울이 빨게 졌습니다. 
아이에게 다시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왜 한꺼번에 이렇게 많은 편지를 보내냐고.
그러자 아이는 그동안 키가 닿지 않아 써오기만 했는데 오늘 가보니깐 손이 닿아서 다시 돌아와 그동안 써논 거 다 들고 갔다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다고 다음부턴 적어서 태워버리면 엄마가 볼 수 있다고. 
밖으로 편지를 들고 나간 뒤 라이터 불을 켰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무슨 내용인가 궁금해 하나의 편지를 들었습니다.

보고 싶은 엄마에게
엄마 지난주에 우리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했어.
근데 난 엄마가 없어서 가지 않았어.
아빠한테 말하면 엄마 생각 날까봐 하지 않았어.
아빠가 날 막 찾는 소리에 그냥 혼자서 재미있게 노는 척 했어.
그래서 아빠가 날 마구 때렸는데 애기하면 아빠가 울까봐 절대로 얘기 안했어.
나 매일 아빠가 엄마생각 하면서 우는 것 봤어.

근데 나는 이제 엄마 생각 안나.
엄마 얼굴이 기억이 안나.
보고 싶은 사람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자면 그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고 아빠가 그랬어.
그러니깐 엄마 내 꿈에 한번만 나타나.
그렇게 해줄 수 있지? 약속해야 해.
편지를 보고 또 한 번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혁수야 너 요즘에도 엄마한테 편지 쓰지?
아빠 너 하늘로 편지 보내는 거 많이 봤다
엄마가 하늘에서 그 편지 받으면 
즐거워하고 때론 슬퍼서
울기도 하겠지
혁수야 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
그걸 잊지 마 아빠가 널 때린다고
엄마가 혁수를 놔두고 갔다고 
섭섭해 하지 마 알겠지..?

끝으로 사랑한다 내 아들아.
세상에 하나뿐인 우리아들 사랑해 
아빠가ㅡ

이 글의 주인공들은 실존인물이고 실화입니다.

어떤 이유로 엄마가 세상을 떠났는지는 몰라도 엄마와 아내가 없이 살아가는 부자의 모습이 우리를 눈물짓게 만듭니다. 
룻의 가정도 그랬습니다.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비록 외국 사람과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수군거림도 당했고 손가락질도 받았지만 그래도 룻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시아버지도 시어머니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하루가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도 잠깐뿐 갑자기 시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채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시아주버니와 남편이 세상을 또 떠난 것입니다. 슬픔은 몰아서 닥친다고 하더니 꼭 그런 꼴입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희망이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행복한 웃음으로 넘쳐나던 가정에 짙은 어둠이 깔리고 한숨 소리로만 가득했습니다. 이제는 집안도 기울어 먹고 사는 것조차 걱정해야 될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어머니가 며느리들을 부릅니다. 나는 이제 내 고국으로 돌아가련다. 그러니 너희가 그 타국에 가서 어떻게 살 수가 있겠니? 더군다나 나는 가진 것도 하나도 없는 알거지 신세이니 차라리 너희는 이 나라 너희 고국에 남아 새로운 삶의 길을 찾으려무나. 이렇게 사랑이 넘치는 시어머니가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자기 앞가림을 하기도 힘들게 된 이때 며느리들을 이용해서라도 살 길을 찾아볼 수도 있으련만 시어머니는 오히려 며느리들을 먼저 염려해줍니다. 그런 시어머니의 사랑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자기보다는 며느리들을 먼저 챙기는 그 마음이 아련한 아픔이 됩니다. 그래서라도 이 여인은 시어머니를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고생이 된다고 해도 아무리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외면하고 비웃는다고 하더라도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해주는 시어머니와 함께라면 아픔도 오히려 행복이라고 이 여인은 생각했습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모두가 자기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먼저 며느리를 생각하는 시어머니와 시어머니를 위해 일생을 헌신하겠다고 다짐하는 며느리의 사랑 고백으로 가득한 그곳이 바로 행복이 있는 곳입니다. 

비록 혁수 아빠처럼 아이의 입장을 한번쯤 돌아보고 왜 그랬는지 마음을 열고 이야기할 수 있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가득한 우리의 현실이지만 상대방의 마음보다는 내 생각으로만 가득해서 상대방에게 아픔을 주는 일이 더 많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그 본마음만은 사랑이라면 그곳이 행복이 가득한 곳입니다. 하지만 내 입장만 고집한다면 그래서 내가 받은 상처만 생각하고 서운하게 여긴다면 그것 때문에 동생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가인의 비극이 내게도 있게 됩니다. 

그러기에 내 입장보다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해주고 내가 아픈 만큼 상대방도 아프다는 사실을 우리가 먼저 생각한다면 내가 너무 너무 아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더 아프겠지 미안해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 너를 섭섭하게 해서 미안해 너를 힘들게 해서 미안해 이렇게 되면 그곳이 바로 행복이 넘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왜요? 이윽고 진정은 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이런 행복으로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계속해서 행복한 가정은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신앙생활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제 눈의 안경이라는 말을 합니다. 결국은 자기 입장에 따라 모든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한 것도 잘 압니다. 내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문제가 있고 네가 부족해서 그렇다고 누가 내게 말한다면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그 말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럴 때 참으로 중요한 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이 될 것입니다. 너에게 문제도 있고 네가 부족해서 그런 일이 생긴 거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는 이런 장점이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는 이런 좋은 점도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는 희망이 있어.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은 삶에 새로운 힘을 주는 묘약입니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다는 것도 잘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하고 나만 바라보는 그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그 일을 해야만 돼. 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옵니까?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곧 신뢰입니다. 나도 나를 믿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나는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고백이 귀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의 행복보다 시어머니의 행복을 먼저 생각했고 그런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런 시어머니에게 남아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있다면 오직 한 가지 하나님 신앙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신앙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야 말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근원입니다. 먼지만 풀풀 날리는 엔게디 광야를 적시고 이윽고는 폭포가 되어 흘러내릴 수 있는 것은 엔게디 샘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곳에는 많은 생명들이 모여듭니다. 그곳에 풍성함이 있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 있는 폭포라니요? 하나님은 그렇게 메마른 광야와 같은 우리 삶의 샘이 되어주십니다.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랄 수조차 없는 메마른 땅을 적시고도 남아 폭포가 되어 흐를 정도로 풍성한 샘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선택은 바로 이 하나님이어야 됩니다. 하나님 신앙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는 신앙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바꾸어주는 원리입니다. 그곳에 약동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곳에 모든 풍성이 있습니다. 그곳에 평안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나운 짐승도 모여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면 그것이야 말로 푸른 초장이 되고 쉴만한 물가가 됩니다. 아무리 그곳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아도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심으로 나를 위로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보장이 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길을 열어 주시도록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처음 에덴동산에 사랑으로 가득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한 가정 안에 사랑으로 가득한 남자와 여자가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 안에서만 그 사랑은 온전할 수 있습니다. 더욱 우리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해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중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것은 잃어도 다시 얻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 신앙이 없이는 결국 우리의 생명마저 잃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룻은 가장 아름다운 선택을 했습니다. 하나님 신앙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그녀는 가장 힘들 수도 있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시어머니를 따른다는 것은 그래서 하나님 신앙을 택한다는 것은 고생길이 훤하게 보이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가시밭길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였기에 그 길을 더 이상 가시밭길이 아니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가시밭길인 줄만 알았는데 그 길이야말로 참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으로 가시밭길로 들어갔는데 하나님은 그 길이 정말 복되고 영광으로 가득한 길이 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세상을 등진다 해도 하나님은 그 길을 오히려 세상을 얻을 수 있는 길로 바꾸어주십니다. 룻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신앙을 위해서 세상이 말하는 행복을 포기했습니다. 

자기의 인생보다는 어머니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랬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룻을 가장 아름다운 여인 복된 여인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길을 모든 사람이 칭찬하고 모든 사람이 부러워하는 그런 길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어머니를 섬기기 위해서 하나님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위해서 자기의 행복을 내려놨는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녀가 더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게 될 때 그 길은 가장 아름답고 그 길은 가장 행복한 길이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중심이 하나님이 되어야 되고 우리 가정의 주인이 바로 하나님이 되셔야 합니다. 그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길이 우리의 가정이 가장 행복한 길이요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어떤 시련과 어려움이 있어도 위를 쳐다보면서 절망하지 않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교만하지 않고 오늘을 감사하면서 내일의 희망을 안고 오늘을 살아갈 때 거기에 행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마음으로부터 오는 것이요 그 출발은 가정입니다. 어떻게 해야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습니까? 가정이 행복의 온상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족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하여 신뢰의 열매를 맺어야 되고 그 중심에 하나님이 계셔야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신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믿음과 사랑으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여기 가정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일곱 가지 행복(Seven Happy)을 실천해 보라는 글이 있습니다. 

첫째, Happy look(부드러운 미소) : 웃는 얼굴을 간직하십시오. 미소는 모두들 고무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둘째, Happy talk(칭찬하는 대화) : 매일 두 번 이상 칭찬해 보십시오. 덕담은 좋은 관계를 만드는 밧줄이 됩니다. 

셋째, Happy call(명랑한 언어) : 명랑한 언어를 습관화하십시오. 명랑한 언어는 상대를 기쁘게 해줍니다. 

넷째, Happy work(성실한 직무) : 열심과 최선을 다하십시오. 성실한 직무는 당신을 믿게 해줍니다. 

다섯째, Happy song(즐거운 노래) : 조용히 흥겹게 마음으로 노래하십시오. 마음의 노래는 사랑을 깨닫게 합니다. 

여섯째, Happy note(아이디어 기록) :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하십시오. 당신을 풍요로운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일곱째, Happy mind(감사하는 마음) : 불평대신 감사를 말하십시오. 비로소 당신은 행복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행복은 누가 갖다 주는 선물이 아닙니다. 부딪히며 살아가는 세상에서 서로가 만들어 가는 창작품입니다. 내가 그 행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내 생활에서, 내 가정에서, 내 직장에서 내 교회에서 “Seven Happy”를 실천하십시오. 행복하기를 선택하십시오. 행복이 물밀 듯 여러분 마음과 가정에 찾아들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하는 놀라운 은혜로 가득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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