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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재림의 주님 (요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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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의 주님 (요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영국의 BBC 방송이 선정한 지난 천년 동안의 최고의 탐험가 10인 가운데 ‘크리스토퍼 콜롬부스’와 ‘제임스 쿡’, ‘닐 암스트롱’ ‘마르코 폴로’에 이어 5위에 랭크된 인물은 ‘어네스트 새클턴’ (Sir Earnest H. Shackelton 1874-1922)입니다. 
그는 1914년 8월 27명의 대원을 이끌고 남극 정복을 위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인듀런스’ (the endurance) 호를 타고 남극 대륙까지 항해하고, 그런 다음 도보로 남극을 정복하고자 했습니다. 

탐험대가 계획에 따라 항해하던 중 목적지 남극을 150km 남겨놓고 ‘웨들’ 해의 얼음에 갇혀 아이스크림위에 박힌 아몬드 처럼 배가 꼼짝 못하게 되었고, 10개월 동안을 얼음에 갖혀 있다가 결국은 엄청난 파괴력으로 조여드는 빙산의 압력에 선체가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빙산의 얼음위에 텐트를 치고 약 5개월을 갖혀 있는 동안 그대로 있다가는 모두다 얼어죽겠다는 판단으로 그는 구조를 요청하기 위해 기지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남아있는 대원들에게 구조대를 이끌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차디찬 남극 바다에 텐트를 찢어 돛을 달고 작은 보트를 띄웠습니다. 

거친 남극 바다를 1,300km를 항해 하여 지금의 엘리펕트 섬의 포경기지에 도착합니다. 기쁨도 잠시, 죽음의 땅에 남아있는 대원들을 구출하기 위해 배를 구하여 다시 수 개 월을 걸려 다시 되돌아가서 그곳에 남아있던 모든 대원들을 구조하였습니다. 비록 극지 탐험은 실패했지만 영국을 떠난지 755일 만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서 섀클톤은 영국의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새클톤은 대원들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구조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이별을 준비하시면서 다시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전에 우리에게 주신 세 번째 약속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서운 십자가를 겪으신 후, 그를 구주로 믿는 모든 이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안에 성령님으로 거하고 계시지만, 언젠가 돌아오셔서 우리를 그분의 처소로 불러 모으실 것입니다 (살전 4:15-18). 

1. 예수님은 재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십니다.

우리가 주님께 속해 있다면, 주님은 우리를 위해 돌아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다시 돌아오신다는 약속이 바로 재림의 약속입니다. 그래서 재림은 승천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본문에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라고 했습니다. 하늘로 가셨던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 이것이 재림입니다. 
동정녀 탄생, 부활 등과 함께 어떤 종교에서도 볼 수 없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진리입니다. 부활과 승천이 역사적 사건이었던 것처럼 재림도 역사적 사건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①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약속입니다. 
본문 요14:3절에 보면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가 다시 와서 주님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하리라”고 하셨고 마24:44절에는 주님께서 “생각지 않은 때에 올 것이니 예비하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재림은 제자들이 만들어낸 교리가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분명하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② 가신 대로 오실 것입니다. 
행 1:11절에 보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했습니다. 
육체로 가셨으니 육체적으로 오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가셨으니 모두 다 보게 오실 것입니다.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가셨으니 천군 천사와 함께 오실 것 입니다. 영광의 구름을 타고 가셨으니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입니다. 

③ 심판의 주님으로 영광스럽게 오십니다. 
예수님이 초림하실 때는 인생들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야 했기 때문에 낮고 비천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재림하실 때는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실 권세를 가지시고 천사들의 호령과 나팔소리로 영광스럽게 심판의 주님으로 오십니다. 
마25:31-32절에 보면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라고 했습니다. 

④ 재림의 사건은 비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재림의 시기는 비밀에 부쳐졌지만 재림의 사건은 비밀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이루어집니다. 
계1:7절에 보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마24:27절에서는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순간적으로 천사장의 호령과 나팔 소리가 들리며 공중으로 강림하시기(살전4:16)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습니다.

⑤ 재림은 틀림없이 역사적으로 성취될 것입니다. 
재림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특히 초림에 대한 예언은 예수 탄생 600년 전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태어날 가문, 방법, 장소, 그리고 탄생의 목적까지 예언되었고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미5:2, 사7:14)
이제는 다시 오신다는 예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히 재림에 관한 약속은 예수님이 친히 주신 약속이기에 “천지가 없어져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라고 마5:18절에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성취되어질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계22:20절에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성경 마지막 책인 요한 계시록을 끝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성도들이 재림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재림 신앙을 가지고 영적으로 언제나 깨어있는 신앙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⑥ 그 날과 그 시는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재림이 언제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재림의 시기에 관하여 막13:32절에 보면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그 날과 그 시는 비밀에 부쳐진 것입니다. 
왜 비밀에 부쳐졌을까요? 그것은 성도들로 하여금 언제나 준비하고 깨어있는 신앙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마25:13절에 보면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있으라고 했습니다. 

2. 재림을 믿고 준비하는 성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합니까? 

막 1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의 징조들에 관해서 말씀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 모든 일이 이루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라고 묻는 것을 봅니다. 
제자들은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구체적으로 한 시점을 지목하여 주기를 원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때를 알아차릴 수 있는 지혜에 관해서만 마지막으로 살짝 말씀해주십니다. 그리고는 '깨어 있어야 할 것'에 관한 가르침으로 마무리하십니다. 
때를 아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그 때'를 분별하기 위해 깨어 있는 자세와 영적 상태입니다. 결국 '어느 한 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모든 날을 깨어 조심하며' 살아가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나중에 잘해야지"합니다. 
나중에 예배 출석도 잘하고, 헌금도 많이 하고, 나중에 성경도 열심히 읽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 생각 자체로도 불순종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구원의 한 시점'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해서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우리의 평생'이 주님께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합니다. 즉 '결국은 구원받았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예수와 함께 살았다'는 소리를 들으려는 것입니다.

재림의 약속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 
다시 오셔서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을 심판하여 영원한 형벌에 처하실 것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하늘 나라 하나님의 집에 거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주님을 뵐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삶이 주님의 재림에 초점이 맞추어진다면 세상 것에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언젠가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한다면 세상에서는 나그네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집이 아닌 주님이 오셔서 주님과 함게 영원한 천국 집에 들어갈 꿈을 가진 순례자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향해가는 나그네요 순례자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조그만 동굴에서 잠을 자다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서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남자가 등에 커다란 짐을 진 채 책을 읽더니 고통스럽게 흐느끼며 울부짖었습니다. 
“내가 어이할꼬!” 

존 번연이 쓴 천로 역정의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남루한 옷이란 인간들이 자신을 자랑하는 의를 말하며, 커다란 짐이란 죄악의 짐을 말합니다. 그는 꿈이라는 형식을 빌려 주인공 ‘크리스천’이 장망성 (파멸의 도시)을 떠나 온갖 역경과 고난 그리고 유혹이 가득 찬 험난한 길을 걸어 마침내 나그네 된 성도의 본향인 천성에 이르게 된다는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 지구는 여관방, 하나님은 여관방 주인. 그러므로 나그네 된 인생은 끝내 모든 것을 다 비워두고 떠나야할 존재들입니다. 호텔 숙박계를 쓸 때, 특히 외국에서 그렇게 할 때 어디서 왔는지, 출신지는 어디인지,, 지금 무엇하러 여기에 왔는지, 용무는 무엇인지, 그리고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지 ..그런 내용들을 쓰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도 생각해 봅시다. 
나는 어디서 왔는지..이 땅에 태어난 존재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인지... 신앙이란 천성을 향해 떠나는 여행길, 순례자의 길입니다. 곧 천로역정입니다. 
우리의 천로 역정은 개인의 죽음이나 예수님의 재림으로 대 단원의 막을 내리게 됩니다. 재림 전에 죽었던 사람들도 재림하실 때에 다시 부활하여 주님을 영접하게 되기 때문에 재림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옛날 어느 곳에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세월만 보내고 있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의 아내가 그에게 무명 몇 필을 주며 이걸 팔아 돈을 마련하고 장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장에 나가 무명을 팔았고 그리고 무명 판 돈으로 참외를 한 짐 사가지고 옆 마을에 가 팔려고 지고 갔습니다. 
가다가 무거워서 나무 밑에서 잠시 쉬게 되었는데 너무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참외를 몇 개만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팔면 얼마의 이익이 남을 테니 그 이익 만큼만 먹으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만큼 먹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잠이 든 사이에 동네 불량배들이 와서 남은 참외를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잠이 깬 그 사람은 “남는 것도 없는 걸 가져가는 바보 같은 놈들..” 하면서 껄껄 웃었습니다. 이익은 자기가 다 먹어서 남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람의 모습이 원금 다 잃고도,,, 참으로 소중한 것을 다 놓치고서도 잃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나그네 길에서 소중한 것이 무엇이며 중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변변치 않은 것만 좇다가 인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은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내 천로역정의 종착역에 도착했다면 나는 무엇이 남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공자는 죽음 이후를 묻는 제자들에게 “생전의 일도 다 알지 못하는데 죽은 후에 일을 어떻게 알랴?” 고 말했습니다. 유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완고해지고, 불교는 깊이 들어갈수록 허무하고, 기독교는 깊어질수록 소망과 기쁨이 넘칩니다. 
물은 바다로부터 왔기 때문에 바다로 흐르고, 불은 태양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고,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천성을 향해가는 나그네들입니다. 

나그네요 순례자는 지나가는 길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순례자가 지나가는 길에 너무 큰 미련을 둔다면 그는 여행을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다리!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건너갈 따름이지 그 위에 집을 짓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순례자는 지나가는 길에서 얻은 명예를 가지고 자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명예는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지나가는 길에 서서 너무 많은 욕심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나그네가 짐이 많으면 그 여행이 괴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 나그네는 영원한 본향을 향해 투자할 줄 압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자주 길을 확인하고 물어야 합니다. 
“내가 걸어온 길이 바른 길인가?” 
나그네는 이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또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커다란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곳이 인생의 마지막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시는 날에 자신의 삶의 가치가 들어날 줄 알기 때문에 기꺼이 순례자의 길을 가는 것이 재림을 준비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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