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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을 향한 여정 - 거룩 (히 12: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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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을 향한 여정 - 거룩 (히 12:14~17)


프란시스 쉐이퍼는 세상을 떠나기 전 암과의 투병을 하였다. 그가 임종 며칠을 앞두고 남긴 메시지는 특별하였다. 지나간 이 시대의 미국 교회가 행복한 교회, 행복한 성도에 대해 설교를 했는데 오늘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요구되는 삶의 메시지는 ‘행복하세요’가 아니요 ‘거룩’이라고 하였다. 

거룩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거룩이란 하나님의 성품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한다. 

레11:44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레11:45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벧전1: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자녀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자녀가 아버지를 닮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아버지를 닮아야 정상이듯 자녀된 우리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이 거룩하기에 마땅히 거룩해야 하고 거룩을 좇아야 한다. 

오늘 본문 히12:14에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고 하였다.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을 좇는 것은 주님을 만나는 길이다. 여기서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은 주님 오심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거룩을 좇아야 주님의 오심을 환영한다는 뜻이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뵙는 자는 그가 나타날 때 칭찬을 듣고 영광을 받고 존귀를 얻게 된다.(벧전1:7)

이렇게 중요한 거룩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거룩이란 말의 코데쉬(Kodesh)는 ‘끊어냄과 분리함’을 뜻한다. 즉 코데쉬는 더러움과의 분리를 말한다. 우리가 거룩함을 따르는 것이 성도의 길이라면 죄를 떠나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소극적으로는 그렇다. 그리고 적극적 측면의 거룩이란 거룩하게 구별된 자기의 몸으로 하나님을 섬기는데 전적으로 바치는 삶을 의미한다. 이렇게 거룩을 좇는 소극적 태도와 적극적 태도는 나와 너, 교회 모두가 좇아야 하는 신앙의 길이다. 아무리 행복해도 죄와 분리되지 않고 누리는 행복은 무의미하다. 행복이 전부가 아니다. 거룩하게 사는 것이 신앙의 전부이고 진짜 알멩이다. 

  
그러면 거룩함을 좇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은혜로 살려고 하라. (히12:15上)

히12: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오늘의 이 표현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가고 멀어져 가는 것이 두려운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지 않으면 거룩해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나’라는 자아의 힘은 언제나 죄성에 이끌려 간다. 쇠붙이가 자석에 달라붙고 끌려가 듯 죄의 길로 떨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힘으로 살려고 하고 나의 힘으로 거룩함을 추구하려 하면 실패하기 쉽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의 복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은혜의 힘에 의해 살아야 죄의 끄는 힘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나의 의지를 은혜보다 앞세우고 나의 육체의 힘을 은혜의 힘보다 우월하게 생각한다면 두려워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사랑도, 나눔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확신으로 살아야 한다. 

은혜의 힘이 죄를 이긴다. 은혜의 힘이 유혹을 박살낸다. 그 어떤 세상적인 것도 은혜의 부어주심 앞에 무용한 것이 된다. 거룩을 좇는 교회와 성도는 매일 매순간 하나님의 은혜를 가까이 해야 한다. 나를 나되게 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나를 구원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나를 기도의 사람으로 선택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나를 쓰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한 영혼을 전도하게 되고 교회의 섬기는 직분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은혜로 살려는 생각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 떨어져 나가는 자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래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도록 성도들을 돌아봐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돌봄이 있을 때 거룩을 좇을 수 있다. 거룩을 좇도록 격려하고 안내할 수 있다. 교회에서는 은혜의 수단을 가까이 할 때 죄를 이기고 유혹을 이기고 거룩하게 살게 된다. 은혜를 경험하는 수단들은 예배, 금식, 성찬, 말씀, 기도, 전도 등이다. 이런 것을 소중히 여겨 은혜 안에 머물도록 살피자.
  

2. 깨끗함으로 살려고 하라. (히12:15下)

히12:15下을 보면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라고 하였다. 사람은 자기 혼자 결정하고 자기 혼자 행동하며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자기 혼자의 결정과 언행심사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쓴 뿌리의 독은 사람을 상하게 한다. 쓴 뿌리의 독은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만들고 삶의 의욕을 감퇴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마음의 쓴 뿌리를 품은 것을 살펴야 한다. 

여기 쓴 뿌리의 의미는 ① 신29:18에서 “배교”를 의미한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에게로 가는 것이 배교다. ② 신29:19에서 “악한 마음, 못된 마음”이다. 저주의 말을 듣고도 복을 빌며 멸망할지라도 평안이 있다고 말하는 반목의 뿌리다. 이를 “독초와 쑥의 뿌리”라고 하였다. 성도들은 이 쓴 뿌리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다루어야 한다. 시기와 질투, 수근거림과 비방함, 양보할 수 없는 완고함과 편견, 자기 과시와 허영심, 열등감을 위장하는 비판과 분노, 깨지지 않는 미움과 적대감, 사기와 거짓말, 당 짓는 것과 우상 숭배, 방탕과 이단으로 감 등 이와 같은 것에 주의하지 못하는 삶은 괴로움과 더러움의 바이러스를 옮겨가게 한다.

그러므로 두려움으로 살펴야 한다. S.I 인플루엔자를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건강을 지킨다. 방심하고 손도 씻지 않고 멕시코로 여행을 가고 자기의 몸을 피곤케 하면 인플루엔자에 감염이 된다. 그것이 대유행이 되면 지구 인구의 20억이 감염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한다. 살펴보면 막아낸다. 남을 괴롭게 만드는 쓴 뿌리, 더러움을 가져오는 것을 살펴보고 주의하라. 

그리스도가 제시하는 자아는 온유하게 됨에 있다. 온유한 자아는 주님의 마음의 자아다. 여기서 참 기쁨과 깨끗함의 삶이 이루어진다. 쓴 뿌리가 있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깨끗한 삶, 온유한 자아의 삶을 사는 것이 거룩을 좇는 길이다. 하지만 쓴 뿌리의 마음을 방임하면 거룩은 더러움으로 바뀐다. 단순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쓴 뿌리의 영향력을 과소 평가하지 말자. 마음의 쓴 뿌리는 거룩을 방해하는 견고한 사단의 진이라는 것을 인식하자. 성령의 호미로 쓴 뿌리를 캐어내고 깨끗함으로, 온유함으로 살려고 하라. 이렇게 살필 때 거룩으로 나아간다.

  
3. 변하지 않는 약속을 의지하여 살려고 하라. (히12:16)

히12: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망령된 자의 삶은 거룩을 좇을 수 없다. 망령된 자의 삶은 본능의 욕구에 넘어지는 삶이다. 음행하는 것도 한순간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서 생기는 것이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판 것도 한 순간을 견디지 못해서 생긴 것이다. 음행의 욕구도, 먹고자 하는 식욕도 잠깐이며 그 욕구는 변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욕구에 따라서 살고 본능에 의해 산다면 두려워 할 일이다.

사실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내어주고 팔아버린 것은 육체적 욕구에 초점을 둔 허술한 삶인 것이다. 맨슨이라는 사람은 이 에서의 망령된 행위를 일컬어 이런 설명을 덧붙혔다. “에서가 장자권을 판 행동을 한 것은 육체적 식욕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가계에 대한 신성한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잠깐 동안의 유혹의 기회를 이기려면 약속을 의지하고 장자의 축복권이 변하지 않는 것임을 알았어야 한다. 육욕의 사람은 이 보화를 잠시 잊어버린다. 그래서 망령된 자가 된다. 그러나 거룩을 좇는 사람은 약속을 의지하며 산다. 말씀의 약속은 변하지 않는다. 

벧전1:24~25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육체라는 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시드는 것이다. 시들지 않고 세세토록 있는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자. 말씀으로 살면 거룩하게 된다. 말씀을 붙잡으라. 그러면 육체의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오는 망령된 삶을 이겨낸다. 오늘도 내일도 본능적 유혹에 서 있지 않는지 잠시 잠깐의 쾌락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지 살펴야 한다. 망령된 자처럼 되어버리면 돌아올 기회도 잃어버리기 쉽다. 부지런히 살피고 말씀의 약속을 붙잡자. 

거룩은 우리의 삶의 과제이며 크리스챤의 색깔이다. 성공도 중요하고 행복도 중요하고 은사도 중요하고 부흥도 중요하다. 그러나 거룩해지지 못하면 안된다. 거룩하지 못한 성공, 거룩하지 못한 행복, 거룩을 좇지 않는 은사와 부흥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아버지를 닮아라. 아버지 처럼의 아들이 되라. 

이 시대의 신앙의 키워드는 거룩이다.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가 거룩을 경험하고 자기 입술의 부정함을 화저로 지지며 거룩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룩을 외치는 삶을 결단하게 되었듯이 나와 여러분은 거룩한 삶의 초대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우상으로부터 분리되자. 죄로부터 분리되자. 의심으로부터 분리되자. 욕망으로부터 분리되자. 내 한 평생 동안 하나님의 거룩이 아닌 것을 버리고 거룩이란 코데쉬가 나의 삶의 본질이 되게 하자. 세상 사람들이 거룩 속에서 우리의 겸손, 정직을 보게 된다. 신용과 믿음을 보게 된다. 거룩은 힘이다. 영향력이다. 이제 우리는 거룩을 따르자. 

거룩을 향한 여정!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내일보다 모레, 하나님 아버지를 닮아가는 여정에서 우리 모두 떨어져 나가지 말고 함께 동행하는 사람들이 되자. 죄에 져서 넘어지고 실족할 때 다시 일으켜 세워가도록 하자. 그리하면 주를 기다리는 삶은 기쁘게 주님을 만나는 날을 환영하는 성도가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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