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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복 (시 1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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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 (시 128:1~6)
 
 
1. 세상의 복 vs 성경의 복

경기도 분당에 있는 소목사님은 교회 안팎에서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적인 신앙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들의 지적은 타당하다. 그런 건전한 비판이 있기에 교회는 곁길로 가지 않고 정도로 간다. 그러나 비판의 정도가 지나쳐서 오히려 하나님께 마땅히 구해야할 복을 구하지 못하고 누릴 수 없게 했다면 그 비판은 다시 비판받아야 한다.” 성도 여러분, 누가 비판하냐 아니냐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복의 하나님이요,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 주시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그 예들은 많이 있지요. 하나님은 천지창조 직후, 사람들에게 맨 먼저 복을 선언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을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 노아 시대, 홍수 심판 직후에도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복을 선언하셨습니다(창9: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가장 먼저 선언하신 것도 이 복이었습니다(창12:2). 

물론 성경의 복과 세상적인 기복(祈福)은 다릅니다. 그 차이점에 대해서 소강석 목사님은 “기독교의 복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진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복의 선교성입니다. 구약에서 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전하기 위함이었으며, 신약적인 복은 복음사역을 감당하고 섬기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성도가 복을 받아 그로 인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더 쉽도록 주님은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둘째는 복의 통로성입니다. 

기복(祈福)은 자기 성을 쌓고 타인과의 접촉을 막습니다. 복을 받을수록 담장이 높아져가는 이유가 그 때문이지요. 그러나 성경의 복은 축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지역과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 보내고 나누기 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복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에도, 감옥에 갇혔던 때에도,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복의 통로가 되어 애굽과 전 세계를 살렸습니다. 셋째로 성경이 말하는 복의 특징은 ‘섬김’입니다. 성경의 복은 자기 혼자 부귀영화를 누리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야망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 성도가 추구해야할 복은 그것으로 가난한 사람, 선교사, 어려운 사역자들과 교회를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경이 말하는 이러한 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마치 “천국이 침노하는 자의 것인 것처럼” 성경의 복, 우리 주님이 약속하신 복도 침노하는 자가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서두에 소개한 소강석 목사님은 성경이 말하는 복에 대해 얼마나 적극적인지, “복을 추구하는 것은 성도의 또 다른 거룩한 영성”이라고까지 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성도가 하나님의 복을 추구하고 그 복을 받아 누리기 원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가 되기 위해서라면, 즉 그 복을 받아 주님과 복음과 교회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한다면 그것을 더욱 더 적극적으로 구하는 것이 “영성”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인 복이든 육신적인 복이든, 신령한 천국의 복이든 이 세상의 물질적인 복이든 ‘나는 그런 것에 초월해서 산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요? 아니죠! 결코 아니지요! 도리어 적극적으로 그 복을 구하고, 그것을 소유하여 그것을 선교적인 목적으로, 그렇게 받은 복의 통로가 되어 사는 것으로, 그리고 그 복으로 주님과 교회와 이 땅을 섬긴다면, 그만큼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여러분은 오늘 본문이 약속하는 복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누리기를 소망하고 또 그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

그렇다면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이 복을 받아 누리는 사람을 어떤 사람일까요? 누가 언제 지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시편 128편은 앞에 있는 127편과 쌍둥이 시편이라고 할만큼 주제가 동일합니다. 127편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인간의 수고가 헛되다’고 말함으로서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다’는 주제를 전합니다. 반면에 128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릴 복’에 대해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127편이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수고는 진정한 복을 갖다 주지 않는다’는 것이라면, 128편은 ‘그 복을 누리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1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기에서 “경외한다”는 말은 ‘여호와를 두려워한다’는 말이며,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두려움을 갖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추상적인 개념이지만, 성도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자신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생활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항상 인정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삶을 말합니다. 이것을 1절은 “그의 길로 걷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성경의 방식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살 때 오늘 본문은 뭐라고 약속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복이 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만이 성경이 약속하고 있는 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2절부터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누릴 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3. 여호와의 복

1) 하는 일의 복(2)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이 받는 첫 번째 복은 2절,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입니다. 사람이 수고할 일과 직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수고할 건강이나 여건이 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수고한 대로 거두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시지요? 잠언 5장 10절에, “다른 사람이 네 재산으로 배를 불리고, 네가 수고한 것이 남의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호세아서와 에스겔서에 보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그 말씀을 버림으로서 받게 되는 징벌 중의 하나가, ‘죽도록 수고하고 애써서 농사지은 것을 원수들이 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일입니까? 정말 죽도록 수고하고 고생했는데, 정작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는 사람은 나도 내 가족도 아니고 원수라니요! 

굳이 원수가 아니라도, 굳이 죄를 짓지 않아도 실컷 수고한 것을 자신이 누리지 못하고 남 좋은 일시키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수고한 것이 엉뚱한 데로, 예상치 못한 데로 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경우는 얼마나 많습니까?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한순간의 비나 바람으로 헛수고가 될 때가 있습니다. 열심이 벌어서 쌓아놓아도 사기를 당하거나 강도나 도둑에게 탈취당할 수도 있습니다. 또 학생이 아무리 열심히 공부를 해도 시험 보는 날 몸이 아파서 공부한 것이 허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후배 목사는 고등학교 때 전교 일등도 하고 늘 반에서 일등 하던 분이었는데, 당시 학력고사 시험을 치던 날, 3교시까지 시험을 잘 쳤는데, 4교시를 앞두고 갑자기 몸이 너무 아파서 병원으로 실려 가는 바람에 4교시 이후를 못 쳤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3교시까지 친 성적으로 고신대 신학과로 진학해서 목사가 된 후 지금 울산에서 훌륭하게 목회를 잘 하고 있습니다. 이 분이야 잘 된 경우지만, 3년, 그 이상을 죽도록 공부했는데 시험 당일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고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 사람이 수고하여 일한 대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미국 조지아 주립대학의 한 교수가 미국의 백만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백만장자가 되는 길>이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들과 대화하면서 그는 백만장자들의 공통분모를 발견했습니다. 백만장자가 된 사람 중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온 사람이 드물었고, 최우수의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거의 없었으며, 또 최고의 지능지수를 가진 사람도 거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또 다른 특징은 그들의 61%가 자수성가함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교수가 발견한 아주 중요한 공통점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교수는 이 사실을 통해 백만장자는 하늘이 주는 복을 통해 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유산상속이나 학벌이나 자기 재주로 거부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그들이 거부가 되었다는 사실이었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이 수고한 대로 거두고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더욱 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러분의 일과 직장과 사업의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가정의 복(3)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을 두 번째 복은 “가정의 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가정적인 복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❶ 첫 번째 복은 아내의 복입니다. 한 남자가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복은 좋은 아내를 얻는 것입니다. 이 아내의 복에 대해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합니까? 3절,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시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아내를 “결실한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귀한 유실수는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두 나무에서 큰 기쁨과 만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실 포도나무 그 자체는 약하여 버팀목이나 다른 것을 의지해야 하며, 또 그 모양도 그렇게 아름답지 않습니다.

이런 포도나무가 아름답고 귀하게 보이는 것은 언제입니까? 결실했을 때, 즉 포도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을 때입니다. 결실한 포도나무는 너무도 아름답고 귀하게 보입니다. 오늘 본문이 “결실한 포도나무”라는 표현으로 말하는 것은 
㉠ 일차적으로 자녀를 많이 출산한 경우를 말합니다. 자녀를 많이 낳은 것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린 포도나무의 모습과도 같다는 것이지요. 

㉡ 그리고 이 표현은 여인이 그 자녀를 아주 훌륭하게 잘 키우는 것을 뜻합니다. 마치 모세를 잘 양육한 요게벳 같고, 사무엘을 잘 키운 한나 같고,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을 제왕으로 키운 밧세바 같은 어머니, 그리고 디모데를 잘 양육한 유니게 같은 분들이 바로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분들이지요. 
㉢ 나아가 포도 열매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달콤하며, 그것으로 만든 포도주는 물이 귀한 팔레스타인에서 입맛을 돋우고 인생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즉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은 여인은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즐겁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치 잠언 31장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 같은 사람이지요. 현숙한 여인은 남편의 신뢰를 받으며, 선을 행하며, 근면하여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잠자리에 들며, 남편의 출세를 돕는 내조의 여왕입니다. 세상에 이런 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어떤 사람의 부인이 이런 사람이 된다고요? 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대로 사는 남자가 이런 부인을 얻고, 부인이 이런 사람으로 변화되는 복을 누린다고 말합니다.

❷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가정적인 복의 두 번째는 자녀의 복입니다. 3절 하반절,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성경의 3대 나무는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올리브나무인데요, 그 중 최고가 올리브나무입니다. 그래서 옛적부터 올리브나무는 '나무의 왕'(삿9:8~9)으로 알려졌습니다. 올리브나무는 3년쯤 자란 후 참 올리브나무 가지를 접붙입니다. 그 후 4년이 지나면 올리브를 따게 되지요. 그때 이 올리브나무는 크고 가지가 힘차게 뻗어나가고 그 잎이 아름답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 자란 팔레스타인 지방의 감람나무는 크게는 20~30m까지 자라며, 그 잎의 크기만 해도 40~50cm나 된다고 합니다. 올리브는 열매로도 먹고, 기름, 식료, 의약품, 화장품 재료로도 유명합니다. 나무는 단단하고 향이 좋아 성전의 그룹을 조각하였고, 성전문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의 자녀를 이 올리브나무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그 자녀가 건강하고 장수하며, 풍요와 기쁨을 누리고, 존귀를 얻는다는 말입니다. 요셉, 사무엘, 다윗, 다니엘 등이 그러했던 것처럼요! 여러분이 범사에 하나님을 경외하면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와 같이 될 것입니다.

오래 전 중국 남방에 가난하지만 신실한 성도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의 성은 ‘송’이었는데요, 그가 하도 전도를 많이 하니까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전도’라고 불러 그 이름이 ‘송전도’가 되었습니다. 송전도가 소천한 후, 그의 부인이 가장의 뜻을 이어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전도하고, 남편이 없어서 끼니를 잇는 것이 힘들었는데도 십일조 등 헌금 생활을 잘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4남매를 길렀습니다. 후에 그 자식들이 복을 받았는데요. 4남매 중 아들은 남경 정부가 들어설 때 재정 총장을 지낸 송자문(宋子文)이었고, 장녀 송경령(宋庆龄)은 중국의 국부로 불리는 손문 선생의 부인이 되었고, 차녀 송미령(宋美齡)은 장개석 총통의 아내가 되었으며, 셋째딸 송애령(宋藹齡)은 수석 국무위원인 공상희의 부인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자녀들은 이와 같이 건강하고 힘차게 자라나서 세상에 꼭 필요하고 모두에게 유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러한 복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가정적인 복의 세 번째는 6절 상반절,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입니다. “자식의 자식을 본다”는 말은 그가 장수하면서 자손의 번영을 자기 눈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자신은 형통하는 데 자녀들은 잘못되어 마음고생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속 썩이는 자녀들 때문에 늘그막에 오래 사는 것이 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어쩌다 이렇게 오래 살아서 자식들의 엉망으로 사는 모습을 본단 말인가!’ 혹은 ‘내 어쩌다 이렇게 오래 살아서 자식들의 불행과 고통을 본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사람들을 오래 살게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후손에게 복에 복을 더하시는 것을 보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후손을 축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여러분이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를 보며 자라난 자녀는 부모의 삶을 통해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받는 축복을 눈으로 보면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재물과 명예와 지식을 전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나 정작 부모들이 자녀를 위해 경건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경건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부모가 자녀를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지요. 

3) 신앙적인 복(5)

세 번째로 5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누릴 “신앙적인 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❶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5).” 시온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곳에서 일 년에 세 번씩 모여서 절기를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매년 시온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그 예배와 함께 축제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행사 때에 제사장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곳에 모인 백성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온의 축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축제였습니다. 이와 같이 시온의 축제에 참여하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 누리는 기회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거룩한 주일, 교회로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 복은 어떤 면에서 여러분이 믿고 바라는 대로 되는 복입니다. 예배하면서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면 하나님을 볼 것이고,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원하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고,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 원하면 그 문제가 해결될 것이고, 육신의 질병이 낫기를 원하면 그 질병이 나을 것입니다. 이러한 복이 오늘의 시온인 교회와 예배를 통하여 주어진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❷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누리는 신앙적인 복의 두 번째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는 것이며(5b),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6a). 
여러분, 예루살렘의 번영이 무엇입니까?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예루살렘의 번영”은 이스라엘 나라가 태평성대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만, 신약적으로 “예루살렘의 번영”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이요 주님의 복음이 전해져 주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높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커져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번영”은 교회의 번영을 의미합니다. 즉 “예루살렘의 번영”은 하나님의 나라의 가장 구체적인 실체인 교회가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인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바로 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평강”은 무엇입니까? 교회가 평안할 때에 그 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도 평안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또 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다툼과 여러 가지 문제에 휩싸이면, 그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평안은 그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의 평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교회의 평안이 나의 평안, 내 가정의 평안, 그리고 나라의 평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바로 이 평안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평생 주님의 교회를 섬긴 목회자, 장로, 그리고 성도들이 자신의 교회가 건강하게 부흥하고 성장해 가는 것 보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는지 저는 잘 압니다. 멀리서도 모교회를 자랑하고 모교회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밀양마산교회 출신 성도들 중 한 분이 모교회를 위하여 전도용 티슈와 물티슈를 제작해서 교회에 보낸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이와 같이 주님의 나라가 왕성하여 가는 것과 주님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주님을 진심으로 경외하는 성도들이 많다면 그들로 인하여 이러한 복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4. 여호와의 복을 누리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경외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길로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오늘 성경이 약속한 모든 복이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삶을 살 때에 하나님은 여러분의 길을 인도해주시고, 성경이 약속하는 놀라운 복의 주인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가르치는 핵심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이 받는 복은 어떤 것입니까?

❶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그가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수고한 일에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면, 아무리 수고해도 그 열매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❷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가정의 복을 누립니다. 이러한 사람의 남편이나 아내, 그리고 자녀들과 모든 식구들이 형통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고 그 뜻을 행하는 자뿐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까지 복을 주십니다. 자녀들이 잘되기를 원합니까? 하나님의 복이 없이는 그들이 잘될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부모가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뜻을 준행하는 것이 자녀들을 위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❸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신앙적인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은 교회와 예배를 통하여 복을 받습니다. 교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많을 때 교회는 더욱 건강하여 부흥할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많을 때 평안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 교회가 주님이 주시는 복을 더 많이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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