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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유아 세례에 대해 (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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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 세례에 대해 (요 3:5)


1. 세례의 중요성 

어느 가정의 식구들이 다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례문답을 받게 되었는데 먼저 믿은 학식이 많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세례문답을 공부시켰습니다. "어머님, 목사님이 '예수님이 누구의 죄 때문에 돌아가셨나요?' 하고 물으시면 어머니는 무조건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말씀하세요."라고 단단히 가르쳤습니다. 드디어 세례를 받기 전 세례문답 시간에 목사님이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할머니,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지요?" 라고 목사님이 물으시자 할머니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리 며느리의 죄 때문이지요."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례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세례와 성만찬이 아주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이 두 가지 예전은 모두 예수님과 직결되어 있는데다가 성경에서는 물론이고 초대 교회에 있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한 예전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면 예수 믿고 구원받은 표시가 세례요, 세례받은 이들이 교회 공동체에 참여해서 나누는 특권이 성만찬이었습니다. 세례와 성만찬 중에서도 특히 세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합니다. 물론 세례 받았다고 무조건 다 구원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구원받은 외적인 표시가 세례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을 통해서 구원을 얻었다면 여기에 대한 외적 표식(sign)이 필요한데 세례가 바로 그 표식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 시대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례는 너무도 중요한 예전임에도 불구하고 근래에 들어와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언제 세례 받았는지 어떤 목사님이 세례를 주셨는지 기억을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각한 믿음의 결단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쉽게 세례를 받는 이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세례가 이렇게 중요했음으로 옛날 사람들은 함부로 세례를 받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은 일단 세례를 받은 뒤에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받은 뒤 죄짓지 않을 자신이 없었기에 일단 예수를 구주로 믿은 다음에도 세례만큼은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오랫동안 세례를 미루다가 죽기 바로 직전 세례를 받은 이들도 많습니다. 

2.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이유는? 

이제 이렇게 중요한 세례 중에서도 오늘은 유아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주 오래 전부터 유아세례를 귀하게 여겨온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교파가 유아세례를 다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침례교와 성결교는 유아세례를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합니다. 먼저 성경에서 유아세례의 근거를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예수님이나 초대교인들이 유아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을 찾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서적인 근거가 없는 유아세례에 합법성을 주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유아세례를 반대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유아들이 자발적으로 세례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으려면 자기 스스로의 신앙적인 결단이 필요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인지 능력을 갖춘 뒤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이 필요한데 유아는 아직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3. 유아세례를 베풀 수 있는 근거는? 

이제 시간이 없으므로 이와 같이 유아세례와 관련된 신학적인 논쟁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로마 가톨릭교회와 성공회, 그리고 우리 감리교와 장로교는 대부분 유아세례를 인정합니다. 비록 성경에는 없지만 교회는 주후 2세기 말엽부터 유아세례를 베푼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온 집안이 집단으로 개종해서 세례를 받을 때에나, 아니면 양친이 다 독실한 신자일 경우 태어난 3세 미만의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근거도 찾을 수 없고 또한 자신의 자발적인 신앙고백도 없이 오로지 부모와 가족들의 믿음 때문에 유아세례를 준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요? 

 ① 은총의 언약-구약의 할례와 신약의 세례-은 유아들에게도 해당된다. 

제일 먼저 유아세례를 비롯하여 일체의 세례는 '은총의 언약'(covenant of grace)이라는 큰 틀 안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은총의 언약은 아담과 하와 이후 죄를 범해 타락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속의 언약, 즉 말씀으로 하신 구원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죄와 죽음에 빠진 인간을 값없이 주시는 은총으로 구원해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와 죽음에 빠진 인간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구원하신다는 언약의 대상은 성인들만이 아니라 유아들도 포함됩니다. 

구약에서 은총의 언약의 대표적인 경우가 아브라함의 할례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식이 할례였는데 이 할례야말로 구약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은총의 언약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나이 99세에 할례를 받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가문의 모든 남자 후손들이 난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을 명하시고 있습니다(창 17: 12). 난지 팔일 만이라 함은 유아가 명백하므로 유아들까지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은총의 언약에 참여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할례를 받는 사내아이들은 할례받는 즉시 하나님의 은총의 언약 안에 속하게 될 뿐 아니라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신약으로 넘어와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라는 표식이 할례라면 신약에서는 세례로 대체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죽음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신다고 할 때 그 대상은 어른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말 못하는 어린아이들도 포함됩니다. 설령 갓난아기라고 할지라도 죄가 없는 것이 아니고 원죄를 가지고 태어날 뿐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순결해 보이는 어린 아기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신약에서도 한 집안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어른들만 세례를 받고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유아들도 세례를 함께 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유아들도 죄가 있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받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사도행전에 '온 집'이 세례를 받았다고 할 때 이 '온 집'에는 분명히 유아들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행 11: 14; 16: 34; 18: 8). 

바울 사도 역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하나님이 은총의 언약 안에 있다고 보는데 심지어 어머니든 아버지든 어느 한 쪽만 예수를 믿어도 그 자녀가 거룩하게 된다고 보았습니다(고전 7: 14 참조). 그리하여 세례를 베풀 때 성인들뿐만 아니라 유아들 역시 세례를 베풀어야 하며 세례를 받은 유아들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옛날과 같이 의학이 발달되지 않아 영아 사망률이 유독 높았던 시대에는 유아 세례가 더욱 더 절실했습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는데 유아세례를 받지 않고 사망했을 때 과연 그 아이가 구원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대에 있어서 유아세례의 중요성은 더욱 더 절실했습니다. 

② 세례받은 양친이 믿음으로 기르겠다는 결단과 약속이 필요하다. 

유아세례를 행할 때 부모의 믿음을 보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직 어린 아기가 인지 능력이 발달하지 않아서 자율적이고 책임적인 공중 신앙 고백을 할 수 없으므로 부모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사실 세례라는 그 자체는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의 외적 표식에 불과하므로 세례 그 자체가 기계적으로 우리를 중생시키거나 구원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 없이 세례를 수백 번으로 받는다고 할지라도 세례받은 행위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외적인 세례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내적인 세례요 마음의 세례이며, 물세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가 유아들에게 세례를 베푼다고 해서 이 세례가 기계적으로 혹은 마술적으로 아이들을 중생시키거나 구원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제 유아세례를 받은 이 아이들은 하나님이 성별하신 언약의 백성들이요 구원받은 자녀들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교회의 일원으로서 흠이 없도록 잘 기르겠다는 서약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지요. 

4. 유아세례 이후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의 책임은? 

아직 자율적이고 책임적인 공중 신앙 고백을 할 수 없는 유아들에게 세례를 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불합리하고 무책임한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의 언약 안에는 성인들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유아들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오늘 세례를 받게 될 유아들에 대한 책임은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의 어깨위에 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어린 아이들이 인지 능력이 자라나서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할 때까지 주의 교양과 훈계로(엡 6: 4)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만일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유아세례만 달랑 받게 한 뒤 아무런 신앙적인 본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도 하지 않는다면 유아세례는 아무런 효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유아세례가 가지는 여러 가지 약점 때문에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CONFIRMATION', 즉 '견진성사'(堅振聖事)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해서 정식으로 입교를 시킵니다. 'CONFIRM'이라는 말은 '확인한다.'는 뜻이므로 유아세례 때 받은 믿음을 다시 확인해서 확고하게 만들어준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미국 연합감리교회의 부목사로 시무할 때 담임목사님과 함께 유아세례를 받았거나 세례를 받지 않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는 어린이들을 1년 동안 가르쳐서 입교를 시킨 적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견진성사야말로 유아세례만 가지고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과정입니다. 

어쨌거나 오늘 유아세례를 받는 어린이들의 부모님님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굳게 서약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 아이들을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겠다는 결단과 서약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가 신앙적인 본을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아무리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믿음이 없이 세속적인 생활을 하면 자녀의 믿음이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유아세례를 받는 자녀들의 부모님들은 반드시 믿음의 모범을 보여서 자녀들을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잘 양육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에 우리 회중들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유아 세례자들을 바로 양육할 책임은 직계 가족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교회 모두에게 있습니다. 오늘 세례받을 아이들은 이제 남의 집 아이들이 아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연합된 식구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우리 회중 모두는 오늘 베풀어질 유아세례의 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 아이들의 영적 대부(代父)요 대모(代母)라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른 신앙으로 잘 이끌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어린아이들이 훌륭한 신앙인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미쳐야만 할 것입니다. 실제로 어른들의 위선과 부조리 때문에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고 교회를 영영 떠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5. 맺음말 

예수를 믿으려면 나이 많아서 중간에 믿는 것보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믿고 유아세례를 받고 믿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다른 세속의 가치관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전에 마음이 백지 상태일 때부터 예수를 믿어 그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있습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에게 선하고 바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서 곁길로 빗나거나 온전한 신앙인으로 자라나지 못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듭 말씀드리지만 오늘 이 유아세례에서 가장 중요한 책임은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있고 그 다음으로 우리 회중 모두에게 있습니다. 아무쪼록 오늘 이 귀하고도 아름다운 유아세례를 받는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올곧고 신실하게 자라날 수 있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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