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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자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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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자 (엡 6:1~4)

  
우리나라도 현대화되면서 우리의 가정이 많이 바뀌어졌습니다. 대가족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가정이 핵가족화되었습니다. 부모중심으로 살던 가정이 자녀 중심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자녀를 잘 기르며 공부시켜 성공시키기 위해서 부모는 안 먹고 안 쓰고 못 입고 못 살면서, 논 팔고 밭 팔고 집 팔아서 자녀를 위해서 삽니다.  완전히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 있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생명을 바칩니다. 자녀가 잘되어야 노후에 부모가 편안하게 산다는 생각으로 자녀 출세, 성공에 모든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서 자녀가 성공을 하면 부모를 아느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늙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부모를 외면하고 돌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자식을 위해 고생해봐야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여 또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부모도 귀하지 않고 자식도 귀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안 낳습니다. 자녀가 있어도  자기 행복을 찾아가고 자녀를 포기합니다. 일 년에 버림받는 자녀, 가정이 붕괴되어서 문제아로  변하는 자녀들이 수 만명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모를 위해서 살지도 않습니다. 자녀를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성경이 가르쳐주는 삶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부모도 귀하고 자녀도 귀하며, 부부도 귀하고 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다 잘되기를 바라는 것, 다 잘되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건강한 가정입니다. 자녀만 있고 자녀만 출세하며, 부모는 헐벗고 자기생활 포기하는 것도 안 됩니다. 부모만 계시고 자녀의 인생을 포기하는 그것도 안 됩니다. 부모도 없고 자녀도 없고 부부만 행복하게 살아야 된다? 그것도 안 됩니다. 오늘 그리스도안의 가정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은 부모에게도 축복, 자녀에게도 축복, 부부에게도 다 같이 축복이 되고 다 함께 더불어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가정,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 줄로 믿습니다. 

1.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합니다.
  
성경은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는 가르칩니다. 순종은 어렸을 때부터 할 수 있는 것이고 공경은 자녀들이 좀더 성숙했을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경은 부모의 은혜를 깨달은 자녀들이 적극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해드리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순종이 외적인 상태라면 공경은 내면의 상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공경이 없는 순종은 결국 불완전한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해야 할 이유를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1절을 보십시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이 옳다는 말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옳은 도리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부모가 만일 명하는 바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순종할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순종하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예수 믿지 말라"고 하면 순종할 수 없지요. 이것을 순종하면 "주 예수를 믿으라"는 주님의 명령에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한 우리는 모든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골3:20에는 "자녀들아, 모든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2절에서는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십계명은 두 개의 돌판에 나누어 쓰여 졌는데 첫 판에1-4계명까지 여기에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하는 계명입니다. 두 번째 돌판에는 5-10계명까지 여기에는 소위 인간과의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계명입니다. 그 첫째가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법에 순종하는 자녀들에게 본문 3절은 두가지 약속을 합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것입니다.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잘 되는 것은 풍요롭고 번성한다는 약속이고, 장수는 오래사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17명의 자녀들을 훌룽하게 키운 웨슬리 목사의 부인 수산나는 "할수 있으면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십시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인생의 성공의 유일한 길입니다"고 했습니다.
  
한국 침례교회의 뿌리가 되는 펜윅이라는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펜윅 선교사가 제자들에게 무 한개씩을 주면서 밭에다 거꾸로 심고 오라고 했습니다. 밭으로 간 세자들은 하나같이 무를 바로 심고 돌아왔지만 전치규라는 제자만 거꾸로 심고 돌아왔습니다.

펜윅은 전치규를 동역자로 삼고 일생동안 함께 일했습니다. 신양성경도 함께 번역했고, 선교일도 함께 했습니다.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순종을 중요한 조건으로 본 것입니다. 
  
순종보다 중요한 것은 공경입니다. 공경하는 마음이나 행동 없이 순종하는 것은 노예가 취하는 행동과 같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하라는 대로 하면 됩니다.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하라면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러나 공경은 순종하면서 높이고, 따르고, 존경하고, 받들고, 섬기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입니다. 말로 공경해야 합니다. 윗사람이나 스승, 부모에 대한 용어나 칭호는 공손하고 경칭이어야 합니다. 듣지 못한다고 자녀들이 "우리아빠 그 사람이 말야", "우리 어머니 그 여자가" 하며 막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문목사 그 친구" 이런 용어를 거침없이 쓰는 것은 공경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모님을 말로 공경할 뿐 아니라 물질로도 공경해야 합니다. 감사의 표현에 물질적으로도 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2. 부모는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4)

1) 사랑은 노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골3;21에 보면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는 말씀으로 나옵니다.  '격노한다'는 말이 본래 "배가 항해를 하는데 바람을 없앤다."는 말에서 나왓습니다.  바람이 없으면 배는 앞으로 나갈 수없습니다.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말은 자녀가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바람을 없애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용기를 꺽어버리고 낙심케, 좌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릇된 방법으로 징계하거나 지나치게 징계할 때, 아이들의 마음에 분노를 축적시킬 수 있습니다.  기가 죽어 버립니다.  더 이상 항해할 수 없는 배처럼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상실합니다. 자포자기합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합니다.  가출하고, 반항하고, 삶에 대한 무력증에 시달리는 것은 그릇된 방법으로, 또는 지나친 징계를 했기 때문입니다.

1800년대 초반 덴마크에 남들보다  글 솜씨가 뒤떨어진 아이가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열한살이 돼서야 겨우 [글 비슷한 것]을  써 주위에 돌렸으나 조롱을  받았습니다.  한  아주머니는 [네 글을 보느니  차라리 다른 일을  할 것을 그랬구나]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실망하고 집에  돌아온 이 아이에게  어머니는 꽃을 보여주며 [네 글은 아직 봉오리가 맺지 못했구나. 그러나 언젠가는 봉오리가 맺고 꽃을 피울거야. 걱정마라]라고 말했습니다. 이 [미숙한 꼬마]가 후에  [위대한 작가]가 된 안데르센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이 평가되면서도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선물은 격려라는 한마디의 말입니다.  누군가 외로움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 어둠 속에서  울고 있을 때  가슴의 문을 열고 보석처럼 전해줄 수 있는 말은 "사랑해"라는 한 마디의 말입니다.
  
우리의 가정에, 직장에, 그리고 교회에 책망과 충고보다는 격려와 인정을 더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사랑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는 것입니다.

양육한다는 말이 희랍어로 '에크트레포'인데 '꽃을 기른다.'  '애완동물을 기른다.' '몸을 돌본다.'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꽃을 돌보는 사랑만큼, 애완동물을 기르는 정성만큼, 내 건강을 돌보는 노력만큼이라도 정성과 지속적인 관심을 자녀들에게 보이고 계십니까?
  
자녀양육을 위해서  일정한 규칙을 정하고 그에따라 자녀를 훈련시키는 양육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습니까?  또 시간을 함께 가지면서 자녀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 보신적이 있습니까?  입으로는 자녀들이 중요하다고 버릇처럼 말하지만  실제적인 삶에서 자녕양육이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들인 노력에 비해 우리자녀들이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요 기적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것을 인식하고 지금부터 예방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불신앙의 가정에서 겪어야 할 최고의 딜레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들에게 있어서 삶의 최고 권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가지고 자녀를 교육하겠는가 하는것입니다.  일정한 원리와 교과서가 없는 분들은 사람의 뜻대로 자녀를 양육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의 주장, 부모의 욕심, 부모의 큰 소리로 가르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해 가면서 부모가 누구인지 알아채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모순이나 실수를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부모는 더 이상 자녀들의 진정한 권위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자녀들에게 명령할 때, 어떤 교훈을 베풀 때, 우리는 무엇보다 순종해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래야 되는지 납득되지 않으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저항감이 쌓이게 됩니다. 무조건 권위를 가지고 누르려면 반항심을 키우게 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맞았어, 아빠도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어, 그러기에 아빠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 하나님앞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너도 하나님을 바라봐야 돼. 너도 성경 말씀에 순종해야 돼. 예수님을 본받아야 돼."
  
우리의 자녀들로 하여금 초점을 부모에게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맞추도록 도와주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한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해야 합니다.

한 집안에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다 못한 어머니가 어느 날 그 도시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어머니는 남편과 아들의 관계를 좋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그 현자(賢者)는 아들과 아버지를 각각 따로 데려오라고 얘기했습니다. 
  
며칠 후 아들이 현자를 찾아왔습니다. 현자는 아들에게 묻습니다. "아버지한테 가장 불만스러운 점이 무엇인가? 얘기해 보게나." 

"저는 아버지가 꿀밤 때리는 것이 가장 싫어요. 그건 저를 어린애로 여기고 무시하는 것이잖아요."
이번에는 아버지가 현자를 찾아왔습니다. "아들에게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십니까?" "저는 사랑을 표현하기가 영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 대신 살짝 꿀밤을 때리곤 하죠." 

현자는 두 사람을 함께 불러 서로의 손을 맞잡게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들 또한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두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입니다. 모든 일을 상대방의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해'라는 안경을 끼는 일입니다." 
  
가족,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따스한 단어입니다. 모든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부모님을 사랑하고 순종하고 공경하십시오. 그리고 모든 기회가 지나가기 전에 자녀들을 참 사랑으로 양육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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