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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해야 하는 이유 (고전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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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해야하는 이유 (고전 1:21)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그리고 가정의 꽃은 어린이입니다. 오늘은 바로 우리들 가정의 꽃과 같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교회당 화단의 꽃을 보셨는지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러나 그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런 꽃이 어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집 셋째 아이가 네 살 때쯤으로 기억됩니다. 막내 아이가 자기 눈에 몹시 귀여워 보였던지 제 동생을 데려다 보며 하는 말이 “하나님은 어떻게 이렇듯 예쁜 아이를 주셨을까?” 라고 감탄한 것을 본 일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5월의 꽃보다 더 아름답고 사랑스런 자녀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늙고 병들었을 때 제자들로부터 한 가지 부탁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교훈을 하나만 들려주십시오.” 소크라테스는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말했습니다. “아테네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시민들을 향해 간절히 외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네.” 제자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 말이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가 큰 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이여, 재물을 모으는 일에만 열중하지 말라. 그것을 물려받을 어린이들에게 좀더 많은 사랑과 정성을 쏟아라. 이것이 내 일생을 통해 얻은 가장 귀한 교훈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사람들은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너무나 많은 학교에서, 하나님의 말씀 대신 세상에서 출세하는 방법만을 가르칩니다. 어린아이가 유치원에 가서 일찍 한글을 깨우치는 것 좋습니다. 조기 교육을 해서 영어를 일찍 배우는 것 좋습니다. 컴퓨터 학원에 가서 컴퓨터를 먼저 잘 익히는 것 좋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서 출세하는 방법만을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칼 장군이 첫 아이를 얻어 아버지가 되었을 때에, 그 아이의 할아버지는 축하와 함께 아이의 아빠가 된 장군에게 이렇게 간곡한 부탁의 글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 아이에게 70만 영어 단어를 가능한 대로 많이 가르치라. 그 많은 단어들을 가르칠 때 이것을 명심하고 가르치라. 1)가장 위대한 단어는 하나님이란 단어임을 가르치라. 2)가장 긴 단어는 영생이란 단어임을 가르치고 3)가장 어두운 단어는 죄라는 단어임을 가르치며 4)가장 더러운 단어는 외식이라는 단어임을 가르치고 5)가장 필요한 단어는 가정이란 단어임을 가르치며 6)가장 복된 단어는 순종이란 단어임을 가르치고 7)가장 깊은 단어는 영혼임을 가르치라. 

죤 밀턴은 “아침을 보면 그날 하루를 알고, 어린이를 보면 일생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를 보면 가문의 장래를 알 수 있고, 교회의 장래와 국가의 장래를 알 수 있습니다. 썬다싱은 “어머니의 가슴은 나의 신학교이다.”고 하였고, 임마누엘 칸트는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하나님을 알게 했고 선에 대한 씨를 뿌렸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교회 성도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 영생, 죄, 순종, 영혼 등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철저하게 가르쳐서, 자녀 교육에 실패하는 가정이 한 가정도 없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교육학의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는, 어린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반복해서 가르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반복해서 거듭 거듭 가르쳐야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잊혀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는 5월 17일 주일은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린 대로 총동원 전도 주일입니다. 작년 8월에 신축 예배당으로 이사를 해 온 우리 교회로서는, 봄 들어 처음으로 맞이하는 총동원 전도주일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열망해 온 우리 교회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총동원 전도주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전도해야만 합니까? 단지 이 넓은 예배당을 채우기 위해서입니까? 결코 그러한 이유만이 아닙니다. 총동원 전도 주일을 두 주일 앞두고 우리가 왜 반드시 전도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 그 근본적인 이유를 성경에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겨자씨로 비유된 천국 운동은 예수님으로부터 12제자, 70문도, 120문도로 번져 갔습니다. 전도행전이라 할 수 있는 사도행전에는, 교회 성장에 관한 성경 구절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2:41에 “이 날에 제자의 수가 3천이나 더하더라.” 4:4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5천이나 되더라.” 5:14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6:7에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 하니라.” 9:31에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11:20에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허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11:24에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14:1에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16:5에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더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수적인 성장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오늘날 어떤 목사보다 성장에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음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펼치는 전도 운동에 불평하거나 방관하는 신자들이 있을 수 있음으로, 과연 우리가 ‘왜 전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성경적으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 28:19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했고, 막 16:15에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으며, 행 1:8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고, 딤후 4:1-2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했습니다.

전도는 주님의 지상 명령이면서, 또한 주님의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청개구리도 엄마의 유언은 들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만일 어떤 성도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주님의 최후의 유언과도 같은 전도하라는 말씀을 순종치 않는다면, 그는 청개구리만도 못한 신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반드시 전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전도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1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 했습니다. 왜 십자가와 전도가 하나님의 방법이고 능력일까요? 1)죄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2)여기에 하나님의 지혜와 열심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왜 십자가의 도와 전도가 미련하게 보이는 것일까요? 1)이해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 수가 없습니다. 2)구원 섭리와 사랑을 듣지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인류 구속, 이것이 하나님 작정이고 섭리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섭리를 알지 못하는 인간들은, 그와 같은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을 듣지도 믿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미련하게 보이는 전도의 방법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겔 33:11에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고 했습니다. 또한 눅 15장에 나오는 ‘잃은 양의 비유’ ‘잃은 드라크마 비유’ ‘탕자의 비유’에서, 잃어버린 양을 찾고 기뻐하는 양의 주인이나,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고 기뻐하는 여인이나,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왔을 때 기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모두 잃어버린 죄인을 찾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가르쳐 주신 비유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전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구주성과 복음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입니다.

요 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고, 행 4: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자는 참 도를 알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도를 알고 구원을 얻게 되었으니, 얼마나 복 있는 사람들입니까? 성도 여러분! 만일 복음 진리 이외에 더 탁월한 진리가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저는 복음 진리를 위해서 더 충성하지 못한 죄스러움은 있으나, 이 진리 외에 다른 진리는 없음을 확신하고, 그러한 점에서 지금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러한 확신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열심히 복음 진리를 전하십시오. 멸망으로 인도하는 이단 사술을 퍼트리는 데에도 얼마나 열심인데, 우리가 생명을 걸고 믿는 복음 진리를 힘써 전파하고, 자랑스럽게 전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4. 영혼에 대한 긍휼 때문에 전도해야 합니다.

마 9:35-36에 “예수께서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유리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민망히 여기시니 라는 말은, compassion 곧 ‘불쌍히 여김’을 뜻합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단장의 긍휼을 의미합니다. 메튜 헨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를 하늘에서 지상으로 또한 거기서 십자가로 이끌어 온 것은 영혼에 대한 긍휼이었다.”고 하면서 “기독자의 최고의 연민은 영혼에 대한 연민이다. 그것은 최고로 그리스도와 닮은 것이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 9:1-3에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말 가운데 ‘悲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중생이 극락왕생 하기까지 자기의 낙원 행을 거절한다는 뜻입니다. 참 구원이 없는 종교에도 이 같은 구령의 열정이 있다면, 그리스도인에게 이만한 열정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 중 지옥에 간 부자는 고통 속에서 한 방울의 물을 구했다가 거절당한 후, 아브라함에게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간청합니다. 자신은 비록 믿지 않았다가 지옥에 와서 이 고통을 받지만, 지상에 있는 자기의 형제들만은 전도를 받아, 제발 지옥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인지상정이요 혈육의 정이 아니겠습니까?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을 확신하는 신자라면, 어떻게 불신 가족을 그대로 두고 혼자서만 왔다 갔다 할 수 있겠습니까? 딤전 5:8에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불신 가족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은 쉽지 않는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영혼에 대한 긍휼과 사랑의 문제라고 봅니다. 불신 가족의 영혼에 대해 참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인도하는 방법도 있고 길도 있을 것입니다. ♪웬일인가 내 형제여 주 아니 믿다가, 죄 값으로 지옥 형벌 너도 받겠구나. 웬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이 세상 물건 불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불신 가족과 이웃들의 영혼을 건지는데 온갖 힘을 다 써야 할 것입니다. 왜 전도가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1)전도가 중요한 것은 한 영혼이 처한 위험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만 하면 누구나 다 구원을 얻고 영원한 천국으로 들어가지만,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다 심판을 받고 지옥에 가게 됩니다. 이렇듯 전도가 중요한 것은 그 영혼들이 처한 위험 때문인 것입니다. 2)전도가 중요한 것은 영혼의 가치 때문입니다. 한 영혼의 가치는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영혼의 가치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귀중한 영혼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그 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3)전도가 중요한 것은 전도의 결과 때문입니다. 전도하여 누구든지 받아들이면 영생을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차별하지 않으시고 흑인이든, 황인종이든, 백인이든 구별치 않고 온 세계의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가치를 알고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성도라면, 반드시 전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5.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전도의 열매를 맺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요 15:16에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라고 했으며, 벧전 2:9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로,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막과 같은 불모지에서 하나님의 기름진 동산에 옮겨 심겨진 나무들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름진 동산에 옮겨 심어주심은 우리로 하여금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름만 실컷 빨아먹고 열매는 없는, 땅만 버리는 나무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를 택하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반드시 전도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6.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자신에게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틀림없이 에스겔서에 있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 속의 파수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케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대신하여 악인들, 곧 불신자들에게, 복음으로 깨우쳐 주어야 할 이 시대의 파수군들인 것입니다. 

7. 전도하면 놀라운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사람의 영혼구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말씀의 씨를 뿌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12:3에 말씀하기를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면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성령은 전도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사도들과 전도자들에게 놀라운 권능을 부어 주었듯이, 전도하는 성도는 힘이 있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전도하면 놀라운 기쁨이 있습니다. 신생아실의 엄마들의 얼굴에 슬픈 얼굴을 찾아 볼 수 없듯이 전도한 사람을 보면 언제나 기쁨이 가득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씽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가는데 한 사람이 눈 위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그냥 가버립니다. 썬다씽이 가보니 그 사람이 거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붙잡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같이 갑시다. 이 사람을 좀 살려갑시다.” 하니까 “나도 힘든데 누구를 돌봐” 하면서 그냥 가버립니다. 썬다씽은 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업었다가 놓치면 또 들쳐 업고 또 업었다가 놓치면 다시 들쳐 업고 안간힘을 쓰면서 언덕길을 오르는 바람에, 눈 위에 쓰러져 있던 사람의 몸이 녹으면서 둘이 살아서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이 쓰러져 죽어 있었습니다. 혼자만 살려고 먼저 갔던 사람들은 다 쓰러져 죽었던 것입니다. 같이 살려고 한 사람은 그 사람도 살리고 자기도 살았습니다. 썬다씽은 그것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 남을 살리려고 하면 나도 살고, 남을 살리려고 하지 않으면 나도 죽는구나!” 자식을 살리려고 우는 어머니는 자식을 구원시킬 뿐만 아니라 자기도 삽니다. 남편을 구원시키려고 울고 애쓰는 아내는 자기도 살고 남편도 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신학자 부르너(E. Brunner)는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죽은 교회이다. 살아 움직이는 교회는 전도하는 교회이다.” “불은 붙어 있을 때 불이듯이, 교회는 전도할 때 교회다.”라고 말했습니다. 

풀 러셀만이라고 하는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에게 전도를 했는데, 그 사람은 헐리우드의 유명한 영화 제작자 존 헤이먼이었습니다. 러셀만과 같이 성경공부를 하다가 존 헤이먼이 “나는 영화도 많이 만들고 상도 많이 받았고 일생 동안 사람을 타락하게 하는 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나, 이제부터는 주님을 위한 영화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는 누가복음 전체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가 바로 대학생 선교회에서 보급하고 있는 '지저스'라는 유명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부터 제작에 참여한 스텝들을 변화시켰고, 촬영을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을 변화시켰으며, 심지어 아랍 권에서조차도 선교용 영화로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는 폐병 3기의 중환자로 날마다 피를 토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희망이라곤 도무지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미우라 아야꼬가 폐병환자 수용소에서 죽어가던 한 청년에게서 복음을 전해 들었습니다. 나중에 건강을 되찾은 미우라 아야꼬는 작품을 통해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가 쓴 '길은 여기에'라는 책을 읽은 독자 가운데 80%가 기독교에 대해 호감을 갖든지 아니면 예수 믿을 마음을 가진다고 합니다. 수용소에 함께 있던, 피를 토하면서 죽어 가는 한 청년이 버려진 이 여자에게 겨자씨만한 복음의 씨앗 하나를 던져 준 것이 그렇게 연쇄 파동을 일으킬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할리우드에서, 폐병환자 수용소에서 그 어디에서나 무심코 던진 겨자씨 한 알만한 복음의 씨앗이, 그렇게 큰 능력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카고 길거리에서 어떤 사람이 한 젊은이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가서 당신 볼일이나 보세요. 난 그런 것 필요 없어요.” “이것이 내 볼일이오.” 그가 바로 유명한 ‘무디’였습니다. 그는 하루라도 누구에겐가 예수에 관해 전하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견딜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전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직업처럼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귀를 열어주셔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그야말로 우리교회 성도 모두가 총동원 되어 전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전도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방관자 노릇을 하고, 적당한 구실을 붙여 핑계하기에는, 너무도 분명하고 중대한 주님의 지상 명령이고, 다른 어떤 일보다 더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 구주성과 복음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에, 또한 죽어 가는 영혼들을 바라만 볼 수 없는 긍휼의 동기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전도의 열매를 맺게 함에 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줄 알아서, 그렇지만 전도자에게는 하늘의 큰 상급이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실천해야만 할 그리스도인 모두의 절대적인 사명임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전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렇게 귀한 일을 위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전도 운동에 동참하여, 귀중한 전도의 열매를 모두 주님께 드릴 수 있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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