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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자녀를 채찍으로 훈계하라 (잠 2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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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채찍으로 훈계하라 (잠 23:13~14)

 
설교 제목을 보고 놀라지 않았습니까?
정신이 있는 것입니까?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이를 때려서 가르치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남의 자식은 물론이고 자기 자식도 함부로 때릴 수 없습니다. 체벌을 가하는 교사를 초등학생들이 신고해서 경찰이 잡아가는 세상입니다. 부모가 야단을 치면서 약간의 손찌검을 했다고 해서 그 부모를 경찰에 고발하고 법원에 접근 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그런 시대라는 말입니다. 물론 함부로 때려서는 아니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이를 때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특히 육체적인 상처도 문제지만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을 경우 그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때문에 할 수 있는 대로 때리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때리지 않는 것이 늘 좋은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아이를 때려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경우가 있다는 말입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는 옛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래로라도 막을 수만 있다면 좋겠는데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공공의 적'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그 영화의 주인공 이성재가 맡은 역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잘 나가는 엘리트 펀드 매니저입니다. 이 시대의 부모들이 바라는 성공한 자식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부모가 많은 재산을 사회 복지 시설에 기부하려고 하자 주인공이 발끈했습니다. 왜냐 하면 이미 부모의 재산 대부분을 몰래 빼돌려서 주식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부모의 뜻대로 할 경우 주인공은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잔인하게 부모를 살해했습니다. 주인공은 분명히 성공한 엘리트지만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하는 몹쓸 인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부모는 아들이 공부만 잘하면 성공할 줄 알았지만 그 기대는 참담하게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과연 아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요즈음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서 엄청난 희생도 아끼지 않습니다.
믿음의 가정의 부모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이 도서관이나 학원에 가 있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공부만 잘하면 나중에 커서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이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이 공부만 잘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나중에 커서 부모를 알아보겠습니까?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겠습니까? 자녀를 바르게 양육하기 위해서 성경이 지시하는 올바른 양육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바로 그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원래 교육의 목적은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때로는 훈계의 채찍을 들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의 어떤 행동은 허락하지만 또 어떤 행동은 제지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채찍을 드는 까닭이 무엇 때문입니까? 자녀가 잘못했을 때 채찍으로 때리는 까닭은 자녀를 훈계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녀를 훈계하기 위해서 채찍을 든다는 말입니다.
오늘 잠언 기자도 분명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13절 말씀입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결코 채찍으로 때려서는 죽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 자녀를 살리기 위해서 필요에 따라 자녀가 잘못하면 때려서라도 바로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잠언 기자는 채찍으로 자녀를 때리면 그 영혼을 구원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잠 23:14)

실제로 군대에 간 자녀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즘은 군대 생활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편해졌습니다. 근무 기간이 짧아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무 환경도 얼마나 좋아졌는지 모릅니다. 전에는 마음대로 전화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참병들의 횡포도 얼마나 심했는지 모릅니다. 걸핏하면 집합하라고 해서 얼차려를 시키거나 폭력을 행사합니다. 오죽하면 자기 전에 적당히 맞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언어 폭력도 좀 심하다 싶으면 고발을 당하고 벌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든 조건이 열악했던 당시보다 요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병들이 훨씬 더 많아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무조건 제멋대로 하도록 놔 뒀기 때문에 참을성이 부족하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연약해진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은 자녀를 사랑한다고 해서 자녀의 마음대로 하도록 놔 두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 기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잠언 13장 24절 말씀입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요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자녀를 진짜 사랑한다면 채찍으로 훈계하며 키우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아이를 진짜로 사랑하는 것은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잘못을 깨달을 수 있도록 엄하게 훈계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부모들은 정에 치우쳐서 자녀들의 욕망을 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쯤은 얼마든지 묵인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찮은 것처럼 보이는 작은 잘못을 계속해서 묵인할 것 같으면 나중에 큰 잘못을 저지르고서도 무감각한 인간을 기르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도 채찍을 드는 문제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채찍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자녀들이 위축되고 반항심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부모에게 너무 억압을 당해서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게 됩니다. 반면에 채찍을 무시하면 버릇없고 무례한 아이들이 됩니다. 예절도 모르고 윗사람을 몰라보게 된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부모들은 채찍과 사랑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입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말은 세상의 방법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녀를 양육하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 옛날 엘리 제사장도 자식들을 신앙으로 바르게 교육하지 못하고 사랑의 매를 들어 채찍질하지 못해서 결국 그 자식들과 함께 망하지 않았습니까? 채찍으로 훈육하지 못하면 그 자식들이 망할 뿐 아니라 그 집안까지도 화를 당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보여 주는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미래는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는 일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때문에 필요하면 말씀대로 살도록 채찍으로 때려서라도 자녀들을 바르게 가르쳐야 합니다. 자녀 사랑과 훈계의 채찍은 함께 가는 것입니다. 행여나 채찍으로 인해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잘못될까봐 걱정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잘못되기는커녕 오히려 그 영혼을 구원할 것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양육함에 있어서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서 출세하는 그런 목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 영혼이 구원을 받도록 바르게 가르치는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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