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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정적인 예측의 극복 (요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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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예측의 극복 (요 6:1~13)


할렐루야!
평안하십니까? 

‘포기’(抛:던질 포, 棄:버릴 기)라는 단어와
‘결단’(決斷: 갈라놓을 결, 끊을 단)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두 단어는 잘라내고, 끊고, 버린다는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 단어의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포기는 가능성을 잘라내어 던져버리는 것이지만
결단은 가능성을 위하여 나머지 것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한 열정적인 삶도 … 
어려움 앞에서 맥없이 포기하여 주저앉는 삶도 … 
자세히 보면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잘라 버렸냐’의 차이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비전을 위해
어떤 것을 잘라내고, 어떤 것을 끊으셨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삶 속에서 포기가 아니라 결단하는 삶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족하리이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과 안드레는 
예수님 곁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목격했던 제자들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현장에 있었고(요 2:2),
병자들을 고치는 순간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과 안드레는 
자기 자신의 생각의 틀 안에 갇혀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믿음의 눈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성인 남자만 세어도 오천 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가 남았다는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의 오병이어의 기적이 있기 전에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 일 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요6:1)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큰 무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요 6:5)고 했습니다. 

새로 번역했다는 개역개정판에도 “떡”이라고 번역함.
(쉬운성경에는 “빵”이라고 번역됨, 보리로 만든 것으로 주식)
언제까지 ‘떡’ 타령을 할 것인지? 답답
당시 사람들이 주로 먹던 음식을 왜 자꾸 “떡”이라고 번역하는지
알 수가 없다. - 우리가 먹고 사는 주식도 떡이 아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한 다른 복음서(마 14:15, 막 6:35, 눅 9:12)에는
그곳을 ‘빈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모여온 사람들을 먹이시려는 생각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빌립의 답은 ‘불가능’이었습니다. 
본문 7절에 보면,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이 사람들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 이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빌립의 생각은 논리적입니다. 타당성이 있는 답입니다.
그는 필요한 돈까지 정확하게 계산하여 안된다고 답했습니다. 

1데나리온은 근로자 한 사람의 하루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근로자의 일당이 10만원이라면, 200데나리온은 2천만 원 정도 되는 돈입니다. 
보통 많은 돈이 아닙니다.

불가능을 보고한 빌립은
- 38년 된 병자가 고침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기적을 보았습니다. 
- 누가복음 9장에 보면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도
병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눅 9:11)
그런 것을 다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빌립의 생각은 부정적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사람들을 마을로 보내어 무엇이든 사먹게 하자고 했습니다.(마 14:15)
그들도 빌립과 같은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천국 복음을 듣고, 기적을 보아온 그들이지만 … 
여전히 예수님을 자신들과 같은 수준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떤지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으로 성경을 읽고/말씀을 들으십니까?
성경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얘기, 
성경에 나오는 많은 기적들을 보면서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귀를 틀어막고 눈으로 보지 않고 
자기 판단이 정확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가 본 것, 자기의 경험, 자기의 판단이 틀림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얘기는 귀에 안 들어오고, 눈으로 보지 않으려는 생각을 갖습니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들,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사실은 진짜 배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진짜 많이 배운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한결같이 깎듯 합니다.
그런데 어설프게 배운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뻣뻣합니다.

얼마 전에 어느 대학 교수들의 수련회에 갔습니다.
대학 교수만 400명 정도 모였습니다.
강의를 하는데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대학교수들의 대부분은 
자기의 전공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전공한 성경에 대해 열심히 강의했습니다.

목사님들끼리 하는 얘기가운데 
설교하기 제일 좋은 대상이 바로 목사님들이라고 합니다. 
목사님들은 설교하러 오라고 하면 비행기 타고도 가지만 
설교 들으러 오라고 하면 길도 안 건너갑니다.
그리고 자기가 하는 설교 외에는 잘 안 듣기 때문에
목사님들 대상으로 하는 설교가 제일 쉽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깊이 빠져 있는 것을 꼬집는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내 생각, 내 지식, 내 경험, 내 판단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
교만하고 진짜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기적을 가로막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를 닫아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마 11:15) 하셨습니다.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

빌립은 자기의 생각과 계산으로 많은 사람들을 먹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말한 200데나리온이라는 계산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말씀드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정적으로 정확하게 안된다고 예수님께 알려드리기 위해
계산해 낸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때, 안드레가 예수님께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했습니다.(요 6:9) 
그런 상황에서도 안드레는 빌립과 달랐습니다.
누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먹을 것을 가진 아이가 있다고 예수님께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그 뒷말은 
“ …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요 6:9)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자리에 앉게 하라고 하시고 
축사하신 뒤에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했습니다. 
“모두 / 다 배불리” 먹었다고 했습니다. (마 14:20, 막 6:42, 눅 9:17, 요 6:12)
그리고 13절에 보면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 6:13) 했습니다. 

바구니는 유대 사람들이 평소에 휴대하고 다니던 것으로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요즘의 손가방 정도의 휴대용 작은 바구니를 말한다.
유대인들이 바구니를 가지고 다닌 까닭은 
이방인들에게 부정한 음식을 사 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구니를 들고 다녔다.
<생명의 삶 플러스, 09년 1월호 참조>

아무 것도 없어 두 손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있는 것 살펴봐야 턱 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상황과 문제였지만 예수님이 해결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비전과 열정의 삶을 살려는 마음이 있지만 그것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이 가진 생각, 자신이 내린 판단, 자신이 경험한 것 … 등으로
안된다고 판단해 버리는 것입니다.
‘나는 안될거야, 안돼, 틀렸어, 끝났어’
‘저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꺼야, 원래 저런 사람이야, 그래 그렇게 살다 죽어라’
어떤 이들은 나라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원래 그래, 우리나라 사람은 안돼. 관습이야.
늘 그랬어, 누가 대통령이 되도 똑같아. 
대통령 임기만 지나고 나면 수사를 받으니 …’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늘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개입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단정 짓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면서도 안드레처럼 말합니다.
‘열심히 전도해 보겠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하면서
속으로는 ‘내 부모님은/남편은 안 믿을걸요’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교회에서, 속회에서 골치 아프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사랑하고, 참으며 살자고 하면 아멘 하면서도
그러나 그 이가 변화되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입으로 하는 말은 ‘열정을 다해 /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
말끝에 ‘그러나’를 붙입니다. 
소망을 갖자, 희망을 갖자고 말하면서도 뒤에 ‘그러나’를 붙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와 생각과 판단을 넘어 크고 놀라운 일로 …
좋은 것으로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 판단과는 다르고 / 높으신 분이십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 …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고 했습니다. 

- 우리는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롬 6:23)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요 3:16)
- 우리는 마귀의 자녀 / 거짓의 자녀(요 8:44) 진노의 자녀였습니다.(엡 2:3)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요 1:12)
- 우리는 둘째 사망 불 못에 빠져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했지만(계 20:14)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영원한 안식처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습니다. (빌 3:2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생각하기에 불가능한 것들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러나’라는 말도 때에 따라 잘 사용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을 먹게 하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었지만
빌립과 안드레가 ‘그러나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여기 계시니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그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모든 일을 열정으로 한다는 것은 단지 열심히 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과 더불어 자신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열정’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 자녀답게 살겠다는 다짐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하지만
우리의 비전을 가로막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드는 일들이 많습니다.
주저앉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열정을 다해도 안 될 것 같은 상황을 만납니다.
그래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3절에,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12:3) 고 했습니다. 
하나님도 참으셨습니다. 참으십니다.
하루가 천 년 같이 천 년이 하루같이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벧후3:8~9)
우리도 참아야 됩니다. 우리도 기대하며 기다리며 준비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문제는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판단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즘 오고가는 이야기들 중에 유명한 두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영국의 ‘폴 포츠(Paul Robert Potts)’라는 오페라 가수입니다. 
그는 영국의 한 TV의 스타 발굴 프로그램 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그램이 시작한 첫 해에 우승을 했습니다. 
예선에 나온 폴 포츠는 오페라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휴대전화를 파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폴 포츠는
자신 없어 보이는 표정, 삐뚤어진 치아에 깨진 앞니,
튀어 나온 똥배에 삐져나온 셔츠 …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심사위원들 앞에서 오페라를 부르겠다고 했습니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냉소적인 표정으로 폴 포츠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폴 포츠가 노래를 시작하자
스튜디오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그를 시큰둥하게 바라봤던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진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부른 오페라는 푸치니의 오페라‘투란도트’에 나오는 
‘공주는 잠 못 이루고’라는 아리아였습니다. 
그 곡은 부르기 힘든 곡이라 실력 있다는 성악가(테너)들도 잘 부르지 않는 곡입니다. 
그런데 폴 포츠는 그 곡을 기가 막히게 잘 불렀습니다. 

그는 어릴 때 말투와 외모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감이 되었던 왕따였습니다.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너무 가난해 정상적인 성악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고 이탈리아에서 단기과정의 오페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암으로 수술을 받았고, 
2003년에는 오토바이 사고로 쇄골이 부러지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그는 휴대전화 외판원을 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도전하고 도전해서 결국 자신의 꿈을 이뤄냈습니다. 
2007년 ‘One Chance’라는 앨범으로 데뷔했고,
UK 차트(영국 팝의 권위 있는 음악 차트) 1위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10일 전(4월 16일), 같은 프로그램에 나온
수잔 보일(Susan Boyle)이라는 여성이 화재입니다. 
올해 47살의 이 여성은 배추 머리에 
헐렁한 통짜 원피스를 입은 촌부인처럼 보입니다. 
그녀는 자신을 아직 키스도 못해본 처녀라고 소개합니다. 
그녀의 외모나 말투, 무대에서 보여준 행동은
한번쯤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괴짜와 같았습니다. 

‘캣츠(Cats)’에 출연한 세계적인 뮤지컬 가수 
일레인 페이지(Elane Paige)와 같은 전문 가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그녀의 말에
관객들은 비웃었고 심사위원은 비아냥거리듯 
‘왜 가수가 되지 못했죠?’라고 물었습니다. 
수잔 보일은 ‘기회가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준비된 영상을 보실까요> <동영상 - 2분 54초>

심사위원은 ‘까무러칠(stunning), 믿기지 않는(unbelievable), 
굉장한(amazing), 환상적인(fantastic), 전율할(thrilled), 
비범한(extraordinary)’ 등의 찬사를 쏟아냈습니다. 

폴 포츠와 수잔 보일의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초라하고 별 볼 일 없었습니다.
겉만 보고 비웃었던 사람들에게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비웃어도/멸시해도 … 껍데기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 
실망치 않은 그 담대함이 멋져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모해 보이는 그 도전, 끝까지 해보려는 마음이 대단하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예측을 극복해야 …

비전을 포기한 사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변명은 한결같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환경이 도와주지 않았다’
‘연줄이 없다’, ‘학벌이 떨어진다’, ‘외모가 신통치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핑계를 댑니다. 
사업이 잘 안되고 …, 취직이 안되고 … 지원했던 학교에 낙방하고 …, 
진급에서 누락되고 … 하는 것들이 실패가 아닙니다. 
‘이제는 끝났다’, ‘틀렸다, 안된다, 못한다’, 
‘이것 가지고 뭐가 되겠냐?’는 생각이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돌보심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다시 또 도전하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자신에 대해, 자식에 대해 … 
작은 머리로 판단한 것으로 부정적인 예측을 하지 마십시오.
수학, 영어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시험은 기가 막히게 잘 보는 학생인데 
앞에 나와 발표를 시켜보면 정말 한심한 학생들이 많습니다.

성적으로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지 마십시오.
문제는 이제부터 포기하느냐, 결단 하느냐입니다.
가능성을 잘라버리는 포기냐 
가능성을 위해 나머지를 잘라버리는 결단이냐는 여러분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라고 
고백하면서 왜 하나님을 무능하신 분으로 전락시키십니까?
- 죽음이 끝이 아님을 선언하신 하나님
- 죽음까지도 우리를 가둘 수 없는 것을 보여 주신 하나님
- 예수 믿는 사람은 망함이 없는 사람으로
영생의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요3:16)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그 하나님을 잊고 산다면 그것이 실패입니다.

열정은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 사명, 가정과 일터 … 자신과 자녀 … 포기하면 안됩니다.
지금 어려워도 … 가능성 없어보여도 …
남들이 모두 실패했다고 손가락질해도 … 
안된다고 그만두라는 말을 들어도 … 
그렇게 해서 되겠느냐? 는 소리를 들어도 …
보리떡 5개 물고기 2마리 같은 것 밖에 없어도 …
빌립처럼 안된다고 말하지 말고 
안드레처럼 이것 가지고 무엇을 하겠냐고 말하지 마세요.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낙망치 말고 부정적인 예측을 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힘써야” 합니다. 
거두어 남게 하는 역사는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물론 그 날과 그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입니다.
현재가 어떻든지 … 지금이 어려워도 … 
고작 가진 게 보리떡 5개/작은 생선 2마리라도 … 
‘그러나 하나님이’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거룩한 주일 복된 자리의 주인공 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 마음에 합한 백성으로 살기를 소원하면서도
내 생각과 내 판단으로 하나님을 감추려고 
하나님을 외면하려고 했던 순간이 많았음을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며 최선을 다하며 낙망치 않고 부정적인 예측을 극복하기 위하여 
힘쓰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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