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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천상 사역 (막 16: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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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천상 사역 (막 16:19~20) 
  

십자가와 부활은 기독교 교리의 2대 기둥입니다. 그 중 하나라도 부정하거나 불신하면 기독교 신앙은 성립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교리가 있는데, 예수님의 승천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에 올라가셔서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십니다. 그러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살아계실까요? 부활하신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십니다. 이런 내용이 전부 성경에 기록되어 있고, 사도신경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 ...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 ”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을 뿐만 아니라 승천하셨습니다. 행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즉시 승천하시지 않았습니다. 40일 동안 지상에 더 머무셨습니다. 그 이유는 부활의 사실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심으로 부활을 확증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금세 승천해 버리시면 부활의 사실이 부정되고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이 확신을 갖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격려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40일이 지난 후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승천에 관한 말씀을 들으면서 자칫 잘못하면 예수님이 떠나가셔서 아주 멀리 계신 분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그 당시 승천 장면을 목격한 제자들은 물론이고, 오늘 우리 성도들도 승천하신 예수님을 아주 가까이 만나고,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할까요? 함께 살펴봅니다. 아무쪼록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정말로 예수님을 가까이 만나고 체험함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예수님의 승천 : 하늘에 오르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승천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하늘에 올라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고 말씀합니다. 19절.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이것은 2천년 전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고자 예루살렘 성지에 ‘예수승천기념교회’(The Dome of Ascension)가 세워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곳 감람산정산 부근에 세워져 있습니다. 8각형 모양의 돔으로 된 작은 교회당인데, 본래는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나타내고자 지붕 없이 건축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2세기 십자가 전쟁 이후 기독교에서 이슬람 세력으로 넘어가면서 지붕이 덧씌워졌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그 안에 들어가면 바닥에 ‘예수승천바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발자국을 남긴 바위라는 겁니다. 어쨌든 예수님은 이렇게 해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단순히 “하늘로 올라가셨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 이런 식으로 말하고 지나가면 곤란합니다. 그 뜻을 좀 더 분명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① 하늘에 오르심 :

여러분, 하늘에 올라가셨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요? 하늘이라 하면, 얼른 대기권 너머 우주공간 어딘가를 연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올라간 하늘은 전혀 다른 곳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을 인류 최초의 우주인이라 불러야 할 겁니다. 분명히 실재하는 공간인 것은 사실이지만, 전혀 다른 곳입니다. 구분하면 이런 겁니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하늘은 우주공간에 펼쳐진 하늘 즉 천공(天空 Sky)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올라가신 하늘은 전혀 다른 장소인 천국(天國 Heaven)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어쨌든 구별된 공간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천국으로 올라가셨기에 장차 우리도 그 곳 으로 갈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어디 있는지 잘 몰라도, 가 본적이 없어도 예수님이 가신 그 길로 따라가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는 겁니다. 

②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서 ‘우편’은 공간적인 방향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공간적인 우편과 좌편이 있다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유한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그래야 좌편과 우편이 있을 수 있죠.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므로 공간적인 의미로 좌편이나 우편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편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권세, 능력, 위엄, 영광 등을 갖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낮고 천한 인간의 육체를 입고 낮아졌습니다. 그러다가 십자가에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고 부활 승천하심으로 본래의 위치로 복귀하신 겁니다. 

이런 사실을 증거하는 성경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두 군데만 소개해 드리죠. 먼저 마28:18 보면, 승천 직전에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하나님으로서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갖고 계심을 스스로 공언하셨습니다. 또 하나는 빌2:9~11입니다.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무슨 말씀인가요? 예수님은 이제 천국에 올라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로 모든 인생과 우주만물을 굽어 살피시고 통치하시는 주권자로 계신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과 성도의 관계 변화 : 영적 연합과 교제 

그런데 이쯤에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갖고 계시면 되지 굳이 승천까지 하실 이유가 있느냐 이겁니다. 분명히 승천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와의 관계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부활 이전에는 제자들이나 성도들과 육체의 모습으로 관계를 맺고 교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영적인 관계로 발전되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보혜사 성령을 통해 관계를 맺고 교제해야 됩니다. 그래서 굳이 승천하신 겁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대신 성령이 오셨습니다. 마28:20 “ ...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육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말이 안 됩니다. 멀리 떠나시면서 항상 함께 있겠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것은 오직 영적으로라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요14:18~20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여기서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재림이 아니라, 성령 강림을 가리킵니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이 오셔서 영적인 연합 관계(Spiritual Union)를 맺고, 영적 교제(Spiritual Communion)를 하시겠다는 겁니다. 

적절한 비유가 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예를 생각해 보십시오.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다고 합시다. 어떻습니까?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이렇게 된 겁니다. 아주 친밀한 관계가 된 것이죠. 이처럼 성도들이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교제할 수 있게 됨을 말씀하신 겁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이 아직도 육체를 갖고 우리와 관계를 맺고 교제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극히 제한적이 될 겁니다. 예수님이 한 장소에 계시면 다른 곳에는 계시지 못합니다. 한 시간에 몇 사람을 만나면 다른 사람들은 만날 수 없습니다.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제 성령을 통해서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을 만나고 교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3] 예수님의 천상 사역 : 통치, 대언, 중보   

그러니까 예수님은 부활하신 육체로 천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동시에 성령을 통해 지상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겁니다. 지금도 천상에서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천상사역’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통해 동시에 지상에서도 일하고 계신 겁니다. 

그런데 앉아 있다고 하니까 자칫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앉아 계시다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중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차적으로는 지상사역을 완수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핵심은 구속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선언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십자가의 예표라 할 수 있는 구약의 제사를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구약의 성전에는 의지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구약의 제사는 예고편에 불과하므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까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미완성이란 의미로 의자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 십자가 구속 사역을 완성하신 예수님께서 의자에 앉으신 겁니다. 

2차적으로 이제 천국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하심을 암시합니다. 승천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휴식 상태로 있는 게 아닙니다. 왕이 왕좌에 앉아 집무하는 것과 같습니다. 집무 상태를 잘 보여주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스데반 순교 장면 중에 보면 행7:55에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자리에서 섰다는 표현은 분명 관심을 갖고 일하고 계셨음을 암시합니다. 줄곧 스데반의 동향을 살피고 계시다가 마지막 순교 순간 그를 맞이하게 위해 일어섰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해서 계속 일하고 계심을 증거합니다. 20절.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지상에 남은 제자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는데, 예수님이 함께 일하십니다. 천국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동시에 성령을 통해 지상에서 일하고 계신 겁니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때 각종 이적을 보여주심으로 동행하고 계심을 생생히 보여줍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런 사실을 생생하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문자 그대로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일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이 계속 함께 하심을 발견합니다. 사도행전에 이런 표현들이 나옵니다. “주의 영이 ... ”(행8:39), “주께서 ... ”(행9:11), “주의 손이 ... ”(행11:21), “성령이 ... 예수의 영이 ... ”(행16:6~7 ) 등. 그래서 사도행전에 이렇게 별명을 붙일 수 있습니다. ‘성령행전’,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행전’입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천상에서 어떤 일들을 하실까요? 세 가지만 말씀드립니다. 

① 통치 :

첫째는,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통치 사역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 우주적 권세를 가지고 온 인류와 우주만물을 다스리십니다. 특히 교회와 성도들을 보살피시고 다스리십니다. 엡1:20~22 “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여기 보면 우주의 질서가 있죠. 맨 꼭대기에 예수님이 계시고, 그 아래 교회, 그 아래 만물입니다. 만물에는 인류와 온 세상과 우주만물이 포함되겠죠. 

여기서 제일 중요한 단어가 뭘까요? ‘주권’이란 단어와 ‘머리’란 단어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예수님이 주(主 The Lord))가 되신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세상만사와 인생만사가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활동, 우리 성도들의 개개인의 삶과 활동 역시 예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총사령관으로 지휘하고 계시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통치하고 다스리실까요? 성령과 말씀을 통해서! 말씀 통치입니다. 이를 가리켜 로고크러시(Logocracy)라 부릅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통해, 성령은 말씀과 더불어(Cum Verbo) 일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축복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겁니다.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이 주님이 역사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세상의 유행을 따라가고, 헛된 소리를 듣고 살면 엉뚱한 길로 갑니다. 방황하다가 마침내 망하고 맙니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의학 잡지에 실렸던 글이라고 합니다. 어느 여인이 5살짜리 어린아이 데리고 점술가 찾아갔습니다. 점술가는 그 아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 애는 43세까지밖에 못 살겠구먼.” 그 여인의 얼굴도 흙빛이 됐지만, 그 아이의 가슴 속에도 그 말이 비수가 되어 박혔습니다. 그 후 그 아이의 마음 속에 불안의 그림자 드리워졌습니다. 43세가 가까워지면서 더욱 초조해집니다. 갈수록 고통 가운데 절규합니다. 그러다 정말 43세에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사인은 마약 중독이었습니다. 그는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과 공포로 고통을 받다가 비참하게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엘비스 프레슬리입니다. 세기의 가수로 로큰롤의 황제로 명성을 날렸지만 불행한 인생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그 점술가가 족집게처럼 맞춘 겁니까? 그렇지 않죠. 점술가의 말에 지배를 받으며 살다가 그렇게 됐을 뿐입니다. 세상의 거짓과 헛된 소리에 끌려 다니면 이렇게 됩니다. 

여러분, 인생에 운명이나 숙명이란 게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 인생은 살아계신 예수님이 함께 해 주시는 가운데 얼마든지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인생은 미리 녹화한 것을 틀어주듯이 정해진 인생을 꼼짝없이 살아가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녹화가 아니라, ‘라이브’입니다. 날마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 이제는 살아계신 예수님의 통치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앞날에 놀라운 인생이 전개될 줄로 믿습니다. 

② 대언 :

두번째,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대언 사역을 하십니다. 대언은 일반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변호하는 겁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생각 안 해 보셨습니까? 예수님이 2천년 전에 그것도 지구 반대편 이스라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오늘 여기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나? 또 하나, 예수님을 영접하고 성도가 된 후에도 자주 죄를 저지르는데 그 모든 죄를 다 용서받을 수 있나? 혹시 나중에 용서받지 못한 죄가 남으면 어떻게 하나? 구원이 취소되는가? 이런 의문들을 갖게 되면 정말 불안해집니다. 

이런 의문들을 해결해 주는 게 바로 예수님의 대언 사역입니다. 요일2:1 “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advocate)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으므로 아버지께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항상, 오늘, 그리고 계속해서 영원히! 그러므로 2천년 전에 지신 십자가이지만 오늘 나를 죄에서 구원하고, 또 구원 이후 매일 범하는 죄까지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마음 푹 놓고 방종하면 안 되겠죠. 어쨌든 대언 사역을 믿으시고, 구원의 확신과 사죄의 확신을 갖고 늘 평안 가운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③ 중보 :

세번째,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서 중보사역을 감당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인고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중보자로 계시므로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히4:14~16 “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그런데 살다 보면 때때로 미련하고 둔해서 미련하고 둔해서 엉뚱한 내용으로 잘못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망할 일을 위해 기도하는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미리 좋은 데를 마련해 놓고 있는데, 엉뚱한 회사에 취직하겠다고 간절히 기도하는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한심한 겁니까? 이럴 때는 예수님이 중간에서 기도의 교통정리를 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하나님이 거절하시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또 우리 자신이 기도를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게을러서, 낙심해서, ...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기도 해 주십니다. 롬8:34 “ ...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갖고 게신 분이므로 나 자신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나보다 더 안타까워하십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철부지 아이가 하는 짓을 보면 정말 한심합니다. 그러면 부모가 더 안타까워하고 애를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나보다 더 애태우시며 기도해 주십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송 가운데 이런 노래가 있죠. “당신이 지쳐서 기도 할 수 없고 /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 주님은 아시네 당신의 약함을 / 사랑으로 돌봐주시네 / 누군가 널 위하여 누군가 기도하네 / 네가 홀로 외로워서 마음이 무너질 때 / 누군가 널 위해 기도하네” 이 가사처럼 우리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해 중보기도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자신의 기도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의 중보기도 때문에 오늘 내가 이만큼이라고 살고 있음을 믿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천국에 멀리 계신 것 같지만, 성령을 통해 지금 이곳에 나와 함께 생생하게 동행해 주십니다. 천상에서 일하시지만 성령을 통해 지상에 있는 우리의 삶 가운데 동시에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휴대폰을 사용하면 지구 반대편에 멀리 있는 사람도 옆에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러나 이건 정말 느낌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멀리 있는 겁니다. 그러나 승천하신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면서 동시에 실제로 나와 함께 계십니다. 이건 느낌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꼭 믿으시고 항상 예수님과 동행하며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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