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 (요 20:19~31)

  • 잡초 잡초
  • 259
  • 0

첨부 1


예수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 (요 20:19~31)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신앙 생활을 몇 년 정도 한 여 집사가 제게 와서 심각하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정말 천당과 지옥이 있나요? 길게 설명하지 말고 간단하게 있다 없다만 말씀해 주세요."
저는 당황해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되물었습니다. 그분이 대답하기를 세상에는 복잡한 문제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시어머니와의 문제, 남편과의 문제, 자녀 교육 문제, 경제 문제 등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것이 확실하면 이런 문제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말입니다. 천당과 지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다른 말로 바꾸면 부활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정말 사실입니까? 그리고 우리도 부활할 것입니까? 이보다 더 근본적이고 또 중요한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확실한 부활 신앙이 있다고 하면 오래 사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며 또 잘 사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합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명의 문제요 생명의 문제는 예수님의 부활 사건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사실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부활 신앙이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근본이요 시작이요 또한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죽으신 그 주님의 부활, 부활하신 그 주님의 나타나심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에서 무기력하게 죽으셨을 때 불의의 세력들이 승리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불의와 불법이 판을 치는 현실에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거짓과 위선을 폭로하셨습니다. 다만 그렇게 불의를 심판하셨을 뿐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사실도 분명히 밝혀 주셨습니다.

주님의 그 부활은 일찍이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을 그대로 지키신 것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8절 말씀에 뭐라고 약속하셨습니까?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주님의 부활이야말로 제자들의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 주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지난 며칠 동안은 참으로 온 세상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대제사장이 무엇을 하기 위해서 있습니까?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 있는 것이 대제사장입니다. 그런데 그 대제사장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심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잘 가르쳐야 할 서기관들과 율법 교사들이 오히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했습니다. 진리 대신에 거짓과 불의가 판을 쳤고 불의와 죄악이 득세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모두 무로 돌아가는 것 같았습니다. 내일을 전혀 기약할 수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넘치는 기쁨이었고 또한 평강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는 힘과 능력이 되었습니다.

그 주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2~23)
놀라운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제자의 직분은 인간의 힘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만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제자의 직분이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주님이 맡기신 구원의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는 사역은 주님의 지상 명령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성령이 임하시고 그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비로소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라는 말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서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는 것이 전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신 평강이란 단순히 안전한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과 평화와 성령의 권능이 넘쳐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성령 충만한 삶이란 바로 주님의 부활에 근거하는 삶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바로 우리의 기쁨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바로 우리의 성령 충만한 삶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믿음과 삶의 근거가 되고 또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부활의 은총은 오직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 어떤 기쁨도 평화도 맛볼 수 없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제자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게 하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때문에 주님은 의심하며 믿지 않는 도마에게까지 찾아오셔서 못 자국 난 손을 보라고 하셨고 그 손가락을 옆구리에 넣어 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하반절)
그 말씀을 듣고 도마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그러자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
무슨 말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일 것을 권고하셨습니다.

알고 보면 우리의 삶의 문제는 모두가 믿음의 문제입니다.
더욱이 우리의 신앙은 믿음을 근거로 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경험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과학적 증거나 실험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받아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히 선언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베푸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주님의 부활 사건이야말로 가장 큰 표적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적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했습니까?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아니 사실은 주님의 생애 전부가 다 주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사건이야말로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증언하는 표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 사건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건임과 동시에 우리가 믿음으로 이 구원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 신앙의 본질이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적 사건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여기에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신앙적 행위와 사역을 필요로 하지만 교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세상으로부터 많은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소위 교회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소외되고 가난한 자들에게 대한 책임 때문에 사회 복지 사역을 해야 하고 또 도덕이나 윤리를 위한 운동이나 또는 정치적인 자유와 환경을 위한 교회의 책임도 요청받고 있습니다. 그런 노력들을 통하여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궁극적 사명은 바로 이 부활의 주님을 전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복지 기관이 아니며 사회 운동 단체도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을 살리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주님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우리의 논쟁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부활을 전제하고 있고 그것은 또한 매우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그 부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 부활을 전하여 사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나의 부활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없다면, 그리고 이 부활의 복음으로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헛된 것이 되고 주님의 부활도 헛된 것이 됩니다.
기쁨의 샘이 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강을 누리며 그 주님의 부활을 널리 전하고 증언하는 충성스러운 증인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